
자동차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있다. ‘큰 엔진-강력한 파워-고성능-값비싼 대형차-부의 과시’ 같은 식으로 이어지던 고전적 순환구조는 이미 깨어진 지 오래. 지금의 자동차는 작은 엔진으로 고성능을 내면서 환경 친화적이기까지 해야 한다. 구입가격이 높아서는 안 되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도 곤란하다. 한마디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차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오랜 세월 기술력을 갈고 닦아온 브랜드들이 제 실력을 드러내는 법. 그 대표적인 회사가 ‘폴크스바겐’이다. 폴크스바겐은 최고의 디젤 엔진으로 평가 받는 TDI로 리터당 20km 이상의 환상적인 연비를 실현화했으며, 수동기어보다도 더 빠른 변속을 해내는 DSG 자동기어를 개발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끔 해주었다. 이미 신화가 된 ‘비틀’을 만든 회사도 폴크스바겐이고, 해치백(뒤꽁무니가 짧은 형태의 승용차)의 교과서인 ‘골프’를 만들어낸 회사도 폴크스바겐이다. 그런가 하면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다카르 랠리에서 올해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회사 역시 폴크스바겐. 일상적인 차에서부터 가장 고급스러운 차와 최강의 랠리카까지 모두 아우르는 기술력을 지닌 회사라는 말이다.
실현불가능하게 보일 수도 있는 ‘친환경-고성능’이라는 과제 앞에서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아우성치고 있을 때 폴크스바겐은 아마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지금과 같은 세상이 오기도 전에 이미 최상의 효율성과 강력한 성능, 그리고 이 모두를 가능케 한 복합 엔지니어링을 완벽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명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와 폴크스바겐 브랜드 디자인 책임자 클라우스 비숍이 이끄는 디자인 팀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 같은 기술력에 힘을 보태주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독일식 기능주의의 매력
폴크스바겐은 유독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스테디셀러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2150만 대나 팔렸다. 세계 최고의 해치백인 골프는 1974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2800만 대가 팔렸다. 자동차 역사상 3번째로 많이 팔린 차다. 이번에 6세대로 진화한 제타 역시 1979년 태어난 이후 32년간 960만 대 넘게 팔렸다. 폴크스바겐 차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독일식 미학의 추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폴크스바겐은 최상의 기술과 디자인에 강력한 마케팅을 곁들여 늘 시장을 지배해왔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실력이기도 하다.
폴크스바겐의 이 같은 강점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차가 바로 이번에 새로 선보인 ‘6세대 제타’다. 6세대 제타는 엄밀히 말해 ‘제타의 6번째 모델’이 아니라 ‘폴크스바겐이 새로 만든 완전 신차’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한 변신을 자랑한다.
당초 골프의 세단 버전으로 태어났던 제타는 바로 앞 5세대까지도 그 같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왔지만 이번에는 독자적인 모델로 그 완성도를 높였다. 차체 길이는 역대 제타 가운데 가장 긴 4644㎜. 이전 세대보다 9㎝나 길어졌고 현대 쏘나타보다 조금 짧은 정도다. 게다가 트렁크 룸 용량은 510리터에 달한다. 넓기로 유명한 쏘나타보다 훨씬 더 넓은 사이즈.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까지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다. 이미 콤팩트 세단의 범주는 넘어선 지 오래. 군더더기나 겉멋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남성미와 우아함, 침착함과 역동성이 공존하는 6세대 제타의 스타일링은 평범한 듯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폴크스바겐 엔지니어링의 강점 확인할 수 있는 성능
6세대 제타의 이 같은 스타일은 실내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제타의 인테리어는 단정하고 품질감 좋으며 무엇보다 사용하기에 더없이 편리하다. 이 차를 처음 타는 운전자일지라도 마치 몇 년간 사용해온 차를 다루듯 금세 적응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차 만들기의 달인다운 실력이다.
세미버킷 타입으로 만들어놓은 시트는 마치 맞춤형 정장처럼 탑승자의 몸에 착 달라붙는다. 이렇게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운전자의 입맛에 맞도록 해놓았으니, 시트에 앉아 새로 디자인한 스티어링 휠에 손을 얹는 순간 마음껏 달리고 싶은 욕망이 불끈 일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같은 기분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게 튼튼한 파워트레인.
국내에 출시하는 제타는 1.6리터 TDI 블루모션과 2.0리터 TDI 등 두 가지 디젤 버전이다. 폴크스바겐의 친환경 기술인 블루모션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1.6 TDI 블루모션은 7단 자동기어(DSG)와 어울려 리터당 22.2㎞의 놀라운 연비를 자랑한다. 최고출력은 105마력. 균형감이 좋아 숫자를 뛰어넘는 주행성능을 보인다. 특히 폴크스바겐 TDI 엔진의 연비는 신뢰성이 좋아 실제 어떤 주행상황에서도 제원표상의 공인연비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윗급인 2.0 TDI는 블루모션보다 조금 더 강력한 주행성능을 내면서 역시 리터당 18.0㎞의 동급 최고 수준 연비를 유지한다. 강력한 성능과 탁월한 연비를 오로지 엔진 기술로만 커버하고 있는 데서 폴크스바겐 엔지니어링의 우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의 자동차회사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해내야 한다. 과거에도 강자였고 지금도 시장의 강자인 폴크스바겐이 미래에도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로 군림할 수 있으리라는 단서는 바로 이 차, 6세대 제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Tip. 제타의 역사는 바람의 역사
‘제트기류’이름에 걸맞게 선풍적 인기

초대 제타는 197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처음 등장했다. 새로운 개념의 콤팩트 세단이라는 이 차의 본질과 더불어 독특한 이름도 당시 관람객들에게는 화제였다. ‘제타’는 차에 바람의 이름을 붙이는 폴크스바겐의 전통에 따른 작명으로, 제트기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럽차’라는 명성을 얻은 2세대에 이어 1992년 등장한 3세대는 역시 바람을 가리키는 ‘벤토’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다. 1999년에 데뷔한 4세대의 이름은 보라. 이 또한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제타는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의 누적 판매대수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미국 시장에서 판매했을 정도다. 크기와 디자인, 성능을 모두 개선한 이번 6세대 역시 제타의 전통대로 데뷔와 동시에 세계 주요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니 시승기
“TDI 엔진 성능 타의 추종 불허”

신차를 처음 시승할 때면 으레 약간의 의심이 일게 마련이다. 처음 보는 디자인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처음 앉아보는 시트는 과연 얼마나 편안하고 기능적일지, 처음 만져보는 각종 계기들은 얼마나 사용하기 편리할지 모든 게 낯설기 때문이다. 특히 엔진과 기어박스 등 차를 움직이는 파워트레인이 낯설 때 신차에 대한 의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반면 6세대 제타는 디자인에서부터 사이즈, 성격 등 모든 게 달라졌음에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타의 보닛 안에 들어앉아있는 엔진은 폴크스바겐이 자랑하는 TDI. 이 엔진이라면 의심할 이유가 없다. TDI 엔진은 성능과 효율성, 연비 등 모든 면에서 언제나 최상의 품질을 유지해왔다. 적어도 기대 이하의 성능으로 실망을 안겨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폴크스바겐코리아가 국내에 들여온 제타는 1.6 블루모션과 2.0 등 두 가지 TDI 모델이다. 이들을 차례대로 몰아보기로 했다. 먼저 고른 차는 1.6 TDI 엔진을 올린 1.6 블루모션. 이 차는 105마력의 출력을 내면서도 리터당 22.2㎞의 놀라운 연비와 킬로미터당 121g에 불과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하는 친환경-고성능의 전형이다. 폴크스바겐의 친환경 기술인 블루모션 테크놀로지와 멈춰 설 때마다 엔진 시동을 자동으로 꺼주는 오토 스타트-스톱 시스템 등 엔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첨단기술이 총동원된 차이기도 하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자 제타 1.6 블루모션은 정말 빠른 반응을 보인다. 출발 가속도 좋고 이후의 주행성능도 매끈하다. 코너를 공략할 때의 차체 밸런스도 흠잡을 데 없다. 보기에 따라 다소 무덤덤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은 오랫동안 타고 다닐 패밀리 세단으로서는 질리지 않을 타입이다. 고속도로에서 1.6 블루모션은 시속 170㎞까지 거뜬히 올라가는 가속력을 과시했다. 7단 자동기어(DSG)는 엔진회전수가 올라갈 틈도 주지 않은 채 번개 같은 변속을 계속 이어갔다. 바로 좋은 연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디젤 엔진임에도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에어컨을 켠 채 고속주행을 계속했음에도 제타 1.6 블루모션은 리터당 20㎞에 가까운 연비를 기록했다. 요즘 나오는 다른 차들에 비해 인테리어는 평범하지만, 번지르르한 장식으로 겉을 꾸미는 대신 첨단기술을 드러나지 않게 챙겨넣는 쪽을 택한 폴크스바겐의 자신감이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졌다.
1.6 블루모션에 이어 2.0 TDI의 운전석에 앉자 우선 시동버튼과 전자식 에어컨 등 업그레이드한 장비들이 눈에 띈다. 2.0 TDI는 시동키를 꽂을 필요 없이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방식. 140마력의 짱짱한 힘을 내는 2.0리터 디젤 엔진은 V6 3.0리터급 휘발유 엔진과 맞먹는 고성능을 발휘한다. 이 엔진과 조합을 이룬 기어는 6단 자동(DSG). 2.0 TDI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을 9.5초에 끊고, 시속 210㎞의 최고속도를 낸다. 그러면서도 공인연비는 리터당 18.0㎞에 머문다. 주행성능이나 연비 등 모든 면에서 동급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1.6 블루모션의 성능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2.0 TDI의 주행성능은 확실히 한 수 위다. 쭉쭉 뻗어나가는 힘이 여간 아니고, 그 힘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차체도 훌륭하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차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 정도의 성능을 이 정도의 연비로 즐길 수 있다는 건 6세대 제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6세대 제타의 국내 시판가격은 1.6 블루모션 3190만원, 2.0 TDI 349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