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역사소설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의 삶을 펼쳐간다. 자신이 믿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각 나라의 대립과 충돌이 각각의 인재들의 삶에 같이 그려져 흥미진진하다.



<삼국지>의 황건적이 창궐하던 시대에서 살아간다고 상상해보자. ‘난세에는 그냥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야지’라는 사람, ‘기회를 잡아 장사로 큰돈을 벌어야지’라는 사람 등 다양할 것이다.



이왕지사 삼국지 시대로 돌아가 ‘주군을 선택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에 도움을 주려 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어떠한 주군을 선택할 것인가?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나중에 위, 촉, 오로 삼국을 이루는 조조, 유비, 손권 같은 대표적인 군주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소, 유표, 공융 등 결국 멸망하는 주군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삼국지> 결말은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지만 결국 사마씨가 나라를 찬탈하여 진나라를 세우니 사마씨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면 어디로 가서 누구를 모실 것인가? 이러한 고민은 현재 자신의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샐러리맨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미래를 모른다면 4대 연속 삼공의 지위에 오른 명문가문 출신으로 하북에서 크게 세력을 떨친 원소와 예주의 원술이 가장 물망에 오를 것이다. 유표도 알짜배기 땅인 형주에서 세력을 떨쳤으니 만만치 않다. 공자의 후손이며 선비로 이름을 날린 공융도 있고, 외지긴 하지만 익주에서 세력을 펼치고 있는 유장도 있다. 이외에도 손견, 공손찬 등 많은 세력들이 있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원소가 가장 인기 있었다고 하며 원술도 호걸로 평판이 높았다고 한다. 반면에 유비는 아직 떠돌이 용병생활을 하고 있을 때고 조조는 이제 막 시작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을 시기다.



지금이야 이런 정보를 얻으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 몇 분이면 가능하지만 그 시대에는 단순히 이동만 하는 데도 며칠, 몇 달이 걸렸다. 범인(凡人)이라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세력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야심이 있고 생각이 깊다면 급하게 결정 내리지 않고 정보를 모아 선택할 것이다. 주점의 소문이나 백성들의 소리, 그 주군을 모시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등을 알아보려 노력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스카우트를 하러 사절이 올 수도 있겠다. 최종적으로는 주군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사람됨과 능력을 살펴 결정하게 된다. 능력이 부족하여 주군과의 만남까지 못 간다면 그 밑의 신하와 대면을 하겠지만, 역시 그 신하의 사람됨과 능력을 살펴 그 주군을 가늠해보게 된다.



지금이야 자신의 결정에 따라 쉽게 직장을 옮기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턱도 없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이 한 주군 밑에서 평생을 보내고 그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한번의 선택이 말 그대로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주군을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처음에는 그냥 말단 병사일 것이다. 불편한 잠자리, 변변치 않은 식사에 쥐꼬리만 한 녹봉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나마 평시에는 낫다. 전시에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된다. 칼이나 창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생계문제나 징집으로 억지로 끌려나왔다면 모르지만 출세를 목적으로 한다면 언제 알아줄지도 모르는 막연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결국 상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장수와 문관들이 처음부터 바로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생략되어 있을 뿐이지 처음에는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여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소설에 나올 정도로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수십만, 수백만의 이름 없는 인재들이 그들과 같이 있다.

‘여포’는 스펙만 좋고 신뢰성이 없는 인재

마중적토 인중여포(馬中赤兎 人中呂布). “말 중에는 적토마고, 사람 중에는 여포”라는 옛말처럼 여포는 <삼국지>에서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갖춘 장수로 나온다. 지금으로 말하면 각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쇄도하는 스펙이 아주 뛰어난 전문성을 갖춘 인재라고 하겠다. 하지만 전문성만 뛰어나다고 훌륭한 인재는 아닌 것처럼 소설 속에 그려진 여포의 삶은 현세의 스펙 좋은 인재가 잦은 이직을 통해 사그라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병주자사 정원이 여포를 중용하여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으나 적토마를 가져온 이숙의 꾐에 넘어가 여포는 의부를 죽이고 동탁을 새 양아버지로 섬긴다. 이후 왕윤이 초선을 이용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시키자 여포는 동탁을 죽이고 원술에게 몸을 맡긴다. 원술은 능력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여포를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되고 결국 여포는 다시 원소에게 옮긴다. 여포는 원소에게 간 후 많은 활약을 하였으나 원소의 신하들을 업신여기고 노략질을 일삼아 원소 역시 여포를 근심거리로 여기게 되고, 여포는 이를 눈치채고 이후 장양, 장막, 유비에게 몸을 의탁한다.



하지만 여포는 자신을 잘 대해준 유비를 또다시 배신하고 서주를 차지하지만 부하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결국은 조조에게 붙잡힌다. 마지막까지도 여포는 자신과 힘을 합치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조조에게 간원한다. 하지만 유비의 “정원과 동탁을 섬기던 일을 못 보셨습니까”라는 말에 조조는 여포의 목을 벤다.



이력서를 살펴보면 이직이 잦은 인재가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옮기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1~2년 다니다 습관적으로 옮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직장을 옮기면서 좀 쉬기도 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학창시절 괜히 새 노트, 새 참고서로 공부하면 잘될 것 같아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라 결국은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은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가와야지 개인이 핑계로 삼아 적용할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직장에 대한 마인드나 사람됨이 우선이고 훨씬 중요하다. <삼국지> 시대로부터 200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포 같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필자는 <삼국지>의 등장인물 가운데 좋아하는 장수 중 하나로 조운(趙雲: 조자룡)을 꼽는다. 상산군 출신의 조운은 근처의 유력세력인 원소에게 졸백으로 임관했으나, 원소의 그릇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공손찬 아래로 들어간다. 이후 유비를 만나 그 인덕에 반해 유비의 신하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하지만 유비는 동문인 공손찬과의 관계로 처음에는 거절한다. 훗날 조조에게 서주를 잃은 유비가 원소에게 의지할 때 조운은 다시 유비를 만나 부하로 들어간다. 이후 곤궁한 유비를 도와 장판전투에서 유선을 구하는 등 활약을 펼쳐 훗날 촉나라의 오호대장군 중 한 명이 된다. 유비와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도 있지만 조운은 오호대장군 중 제일 늦게까지 살아남아 촉나라의 기둥으로 노장의 실력을 발휘한다.



조운은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누구에게나 예를 갖춰 대했다고 한다. 무예에 있어서는 여포와 비견되고 사람됨에 있어서도 제갈량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요즘으로 말하면 핵심 중의 핵심 인재일 것이다. 초창기 이직이 두 번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꿈을 펼치기 위한 한결같은 마음에서 한 일이다. 특히 유비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일부러 찾아가 신하가 되고 그를 도와 촉나라를 일으키는 데 기여한 것은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 장비와는 또 다른 입장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기업, 중소기업을 나와 사무실도 제대로 없는 벤처기업에 들어가 대기업으로 만드는 데 기여를 한 셈이다.



만약 조운이 유비를 찾기 전에 헤드헌터를 찾아 유비라는 기업으로 이직을 하려는데 어떠한가요? 라고 물었다면 십중팔구 옮기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조운의 뜻과 유비의 뜻, 그리고 그 둘이 만나 이루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그 헤드헌터는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상황만으로는 성공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기 쉽다.

-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의 한 장면. 촉나라의 명장 조운(조자룡)이 이끄는 부대가 진군하고 있다. 지조와 신의, 꿈을 가졌던 조운은 오늘날 핵심인재의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의 한 장면. 촉나라의 명장 조운(조자룡)이 이끄는 부대가 진군하고 있다. 지조와 신의, 꿈을 가졌던 조운은 오늘날 핵심인재의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조운’은 실력과 신의 함께 갖춘 진짜 인재

회사의 규모가 작으면 인재 구하기가 어렵다. 기업과 인재 간에 서로가 잘 모르기에 처음에 눈에 딱 들어오는 회사의 규모가 작으면 별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기업에서도 서치펌을 이용할 때는 어느 정도 검증된 인재를 원하기에 그런 인재들은 더더욱 작은 기업에 가려 하지 않는다. 헤드헌터인 나 자신도 별로라고 생각되는 회사에는 절대 인재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장과 맨파워가 괜찮다고 판단되면 후보자들에게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권한다. 만나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못 올 기회를 저버리는 것일 수 있다. 사람 만나는 일을 시간이 아깝고 번거로워서 싫어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와의 만남은 해가 될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 보는 안목이 높아지고 성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작은 기업을 맘에 두고 있다면 규모가 작을수록 대표이사의 영향력이 크기에 자신이 몸담을 곳의 수장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철저히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대표이사가 성공해야 자신도 성공하니 말이다.



사람에 대한 느낌과 믿음은 결국 자신이 판단 내리고 그 책임도 자신이 지는 것이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느낌과 믿음을 가지고 동료나 선배의 권유로 회사를 옮기거나 같이 합류하고 또 창업도 한다. 나중에 좋은 결실로 맺어지면 좋지만 사실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경쟁사회인 만큼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많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뜻이 좋았다면 자신은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삶을 열심히 살고 뜻이 올바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도 대우 받으며 뜻을 펼칠 기회를 얻는다.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고 나면 승자가 패장들을 대면하는 자리에 나타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고 쉽게 마음을 바꿔 충성을 바치겠다는 사람은 바로 참수를 당하거나 그 그릇의 크기에 맞는 별 볼일 없는 자리로 내려가고, 도리에 따른 뜻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비록 쉽게 충성을 바치지는 않지만 중요한 자리에 중용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2000년대 초까지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급속한 성장을 이룬 시기가 있었다. C기업의 경우 설립 3년 만에 매출액 1000억원을 넘기면서 강남에 사옥도 구입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확장을 하던 때였다. ‘벤처신화’라 불리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기업은 상장 퇴출되어 예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다. 퇴출되기 직전 몇 년간은 월급도 제대로 못 줄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웠다. 많은 코스닥 기업들이 전성기에 비해 주가가 10분의 1, 20분의 1 토막이 날 정도로 지금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그렇다면 그 기업들의 전성기 때 헤드헌터를 통해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잘나가는 기업이라 비전도 좋아보였고 높은 이익으로 연봉도 높게 책정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했다. 굳이 나누자면, 자리에 안주하고 자신의 능력을 올리는 데 무관심한 사람은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 외국계기업이나 대기업으로 다시 스카우트되어 간 사람도 있다.

작은 이익 추구보다 비전 세워 경력 관리해야

그럼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은 당시에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인가 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겠다. 당시에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그 이후에 잘못한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 회사를 최선을 다해 살리려 노력하고 그게 안 되면 그 회사를 떠난다.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드는 기업을 보면 보상의 분배가 제대로 안 되고 무리한 확장을 하며 대표이사의 초심이 변하거나 그 눈을 가리는 간신배가 있기 마련이고 뒤이어 핵심멤버들이 떠나게 된다. 역사 속에 한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시대 변화가 빨라지고 자본주의 경제의 힘의 논리인 자본이 중시되는 현재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그 조직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여전하고, 성실한 사람과 뜻이 올바른 사람이 좋게 평가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직장 내 소소한 문제나 작은 연봉차이로 이직이라는 고민에 휘말리지 말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올바른 경력관리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중심은 결국 자신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