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택의 스마트폰 행보는 지난 5월 출시한 ‘베가 레이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세계 최초로 1.5GHz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베가 레이서는 출시되자마자 스마트폰 사용자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1.5GHz 듀얼코어 스마트폰은 아직 삼성·LG전자나 애플도 넘지 못한 벽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고성능 스마트폰은 대부분 1.2GHz대다.
베가 레이서는 그동안 베가 시리즈가 쌓아온 스피디한 이미지와 ‘스마트폰의 페라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페라리가 단순한 스포츠카가 아닌 예술과 감성이 숨 쉬는 작품으로 불리듯, 스마트폰을 더 빠르고 더 즐겁게 사용하는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베가 레이서의 성공 여부는 팬택의 향후 성장세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팬택이 베가 레이서를 선보이며 경품으로 수억원대의 명품 스포츠카 ‘페라리’를 내걸 정도로 제품 홍보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박병엽 부회장은 “베가 레이서는 팬택이 지난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담은 결정체로, 국내를 포함 세계시장에서 300만〜500만 대를 판매할 것”이라며 “여세를 몰아 2015년에는 매출 10조원의 고부가가치 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베가 3세대’로 불리는 베가 레이서의 사양은 현재까지 출시된 스마트폰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1.5GHz 듀얼코어를 장착해 기본 베가 시리즈에 비해 데이터 처리 성능은 60% 높이고 전력 소비량은 30% 낮췄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세계 최고의 스피드. 메뉴 이동이나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느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베가 레이서는 기존 팬택 스마트폰에 비해 연산 속도가 1.5배 이상 빨라지면서 3D게임과 대용량 멀티미디어 콘텐츠도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임성재 마케팅본부장은 “베가 레이서는 스피드에 있어서는 왕 중의 왕”이라며 “속도는 새 스마트폰 문화 창조의 촉매제”라고 강조했다.
베가 레이서는 4.3인치 디스플레이에 듀얼 스피커를 적용해 멀티미디어 환경에도 특화됐다. 또 자이로 센서를 활용한 게임과 800만 화소 카메라를 이용한 풀HD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기본기가 탄탄하다 보니 부가기능도 만족스럽다. 스카이 특유의 UI나 SNS 매니저, 7개의 바탕화면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품에 잘 녹여냈다는 평가다.
추가 배터리와 뒷면 덮개도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정면에서는 잘 보이지만 오른쪽이나 왼쪽에서는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시크릿뷰 기능도 장점이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고 뒷면을 엠보싱 처리해 손에 딱 들어오는 그립감도 그만이다.
팬택은 블랙, 화이트에 이어 순차적으로 다양한 컬러를 선보일 예정이며 SK텔레콤과 KT 모델은 5월 말, LG유플러스 모델은 6월 중순 출시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2와의 한판 승부도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이준우 부사장은 “갤럭시S2에 비해 웹브라우저 등 중앙처리장치(CPU)를 쓰는 부분의 속도는 우위에 있고 그래픽 처리속도는 동등하기 때문에 전혀 뒤질 게 없다”며 “이러한 우위를 기반으로 갤럭시S2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베가 레이서
베가 레이서가 세계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베가 레이서를 처음 기획한 것은 지난해 7월. ‘최고의 성능을 기반으로 최고·최초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였다.
최고 성능 구현을 위해 하드웨어 사양은 당시로서는 최고였던 1.2GHz 듀얼코어와 1GB 램 등이 결정됐다. 성능은 부품 등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최초,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부분은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접근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문상원 국내상품기획팀 과장의 말이다. “시장과 소비자 조사 등을 통해 디자인과 기술을 통해 즐거움을 제공하자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단순히 오락적 기능을 넘어 사용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기발함을 만드는 데 주력했죠.”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듀얼’이다. 베가 레이서에는 듀얼코어, 듀얼 입체 사운드, 듀얼 모드 스마트 등이 적용됐다.
하지만 출시를 두 달여 앞두고 개발팀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2가 1.2GHz 듀얼코어를 장착하고 시장에 나온 것이었다.
1.2GHz 듀얼코어를 탑재하기로 한 베가 레이서는 이미 제품 외형을 갖춘 상태. 그냥 내놓자니 ‘최고 성능’이라는 베가의 철학이 무색했고, 1.5GHz 칩셋을 제품에 반영하자니 3분기 이후에나 제품 출시가 가능했다. 출시를 늦췄다간 갤럭시S2에 시장을 뺏길 것이 뻔했다. 결국 팬택은 밀어붙였다. ‘최초’와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칩셋을 업그레이드해 당초 예정일에 내놓기로 했다.
개발팀에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유남영 연구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암담했어요. 1.5GHz 칩셋은 퀄컴에서 올 하반기에나 내놓을 예정이었거든요. 부품이 검증 안 된 상태에서 출시 일정은 그대로였으니 해야 할 일이 엄청났죠. 앞으로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날 퇴근해서 가족들에게 앞으로 두 달은 못 볼 거라고 미리 얘기했죠.”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부품 수급이었다. 퀄컴에서 제때 1.5GHz 칩셋을 공급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준우 부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퀄컴을 찾았다. 이 부사장은 반드시 1.5GHz 칩셋을 적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퀄컴을 설득했다. 끈질긴 설득에다 마침 칩셋을 검증해야 할 파트너가 필요한 퀄컴도 팬택과 같이 움직였다.
이후 300여명에 이르는 인력이 밤낮없이 베가 레이서 개발에 매달렸다. 휴가는 반납했고, 주말에도 제때 퇴근한 적이 없었다. 뭉쳐야 회사를 살려낼 수 있다는 한마음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팬택은 결국 제품을 출시하기로 한 날에 세계 최초로 1.5GHz 퀄컴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베가 레이서를 만들어냈다. 이는 핵심부품의 양산과 거의 동시에 완제품이 출시된 전무후무한 사례이기도 하다.
팬택이 국내외에 판매한 스마트폰 누적 판매량(공급기준)은 188만 대에 달한다. 이 중 53%인 100만 대 이상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베가’ 시리즈다. ‘베가 시리즈’는 지난해 ‘베가’, ‘베가X’, 베가의 일본 수출모델에 이어 올해 ‘베가S’까지 국내외에서 꾸준하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올해에만 스마트폰 20종 출시
베가(Vega)는 아랍어로 ‘하강하는 독수리’라는 뜻으로 ‘높게 날면서 멀리 보고, 넓은 시각과 상대를 보는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하늘의 제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곧 팬택이 날렵하고 빠르게 경쟁사를 압도하고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팬택의 스마트폰 의지는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올해에만 총 20종의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보급형과 프리미엄급 제품 등 선택폭을 다양하게 가져가기로 했다. 태블릿 시장도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6월에는 5인치 화면을 탑재하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의 기능을 결합한 ‘베가 넘버5’를, 연말에는 태블릿PC도 내놓는다.
향후 스마트폰 기술의 핵심과제로는 4세대 이동통신기술인 LTE(롱텀에볼루션)를 설정, 기술 투자를 집중해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팬택은 오는 7월 미국 버라이즌에 HTC, 삼성전자 등에 이어 세 번째로 LTE 스마트폰을 공급하고, 국내 시장에서는 오는 10월 LTE 스마트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박병엽 부회장은 “팬택이 LTE를 핵심목표로 설정한 것은 3세대 스마트폰 시절, 빠른 속도로 형성된 시장에 대응하던 것을 넘어, 4세대부터는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북미, 일본에 국한됐던 스마트폰 거래선은 유럽, 중국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4월 유럽을 방문해 스페인 텔레포니카와 프랑스 텔레콤 등과 만나 스마트폰 출시를 위한 협상을 직접 진행하고 돌아왔다. 팬택이 스마트폰 전문 기업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유럽시장의 문을 두드린 셈이다. 팬택은 현재 미국 버라이즌과 AT&T, 일본 KDDI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유럽 시장 교두보까지 확보할 경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 휴대폰 1500만 대 이상을 판매하고 지난해에 비해 40% 증가한 매출 3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