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기업 경영의 중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대지진 이후 일본 산업계가 겪는 고통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애지중지 키워온 산업시설이 기상이변으로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경우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후에서 부를 찾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이른바 ‘기후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사업이 제조, 금융 등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통운 군산지사는 군산기상대로부터 제공받는 기상예보 시스템 덕택에 최근 경비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군산항은 원목, 곡물, 철재류 등 벌크 화물 외에도 자동차수출 선적을 하는 서해안의 전략항구다. 비, 바람 등 기상여건은 하역 업무에 중요한 변수다. 대한통운은 군산기상대로부터 받은 기상정보를 토대로 하역과 육상운송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화물취급은 물론 비용절감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가령 피해가 예상되는 강한 비바람과 태풍 예보 시에는 옥수수 등 야적화물을 덮는 시트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폐타이어, 원목으로 단단히 결박하고 있다. 기상악화로 인한 수출입 화물의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데 기상정보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대한통운은 기상정보를 자사 고객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해 고객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미국 기업 70% 날씨 영향 받아

기상이변이 기업경영의 최대 리스크(위험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돌발 상황이 빈번해지자 기업들마다 기후관련 시스템을 도입, 활용하는 것을 기업 관리의 최우선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물류, 유통 업체들에게 기후변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기후 비즈니스를 채택하는 기업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9년 미 상무부는 자국 생산시설 중 날씨에 영향을 받는 규모는 국민총생산(GNP)의 약 11%에 해당하는 9조 달러였으며 자국 산업의 70% 이상이 날씨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10개 중 7개 기업들이 날씨 등의 기후여건을 기업경영에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날씨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상예보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상산업 규모는 443억원, 지난 1997년 민간 기상사업자가 등장한 이래 12년 만에 94배나 성장했다. 아직은 태동단계지만 성장성은 크다는 게 기상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 2009년 12월 기상산업진흥법 제정 이후 시장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2008년 12개, 2009년 13개였던 기상 서비스(장비, 정보, 컨설팅 업체 포함) 업체 수가 관련법 제정 이후인 2010년에는 44개로 늘어났다. 올 4월 현재 기상청 등록 기업 수는 71개 사에 이른다. 기상청은 오는 2015년이면 국내 기상산업의 시장규모가 3000억원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상산업진흥법의 핵심은 기상예보 분야에 민간 업체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기업이나 특정 단체에만 예보를 제공하던 기상사업자들이 언론사, 인터넷기업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기상예보업체는 케이웨더, 웨더아이 등 5곳 정도다. 국내 최초 기상정보기업인 케이웨더만 해도 지난해 매출액이 100억원을 기록했다. 케이웨더의 주력 서비스는 기상정보와 기상컨설팅 분야다. 주요 고객 중 하나인 GS건설은 케이웨더로부터 동영상, 위성사진, 레이더사진, 주간예보, 천우표(과거 기상정보), 특보 등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연간 3000만원의 사용료를 내고 있다. 케이웨더는 현재 GS건설에 1개월, 10일 단위(상순, 중순, 하순), 주간, 3일, 1일 예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이상 기후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맨왼쪽 사진은 일본 도호쿠 지역 쓰나미로 수출대기중이던 차량이 파손된 모습.
- 이상 기후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맨왼쪽 사진은 일본 도호쿠 지역 쓰나미로 수출대기중이던 차량이 파손된 모습.

건설·유통·조선업 날씨 정보 제공

기상컨설팅은 민간 기업에 제공되는 맞춤형 서비스에 가깝다. 가령 지난해 5월 제일모직은 케이웨더와 기상 컨설팅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기후대책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제일모직 TF팀은 케이웨더로부터 지난 5년간 날씨 정보를 제공받아 주요 아이템의 일별 매출과 기온, 강수량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지난겨울 신상품을 출시했다. 그 결과 제일모직 겨울 외투 매출은 전년대비 65%나 증가했는데 제일모직의 기상컨설팅 비용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아이웨더 역시 주요 건설현장, 언론사, 조선업체들에게 기상정보 서비스를 제공해 매년 10%의 매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웨더 주요 고객은 건설, 유통, 에너지, 레저, 교통, 통신사 등 200여 기업체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 마케팅팀 최홍섭 팀장은 “히말라야 등반팀에게 산악예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관련 업종 수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상에서 파생되는 사업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웨더는 조만간 보험사와 연계해 기상금융 상품 중 하나인 날씨연계보험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회사 홍국재 차장은 “민간업체들은 현재 기상청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특정 기업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기상과 관련된 맞춤형 컨설팅 문의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재해 컨설팅 업체 AKGC는 지난 1992년 설립 이후 국내 최초로 지진계를 개발했으며 현재 지진 관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로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 이상현 대리는 “일본 대지진 이후 문의가 부쩍 늘었다”면서 “주요 관공서를 비롯해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 주요 시설에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지진계가 장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KGC 제품은 미국, 일본 것에 비해 40%나 값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 예보시스템(왼쪽)과 일본 원전사태 이후 대기 이동을 체크하는 한국원자력 안전기술원.
-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 예보시스템(왼쪽)과 일본 원전사태 이후 대기 이동을 체크하는 한국원자력 안전기술원.

금융산업 날씨 리스크 비중 커져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기후는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커지는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보험 분야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악재를 만났지만 지금과 같은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 재보험 등의 2차 보험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 확실하다. 해외 진출하는 국내 업체들이 늘면서 재난대비 보험상품 가입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자연재해와 연계된 재해연계증권(CAT bond) 등의 날씨 파생상품도 이미 해외에서는 꽤 유망한 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탄소배출권 도입과 같은 범지구적 어젠다가 구체화될 경우 녹색산업과 연계되면서 관련 산업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기후변화에 따른 공감대가 지금보다 넓어지면 이를 관리하기 위한 관련 금융상품이 선보여질 것은 분명하다. 당장 장외 거래되는 스와프,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은 앞으로 금융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다. 기후변수가 당장 농산물펀드와 같은 현물 상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탄소펀드, 대체에너지 펀드와 같은 상품도 앞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현재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경우 자연재해를 담보로 하는 상품의 경우 수요부족과 보험료 부담 가중 등의 이유로 상품 확대를 꺼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점차 자연재해를 걱정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관련 시장은 조금씩이나마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연재해와 관련된 보험 상품으로는 지난 2006년부터 정책성 보험성격으로 도입된 풍수해보험이 대표적인데 이 상품은 태풍, 홍수, 호우, 대설, 강풍, 풍랑, 해일 등 자연재해로 주택, 온실, 축사 등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만 보상해주고 있다. 풍수해보험은 전체 보험료의 55~62%를 정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풍수해 피해를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지난해 가입건수는 30만 건이었다. 

- 홈플러스는 민간 기상업체로부터 기상정보를 제공받아 원가절감에 활용하고 있다.
- 홈플러스는 민간 기상업체로부터 기상정보를 제공받아 원가절감에 활용하고 있다.

 

  Tip. 성공사례 - 바이살라

세계 기상관측시장 점유율 80<%/FONT>

기업의 지속성장 분야 펀드에 가장 탁월한 실적을 기록 중인 글로벌 자산운용사 샘(SAM)의 기후변화 펀드가 매입한 기업주식 리스트를 보면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핀란드 기후정보 기업 바이살라다. 이 회사는 세계 기상관측 기기의 70~80%를 석권하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의 기상정보를 감지해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라디오존데(Radio-Sonde) 분야에선 9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기상관측기 전체를 통틀어서도 세계 1위다. 핀란드 기상청에서 근무하던 빌로 바이살라 박사가 지난 1936년 설립한 이 회사는 핀란드에서 노키아 못지않게 유명한 국민기업이다.  바이살라의 매출액은 2006년 2억2080만 유로, 2007년 2억2410만 유로, 2008년 2억4250만 유로로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부터는 대표적인 신흥시장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8년 769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27.8%의 성장을 기록했다. 현재 이 회사에서는 기압계, 이산화탄소 측정계, 이슬점 측정계, 습도 측정계, 천연가스 중 수분 측정계, 산소분석기 등의 산업용 기계와  자동기상관측소, 항공, 번개 탐지, 철도기상시스템, 도로기상정보 시스템, 기상학-수문학 정보관리 시스템, 기상 레이더 등의 관측용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Tip. 기상이변 조명받는 분야는?

기후경제학 잘나간다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새롭게 조명 받는 분야가 바로 기후경제학이다. 기후경제학은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인데 시작은 스턴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기후변화 경제학’(Economics of Climate Change)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부터다. 당시 스턴 부총재는 “기후변화는 성장과 발전, 혁신과 기술 변화, 제도, 국제경제, 금융시장, 정보와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경제학의 여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상재해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는 상황인 걸 감안하면 이를 연구, 분석하는 기후경제학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 여기에 기후변화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글로벌 다자간 협약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이로 인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기후경제학에서 시급히 풀어나가야 할 연구 분야다. 당장 지구온난화 방지 협약과 탄소배출권과 같이 다자간 풀어나가야 할 당면과제가 남아있다.  

 

  Tip. 국내외 기후 비즈니스 성공사례

현대산업개발, 전국 현장에서 기상정보 활용

한솔개발(주)은 각종 통신망을 활용한 기상사업자로부터 특정 지점과 특정 시간대의 날씨정보를 제공받아 고객에게 제공하는 타깃 기상서비스 시스템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특화된 기상경영 서비스인  TWSS(Tarket Weather System Service)와 DWI(Different Weather Insurance)를 도입해 레저부분(골프, 콘도)에서 연간 1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에버랜드도 기상정보를 토대로 식음료 매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롯데월드는 여름철 무더운 날씨가 예상되면 미리 ‘쿨존’을 만들어 고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콘크리트 터널과 같이 강수에 민감한 공정을 추진할 때 기상정보 시스템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특히 현대산업개발은 전국 건설현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실시간 기상정보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기상정보를 기업 비즈니스에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는 다양하다. 영국 디자인업체인 스퀴드 런던은 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소재를 사용해 우산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보통 맑은 날에는 흰색과 검정색이지만 비가 오면 각기 다른 색상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또 차량 전조등이 우산에 비춰지면 강한 반사광을 내 보행자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영국에서는 수년째 대히트 상품이다. 프랑스 여행사들은  날씨로 인해 휴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 ‘햇볕 보험’을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상품에 가입하면 고객이 휴가 중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고생할 경우 지불한 여행경비의 일부를 돌려받도록 설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