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코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이 79%로 나타났다. 2004년 처음으로 80%대를 넘어선 후, 2008년 84%까지 올랐다가 6년 만에 80%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렇다 해도 세계 최고 수준임은 변함없지만, 대학진학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첫째가 ‘고학력 실업’이다. 대학을 졸업해봐야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인 마당에 차라리 고졸학력으로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확산된 것으로 읽혀진다. 그것만 보면 실용을 중시하는 사회적 흐름으로 긍정적인 변화다.
비경제활동 청년 인구 지속적 증가세
우리 사회는 이 미묘한 변화를 수용하는 제도적 준비는 되어 있는가? 여의치 못한 현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고졸 수준의 실업자(15~19세)는 약 27만명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2만7000명이나 늘어났다. 물론 경기 탓도 있겠지만 고졸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어도 취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올 2월 대학졸업자 19만명(18만8000명) 가운데 6만6000명은 일자리를 얻었지만 4만1000명은 실업상태다. 또 절반에 가까운 8만1000명(43%)이 계속 취업 준비 중이거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등 비경제활동 인구다. 비경제활동 인구는 취업이 어려워 아예 포기하거나 잠정적으로 단념한 청년들이다. 이 비율은 2008년 29%에서 43%까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눈높이를 낮추어도, 눈높이에 맞추어도 취업은 어렵다는 결론이다.
더 심각한 것은 청년실업 문제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와 맞물리면서 국가적으로 대졸 이상의 비경제활동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 산업화 시대의 주역으로서 가난을 떨치기 위해 일 속에 파묻혀 인생을 보냈다. 사회복지 차원에서는 국가가 뒷전에 있을 때 양육도 부양도 묵묵히 감당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중산층의 주축이다. 또한 평균수명이 80세로 늘어난 오늘, 젊은 50대에 퇴장 당하는 고학력화 1세대다. 대졸 이상 ‘고학력 무직자’가 300만명을 돌파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할 경우 사회적 파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올 1분기 비경제활동 인구 분포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비경제활동 인구는 15세 이상 30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해왔는데 올해부터는 40대 이상 비경제활동 인구(893만명)가 10~30대(746만명)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고령화와 고학력실업 시대로의 진입이다. 여기에다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채 놀고먹는(無爲徒食)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숫자가 올 1월 현재 전체 103만명에 달하며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한마디로 실업대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2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다고 한다. 2022년에 2만5000명에서 10년 후에는 21만7000명이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인구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동인구가 부족하면 경제의 성장동력이 떨어진다. 반면에 베이비붐 세대가 60세에 진입하는 2015년부터는 국민연금 수급자의 급증에 따라 국가 재정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안팎으로 어려운 형국이다. 그나마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 중에 연금 수혜 대상자는 다행이지만 상당수는 사회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처지에 놓여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실업은 당장에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임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의 성장역량과 비전을 결정하는 요소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 활용방안 찾아야
선제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50대 은퇴세대의 일자리 지원 방안은 사회복지 차원을 넘어 새로운 사회·경제적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하는 가치 중심의 대책이 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임금상한제’와 ‘고용보험 정년연장 장려금 제도’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민간의 재원 출연과 투자로 실업구제를 위한 재단 조성 등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고학력 은퇴인력을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견인하는 성장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청년실업은 교육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포함해 기본부터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산업현장과 교육체계가 연계되어 학력별, 성별, 지역별 대책이 수립되어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학생의 적성과 학업능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대학까지 보내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직업에 대한 인식과 합리적 선택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졸업자만 배출할 경우 고학력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산학연계 체제는 좋은 사례가 된다. 독일은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 불리는 이원적 직업교육훈련 제도를 1500년대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이 제도는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하는 만 16세부터 3년 동안 기업과 도제계약을 체결하고 생산현장에서 실무를 익히면서 동시에 공립 직업학교에서 직업과 관련한 이론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다. 직무에 대한 실무능력과 이론무장을 동시에 갖추게 하는 시스템이다. 직업훈련 분야도 단순노동에서 자동차나 기계 기술자와 같은 전문직에 이르기까지 350여 종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청년 구직자의 취업을 위해 교육과 기업 현장의 요구 및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맞춤형 취업 지원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청년실업과 고학력 은퇴실업은 양날의 칼처럼 어려운 과제다.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면 이들은 강력한 불만세력이 되어 사회 불안정의 핵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고학력 국가라는 빛나는 찬사 뒤에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갈수록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