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다. 30대지만 직원이 100명 이상인 회사를 경영한다. 그의 건강검진 결과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김 사장은 불면증과 만성피로, 소화불량, 두통,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 다양한 증상들을 겪는다고 털어놓았다. 필자는 사실 예진 과정에서 의무기록지를 통해 김 사장이 겪는 증상들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의무기록지에 ‘검진 중 휴대전화 통화 수회 지속’이라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김 사장의 휴대전화는 진료 중에는 울리지 않았다. 덕분에 의사로서 통화 중인 환자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꼴은 면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진료 중에도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고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에서 김 사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중독’ 피해 심각
필자는 의사들 중에서도 상당히 바쁜 축에 속한다. 환자들이 진료 중에 통화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진료 중이던 환자의 통화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 특별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초보 의료진들의 경우 무시당했다는 느낌으로 매우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수진자의 정신적 가치와 행동학적 습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경험이 쌓인 의사들에게 수진자들의 상태를 추정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김 사장의 강박증은 어느 정도 그의 사회적인 성공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검진 결과에서 드러나지 않은 디양한 증상들을 낳았다.
김 사장처럼 휴대전화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가장 큰 후유증은 우선 정신건강에서 나타난다. 휴대전화 사용자들을 살펴보자. 거의 24시간 ‘통화대기’ 상태다. 김 사장처럼 휴대전화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소위 ‘휴대전화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업무나 휴식이 방해받는 데다 빈번한 전화응대로 정신에 과부하가 걸린다. 이는 스트레스,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심하면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는 휴대전화 중독에 더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은 수면장애와도 연관된다. 취침 전의 긴 통화는 두통, 긴장감, 근육통 등을 유발해 수면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뿐 아니라 수면 중 휴대전화에 도착한 메시지나 전화벨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생기면서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이는 낮 동안의 피로와 업무능력의 저하를 낳는다. 심하면 사회생활에 장애가 생기고 우울증까지 유발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최근 휴대전화로 인한 정신적·사회적 문제 외에도 전자파 노출과 같은 물리적 부작용의 가능성들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전자파는 암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휴대전화의 전자파에 의한 뇌암, 백혈병, 림프종 등 암 발병 가능성도 보고됐다.
전자파는 에너지의 일종으로 전기가 흐를 때 그 주위에 발생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주기적 파동이다. 전자파는 대체로 주파수가 높을수록 유해하다.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쳐 암을 유발할 수 있다. 한편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는 등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하면 몇몇 관절만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는 관절의 통증이나 감각이상 등 근골격계 질환을 낳는다.
유선전화 자주 쓰고, 휴대는 가방에
건전한 휴대전화 사용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을 지키고 여러 질병들을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건전한 휴대전화 사용 습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휴대전화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회의나 미팅 중이라면 대화에 집중하고, 유선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를 먼저 이용한다. 이러한 습관은 정신적으로는 안정감을 주고, 사회적으로는 여러 활동과 가치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도록 해준다.
휴대전화는 가능한 한 몸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 몸에 부착하거나 주머니에 넣는 것은 피하고 가방이나 핸드백에 넣도록 한다. 통화할 때는 핸즈프리를 사용하거나 대신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것도 전자파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을 스스로 절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잘 설득해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휴대전화는 선사시대에 인류가 발견한 불과 마찬가지다. 많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앗아갈 수 있다. 김 사장에게 이런 메시지를 완곡하게 전했지만 하루아침에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습관이란 성격과 태도 등 여러 요소가 혼합돼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휴대전화 덕분에 김 사장의 잘못된 버릇이 쉽게 발견됐고, 이는 휴대전화 사용법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의외로 쉽게 고쳐질 수 있다. 2~3년 뒤 김 사장이 돈뿐만 아니라 건강과 행복까지 누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