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 골프장(파72. 7275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최종라운드. 세계 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이날 5언더파를 몰아치는 ‘퍼펙트 플레이’를 펼치면서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3라운드 단독선두였던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에 1타차 우승. 세계 랭킹 1위의 샷은 확실히 달랐다. 웨스트우드는 대회 초반 코스에 적응하지 못해 중위권으로 평범하게 출발했지만 차근차근 순위를 끌어올리더니 마침내 짜릿한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또 바로 전주에 열린 아시안(APGA) 투어 인도네시아 마스터스에 이어 2주 연속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현재 세계 랭킹 2위인 리 웨스트우드의 드라이버 거리 등 각종 기록으로 보면 무엇 하나 뚜렷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스코어를 잘 내면서 우승도 한다.



웨스트우드의 스윙을 TV를 통해 봤거나 갤러리로 참여해 직접 본 골퍼라면 ‘어 약간 스윙이 남다르네’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테이크백이 길지 않은 ‘원피스’로 움직이며 헤드를 낮고 길게 빼는 대신 안쪽으로 잡아당긴다. 자신만이 터득한 원심력의 ‘원피스 테이크어웨이’다.



톱스윙 전에 이미 왼쪽 무릎은 작동하고 대신 오른쪽 다리가 마치 땅을 치는 것처럼 쭉 뻗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자칫 균형이 깨지기 쉬운 자세다. 이때 오른쪽 무릎 각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후 모든 동작이 절제되며 큰 마무리 동작으로 이뤄지다가 플랫한 피니시로 마무리하며 견고한 왼쪽 벽이 중심을 잡는다. 전체적인 스윙을 봤을 때는 여타 다른 선수들의 스윙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스택 앤 틸트 스윙’을 한다는 것.



스택 앤 틸트 스윙은 몸의 좌우 움직임을 최소화시키는 덕에 임팩트의 일관성을 높이는 뛰어난 효과가 있다. 정통 스윙은 골반을 잡아둔 상태에서 어깨를 회전한다. 어깨 회전각도는 스택 앤 틸트보다 작지만 체중이 더해져 파워를 낸다. 반면 스택 앤 틸트 스윙은 체중이동을 우측으로 하지 않고 몸 회전을 극대화시켜 파워를 낸다.

- 리 웨스트우드가 지난 5월 1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 리 웨스트우드가 지난 5월 1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헤드업이 거의 없는 스택 앤 틸트 스윙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이 이론이 기존의 스윙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스윙축이 몇 개냐는 것이다. 기존 이론은 무게중심이 백스윙에서 오른쪽 발로 갔다가 임팩트 구간을 거치면서 다시 왼쪽 발로 옮겨진다. 즉 스윙축이 2개다.



이에 반해 스택 앤 틸트 스윙은 어드레스 때 이미 체중의 60%를 왼쪽 발에 둔다. 스윙축이 왼쪽 발 하나라는 얘기다.



스윙축이 하나인 것이 당연히 더욱 간결하다. 동작이 최소화되면 아무래도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스윙축이 하나라 아마추어 골퍼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헤드업이 없다는 점도 강점이다.

체중을 처음부터 왼쪽 발에 실어논 백스윙

스택 앤 틸트 이론을 토대로 한 백스윙은 체중이 처음부터 왼쪽 발에 실려 오른쪽 발로 체중을 지탱할 필요가 없다. 엉덩이는 그저 제자리에서 회전만 하면 된다. 스윙 아크를 크게 만들기 위해 오른쪽 무릎은 자연스럽게 펴진다.

하지만 기존 이론은 스윙축이 오른쪽 발에도 있어 엉덩이 역시 오른쪽 발로 이동해야 한다. 그만큼 움직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백스윙 톱 동작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무게중심이 과도할 정도로 왼쪽 발에 쏠려 있는 자세다. 이 동작이 바로 스택(힘의 응축)이다. 이 동작은 기존 스윙 이론에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역피봇(백스윙 때 몸의 중심이 목표물 쪽으로 기울어진 동작)’ 동작과 비슷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궤도 그대로 풀어주면 그만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다운스윙에서 스윙축이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 리 웨스트우드의 드라이버 샷 연속동작.
- 리 웨스트우드의 드라이버 샷 연속동작.

임팩트 구간에서도 스윙축 움직임 거의 없어

임팩트 동작도 다르다. 스택 앤 틸트 이론에 충실한 임팩트 동작은 왼쪽 발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벽을 쌓는 기존 이론을 벗어나 아예 엉덩이가 왼쪽 발로 더 나간다. 이 동작이 바로 ‘틸트(기울이면서 힘을 방출)’의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셋업에서부터 백스윙, 임팩트를 거치는 동안 스윙축이 왼발 안쪽에서 바깥쪽까지밖에 변하지 않는다. 즉 움직임이 적다보니 그만큼 정확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이런 움직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몸의 좌우 움직임이 없어 일관성이 높아지고, 임팩트 구간에서는 타깃 방향으로 체중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운블로 스윙이 만들어진다. 이 결과 볼이 낮은 탄도로 강력하게 날아간다.

근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스윙 할 수 있어

스택 앤 틸트는 우리말로 옮기면 “무게중심을 한 곳에 응축했다가 기울이면서 방출한다”는 의미다. 언뜻 들으면 비슷한 것 같지만 스택 앤 틸트 스윙은 정통 이론과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구력이 오래된 골퍼들은 처음에 익히기 어려울 수 있다. 새로운 이론을 배우려다 스윙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즉 연습 없이는 습득할 수 없는 기술이다.

또 하나 겸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스윙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웨스트우드도 “근력이 없이는 더 이상 골프가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년간 근육강화 훈련을 축구 전문가와 함께 했다. 아마 골프선수 중에서 축구 전문가에게 훈련을 받은 골프선수는 내가 처음일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노력으로 웨스트우드는 18개월 만에 허리를 42인치에서 34인치로 줄이고 몸무게는 30kg 이상 감량했다. 그 결과 그는 “18홀을 돌고 나면 더 돌고 싶다. 체력이 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드라이버 거리도 20야드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 한 해 동안 6회나 우승할 당시 평균 283.4야드대에 머물렀던 그의 드라이버는 지난해 294.7야드까지 증가했다. 평균타수는 70.17타로 랭킹 4위에 올랐고 페어웨이 안착률도 69.9%로 랭킹 11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생각하는 골프 하고, 좋은 판단을 해야 실력 향상

발렌타인 챔피언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후 인터뷰에서 “골퍼로서 최고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우즈는 퍼팅, 미켈슨은 쇼트 게임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나는 샷의 일관성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린 위 플레이는 누구와 맞붙어도 자신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샷의 일관성만큼은 자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또 골프를 잘할 수 있는 비결 하나를 소개해달라는 말에 그는 “그런 비결이 있으면 나부터 알고 싶다”면서 “늘 자신의 골프와 다른 사람의 골프를 비교하면서 장단점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골프를 하는 사람이 실력도 빨리 향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코스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의 실력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