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는 대규모 판매망과 다양한 투자상품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자산관리서비스를 수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 중 하나다. 2010년 기준 500개가 넘는 펀드를 운용하며 1조5000억 달러 이상의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946년 보스턴에 본사를 설립한 이후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69년부터는 북미를 제외한 글로벌마켓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900여명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전문연구원을 포함한 3만8000여명의 직원이 전 세계 2000만 개인 및 기관고객을 대상으로 뮤추얼펀드, 투자 상담, 브로커리지 서비스, 퇴직연금 서비스, 자산관리, 생명보험 등의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고객 맞춤형 상품 · 서비스로 혁신

  

브랜드 마케팅 도입 ‘일인자’ 등극




- 피델리티의 인베스트 센터
- 피델리티의 인베스트 센터

 1단계(1946년~1973년). 창업자 존슨 시대

1943년에 결성된 피델리티 펀드의 펀드매니저인 에드워드 존슨 2세가 1946년에 펀드의 자문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LLC(FMR LLC)’를 설립한 것이 피델리티 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창업자인 존슨 2세는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피델리티의 CEO로 활동하면서 피델리티의 투자운용 철학 즉, 개별주식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장기투자를 통해 시장수익률을 상회하는 고수익을 창출한다는 원칙을 실현하는 데 힘썼다. 1947년 주식형 펀드인 피델리티 퓨리탄 펀드를 출시했으며, 1958년 업계 최초로 공격형 주식형 펀드인 캐피털 앤 트렌드 펀드를 출시하게 됐다. 이후 변화하는 미국 연금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964년에는 연기금 관리 및 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FMR 인베스트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설립했다. 또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1969년에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유한회사(FIL)를 버뮤다에 설립했다. 1973년에는 런던에 사무소를 설립해 유럽시장의 확대를 꾀했다.

 2단계(1973년~1980년). 혁신적 상품개발 통한 시장 확대

1970년대 중반, 미국 주식시장이 침체되면서 피델리티의 운용자산이 40억 달러에서 24억 달러로 급격하게 축소되는 등 창사 이래 큰 어려움을 맞게 됐다. 그러나 피델리티는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오히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며, 창업자의 아들이자 자산운용업계의 전설적 인물인 네드 존슨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신상품 및 서비스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1974년 세계 최초로 수표발행이 가능한 MMF 상품을 출시했고 1975년에 개인퇴직계좌(IRA)를 미국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또 피델리티 최초로 판매수수료가 없는 펀드를 출시해 1975년에만 5억 달러의 신규자금을 유입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사업을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피델리티는 상품개발뿐만 아니라 고객서비스에서도 언제나 경쟁사를 앞서 시장을 선도했다. 1973년 자산운용사 최초로 고객서비스센터를 설립하고, 1974년에는 무료 전화 상담서비스인 ‘와츠(WATS) 라인’을 도입하며 업계 최초로 펀드를 개인고객에게 직접 판매했다. 또 1977년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가 피델리티의 대표브랜드인 마젤란펀드(Magellan Fund)의 운용을 시작하며 뮤추얼펀드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 피델리티 최고경영자 네드 존슨 회장
- 피델리티 최고경영자 네드 존슨 회장

 3단계(1980년~2000년). IT기술 선도적 도입 시장지배력 강화

1980년대 주식시장의 활황, 퇴직시장 관련 제도의 정비 등을 계기로 피델리티는 사업 확장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자산은 10배가 넘게 성장했으며,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확보한 수익을 IT부문에 재투자하며 세계적 자산운용사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예를 들어, 1981년 피델리티 시스템 컴퍼니를 설립하며 컴퓨터 및 IT에 대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으며, 1986년에는 업계 최초로 매 시간마다 상품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하며 업계의 기술을 선도했다. 또 자산운용시장의 자산 클래스가 다변화되고, 대량거래가 이뤄짐에 따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수탁, 일반 행정 및 사무관리 등 후선업무의 프로세스 혁신이 요구되는 것에 발 맞춰 1993년 FIX(Financial Information Exchange)라는 유가증권 관련 정보의 전자 송수신 표준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외 1999년 온라인서비스가 가능한 웹기반 상품을 미국 내 최초로 출시하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기술혁신 및 사업 확대를 통해 1990년대 말에는 미국 펀드시장의 13%를 차지하는 대형 자산운용사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4단계(2000년~현재). 해외시장 역량 강화

업계를 선도하며 자산운용산업을 이끌어온 피델리티의 고객서비스 확대 노력은 2000년대에도 계속됐다. 2005년 재무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서비스플랫폼을 출시, 재무설계사 판매 채널의 기능을 강화했다. 2008년에는 업계 최초의 웹 기반 자산관리플랫폼을 출시해 포트폴리오 관리, CRM, 재무플랜, 포트폴리오 트레이딩 등 포괄적인 운용시스템을 한번에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시장의 역량강화를 위해 2010년에 해외지역을 담당하는 피델리티 인터내셔널(FIL)의 사명을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매니저스로 변경, 해외사업영역의 확대에 힘쓰고 있다.



- 채권 트레이딩룸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책상을 둥그렇게 이어 붙였다.
- 채권 트레이딩룸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책상을 둥그렇게 이어 붙였다.



 성공비결

피델리티의 역사는 곧 자산운용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혁신을 통해 산업 전체를 주도했다. 주식시장의 활황, 판매채널의 발달, 퇴직연금제도의 규제완화 등 외부환경 변화를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투자자의 필요에 부응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끊임없이 혁신시킨 것이 바로 피델리티의 성공요인이다.

고객 맞춤형 상품개발

1958년에 최초의 공격형 주식형펀드를 출시한 이후 1947년부터 1970년까지 13개의 고수익 주식형펀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피델리티의 명성을 쌓아갔다. 1974년에는 은행예금에 비해 높은 금리가 보장되면서 수표발행이 가능한 MMF를 최초로 출시해 고객에게 편의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제공하며 은행 예금시장을 잠식하기도 했다. 또 1980년에 미국 내 최초로 세금면제 MMF를 개발해 출시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상품출시는 세계 최고수준의 리서치 능력을 보유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피델리티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고객서비스

뮤추얼펀드 시장은 대표적인 소매고객 위주의 자산운용시장으로, 고객서비스 및 판매채널 전략이 성공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피델리티는 뮤추얼펀드를 판매 대리점 등을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수신자부담 상담서비스를 1974년에 출시하며 저비용 판매채널을 업계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수신자부담 전화 상담서비스는 피델리티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중요한 판매 채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1986년에는 펀드 관련 가격정보 제공서비스를 기존의 하루 단위에서 한 시간 단위로 대폭 축소해 업계의 이목을 끌며 고객서비스를 한 단계 높게 끌어올렸다. 이러한 최신기술의 적극적인 개발과 도입을 통해 얻어진 명성은 현재 피델리티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중의 하나가 됐다.

뮤추얼펀드·퇴직연금 시너지

1975년 IRA를 최초로 출시하는 등 피델리티는 뮤추얼펀드 시장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이나 IRA 등은 개인이 직접 연기금 계좌를 재무설계사의 도움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개인고객의 투자 특성상 뮤추얼펀드의 편입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뮤추얼펀드 사업과 퇴직연금 사업의 시너지효과는 매우 크다. 피델리티는 최고의 자산운용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게 되면서 최대 규모의 글로벌 자산운용사뿐만 아니라 동시에 미국 최대 규모의 퇴직연금 사업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독특한 브랜드 마케팅

피델리티의 성공배경에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13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고수익을 기록하며 전설이 된 마젤란펀드부터 자산운용산업의 창시자로 불리는 네드 존슨까지 피델리티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피델리티는 패밀리펀드나 펀드매니저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피델리티의 운용성과, 투자 철학, 기업가치 등을 홍보하는 기회로 삼는다.



예를 들어, 마젤란펀드의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피델리티만큼 유명하다.



특히, 그의 저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에서 처음 소개된 ‘텐 배거(Ten bagger)’라는 용어는 야구경기 용어인 ‘2루타(two bagger)’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투자한 자산가치가 매입가의 10배 이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인용되면서 피델리티의 뛰어난 자산운용 능력을 홍보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또 현재 일반화돼 있는 자산운용사의 브랜드 마케팅을 처음 도입한 것도 바로 피델리티다. 주로 소비재 회사가 구사하는 브랜드 마케팅은 주요고객이 개인고객인 뮤추얼펀드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돼 영업기반을 확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005년에는 회사 임직원이 만든 곡 (‘Never Stop Doing What You Love’)을 비틀즈의 전설적인 싱어 폴 매카트니가 불러 베이비부머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마케팅을 선보여 업계의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내에 주는 시사점



국내 자산운용시장은 그동안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에도 자본시장법 개정, 퇴직연금 시장 확대 등의 환경변화를 고려할 때 높은 성장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투자대상, 투자기법 등 투자자 선택의 폭이 제한돼 편중된 상품구조를 보이고 있는 등 향후 개선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장을 주도하며 지속적인 혁신상품을 개발한 피델리티의 성공사례는 이러한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국내 자산운용사도 새로운 고객 수요에 맞춘 신상품 개발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투자상품 다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또 피델리티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자산운용회사의 운용성과는 애널리스트들의 리서치 능력과 직결되는 만큼 외부에서 제공하는 리서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체의 리서치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