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코는 국내 면도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토종 브랜드다. 1958년 국내 최초로 면도기 개발에 뛰어든 장수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50년에 걸쳐 완성한 면도기 기술의 결정판이 6중날 면도기 ‘페이스6’와 ‘페이스XL’이다. 이 제품들은 현재 세계 면도기 시장 1, 2업체인 질레트와 쉬크가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낼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세계 최초 6중날 면도기의 흥미진진한 개발 스토리를 들어보자.

지난 5월 29일 영국 런던 웸블리경기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르셀로나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이날 국내 축구팬들의 시선은 ‘맨유의 영웅’ 박지성 선수에게 쏠렸지만 전성수(52) 도루코 대표는 마음 편히 그의 활약을 응원할 수 없었다. 박지성이 도루코의 경쟁업체인 질레트의 CF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맨유의 패배를 기원할 수도 없는 애매한 처지였다. 



질레트가 CF모델로 기용한 톱스타는 비단 박지성만이 아니다. 데이비드 베컴,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등 기라성 같은 거물급 스타들이 질레트의 TV광고를 거쳐 갔다. 세계 1위 면도기 브랜드다운 성대한 스타마케팅이다.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질레트에 비하면 국내 중견기업 도루코의 위상은 미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도루코는 글로벌 면도기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던졌다. 그 무기는 질레트도 넘보기 어려운 세계 최고의 면도기 기술력이다. 



전 대표의 말이다. “면도기 시장은 세계적인 몇몇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는 독과점 시장입니다. 이들의 공세에 살아남은 각국의 토종기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죠. 도루코도 글로벌 브랜드의 파상공세로 고사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했습니다. 그러나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신제품 개발에 투자한 결과, 질레트나 쉬크와 당당히 경쟁하는 위치에 올라섰죠.”

면도기에 첨단기술 접목

면도기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다. 성인 남성의 수염이 평생 동안 자라나는 만큼 막대한 수요가 상존한다. 비단 남성들만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미용을 위한 여성용 제모기도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면도기의 세계 시장 규모는 현재 20조원가량으로 질레트의 경우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슈퍼 골리앗’이다.



도루코 같은 후발주자들이 질레트를 필두로 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면도기 시장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품질요건이 대단히 까다롭다. 예를 들어 면도날의 경우 수염이 말끔히 깎이도록 피부에 바짝 밀착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날의 상태가 반듯하지 않으면 얼굴을 베이기 일쑤다. 특히 고급품종인 다중날 면도기의 경우 청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날 사이로 면도거품과 잘린 수염이 쉽게 빠져나가야 한다.



면도기 제조는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분야다. 우선 핵심부속인 면도날을 만들려면 스테인리스강을 0.075mm의 박편으로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100만분의 1mm 두께로 균일하게 갈아내 칼날을 형성하는 연마기술도 필요하다. 칼날의 마모와 부식을 방지하고 피부 트러블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수금속과 수지를 입히는 초박막 코팅기술도 갖춰야 한다. 도루코의 면도기와 면도날이 2002년 세계일류상품으로 지정된 이유다.  



2007년 도루코는 6중날 면도기 ‘페이스’ 시리즈로 세계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다중날 면도기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질레트도 6중날만큼은 지금까지 개발하지 못했다. 전 대표는 “질레트와 모기업인 P&G는 막강한 유통망과 혁신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무장한 경영학의 모범생들”이라며 “현존하는 면도기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승산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면도기에서 얼굴과 맞닿는 카트리지에서 칼날이 들어가는 부분은 불과 1cm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여러 개의 면도날을 삽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칼날이 카트리지에 들러붙지 않으려면 칼날을 ‘ㄱ’자 형태로 구부려서 삽입해야 하지만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면도기 업체들이 용접으로 이어붙인 면도날을 삽입한다. 이런 식으로 카트리지에 들어갈 수 있는 면도날은 2005년 질레트가 5중날 면도기를 출시한 이래 5개가 한계였다.



도루코가 2007년 세계 최초로 6중날 면도기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절곡날 굽힘’이라는 독특한 원천기술 덕분이다. 이는 면도날을 자유자재로 구부리는 기술이다. 이 방식으로 제작된 면도날은 용접된 날보다 카트리지에서 훨씬 작은 공간을 차지한다. 게다가 생산원가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페이스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출시 직후부터 무섭게 팔려나갔다. 특히 고급형 면도기의 수요가 많은 선진국 시장에서 주문량이 폭증했다. 2008년 도루코는 미국·유럽 시장에서 전년 매출의 50%에 달하는 450억원어치의 페이스 시리즈를 판매했으며,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는 전년보다 80% 이상 판매량을 늘렸다. 특히 이 지역들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제시하는 시장들이다. 지금도 없어서 못 팔 만큼 주문량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공장은 24시간 풀가동 태세다. 지난해 도루코의 매출은 1572억원으로 최근 3년 동안 매출증가율이 연평균 20%에 달하는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전 대표는 페이스 시리즈의 개발 과정이 “산고나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한다. 2002년부터 시작된 6중날 면도기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150억원. 도루코의 연구진 100여명이 모두 달라붙었지만 완제품을 양산할 때까지 5년이나 걸렸다. 시제품이 만들어질 때마다 6개월 이상의 치밀한 테스트가 거듭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구진은 시제품 테스트에서 수염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슬로 영상으로 수백 번씩 반복 시청해야 했다. 잘려나간 수염을 일일이 수습해 단면을 확인하는 단조로운 작업도 이어졌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 예로 도루코 연구진의 몸엔 털이 남아나질 않는다. 수시로 수염과 팔다리의 체모를 깎으며 시제품을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몸에 털이 덜 자란 상태면 머리카락도 깎는다. 특히 애를 먹이는 것은 여성용 시제품들이다. 자신의 신체를 맡길(?) 일반인 자원자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루코의 여직원들 중에서는 테스트 때문에 양 눈썹이나 팔다리 체모의 길이가 짝짝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면도기는 해마다 7~8%의 꾸준한 성장률을 기록하는 안정적인 시장이다. 대체로 아시아, 중남미, 중동 등 신흥시장의 산업화와 흐름을 같이한다. “가까운 중국만 하더라도 내륙의 미개발 지역으로 들어가면 면도기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목욕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데다 위생관념이 덜 발달해 있어요. 이런 지역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면도기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용 제모기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주부들은 남편의 면도기를 몰래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제모기를 하나쯤 갖고 있어요. 남성들처럼 지속적인 교체수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 전성수 도루코 대표는 “치열한 기술개발이 회사를 살렸다”고 강조했다.
- 전성수 도루코 대표는 “치열한 기술개발이 회사를 살렸다”고 강조했다.

위기 극복하며 연구개발 ‘올인’

전 대표가 도루코에 입사한 것은 1983년이다. 군복무를 마친 후 선택한 첫 직장이 도루코였다. 평사원에서 출발해 대표이사로 승진한 케이스로 도루코의 56년 역사에서 가장 혹심했던 두 차례의 위기를 생생히 체험했다. 재직기간의 절반을 영업파트에서, 나머지 절반은 관리부서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당시의 시장 상황과 회사의 전반적인 사정에 해박하다. 그는 “도루코의 경영사는 시련의 연속”이었다고 강조했다.



도루코가 처음부터 면도기를 생산했던 것은 아니다. 설립기인 1955년부터 한동안 옷에 부착하는 지퍼를 생산했다. 당시 직원 수가 1000여명으로 전쟁 직후에 설립된 회사들 중에서 손꼽을 만한 규모였다. 도루코가 면도기에 손을 댄 것은 1958년 미군 부대에서 수집한 폐면도날로 문구용 칼을 만들던 ‘대한도물’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창업주인 고 탁시근 회장은 면도기의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면도날 수입량조차 미미했던 시절이라 폐면도날도 연구에 긴요했습니다. 10년 뒤에야 겨우 한 날짜리 면도날을 만들 수 있었죠. 한편 70년대 접어들면서 일본의 세계적 지퍼 브랜드 YKK가 국내에 진출했습니다. 600여개 국내 지퍼업체들이 한순간에 전멸했습니다. 도루코도 지퍼 사업을 포기하고 면도기 사업에 집중했죠.”



1980년대 말까지 국내에서 면도기 브랜드는 도루코가 유일했다. 그때까지 면도기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지만 1989년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정부가 면도기 시장의 수입제한을 풀어버린 것. 글로벌 브랜드들의 제품이 경쟁적으로 수입되면서 도루코의 면도기 사업은 풍비박산이 됐다. 소비자들로선 그간 국내에선 보기 어렵던 질레트·쉬크의 세련된 2중날 제품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해 도루코의 면도기 부문 매출은 전년보다 80%나 추락했다고 한다. 

- 시제품을 검사 중인 전 대표.
- 시제품을 검사 중인 전 대표.

주방용 식도 국내 시장 1위

그제서야 도루코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연구진으로 채우고 연매출의 8%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배정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후 부대사업인 주방용 식도와 문구용 칼, 숙박업소·재래시장·목욕탕에서 판매되는 1회용 면도기로 근근이 버티면서 순이익의 대부분을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혹독한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1997년 한국경제를 순식간에 냉각시킨 외환위기다.



“수술용 칼과 산업용 절삭공구 등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규 사업마저 실패했을 때였습니다. 자금줄이 말라버려 정리해고가 불가피했죠. 분유 값이라도 벌려고 야근도 불사하던 후배들, 고3 자식을 둔 입사동기들, 딸 결혼을 앞둔 선배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어요. 울면서 책상을 정리하던 동료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남아 있던 직원들이 이를 악물고 기술 개발에 몰두한 결과, 이듬해부터 고급 다중날 면도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들을 대부분 국산화할 수 있었죠.”



주방용 식도도 도루코가 수준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는 부문이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70%로 압도적인 1위다. 주력 상품인 식도 세트 ‘레몬그레스’의 경우 주방기기 명브랜드 헹켈의 제품보다 비싼 값에 팔릴 만큼 명품 대접을 받는다. 같은 분야 국내 업체들이 드라이작,  베벨, 컷코 등 고가의 수입품에 밀려 전멸당한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성적이다. 한편 문구용 칼 부문에선 접이식 연필칼이 한때 도루코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 매출에서 문구용 칼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전 대표는 도루코의 장기적인 과제로 신규사업의 지속적인 확대를 꼽는다. 매출에서 면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85%로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재 새로운 사업분야로 LCD와 반도체 공정에 사용될 절삭기를 개발하는 중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면도기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데 매진한다는 전략이다. “2020년까지 총 8000억원을 차세대 면도기 개발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현재 1.3% 수준인 세계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고, 같은 기간 국내 시장에서도 50%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탈환하기 위해서죠. 그때까지 부지런히 칼을 갈 겁니다.”      

- 도루코는 주방용 식도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 도루코는 주방용 식도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