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부산 동아대 앞 오락실에 독특한 기계가 설치됐다. 140곡의 가요목록에서 원하는 반주를 들려주고 화면에 가사를 표시하는 기능이었다. 기계에 장착된 마이크로 노래도 부를 수 있었다. 조악한 형태였지만 1990년대를 통틀어 국내 유흥문화를 급속히 뒤바꾼 노래방기기의 원형이다. 



국내 노래방기기가 이제 해외로 수출될 만큼 진화했다. 그 주역은 TJ미디어(옛 태진미디어)다. 1990년대 초반부터 경쟁사 금영과 함께 노래방 시장을 양분해온 노래방기기의 대명사다. 특히 이 회사의 가장 큰 시장은 가라오케의 본고장인 일본이다. 지난해 매출 624억원에서 대일 수출이 40%를 차지한다. 



최근 들어 동남아로 수출 지역이 확대됐다. TJ미디어의 매출에서 수출 비중은 60%. 일본과 동남아의 한류 목록에 노래방을 추가시킨 셈이다. 윤재환 TJ미디어 대표는 “국내 노래방기기와 음원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도 “수년간 치밀하게 현지화를 준비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TJ미디어가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2005년부터다. 급팽창하던 노래방 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청소년과 대학생은 노래방 대신 우후죽순 늘어난 PC방으로, 직장인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스크린골프장으로 발길을 돌렸죠. 세계 최초로 노래방기기에 인터넷을 연결해 하루 수십 곡의 신곡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전국 단위의 이벤트를 개최해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어요.”



그가 우선 주목한 곳은 한국처럼 노래방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었다. 현지의 노래방기기 업체들은 매출이 수조원에 달할 만큼 강세였지만 틈새는 있었다. 일본의 대중가요는 국내의 5배 이상인 10만개나 된다. 국내 노래방처럼 책자로 곡명을 찾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다. TJ미디어는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는 ‘디지털 목차검색기’를 개발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2000억원어치가 팔려나갈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 타깃은 필리핀이었다. 이곳에서는 마이크형 휴대용 반주기가 통했다. “음주가무로 유명한 한국인들도 필리핀인은 못 당합니다. 휴대용 반주기만 있으면 혼자서도 신이 나는 사람들이에요. 올해부터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가정용·업소용 반주기와 음원 판매가 본격화됩니다. 관광객이 몰리는 데다 국민소득도 빠르게 늘고 있는 곳들이죠. 현지 가요의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도매상을 물색하는 데 최소 2년 이상 공들인 결과입니다.”



윤 대표의 다음 목표는 미국 시장이다. 진출하기 까다로운 지역이지만 미국이 중남미와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부터 미국 진출을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한국 대중가요가 미국, 유럽을 휩쓸고 있는데 노래방기기 업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약력  1955년생. 1996년 아주대 산업대학원 수료. 2001년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EEP(최고 엔터테인먼트 과정) 수료. 1981년~현재 TJ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