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5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내놓은 올해 1분기 인사이트펀드 운용보고서를 본 증권업계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아연 실색했다. 운용보고서는 매분기별로 한 번씩 나오는 보고서로 펀드에서 투자한 지역, 수익률 등이 설명돼 있다. 따라서 증권사 직원들이나 투자자들은 이 보고서를 통해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증권사 직원들과 투자자들은 인사이트펀드에서 중국 주식 비중이 낮춰진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인사이트펀드에서 중국 비중은 14.18%에 불과했던 것. 이는 지난해 3월 41.63%의 3분의 1에 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말만 하더라도 인사이트펀드에서 중국 비중은 21.64%로 20%대를 유지했다. 그러던 것이 올해 1분기에 10%대로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인사이트펀드를 만든 박현주 회장은 ‘중국 펀드’라고 불릴 정도로 인사이트펀드에서의 중국 비중을 높였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비중을 급격히 줄여왔던 것이다.
박 회장의 야심작인 인사이트펀드는 2007년 출시돼 한 달 만에 무려 4조원어치나 팔리며 펀드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펀드 판매 당시 주식에 ‘혜안’을 갖고 있는 박 회장이 찍어주는 지역에 투자해주기에 해외 증시에 대해 잘 모르는 개인투자자들도 손쉽게 투자해 자산을 불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사이트펀드 출시 당시 6000선을 넘나들던 중국의 주가지수는 2000선 아래로 떨어졌고 펀드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박 회장이 중국의 지속적인 상승세를 확신하고, 중국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인 것. 출시 당시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손실이 마이너스 10%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때는 마이너스 30% 이상까지 갔다. 때문에 박 회장은 투자자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후 박 회장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손상됐고, ‘박현주의 성공신화’는 크게 퇴색됐다.
그러나 박 회장은 중국 비중을 높였다가 수익률이 크게 나빠졌음에도 중국의 비중을 높일 것을 그동안 계속 강조했다. 가령 올해 초 신년사에서 박 회장은 “이머징시장의 부상이 가속화되면서 미래에셋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며 “이머징시장 전문가로서 고객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앞서 박 회장은 지난해 11월 개최된 미래에셋 이머징시장 전문가 포럼에서 “앞으로 경제성장률 자체로만 보면 성장동력은 이머징시장에서 나올 것”이라며 “자산의 70%는 해외에 투자하되 이머징 주식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망했다. 이머징시장의 대표적인 지역이 중국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그의 중국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이러한 박 회장의 스탠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미래에셋의 대표적인 이머징시장 투자 상품인 인사이트펀드가 중국 비중을 크게 낮춰 증권사 관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투자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다.
한 투자자는 “중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박현주 회장의 발언을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오히려 펀드운용은 역주행하고 있어 (박현주 회장 말을 믿어야 할지) 상당히 당혹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액티브펀드인 인사이트펀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그때그때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고 있다”면서 “다시 중국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이트펀드 성과보고서에도 “글로벌 경제 내에서의 신흥시장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중장기적으로 신흥지역의 구조적인 성장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투자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면서 “다만 신흥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속도나 외부 환경 등의 이유로 일부 기간 동안의 정책변화 등 이슈가 있을 수 있고, 그 강도나 방향성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적절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인사이트펀드를 출시할 때 왜 적절하고 탄력적으로 대응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이제 와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면, 인사이트펀드 출시 당시인 2007년에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이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더욱이 박 회장의 당초 중국 펀드의 설계 의도는 신흥시장에 장기 투자하는 것이었다. 박 회장은 2007년 후반에 발간한 자서전 성격의 책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미래에셋은 상품을 설계할 때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계획을 한다”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가 그러했고 해외펀드 특히 섹터펀드도 회사의 이익을 고려하기보다는 먼저 고객의 입장에서 만든 상품이다. 친디아(China+India) 펀드의 경우에도 출시 시점에 대해 외국 IB의 회의적 시각이 있었지만 우리는 고객을 보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적었다. 이 책에서 친디아 펀드와 관련, 박 회장은 “고성장 지역은 일시적으로는 큰 변동폭이 있더라도 장기 투자하면 좋은 투자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라고도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렇게 중국의 비중을 낮췄지만 의도대로 수익률은 높아지지 않았다. 인사이트펀드 중 기준 설정액 1조9554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인사이트증권자투자신탁1호(주식혼합)종류A’의 수익률은 ‘펀드닥터’에 따르면 지난 6월 13일 기준 연초 대비 마이너스 2.98%로 부진하다. 투자 비중을 줄인 중국·러시아·한국 증시는 오히려 오른 반면 투자 비중을 늘린 일본·유럽 증시는 하락한 탓이다. 미래에셋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으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놓친 셈이다.

Tip. 박현주 회장은 항상 옳았다?
틀린 것 인정 안 해… 잘한 것만 광고·홍보
지속적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자산운용업계 일각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업계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자산운용사의 A대표는 “박현주 회장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워렌 버핏도 잘못을 하면 솔직하게 ‘내가 틀렸다’고 시인한다”면서 “그런데 박현주 회장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잘한 것을 광고나 홍보로 부각시켜 잘못한 점을 희석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인사이트펀드에서 중국 비중을 낮춘 것은 박 회장이 틀렸음을 입증한다”면서 “그러면 잘못했다고 투자자들에게 사과하거나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박 회장은 지난 2월 7일 금융인 대상 시상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국이 제일 안전하게 보였다”면서 “조금 빨리 샀다는 건 있다. 40% 떨어졌을 때 집중 투자했는데 거기서 60% 더 떨어졌다”고 밝힌 것. 그의 발언 어디에도 자신이 틀리거나 잘못했다는 내용은 없다.
일각에서는 지난 5월 21일 발표된 골프용품업체 타이틀리스트 M&A(기업인수·합병)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박 회장이 뭔가 홍보·광고성 사건을 터트려야 하는 시점에서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즉, 증권가 일각에서는 설익은 계약을 너무 일찍 발표했다고 보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의 자금은 총투자금액의 일부밖에 되지 않아 국민연금 등에서 나머지 돈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얼마든지 계약이 무산될 수 있는데, 너무 빨리 계약을 오픈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래에셋에서 주식운용본부장을 하며 박 회장의 총애를 받다가 독립한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지난 5월에 주식을 사야 한다고 전망했는데, 이는 잘못 본 것 같다”며 자신의 분석이 틀렸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