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부여는 주요 버섯 생산지 중 한 곳이다. 양송이버섯의 경우 전국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표고버섯은 전국 생산량의 13% 정도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불로초로 불리는 영지버섯을 재배하는 농민은 부여군 일대에서 이씨 부부가 유일하다. 영지버섯이 고소득 작물이지만 재배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영지버섯은 그동안 충북, 강원, 경북지역에서 많이 재배했으나 재배면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강예숙 부여군농업기술센터 경영정보담당은 “영지버섯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재배기술 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버섯농사 10년 만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영지버섯은 배양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온도와 습도에도 굉장히 민감합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를 했어요. 사실 망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 정도죠.”
비닐하우스 6동(5280㎡)에는 2달을 갓 넘긴 노란 영지버섯이 제법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후텁지근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이씨는 이런 악조건에서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풀을 뽑고 버섯을 돌본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버섯의 배양과 활착이 잘 돼 올해 조수입은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이씨의 예상이다.
이씨가 귀농해 버섯농사에 도전한 것은 10년 전인 2001년. 인근 지역의 슈퍼, 가게 등에 공산품 등을 공급하던 그는 대형 할인매장이 농촌지역으로 퍼지면서 먹고 살 걱정이 태산이었다.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고 걱정을 하던 중에 우연히 친구가 하던 영지버섯 농장에 가게 됐어요. 막 자라나고 있는 버섯을 보곤 그 자리에서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친구는 지금 영지버섯농사 안 지어요. 참 아이러니하죠.”
아내 정순영씨는 펄쩍 뛰었다. 농사라곤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는 데다 키우기 어렵다는 영지버섯을 재배한다는 얘기에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이씨는 빚을 내 농지를 임대하고 5동의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당시만 해도 이 근방에서 영지버섯을 재배하는 농민이 몇 명 있었어요. 가서 공짜로 일을 도와주며 재배방법을 배웠지요. 그 농부가 하는 대로 했죠.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첫해 버섯농사는 의외로 잘 됐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가격이 바닥을 쳤고, 판로가 없어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중간도매상에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로 확보보다는 재배기술의 습득이 시급했다. ‘몸으로 때워 배운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각오로 새로운 농법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씨는 부여군농업기술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기술센터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죠. 그런데 제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기술센터에 있더라고요. 버섯에 관한 모든 것을 기술센터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더 큰 수확이었어요.”
이씨는 기술센터와 도기술원에서 개설한 버섯재배교육을 빠짐없이 들었다. 이를 통해 종균배양에서부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시기와 방법 등 차별화된 재배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비닐하우스에 살다시피 했다. 이러한 노력은 최상품의 영지버섯으로 이어졌다. 소문이 나면서 중간상인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상인에 넘기면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였다. 도매와 직거래의 가격차는 거의 2배에 가까웠다.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할 수 있는 판매망을 확보해야 했다.
때마침 인터넷 쇼핑몰 바람이 불었다.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 정씨가 이 일에 매달렸다. ‘컴맹’이었던 정씨가 찾은 곳 역시 기술센터였다. 정씨는 “컴퓨터 기초교육에서부터 쇼핑몰 운영과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것을 기술센터에서 배웠다”며 “이렇게 좋은 교육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막상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했지만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어요. 초기 화면을 눈에 띄게 바꿔가며 기다렸죠. 한편으로는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직거래장터나 자매결연도시 등에 빠지지 않고 다니며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어요.”
서서히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몰 관리와 배송 등을 정씨가 도맡았다. 정씨는 “온라인을 통해 직접 구입하는 고객 한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며 “한 사람이 10명이 되고, 10명이 100명이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고객 한 명을 100명 대하듯 정성을 쏟았다”고 말했다. “주문이 올 때마다 영지버섯을 직접 손질하고, 포장해 배송했죠. 벌레가 조금이라도 먹은 것은 빼고, 균일한 품질의 버섯을 정성스럽게 보냈어요. 반품이 연간 1~2건에 불과할 정도였어요.”
2008년부터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무농약 농법을 도입했다. 온라인 직거래 고객을 중심으로 무농약 친환경 버섯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 이는 다른 버섯농가와 차별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무농약 농법을 도입하자 해야 할 일은 많아지는 반면 수확량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키웠다. ‘믿을 수 있는 친환경 고품질 버섯’이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중국산 등 원산지 불명의 저질·저가의 제품과 차별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온라인 직거래와 마케팅도 더욱 강화했다. 2009년에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지난해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마케팅과 함께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자상거래를 더욱 활성화했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생산과정을 공개하고, 게시판에 올라온 고객의 불만사항은 바로바로 수용했다.
이씨 부부는 지금도 농업기술센터나 도기술원에서 하는 교육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새로운 기술과 마케팅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은 “기술센터에 가면 뭐라도 한 가지씩 배워 온다”며 “농사 한번 지어본 적 없는 우리에게 영지버섯의 재배기술에서부터 판매에 이르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 곳이 기술센터”라고 말했다. 결국 ‘기술센터 교육’이 이들 부부의 성공요인인 셈이다.

체험농장·버섯박물관 건립 계획
차별화된 재배기술과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는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은 그의 농장에서 생산된 모든 영지버섯은 홈페이지와 주요 온라인 쇼핑몰, 직거래를 통해 모두 팔리고 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특히 전체 생산량의 절반 정도는 베트남으로 수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버섯농사를 짓는 현지 농민이 영지버섯 재배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몇 번이나 때려치우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1억원을 투자해 겨우 500만원을 건진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죠. 버섯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버섯 키우기는 쉽지 않고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랬죠.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했죠.”
이씨 부부는 “2013년쯤에는 도시민들이 표고, 느타리, 영지버섯 등을 키우고 수확할 수 있는 체험농장과 버섯박물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귀농인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선배로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도 하고 싶어요. ‘작지만 강한 농업’을 실천하면서 농촌에서도 부지런하게 노력하면 얼마든지 도시민 못지않은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농촌에서 희망을 찾는 게 꿈입니다.”

인터뷰 - 전남 장성 강소농 이끈 오혜림 지도사
“현장에서 함께 강소농 꿈 심었어요”
전남 장성군은 전통테마마을 등의 육성, 농산물 가공품 개발, 도시민과의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규모는 작아도 강한 농업’인 강소농도 많다. 이 지역이 농촌 자원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새롭게 변모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 농촌지도사의 힘이 컸다. 주인공은 바로 오혜림(44) 장성군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다. 장시형 기자 zang@chosun.com

“장성은 임야가 63%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협소해요.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기 힘들죠. 다행히 농민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로 머리를 맞댔죠.”
오혜림 지도사는 “1990년 농촌지도사업에 뛰어들면서 장성군에 맞는 어메니티(쾌적성) 자원 개발과 이야기가 있는 농산물 가공산업 활성화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전국 최초로 솔잎차를 개발해 상품화시킨 이후 냄새나지 않는 청국장, 땅두릅 가공제품, 오디·뽕잎을 이용한 황토소금 등의 개발을 이끌어냈다. 지역 특산품인 감을 이용한 상품화 사업으로 장성군 최초로 향토산업을 유치하기도 했다. 농업인들과 함께 판로 개척에도 직접 나섰다.
오 지도사는 친환경 농촌 문화를 도시민들에게 널리 알려 직접적인 농업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농촌관광산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장성군 남면에 ‘비나리마을’ 등 2곳의 전통테마마을, 4곳의 건강장수마을, 1곳의 푸른농촌희망찾기마을을 육성해 타 지역 마을과 차별화했다.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을 개발, 관광객을 유치해 자연스럽게 특산품을 홍보했다.
최근에는 소비자와 체험·관광 등을 연계한 드림카페(도시소비자의 방)를 운영하고 있다. 66㎡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지역 특산물과 이를 이용한 가공음료의 홍보·체험·판매가 한 번에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드림카페는 도시민에게 장성의 친환경 농산물뿐만 아니라 농촌과 농업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농촌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소득 증대라는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직거래와 농·특산물을 주원료로 가공하면서 농산물의 부가가치와 농가 소득이 높아진 것. 지난해 전통테마마을의 체험 및 농산물 판매, 감을 이용한 상품화 사업, 땅두릅 가공상품, 솔잎차, 뽕잎·오디 황토소금이 일으킨 매출은 60여억원에 달한다.
오 지도사가 컨설팅한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에서 비롯됐다. 그는 2005년 농업기술센터 내에 설치한 농산물가공교육장에서 매년 80여 회 강사로 활동하며, 4000여명에게 농산물 가공이론과 실습교육을 실시했다.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철저한 조사와 벤치마킹이 꼽힌다. 냄새나지 않은 청국장을 개발할 때에는 전통 발효기술을 청국장에 접목했으며, 뽕잎·오디 황토소금의 경우 전북 고창의 복분자소금을 벤치마킹했다. 이미 검증된 기술을 적용해 실패 확률을 최대한 낮춘 것이다.
20년 넘게 농촌지도사업에 매진해온 오 지도사는 “최근 웰빙 건강식품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한 고품질 가공식품 생산을 더욱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이 생산중심의 1차 산업에서 융복합산업의 6차 산업으로 변하고 있어요. 지도사업도 기존의 기술업무지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매니저 지도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요. 현장에서 농업인과 늘 함께 하며 농업인에게 꿈을 심어주는 지도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