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크론은 극세사 가공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다. 극세사란 머리카락 100분의 1 굵기의 매우 가는 실로 흡습성과 항균효과가 뛰어난 섬유소재다. 이 회사는 극세사로 청소도구, 목욕용품, 침구류 등 1000여 종의 제품을 만든다. 간판제품은 극세사 클리너(행주·걸레)로 세계시장 점유율 30%로 세계 1위다. 지난해 640억원의 매출에서 70%를 수출로 벌어들였다.
이영규(51) 웰크론 대표는 1992년 32세에 안정된 대기업의 연구직을 박차고 나와 웰크론을 설립했다. 회사는 20년 만에 세 곳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극세사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9년 차세대 신소재인 나노섬유의 원천기술도 확보했다. 이 대표에게 국내 섬유업계가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이 대표가 극세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나이론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그가 발령받은 부서가 당시 첨단소재였던 극세사 개발팀이었다. 극세사는 198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고기능성 의류소재로 도레이, 데이진 등 세계적인 섬유업체들의 주력제품이었다. 당시 국내 섬유산업은 노동집약적인 단순가공업에 그쳤지만 일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속속 첨단소재들의 국산화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고가였던 극세사를 행주·걸레 등 청소용품에 적용하는, 당시로선 다소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계기는 일본의 섬유전시회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극세사로 만든 안경닦이가 눈에 띄었다. 면이나 합성섬유로 만든 일반 안경닦이보다 훨씬 잘 닦였다. 이 대표가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하자 “비싼 소재로 싱크대나 방바닥을 닦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책만 쏟아졌다.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1992년 전세금과 대출금 2000만원으로 웰크론의 전신인 은성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4년간 친구가 운영하던 섬유업체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뒤였다. “선진국에선 다양한 첨단소재들이 개발되면서 섬유산업이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선 사정이 달랐죠. 199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노동집약적인 상태였습니다. 이미 중국·동남아 등 저개발국의 제품들에 가격에서 밀리고 있었죠. 극세사 가공기술과 수출시장을 확보하면 머지않아 선두업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특히 극세사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많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을 타깃으로 삼았다. 위생관념이 투철한 곳이라 타월, 가운, 이불 등 다양한 극세사 제품들이 유통되는 지역이다. 첫 제품은 극세사 클리너였다. 그는 판촉을 위해서 섬유 관련 전시회는 어디든 찾아다녔다. 수백개의 클리너를 꾹꾹 눌러 넣은 더플백과 이민가방 때문에 세관으로부터 보따리상으로 오해받은 적도 많았다. 이 대표는 섬유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을 붙잡고 극세사 제품을 보여주면서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조금씩 수주를 따낼 수 있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수주량도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탁생산으로는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기 역부족이었다. 1997년 그는 자체 공장을 짓기로 결심했다. 막대한 빚을 끌어와야 했지만 기업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직원들은 만류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1997년 연말 공장이 반쯤 완성되었을 무렵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8%였던 은행 대출금리가 3배 이상 뛰어오르고, 환율은 종전 800원에서 1800~1900원으로 치솟았다. 웰크론에도 자금압박이 시작됐다. 원자재가격이 오른 데다 공장 건립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이미 적잖은 돈을 빌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독일과 일본에 주문한 값비싼 섬유기계의 잔금도 남아있었다. 사채를 빌려도 시원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 대표는 공장이 완공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간신히 외환위기를 견디자 뜻밖에 기회가 찾아왔다. 섬유업체들이 하루에도 수십 곳씩 도산한 바람에 경쟁업체들이 대폭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 웰크론처럼 자체 생산설비를 갖춘 극세사 가공업체도 드물었다. 그 결과 전보다 많은 바이어들이 몰려들었다. 부쩍 오른 환율 덕분에 수출에서 적잖은 환차익도 발생했다. 그 다음은 탄탄대로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외환위기 전보다 두 배 이상 불었고 2000년부터 다국적기업 3M에 극세사 용품을 독점 공급하면서 급속히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극세사 제품의 종류도 대폭 늘렸다. 대표적인 것이 침구류다. 일반 천 재질의 이불, 시트, 베게는 대량의 진드기가 서식하지만 극세사 침구류는 다르다. 섬유조직이 치밀하기 때문에 천 속으로 진드기가 파고들지 못하는 웰빙 제품이라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수요가 많다. 이 대표는 올해 웰크론의 청소용품, 목욕용품, 침구류를 판매하는 전용매장 ‘세사리빙’을 론칭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35개인 이 매장을 연말까지 5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 대표의 저돌적인 성격은 적극적인 사세확장에서도 드러난다. 2007년 한방생리대 브랜드 예지미인을 인수했다. 이 회사가 섬유제품을 사용한다는 특성상, 웰크론과의 시너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2009년엔 해양담수설비 전문업체 한텍엔지니어링과 플랜트업체 강원비앤이를 차례로 인수해 사업 분야도 섬유 밖으로 넓혔다.
그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은 웰크론의 독특한 사내문화에서도 드러난다. 한 예로 웰크론의 월례행사는 고되기로 유명하다. 무더위로 나른해지는 8월이면 200여명 직원 전체가 30km 야간행군을 실시한다. 선선해지는 10월에는 전 직원이 10km 마라톤을 완주한다. 가장 힘든 것은 직원들끼리 마주보고 올리는 3000배다. 8시간에 걸쳐 절을 마치면 다리가 풀리고 허리가 뒤틀린다. “어느 행사든 남녀노소 예외가 없습니다. 대표이사부터 말단 인턴까지 모두 참여하죠. 직원들 사이에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유대감을 기르기 위한 조치입니다.”

나노섬유 원천기술 확보
웰크론이 현재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나노섬유다. 나노섬유란 극세사의 1000분의 1 굵기의 첨단섬유로 도레이와 듀폰을 비롯한 세계적인 섬유업체들의 기술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헬스케어, 방위산업, 스마트가전 등 다양한 신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웰크론은 직원의 20%를 연구개발(R&D) 부문에 배정하고 해마다 매출 5%라는 적잖은 돈을 투자하면서 이미 나노섬유 부문에서도 상당한 기술력을 쌓았다는 평가다. 웰크론의 나노섬유가 가장 먼저 접목된 제품은 마스크다.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도 침투하지 못하는 촘촘한 구조라 2009년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당시 웰크론은 이른바 ‘신종플루 수혜주’로 각광받으면서 연일 상한가를 달렸다. 이 대표는 “올해 3월 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마스크 판매가 급증했다”며 “웰크론이 이번엔 ‘방사능 수혜주’로 꼽혔다”고 말했다.
산업용 필터 역시 나노섬유가 접목되는 분야다. 웰크론은 공기청정기의 헤파 필터와 해양담수화 설비의 멤브레인 필터를 자체 개발했다. 특히 멤브레인 필터의 경우 지식경제부가 ‘세계 10대 핵심소재’로 지정할 만큼 국가적으로도 기대가 큰 제품이다. 바닷물의 미세한 입자들을 걸러 증류수를 만드는 담수화 작업의 핵심부품이라 매우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웰크론이 얼핏 보면 섬유와 무관해 보이는 한텍엔지니어링과 강원비앤이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것도 사실 나노섬유 필터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두 업체는 중동 지역에서 담수화 설비를 건설한 경험이 많은 회사들이다. 이들이 담수화 설비를 수주할 경우 멤브레인 필터의 판로도 열리게 된다. 막강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방탄복도 기대를 모으는 제품이다. 미 육군 규격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초속 610m로 날아오는 탄환에도 끄떡없다. 국내 군용 방탄복보다 방어성능을 20% 향상시키고 무게는 오히려 10% 줄였다. 웰크론은 현재 동남아 지역 위주로 방탄복의 바이어들을 물색하고 있으며 사냥용으로 개발된 캐주얼 방탄복을 일부 아웃도어 브랜드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나노섬유는 시장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성장이 예상됩니다. 전기자동차의 2차 전지 분리막, 인공피부와 인공혈관, 컴퓨터가 결합된 스마트의류 등 대부분 부가가치가 큰 미래형 산업에서 사용되기 때문이죠. 웰크론의 나노섬유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급성장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EU FTA 발효로 가격경쟁력 확보
웰크론은 지난 7월 1일 한-EU FTA의 발효로 한껏 고무돼 있다. 그간 유럽 수출에서 물던 12.8%의 관세가 즉각 철폐됐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만큼 중국의 저렴한 제품들과 경쟁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게다가 중국에서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단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점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극세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극세사 부문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든든한 캐시카우예요. 동남아·중앙아시아 등에서도 소득이 늘면서 웰빙 제품을 찾는 만큼 극세사 제품들의 판매량은 당분간 계속 증가할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나노섬유와 이를 응용한 제품들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나노섬유 시장이 지금보다 활성화되면 회사 목표인 ‘5년 내 매출 1조원 달성’도 얼마든지 가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