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어 가을로 길을 내고 바람은 가을을 인도하여 마음속으로 불어왔다. 태백의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들꽃 길을 지나 우리의 발길은 고도 1200미터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서 멈추었다. 구름 위 배추밭은 녹색의 평원이었으며 입 벌린 배추 하나하나는 차라리 꽃송이였다.
-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는 해바라기라서 그런지 꽃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는 해바라기라서 그런지 꽃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해바라기만 보면 초등학생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한여름 더위에도 더운 줄 모르고 뛰어놀던 그때, 동네 골목길 담장 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피어난 해바라기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옛날에는 해바라기가 없는 집이 없었다. 담장 위로 ‘껑충’ 자라난 해바라기는 하굣길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기며 웃어주는 꽃이기도 했다. 아예 해바라기로 울타리를 만든 집도 있었다. 그 많던 해바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은 시골에서도 해바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해바라기가 더욱 생각난다. 



가을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계절이 바뀌는 태백 고원은 일기가 불순하다. 무더위와 냉기가 낮과 밤으로 생활공간을 장악한다. 온도에 적응하려는 신체 온도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맑은 콧물이 흐르거나 마른기침이 나온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에도 안개가 피어나고 안개 속 작은 물알갱이는 피부를 적신다.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스산한 마음이 인다. 자연과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 견뎌야 보석 같은 계절 가을을 맞이할 수 있나 보다. 



가을 초입 꽃 만발한 태백의 골짜기를 찾아갔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산맥이 낙동정맥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지는 그곳, 해발 900미터에 자리 잡은 태백 구와우마을에는 1만 평의 들과 산에 해바라기가 피어 여행자를 반기고 있다.   



꽃들이 낸 길을 따라 더 깊은 골짜기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태양의 나라였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돌린 노란 꽃 해바라기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순간 ‘태양력 발전소’가 떠올랐다. 



다른 식물들은 잎으로 태양빛을 받아들여 뿌리부터 꽃술까지 모든 에너지를 전달하는데 해바라기는 그 둥근 꽃 전체로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한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검게 탄 씨앗을 꽃 속에 품는다. 그들의 열정이 보석 같은 씨앗을 꽃 속에 영글게 한 것이리라.



이곳에 피어난 해바라기는 북미 대륙이 원산지다. 옛날 담장 위로 꽃을 피운 그 해바라기는 엄청 컸는데 이곳의 해바라기는 작다. 또 옛날에는 해바라기 씨를 빼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해바라기는 관상용으로 사랑받는다. 해바라기 기름이 류머티즘과 노화방지, 해열작용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효능보다 해바라기가 낸 길을 걷고 꽃을 바라보며 얻는 마음의 평안을 이야기하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 (위)구와우마을 해바라기 꽃동산에는 해바라기 말고도 다양한 들꽃이 피어있다. (왼쪽)길가에 피어있는 들꽃. (오른쪽)구와우마을에 핀 코스모스. 안개 속 코스모스 꽃밭이 매력적이다.
- (위)구와우마을 해바라기 꽃동산에는 해바라기 말고도 다양한 들꽃이 피어있다. (왼쪽)길가에 피어있는 들꽃. (오른쪽)구와우마을에 핀 코스모스. 안개 속 코스모스 꽃밭이 매력적이다.

동자꽃·망초·나리꽃 등 ‘야생화 천국’

계절이 바뀌는 그곳에는 해바라기만 만발한 게 아니다. 8월 중하순까지는 해바라기가 만개하는 시기지만 그곳에는 동자꽃, 망초, 나리꽃, 코스모스 등 다양한 들꽃이 피어 시들어가는 해바라기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구와우마을 해바라기가 시들었다 해도 아쉬울 것 없다. 해바라기 꽃동산이 원래는 ‘고원자생식물원’이라서 철마다 다양한 들꽃들이 피어난다.



해바라기 동산을 걷는 오솔길에도, 길 없는 숲 아래에도 들꽃이 피었다. 깨알같이 작은 꽃들이 피어나 산기슭을 물들이고 있다. 산 아래까지 안개가 내려앉아 먼 데 꽃동산이 흐릿하게 지워진다. 산기슭 숲은 안개에 잠겼다.



길가에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흔들리며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코스모스에 눈높이를 맞춰 세상을 바라보았다. 안개 속 코스모스 꽃밭이 신비롭다. 우주의 질서를 인도하는 여덟 꽃잎의 조화가 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안개 속에 놓인 것이다.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서 코스모스가 피어 피안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자갈이 깔려 있는 흙길에는 코스모스 말고도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이 피었다. 태백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들꽃 세상은 천상의 화원 같다. 그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머리도 마음도 다 싱그러워진다.

    

- (위)삼수령 배추밭. 구름이 눈 아래로 보인다. (아래)그곳에서 배추는 꽃처럼 피어난다.
- (위)삼수령 배추밭. 구름이 눈 아래로 보인다. (아래)그곳에서 배추는 꽃처럼 피어난다.

매봉산을 뒤덮은 배추밭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동산을 나와 삼수령 쪽으로 차를 달린다. 조금만 더 가면 삼수령(피재)이다.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이 시작되는 곳이 삼수령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가면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들고 동쪽으로 흘러가면 오십천이 되어 동해가 되고, 남쪽으로 흘러가면 낙동강이 되어 남쪽 바다와 하나가 된다. 또한 이 고개에는 피재란 이름도 있다.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다 하여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의 ‘피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삼수령에서 매봉산 풍력발전소(바람의 언덕)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 길로 오르면 고랭지 배추밭과 거대한 풍차가 어울린 고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해발 920미터, 삼수령(피재)을 지나 바람의 언덕으로 오른다. 발아래 구름이 피어난다. 산골짜기를 타고 온 구름이 사위를 감싼다.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풍경이 다시 맑아진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저 멀리 능선을 타고 넘나드는 구름이 신비롭다. 1000미터가 넘는 고원에 배추밭 능선이 구불거리는 길과 어울렸다. 푸른 바탕에 흰색 선이 구불거리며 능선을 넘는 것 같다. 그곳에 피어난 배추는 꽃 같다. 속이 꽉 찬 배추가 입을 벌린 모양이 실제로 꽃잎 같다. 그런 꽃들이 셀 수 없이 많이 피어나 산비탈을 가득 메우고 능선을 만들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구름 위의 배추밭에서 한 아저씨가 일을 한다. 배추밭 고랑 사이를 오간다. 그 걸음마다 아저씨 등 뒤에 펼쳐진 태백산맥 줄기가 들썩인다. 힘줄 불거진 산줄기마다 하얀색 구름이 피어난다. 그런 풍경을 배경으로 아저씨는 매일 일을 하는 것이다.

- (위)산언덕에 세워진 풍력 발전기. (아래)작은 풍차 주변으로 키 작은 꽃들이 피었다.
- (위)산언덕에 세워진 풍력 발전기. (아래)작은 풍차 주변으로 키 작은 꽃들이 피었다.

바람의 언덕을 거닐다

배추밭을 지나면 풍차가 있는 바람의 언덕이 나온다. 산줄기를 넘어온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정신이 없다. 거대한 풍차 날개가 ‘웅웅, 슈우욱 슈우욱’ 돌아간다. 날개가 그다지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은데 그 소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해발 고도가 높아지면서 온도가 떨어진 데다가 바람이 불어닥쳐 체감온도는 더 낮게 느껴진다. 그 모든 것 때문에 소름이 돋는다.



거대한 날개가 위협적으로 돌아가는 길을 지나 목책을 따라 걸었다. 저 멀리서부터 가까운 곳까지 겹겹이 놓여 있는 산줄기들이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것같이 보인다. 산 위의 바다다. 그렇게 밀려드는 산줄기의 파도가 길 양옆으로 펼쳐진다. 산과 산 사이에서 구름이 피어오른다. 산 전체가 들끓는 것 같다. 



나무로 만들어놓은 풍차 아래 등을 기대고 앉아 저 멀리 눈 아래 밟히는 산줄기를 바라본다. 풍차 주변에 작은 꽃잎 들꽃이 피어났다. 파란 하늘이 ‘빼꼼’ 얼굴을 내밀다가 구름 사이로 숨는다. 바람이 머리를 헝클어놓고 등을 떠민다. 떠나기 싫은 여행자의 마음을 바람은 알지 못했다.  

 

 여|||||



가는 길


● 자가용 : 제2경인, 중부, 경부고속도로-신갈.호법JC-영동고속도로(원주방향)-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방향)-제천IC-제천시내로 들어가지 말고 영월방향우회(4차선지방도) 자동차전용도로-영월에서 영월4차선 38국도 끝-석항검문소-직진(38국도)-예미 오거리-사북-고한-태백 쪽으로 가다가 35번 도로 하장 방면으로 가면 길 오른쪽에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동산이 먼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삼수령을 지나 왼쪽에 매봉산 풍력발전소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가면 고랭지 배추밭과 풍차 등을 볼 수 있다.



※ 내비게이션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80. ‘고원자생식물원’으로 검색하면 된다. 

● 대중교통 :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태백까지 버스가 자주 있다. 

태백시내에서 각 여행지로 가는 방법은 택시 및 버스 이용.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동산과 매봉산 풍력발전소는 대중교통으로 둘러보기 불편하다. 



먹을거리

● 용두식당 송이요리 : 태백에서 약 1시간 정도 거리에 봉화 송이요리전문점 ‘용두식당’이 있다. 송이전골. 송이돌솥밥. 영양돌솥밥 등. 



태백에서 봉화 방향 35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현동삼거리에서 봉화 방향으로 가다보면 노루재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지나 계속 봉화 읍내 방향(법전리 다덕약수 등 방향 36번 도로)으로 가다보면 옥천삼거리와 춘양삼거리 등이 나오는데 계속 봉화 읍내 방향 36번 도로를 타면 된다. 다덕약수 지나 동양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다.

문의 : 054-673-3144

※ 송이요리를 즐기고 태백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태백 여행지를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봉화까지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풍기IC로 나온다. 풍기IC로 빠져나와 우회전 세 번 하면 봉화로 가는 36번 도로다. 그 길 따라 봉화까지 가서 읍내를 거쳐 울진 방향으로 6킬로미터 정도 가다보면 길 왼쪽에 동양초등학교 간판이 보인다. 그 맞은편에 식당이 있다.   

숙박

해바라기 축제를 하는 구와우마을 산골짜기와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태백시내 모텔과 삼수령에서 약 20~30km 정도 떨어진 태백산도립공원 부근 펜션을 이용해야 한다.

※ 구와우마을 해바라기는 기후에 따라 만개 시기가 달라지지만, 보통 8월 중순~하순에 만개한다. 9월 초에는 절정의 순간을 넘긴 꽃의 자태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동산에는 해바라기 말고도 갖은 들꽃이 피어나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해바라기 축제는 8월 28일까지다. 축제 기간에는 입장료 5천원을 받는다. 축제가 끝나면 입장료가 없다. 문의 : 033-553-9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