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카드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0.64%를 매각키로 함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가 15년 만에 대변화를 겪게 됐다. 그동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순환출자구조로 경영권을 지배해왔지만, 이것이 수직구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신호탄으로 이건희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3세들이 계열분리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순환출자에서 수직출자구조로 변화…

   

삼성가 3세 계열분리 스타트하나?

-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이 본격화되면서 삼성가 3세들의 계열분리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CES 2010’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 왼쪽부터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건희 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이 본격화되면서 삼성가 3세들의 계열분리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CES 2010’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 왼쪽부터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건희 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삼성카드가 보유중인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주간사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전체주식 250만 주 중 64만1123주를 갖고 있어 지분율이 25.64%에 이른다. 삼성카드가 이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때문이다. 금산법 제24조에는 금융회사는 동일계열사가 지배하는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5% 이상 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금산법에 규정된 시한인 내년 4월까지 20.64%를 매각해서 5% 미만으로 지분율을 낮춰야만 한다. 이렇게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삼성카드(실질적으로는 삼성그룹)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매각 주간사를 선정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메릴린치·JP모건·바클레이즈·씨티 등 외국계 투자은행(IB) 7곳에 입찰 제안서 요청서(RFP)를 발송했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 의미는 상당하다. 그동안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의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즉,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3%를,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46.85%를 보유하고, 삼성카드가 다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25.64% 보유하는 형태이다. 이는 15년 전인 1996년에 처음 구축됐다. 이 지배구조에서 마지막 고리가 끊어지며 수직출자구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재계나 증권가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대목은 ‘수직출자구조로 바꾸고 난 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이다. 우선 삼성이 지주사 체제로 갈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주사 출범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삼성그룹은 2008년 4월 비자금 특검을 받을 당시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면서 “장기과제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현재까지도 이런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즉, 여전히 지주회사 체제는 장기과제로 검토중이라는 얘기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면서 “그 체제로 갈 것이라고 기사를 쓰면 오버다”고 했다.



삼성의 지주사 출범과 관련해 대기업의 한 임원도 “2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 한 삼성가(家)에는 실익이 없다”면서 “이건희 회장이 3자녀에게 회사를 나눠줘야 하는데, 지주회사는 삼성가에게는 족쇄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6월9일부터 10일까지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삼성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앞줄 가운데),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왼쪽), 중국삼성 강호문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 지난 6월9일부터 10일까지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삼성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앞줄 가운데),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왼쪽), 중국삼성 강호문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이부진·서현 자매, 에버랜드 지분이 계열분리의 실탄?

증권업계 관계자도 지주사 체제인 SK그룹의 예를 들며, “최태원 SK 회장과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 간에 계열분리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현실화되지 않는 것은 SK가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서 계열분리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본다”고 했다. 즉, 지주회사 체제로 가더라도, 이 회장의 3자녀가 계열분리를 한 뒤에나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의 지주회사 출범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3남매의 계열분리에 더 주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그룹의 전통사업 부문인 전자(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 포함)와 금융계열사를 맡고, 이부진 사장이 유통·화학(호텔신라·삼성물산·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을, 이서현 부사장이 제일모직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에버랜드를 지주사와 사업부문으로 물적 분할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 경우 지주사는 이재용 사장, 놀이공원·식음료 등 사업부문은 이부진 사장이 각각 나눠 맡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뿐 아니라 삼성에버랜드도 2009년부터 경영에 참여해왔는데, 삼성에버랜드는 이부진 사장의 사업다각화로 실적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에서는 수직계열화와 함께 3세들의 계열분리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어이없어 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이건희 회장이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계열분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면서 “게다가 지분이동도 없이 단지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을 갖고 계열분리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다”라고 했다.



실제로 계열분리를 하려면 지분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와 삼성물산의 지분이 1주도 없다. 호텔신라는 삼성생명 7.31%, 삼성전자 5.11% 등 삼성 계열사들이 17.3%를, 삼성물산도 삼성SDI 7.39% 등 삼성 계열사가 13.68%를 갖고 있다. 이서현 부사장도 제일모직 지분은 1주도 없다. 제일모직은 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사가 7.39%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부진 사장은 비상장사인 삼성석유화학의 지분 33.2%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로 이미 실질적인 오너이다.

- (왼쪽)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오른쪽)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 (왼쪽)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오른쪽)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향후 몇 년 내 삼성 3세 계열분리 모습 드러날 듯

3세들의 계열분리와 관련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지분 등을 상속받아 이를 계열분리의 실탄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상속 후 (3세들의 계열분리가) 교통정리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계열분리는 이건희 회장 사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럼에도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이부진·이서현 자매의 삼성에버랜드 보유 지분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8.37%(20만9250주)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결국 상장할 것이란 전제하에 이를 매각해서 계열분리 실탄으로 사용하면 된다는 것. 이 지분의 금액 규모는 증권가에서 평가하고 있는 주당 210만~250만원으로 계산하면 5000억원가량이다. 이 정도면 두 자매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상속을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계열분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나 삼성종합화학·삼성정밀화학도 얼마든지 최대주주가 될 수 있고, 이서현 부사장도 제일모직의 최대주주가 가능하다.



여기에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증여를 한다면, 몇 개 계열사를 더 가져갈 수도 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을 맡고 있는 이부진 사장이 아버지인 이 회장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면 삼성물산을 품에 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삼성가 2세들은 재산분할을 통해 삼성에서 CJ(고 이병철 회장 장남-이맹희씨), 새한(차남-고 이창희씨), 한솔(장녀-이인희 한솔 고문), 신세계(5녀-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으로 계열분리하며 독립해 나갔다. 삼성그룹 경영권은 고 이병철 회장의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승계됐지만 나머지 계열사는 골고루 자녀들에게 돌아갔고, 이는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따라서 법적인 계열분리는 이건희 회장 사후이겠지만, 향후 3세들이 맡을 계열사들은 그 전에 결정돼 터 닦기 작업이 시작될 것이며, 독자그룹으로 가는 핵분열이 향후 몇 년 안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재계와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이 3세 계열분리의 신호탄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 회장의 건강상태에 따라 이는 앞당겨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Tip. 삼성에버랜드 상장할까 

삼성카드 지분 매각 후 상장 가능성 높다

삼성카드는 보유중인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까.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카드 25.64%, 이재용 사장 25.1%,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이 각각 8.37%, 제일모직·삼성전기·삼성SDI가 각각 4.0%, 이건희 회장 3.72%, 삼성물산 1.48%, 삼성문화재단 0.88% 등 삼성가와 계열사가 90%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카드가 20.64%를 내다 판다고 하더라도 경영권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구조다. 오래전부터 증권가는 삼성에버랜드가 구주매출 방식의 상장을 통해 매각될 것으로 예측해왔다. 이는 삼성생명 상장 방식과도 유사하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5월12일 신주 발행 없이 전체 2억 주 중 삼성차 채권단, 신세계, CJ 등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 4443만여 주(22%)를 매각하는 구주매출 방식을 통해 증시에 상장됐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이재용 사장이나 다른 삼성 계열사들이 추가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현재의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 측에서는 삼성에버랜드 상장을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로 일축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장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밖에 어떤 방법이 거론되고 있을까. 상장 외 방법으로는 외국계 연기금이나 펀드, 국내 기관투자자 등 제3자에게 대량으로 일괄 매각하는 블록딜 방식, 삼성그룹 내 비금융 계열사에 매각하는 방법, 에버랜드가 자사주 형태로 사들이는 것 등 세 가지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비금융 계열사로의 매각이나 자사주로의 매입 등은 경영쇄신과 맞지 않는 데다, 가격 산정 등 절차상의 잡음이 불거질 것이기에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비록, 이번에는 상장 방식을 택하지 않더라도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이 결국 에버랜드 상장으로 귀결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삼성측이 이번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면서 상장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블록딜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깬 뒤 몇 년 후 적당한 시점에서 에버랜드 상장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블록딜로 지분을 매각하면서 향후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주지 않고는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블록딜로 하게 되면, 그것은 상장하겠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블록딜에 나서는 외국인투자자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계속 비상장사로 남아 있어, 현금화가 쉽지 않은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겠냐는 것이다. 올해 초 상장설을 강력하게 부인했던 삼성그룹 관계자도 “삼성에버랜드가 상장 안 한다고 한 것은 연내 안 한다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는 내년 이후에는 상장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또 다른 삼성그룹 관계자도 비상장사라서 투자금 회수(exit)가 어려운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누가 인수하려 하겠냐는 질문에 “지주회사격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매각 주간사에서 (인수후보자들에게) 상장 기대치를 심어줄 것”이라며 향후 상장 가능성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