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교환 하면서 끈끈한 관계 유지

   

위기 땐 서로 ‘밀어주고 챙겨주고’

- 2002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회 한 ∙ 중 경제심포지엄(왼쪽). 2004년 4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 ∙ 중 경제심포지엄.
- 2002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회 한 ∙ 중 경제심포지엄(왼쪽). 2004년 4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 ∙ 중 경제심포지엄.

2008년 9월 중국 최대 낙농업체인 멍뉴(蒙牛)그룹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중국 대륙을 휩쓴 치명적인 멜라민 분유 파동의 불똥이 멍뉴그룹을 덮쳤기 때문이다. 멍뉴그룹은 일부 주주권을 저당 형태로 갖고 있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 넘어갈 절대절명의 위기로 내몰렸다.



뉴건성 멍뉴그룹 회장은 다른 중국 기업인들에게 긴급 지원을 요청하며 SOS를 쳤다. 경영권을 외국사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놀라운 것은 류촨즈 레노버 회장과 신둥팡그룹의 위민훙 회장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원한 자금은 총 2억위안(약 360억원)에 달했다. 멍뉴그룹은 한 걸음 나아가 닝가오닝 회장이 이끄는 중국 최대 식품기업인 중량그룹과 중국계 사모펀드인 호부펀드로부터 61억홍콩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로써 멍뉴그룹은 1999년 창업 후 최대 존망의 위기에서 벗어나 토종기업으로서 명맥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멍뉴그룹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뉴건성 회장이 다져놓은 인맥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뉴건성과 닝가오닝, 류촨즈, 위민훙 등은 모두 중국 재계의 특급 CEO들만 가입할 수 있는 ‘중국기업가클럽(中國企業家俱樂部 · China Entrepreneurs Club·이하 약칭 CEC)’ 회원들이다. ‘재계 거물들의 집합소’로 불리는 CEC는 어떤 단체인가?



베이징 시내 베이징대학 과학기술원 안에 있는 이 모임은 2006년 말 등장했다. ‘재계 지도자들의 정신적 쉼터가 된다’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비영리단체가 된다’는 양대 목표를 내걸고 있는 CEC의 홈페이지(www.daonong.com)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06년 12월, 중국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기업경영자, 경제학자, 외교관 등 31명이 공동발기해 중국기업가클럽이 탄생했다. 이들은 중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지도자인 동시에 전 세계 기업계를 이끄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 중국내 최고 영향력을 지닌 비즈니스계 거물들의 클럽인 CEC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비영리단체로 손꼽힌다.(이하 후략)”

- 중국기업가클럽 회원들(오른쪽 위). 중국 기업가들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서적 <공수성대형(空手成大兄)>.
- 중국기업가클럽 회원들(오른쪽 위). 중국 기업가들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서적 <공수성대형(空手成大兄)>.

총 31명의 발기인은 11명의 명예이사와 20명의 발기이사로 나뉘어져 있다. 명예이사에는 중국 최고의 경제학자인 우징롄, 장웨이잉, 저우치런과 베테랑 외교관인 우젠민, 하이얼그룹의 장루이민 회장, 자오상은행의 마웨이화 총재, 완커그룹 왕스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20명의 발기이사는 TCL그룹 리둥성 회장, 알리바바 마윈 회장, 지리(吉利) 자동차그룹의 리수푸 회장, 펀중 미디어 쟝난춘 회장 등이 있다. 지금까지 임기 1년의 이사장 자리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뉴건성 멍뉴그룹 회장, 궈광창 푸싱그룹 회장이 맡았고 중국부동산협회 부회장이자 예그룹 회장인 후바오선이 2010년 4월 4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CEC는 사설 비공식 단체로 가입 문턱이 높고 까다롭다. 기업 창립 5년 이상, 연 개인수입 50억위안 이상, 해당 시장 점유율 또는 매출규모 업계 3위 이내(대형 국유기업 제외), 기술연구개발 및 업계 표준제정에 중요한 발언권을 확보한 기업, 공공이익과 환경보호 등에 강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진 기업 등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최근 4년여 동안 위민훙 신둥팡그룹 회장, 량원건 싼이그룹(중공업) 회장, 인터넷업계의 선두주자인 시나닷컴의 차오궈웨이 등이 이사로 선임됐다. 2010년까지 CEC의 이사 숫자는 초기 31명에서 현재 45명으로 늘었다.



이 모임은 친목 활동이나 압력단체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회원들은 공부 모임을 갖거나 현장 기업방문을 통해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고 끈끈한 동료 의식을 공유한다. 2007년부터 매년 4월 하순 우아하고 멋진 명소를 골라 개최하는 ‘중국 녹색기업연례회의’가 대표적이다.



2009년에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중국 녹색기업연례회의에 축하 전문을 보냈을 정도이다. 이들은 매분기마다 모범 녹색기업을 추천, 선발하고 연간 네 분기 동안의 활동을 종합해 해마다 우수기업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유기업, 민영기업, 외자 기업 등도 포함된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 산업계에는 CEC처럼 재계 고위인사들로 구성된 폐쇄적인 ‘이너서클’ 모임이 최근 잇따라 설립되고 있으며, 이들이 성공적인 중국 비즈니스를 위한 유력 창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 ‘시(關係)’가 강력하고 끈질긴 중국 상황에서 이들 사적인 모임은 응집력 높은 독특하고 끈끈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너서클’의 종류는 다양하다. 1993년 10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서 자산 1억위안 이상 최상류층 민영 IT 기업인들이 결성한 타이산산업연구회, 저장성 출신 민영 기업인들의 모임인 쟝난회, 베이징 소재 창장경영대학원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모이화샤동창회,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벤치마킹해 매년 1월15일 헤이룽장성 야부리에서 열리는 야부리 포럼, 푸화그룹 천리화 회장이 설립한 베이징 사교 클럽이자 정·재계 명사들의 모임인 창안클럽, 상하이 푸둥지구 금융가인 루짜주이의 중인빌딩, 세계 500대 기업의 중국 지사 대표, 고위급 임원, 각계 명사를 회원으로 두고 2002년 출범한 베이징 미주클럽 등.



이들 ‘이너서클’들은 철저하게 폐쇄적인 회원 중심 구조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 간의 밀고 끌어주고 챙겨주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어 중국 비즈니스에서 적잖은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각 업계의 최고 선두 기업인을 대상으로 1년간의 심사를 거쳐 20만위안(약 3600만원)의 가입 회비를 받는 쟝난회의 경우, 위기에 처한 동료를 돕는 ‘강호령(江湖令)’이 공공연하게 있다. 쟝난회의 쉐량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강호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회원이 풍랑을 만났을 때 이 강호령을 꺼내면 회원들이 앞장서서 그를 도와줍니다. 이 표찰을 꺼내면 언제 어디서든 모두가 나와서 도와주지요. 그러나 강호령은 각 회원에게 딱 한번의 기회밖에 없어요. 꿀벌이 침을 쏘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처럼 강호령으로 회원들의 도움을 받고 나면 그는 이후 쟝난회를 떠나야 합니다.”



화샤동창회는 매년 적어도 2회 공식모임을 여는데 이때마다 2명의 저명 기업가가 나와 주제 강연을 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토론을 한다. 회원인 완통부동산그룹의 펑룬 회장은 “화샤동창회 모임에서 토의하는 사안은 그 어떤 강연이나 언론 매체보다 더 깊고 심오하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사회적 책임 실천에도 나서고 있다. 단적으로 화샤동창회원들은 2005년 고아 및 장애 아동 지원을 목적으로 ‘화샤공익기금회’를 만들어 매년 2억~3억위안을 모금해 2000여명의 빈곤아동과 선천성 심장병 아동을 돕고 있다.



이런 재계 이너서클은 성공적인 차이나 마케팅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공략 대상이다. 창안클럽만 해도 미쓰비시 ∙ 마루베니(일본), UTC ∙ 버밀리언(미국), LG전자 ∙ 현대종합상사(한국) 같은 기업들이 이사회에 최근 가입했다.



‘황금 시’를 쌓기 위한 중국 최고의 경영대학원 코스로 정평이 나 있는 창장경영대학원에도 최근 한국인들이 5~6명 입학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카싱 홍콩 창장그룹 회장이 2003년 세운 이 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은 중국 최고의 ‘실무형 시’를 다질 수 있는 장이라는 이유에서 1년 학비가 무려 62만위안(약 1억2000만원)에 달하지만 매년 지원자가 쇄도하고 있다.



일부 주중 한국 대기업 CEO들과 20~30대 유망주들이 중국 산업계의 이너서클에 최근 속속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그 활동이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국 특유의 ‘시’를 무시하거나 소홀했다가는 중국 사업에서 최소한 장기적인 성공은 담보하기 어렵다. 재계 이너서클을 포함한 정겴?관계 등을 상대로 한 ‘저인망식 시’를 강화하고 지속해야 하는 이유이다.

- 류촨즈 중국 레노버 회장(왼쪽). 중국 최대 우유제품 회사인 멍뉴그룹의 뉴건성 회장.
- 류촨즈 중국 레노버 회장(왼쪽). 중국 최대 우유제품 회사인 멍뉴그룹의 뉴건성 회장.

 

   Tip. 중국 시(關係) 성공을 위한 5계명  

자주 만나고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알려라

1.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자주 만나는 등 중장기적으로 정성을 쏟고 ‘공’을 들여야 한다. 

매월 또는 격월, 매분기 등으로 정례 모임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단, 음주 가라오케 마작 같은 유흥을 멀리해야 모임과 관계가 오래간다



2. 모임에 참여한 사람과는 가급적 사업 이야기를 멀리하는 게 좋다. 

순수하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업 얘기를 꺼냈다가는 시를 맺지 못한다.



3. 모임에 합류하면 자신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비록 규모가 작은 모임이라도 자기 일을 명확하게 알리고 자신의 실체를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4. 새로운 중국 친구를 소개받으면 반드시 다리를 놓아준 사람을 통해 연락하거나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만나는 것을 잊지 말라.


소개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하려다가는 인맥이 모두 끊길 수 있다.



5. 특별한 일이 없을 때 평소에 잘 관리하고 수시로 연락해야 한다.


평소에는 전혀 연락하지 않다가 문제가 터질 때만 찾는 시는 최하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