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콘택트렌즈 지속 개발해

  해외 수출 물량 늘리겠다”

7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콘택트렌즈 시장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팔리는 콘택트렌즈 10개 중 8~9개가 외국산이다. 이러한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 중 1위 업체가 인터로조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2003년 33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08년 1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09년 141억원, 2010년 176억원으로 급증했다. 7년 만에 5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230억원.

인터로조는 전체매출의 75%를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전 세계 48개국에 120여개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 노 대표는 성공적으로 진입한 독일 등 유럽지역 외에 일본과 글로벌 업체들의 입김이 약한 중국·중남미 등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이 회사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나가는 것은 노시철 대표의 경력과 무관치 않다. 무역학을 전공한 노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인 대우실업에 입사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부엌용품의 해외영업. 7년 동안 국내 업체의 주방용품을 해외 각국에 내다 팔았다.

1980년대 말 해외 지사의 주재원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전공을 살려 내 사업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그는 직접 하면 효율이 높을 것이라는 확신에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주력은 전공이었던 부엌용품이었다. 사업은 소위 대박을 쳤다. 사업 첫해 900만달러 규모의 무역을 성사시켰다. 1990년대 후반에는 3000만달러를 해외에 내다 팔았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제조사와 항상 부딪혔거든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서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중국 업체들이 쑥쑥 성장하는 걸 보면서 노동집약적인 것보다는 기술집약적인 아이템을 찾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콘택트렌즈 전문가들을 만났다. 현재 기술개발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성춘 상무와 생산부문을 맡고 있는 윤경희 부장이 그들이다.

그는 2000년 사재를 털어 인터로조를 세웠다. “콘택트렌즈는 기술장벽이 굉장히 높습니다. 100만분의 1mm를 다룰 정도로 고도의 정밀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막상 제품을 개발했지만 판매가 쉽지 않았다. 국내 시장은 수요자인 안경점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공을 살려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 전시회에 빠짐없이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해외 수출액은 2004년 100만달러, 2007년 300만달러, 2010년에는 1000만달러로 쑥쑥 늘어났다. 인터로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원료배합과 렌즈 디자인, 금형 디자인 등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 인터로조는 2007년 국내 최초로 누진다초점 렌즈를 개발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인 1만종에 가까운 난시용 렌즈를 생산하고 있다.

인터로조는 올해 다시 한번 도약한다. 한창 건설 중인 제2공장이 도약대다. 이 공장에서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일일착용렌즈만 생산한다. 공장이 완공되면 지금보다 최대 5배나 많은 2억개의 콘택트렌즈 생산이 가능하다. 노 대표는 “일일착용렌즈의 매출비중 확대와 해외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을 통해 2013년에는 500억원, 2020년에는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약력  1954년생. 79년 서강대 무역학과 졸. 79년 대우실업. 87년~현 두류실업 대표. 2000년~현 인터로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