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 있다. 국내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의 선두주자 인피니트헬스케어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인피니트헬스케어는 미래 성장산업인 헬스케어와 IT분야를 접목한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은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지난해에는 소프트웨어 강국인 미국에서 고객만족도 1위라는 고무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불모지와 같았던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글로벌 소프트웨어기업으로 성장한 인피니트헬스케어를 살펴본다.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분야 ‘히어로’…

   

미국 등 29개국 930개 의료기관서 사용

- 해외 29개국에 수출되는 인피니트헬스케어의 대표 PACS제품.
- 해외 29개국에 수출되는 인피니트헬스케어의 대표 PACS제품.

인피니트헬스케어는 1997년 의료기기 전문기업 메디슨의 자회사인 메디페이스로 출발했다. 1998년 국내 최초로 PACS 제품을 상용화하며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부터 전문경영인으로 회사를 맡은 이선주 대표는 메디슨에서 독립, 2002년 인피니트헬스케어로 새롭게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여러 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 경쟁력을 키워왔다.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인 PACS(Picture Archiving & Communication System)는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 의료장비로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로 전환해 네트워크를 통해 진찰실, 병동 등의 컴퓨터가 있는 곳에서 실시간으로 조회 및 진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첨단 디지털 의료 시스템이다. 현재 국내 PACS 사용 의료기관 중 약 70%(1370개)가 이 회사의 솔루션을 사용한다. 서울대병원, 고려대병원 등 3차 전문종합요양기관(대학병원급)의 시장점유율은 75%다.



이 대표는 국내 PACS 시장 선점과 동시에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섰다. 모든 제품은 개발 단계부터 영어 버전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 가능해 별도의 제품 개발 없이 수출이 가능했다. 여기에는 의사들이 통상 영어를 사용한다는 특수성이 뒷받침됐다.



2000년 첫 수출의 물꼬를 튼 뒤, 2003년부터 해외법인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현재 11개의 해외법인을 운영 중이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판매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 해외 29개국 930개 의료기관에서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제품을 사용 중이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한국 IT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시장점유율 1위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2010년 기준 1.6%로 업계 10위로 추산된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Siemens)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PACS 시장에서 한국 토종 소프트웨어기업의 선전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더구나 PACS 시장은 세계 시장점유율 5%이면 글로벌 탑5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다.



2003년부터 지난 6월까지 인피니트헬스케어의 누적 수출금액은 4600만달러. 지난해에는 해외에서 1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11월30일 ‘무역의 날’에 국내 소프트웨어업계 최초로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한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건 사실 열악한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환경 때문이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가치에 대한 국내 인식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불법 소프트웨어의 남발로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원가로 따지기 일쑤였다. 제값 받기가 어려웠다. 요구 조건도 많았다. 고객들이 무상 유지보수 기간을 길게 요구하거나 대가 없이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요구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 대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소프트웨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 제품을 훨씬 고가로 팔 수 있었다”며 “이 때문에 해외 진출은 회사 존립이 걸린 필수 요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시장 진입장벽은 높았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소비자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더구나 소프트웨어 후진국으로 여겨지던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은 더욱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오직 기술력으로 승부했다. 글로벌 표준에 100% 호환되는 제품을 만들어 국제기술테스트 IHE

(Integrating the Healthcare Enterprise)를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보유 중인 의료영상 특허는 14개. 특히 ‘인피니트 팩스(INFINITT PACS)’는 2008년 대한민국 10대 기술로 선정될 정도로 기술력이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소프트웨어 강국인 미국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2010년 미국 의료솔루션 고객평가 컨설팅사인 KLAS로부터 2년 연속 200병상 미만 지역병원 대상 PACS 솔루션 만족도 1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우수한 인력 확보가 기반이 됐다. 현재 의료, IT, 소프트웨어 등 전문 연구원은 105명으로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또 병원 및 대학교, 저명 의사 등을 연구개발 자문그룹으로 두고 우수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PACS가 주로 사용되는 분야는 영상의학과인데 국내 영상의학 의료진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며 “풍부한 연구 인력과 우수한 자문위원을 바탕으로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제품은 글로벌 대기업들과 경쟁 가능한 대등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인피니트헬스케어의 3D기술을 브랜드로 상품화한 솔루션 ‘젤리스(Xelis)’의 기술력도 독보적이다. 국내에는 아직 경쟁사가 없는 최신 기술로, CT장비로 스캔한 의료영상을 컴퓨터에서 3D로 구현한다. 심장, 대장항문, 치아 등의 영상을 실제 몸 속 환경과 거의 유사하게 구현해 의료진의 진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지원하는 특징이 있다. 최근 의료계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이선주 대표.
-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이선주 대표.

‘스마트 서비스’로 부가 수익 창출

인피니트헬스케어의 또 다른 강점은 차별화된 서비스다. A/S의뢰가 들어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즉각 달려 나간다. 병원에서 PACS의 고장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24시간 서비스는 고객만족도를 크게 높였다. 현재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해외법인을 기반으로 120명의 전문 기술 엔지니어가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비스 자체를 아예 상품화했다. 이 대표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소유에서 액세스(Access·접근)하는 개념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SaaS(Software as a Service),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의 서비스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PACS의 서비스화를 추진하는 PaaS(PACS as a Service)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도입한 ‘스마트 서비스(Smart Service)’다. ‘스마트 서비스’는 PACS 구입 시 1년간은 유지보수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이후 장기 계약을 통해 유지보수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상품이다. 제품 판매금액의 10%내외를 부담하면 새로운 버전의 PACS를 별도의 비용 없이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에 고객들의 호응이 높다.



참고로 PACS는 상당히 고가의 제품이다. 나라·병원별로 가격이 다르지만 인피니트 팩스의 경우, 미국의 200병상 병원 기준으로 약 1억원이다. 현재 인피니트헬스케어의 고객인 의료기관은 전 세계 2300곳으로 스마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강명호 인피니트헬스케어 경영기획부장은 “PACS는 의료 업무 특성상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가 필수이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의 유지보수 계약률이 평균 90%에 달할 정도로 높다”며 “스마트 서비스로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매출 실적도 눈에 띈다. 2008년 403억원, 2009년 428억원, 2010년 470억원 등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서도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 특히 해외 수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해외수출액은 2008년 52억원에서 2009년 104억원으로 2배 증가한 뒤 2010년 117억원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PACS시장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분야다. 현재 세계 PACS시장 규모는 약 4조원이며 매년 평균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후진국들의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PACS를 사용하는 국가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선진국에 수출을 늘리는 한편 남미, 중동, 인도, 러시아 등 신규 시장을 적극 개척한다는 방침이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이미 글로벌넘버원 기업으로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 최근 정부 지원 사업에 잇달아 선정되며 전 세계를 선도할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인 ‘월드 베스트 소프트웨어(WBS) 프로젝트’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2010년 WBS프로젝트 기업으로 선정돼 ‘차세대 지능형 영상진단 및 치료지원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2012년 말 완성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지식경제부가 후원하는 ‘월드클래스300기업’에도 선정됐다. 오는 2015년까지 삼성서울병원과 공동으로 ‘방사선치료 관리 통합솔루션’을 개발하게 된다. 방사선치료 관리 통합솔루션 개발은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라 업계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대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첫 번째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고 싶다”며 “2014년까지 글로벌 탑5로 가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현재 한국은 전체 PACS 소프트웨어 시장의 1%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는 해외에 99배의 시장이 있다는 것이죠. 해외시장 공략은 절대적입니다. 내년 말 차세대 지능형 솔루션이 완성되면 성능, 속도, 비용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선 제품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동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1등 업체를 재빠르게 뒤쫓는 2등 업체)였다면 앞으로 세계 시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도자)로 올라설 것입니다.”

- 컴퓨터(위)는 물론 각종 스마트기기에서 사용 가능한 인피니트헬스케어의 PACS제품.
- 컴퓨터(위)는 물론 각종 스마트기기에서 사용 가능한 인피니트헬스케어의 PACS제품.

 

  Tip. PACS는? 

필름 없어지고 스마트폰으로도 전송 가능

서울 미아동에 사는 김진명(가명)씨는 얼마 전 동네의원에서 CT와 초음파검사를 받고 1시간 후 위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위암도 충격적이었지만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으려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부터 들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동네의원에서 촬영한 영상 정보가 대학병원으로 그대로 전송돼 재촬영 없이 신속하게 위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PACS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PACS는 의료기기에 IT 기술을 접목한 융합 소프트웨어로, 영상진단장비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실시간 저장·관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동네의원에서 검사 후 1시간 만에 위암 여부를 알고 대학병원에서 별도의 검사 없이 수술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PACS 덕분이다.



PACS의 도입은 의료계에 스마트한 혁명을 가져왔다. 필름 인화가 불필요해지면서 건강진단이 더욱 빨라지고 간편해졌다. 환자가 필름을 들고 병원을 이동하는 일은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각종 스마트기기를 통해 영상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PACS의 사용 영역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영상의학과에서 사용했지만 최근 심장과에도 좀 더 특화된 기능을 갖고 적용되고 있다. PACS를 통해 안과장비의 영상, 심전도의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다. 치과 교정수술 전후를 비교하는 데도 사용된다. 심지어 3D 입체영상으로 혈관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PACS산업의 전망은 매우 밝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방진단 차원에서 의료영상진단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한 병원에서는 과거 10년 전 대비 의료영상 촬영 건수와 촬영량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강명호 인피니트헬스케어 경영기획부 부장은 “PACS는 패키지 소프트웨어(개별 맞춤화 없이 제공되는 기성 제품)로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원가가 제로(Zero)에 가까워지는 특징이 있다”며 “국내외적으로 PACS산업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앞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