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리더십으로
‘포스코 3.0 시대’ 열어
37년 ‘철강 외길’ 엔지니어 경영자…조직문화 혁신 불지펴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배려가 앞서야 경청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들은 보고를 받는 도중에 가로막고 ‘결론이 무엇이냐’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해버리곤 합니다. 저 자신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중략) 팔로어(follower)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최대한 요약하고 핵심만을 살려서 전달하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즉 리더십을 위한 교육뿐 아니라 리더에게 빠르고 정확한 의사전달을 하기 위한 팔로어십 멘토링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략)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고 포스코에서 가장 필요한 달인은 ‘소통의 달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략) 포스코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덕목은 소통입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2010년 9월 어느 날 사내 토론회 ‘CEO와의 대화’에서 참석자들에게 말한 내용이다. 정 회장은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경영자다. 소통은 경청에서부터 비롯된다. 진정한 소통은 자신의 주장부터 내세우지 않고 주변의 의견을 소중하게 듣는 데서 시작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정 회장의 경청(傾聽)론은 ‘들을 청(聽)’ 자에 대한 의미심장한 뜻풀이에서 잘 드러난다.
“청(聽)은 귀(耳) 밑에 임금(王)이 있고 열(十)개의 눈(目)과 하나(一)의 마음(心)으로 구성된 말입니다. 열 개의 눈을 가지고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한마음으로 듣는 것이 왕이라는 뜻입니다.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경청과 소통, 신뢰는 정준양 회장 경영철학의 단초이자 뿌리다. 그는 2009년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한 후 포스코를 이끌어갈 3대 경영이념으로 ‘열린경영, 창조경영, 환경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아울러 임직원들에게는 ‘신뢰, 소통, 기본, 원칙’의 4가지 가치를 늘 가슴에 새기고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열린경영으로 ‘사랑받는 기업’ 지향
정 회장의 ‘열린경영’은 이해관계자와의 상생, 밸류체인과의 협력, 그리고 개방적 조직문화를 통해 소통과 신뢰를 확대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열린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포스코 임직원이 상대방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스코 회장으로서 첫 번째 수행한 공식업무가 고객사를 찾아 의견청취를 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그 자신부터 솔선수범한다.
임직원과의 대화 채널도 다양하고 넓게 가동하고 있다. 조찬간담회, ‘CEO와의 대화’ 같은 대화의 장을 정기적으로 열 뿐만 아니라 CEO블로그를 만들어 격의 없이 온라인 소통에도 나서고 있다. 열린경영은 유연한 사고와 개방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계층, 조직, 세대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한마디로 ‘일할 맛 나는’ 기업문화를 구축하자는 바람의 소산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산업계의 가장 큰 이슈가 ‘동반성장’이지만, 포스코는 벌써부터 열린경영을 통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지난 4월 포스코는 1~4차 협력기업 953개사와 ‘포스코 패밀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을 개최했다. 이날 협약의 골자는 포스코가 국내 기업 최초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Compliance Program)’을 2차 협력업체까지 확대하는 한편, 포스코 계열사들과 모든 협력업체들이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이 정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는 점이다.
포스코는 또한 협력업체 가운데 유망 중소기업을 선정해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지난 3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해 주목받고 있다. 2020년까지 세계적인 경쟁력과 전문성을 가진 30개의 중견기업을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기업가정신과 창업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중소기업, 대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해 신사업을 발굴하는 ‘벤처창업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포스코만의 독창적인 동반성장 프로그램이다.
정준양 회장의 동반성장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포스코가 좋은 기업, 존경받는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동반성장 활동은 포스코가 ‘사랑받는 기업’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궁변통구’의 창조경영 정신
포스코에는 ‘포레카(POREKA)’라는 독특한 사내 놀이공간이 있다. ‘포레카’라는 명칭은 포스코(POSCO)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저 유명한 말 ‘유레카(EUREKA)’를 합친 조어다.
포레카는 2009년 임직원들의 창의력 향상과 창의적 기업문화 조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정준양 회장의 창조경영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정 회장은 포레카 개관일에 그곳을 찾아 직접 글씨를 쓴 ‘창의는 통찰에서 나오고 통찰은 관찰에서 비롯됩니다’란 동판을 기념으로 달고, 직원들과 어울려 나무블록 게임을 즐기며 창의적 조직문화를 몸소 강조하기도 했다.
“잘 놀고 잘 쉬어야 창의력이 생기며, 경영에 있어서도 기존 사업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창조적 전환 능력이 미래 경쟁력 확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취임 후 포스코 40여년의 역사를 3기로 구분해 “이제 포스코 3.0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포스코 3.0’에는 창업기(1.0)와 성장기(2.0)를 넘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시대(3.0)를 열어가야 한다는 그의 비전과 포부가 담겨 있다.
‘포스코 3.0’을 이끌어갈 핵심 경영이념이 바로 창조경영이다. 창조경영은 선진기술을 모방하고 추격하던 한계를 뛰어넘어 포스코 고유의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골자다. 정 회장의 말이다. “창조경영은 월드 퍼스트(World First), 월드 베스트(World Best) 기술 개발과 더불어 창의적 사고를 통해 고객에게 가장 많이 판매할 수 있는 월드 모스트(World Most) 제품을 확보해가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고객가치 창출을 지향하는 것으로 기술, 시장, 고객에 대한 세밀한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포스코는 본업인 철강사업을 넘어 미래 녹색성장에 필요한 고강도·초경량의 기초·혁신소재와 신소재를 생산·공급하는 소재사업도 본격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글로벌 ‘종합소재기업’은 포스코의 새로운 미래 비전 중 하나다. 물론 정 회장이 밑그림을 그리며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소재사업은 포스코와 계열사들은 물론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대학, 정부, 전문기관 등 산·학·연이 함께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방식으로 진행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준양 회장은 올 초 신년휘호로 ‘궁변통구(窮變通久)’를 썼다. ‘궁변통구’는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두루두루 통해서 오래간다’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궁변통구라는 글귀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높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궁변통구’는 결국 창조경영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환경경영은 철강산업의 ‘윤리’
철강산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제철소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할 뿐 아니라 철강생산 과정에서 부산물과 온실가스도 다량 배출한다. 태생적 한계다. 이런 굴뚝산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스코는 일찍부터 환경친화적 시스템을 갖추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 회장은 “새로운 철강제조 프로세스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철강산업이 실천해야 할 윤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환경경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물론 이제 철강회사의 환경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글로벌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규제 강화로 과거 제조방식에 머물러서는 경쟁력 확보는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다. 포스코가 ‘수소환원법’ 등 혁신적인 철강제조법 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철강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포스코는 CEO인 정준양 회장 직속으로 환경경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외 출자회사, 외주 파트너 및 공급업체, 연구기관 등의 대표들이 모두 참여한다. 이 위원회는 매년 정기회의를 열어 국내외 환경 이슈와 동향을 논의해 포스코 그룹 차원의 환경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포스코 환경경영의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정준양 회장은 2010년 2월 ‘저탄소 녹색성장 계획’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조강 1톤당 제철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을 2007~2009년 평균 대비 2020년까지 9% 감축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석탄원료 사용량을 줄이고 에너지효율을 향상시키는 한편 미래 혁신기술 개발을 위해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환경개선사업에 총 4조5949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설비투자 금액 대비 9.4%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2010년에는 환경설비 투자 규모가 6363억원으로 총 설비투자의 11.6%에 달했다. 환경설비 유지·운영에도 총 7505억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정준양 회장의 환경경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강철맨’
정준양 회장은 정통 포스코맨이자 ‘철강 외길’을 걸어온 경영자다. 그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1975년에 공채 8기로 입사해 37년째 포스코에 몸담고 있다. 1970년대는 포항제철소가 한창 건설되던 시기다. 1973년 1기 설비가 역사적인 준공식을 가졌고, 정 회장 입사 이듬해인 1976년 2기 설비가 준공됐다. 제철입국(製鐵立國)의 기운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던 때다.
정 회장은 그 시절부터 시작해 주로 현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광양제철소장과 생산기술부문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그는 1999년 기술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던 중 갑자기 EU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엔지니어가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3년 뒤인 2002년 광양제철소 부소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정점을 향한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 1년 뒤 광양제철소장으로 발탁됐고, 마침내 2009년 2월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했다.
엔지니어로서 포스코와 함께한 인생 여정을 보면 정 회장을 ‘강철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포스코 사람들은 “정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친근한 맏형님 같은 분”이라고 전한다. 주변을 살뜰하게 돌보고 챙기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은 “훗날 후배들에게 포스코를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새로운 성장의 길로 이끌었던 경영자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한 가지 소망이 더 있다. “먼 훗날, 비즈니스 사전에서 ‘포스코 3.0 하다’라는 말을 ‘창조하다, 도약하다, 완전하다, 크게 새롭게 하다’ 등의 뜻으로 찾을 수 있는 시대를 다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Tip. 정준양 회장 주요 어록

커뮤니케이션은 ‘구동존이’서 출발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어서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상대방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와 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을 때, ‘구동(求同)’이 된다는 거죠. 같은 것을 서로 구했다는 얘기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는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입니다. 같은 것을 구하고 다른 것은 놔두라는 거죠.”
함께 가는 ‘열린 경영’
“저는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회사와 직원간 신뢰를 확실하게 쌓아야 목표를 달성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코 혼자만으로는 안됩니다.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오랫동안 멀리 갈 수는 없습니다. 포스코 패밀리가 하나가 돼서 가야 합니다. 열린 경영,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하고 회사와 직원간 소통과 배려를 통한 신뢰 확립이 올해 가장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일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배려와 경청’
“토론을 경청하면서 리더들이 어렵구나, 외롭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더는 팔로어에게, 팔로어는 또 리더에게 말하지 못하는 불만과 고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리더 역시 상사에게는 팔로어입니다. 또한 지금의 팔로어는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대화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려이고, 배려가 있으면 경청이 가능합니다.”
리더가 해서는 안될 말 3가지
“리더가 해서는 안될 말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제가 뭔데” “해결방안이 뭔데” “결론이 뭔데”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당신 얘기는 틀렸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사람의 감정을 해치는 말입니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도 회장이 “당신 얘기는 틀렸어”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입니다. 세상에 말도 안되는 소리는 없으며, 무슨 말이든 말은 됩니다. 이 세 가지 말을 앞으로 포스코의 금지항목으로 만든다면 대화와 토론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믿습니다.”
고객은 항상 옳다
“예전에 제가 클레임 제로화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클레임 제로화는 품질을 100%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직 거기까지는 못 미치기 때문에 품질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클레임 제로화란 우리가 거를 수 있는 것은 걸러서 좋은 것만을 골라 고객만족을 이끄는 것입니다. 고객이 클레임을 걸면 일단 수긍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클레임 제로화의 의미와 취지를 다시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고객은 항상 옳습니다. 고객이 잘못해도 항상 옳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 고객만족과 고객창출을 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 정준양 회장은…
1948 경기 수원 출생, 1975 포항종합제철 입사, 2002 포항종합제철 EU사무소장, 2004 포스코 광양제철소장 전무이사, 2007 포스코 생산기술부문 대표이사 사장, 2008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 2009 포스코 회장, 2009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 2011 한국공학한림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