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 뜨기 전 바다가 요동을 친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고 옷깃을 파고든다. 그러나 여명 속에 우두커니 선 사람들은 날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섰다. 호미곶, ‘상생의 손’ 넘어 저 멀리 수평선이 ‘울그락불그락’ 심상치 않다. 바다가 곧 폭발하면서 엄청난 불기둥, 물기둥이 한 순간에 하늘을 덮칠 것 같다. 순간, 떠오른 해. 이내 바다는 잔잔해졌고 드센 바람도 고개를 숙였다. 새로운 하늘에 새 해를 띄우기 위해 바다는 저렇게 매일 몸부림을 치는가 보다.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경북 포항시 영일만에서 제일 동쪽으로 돌출한 땅 끝이 호미곶이다.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리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을 든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며 ‘천하의 명당’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고산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동쪽 끝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 육지 가운데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하여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은 기념조형물, 성화대, 불씨함, 연오랑세오녀상, 공연장 등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이곳 광장의 기념조형물인 상생의 손이다.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된 거대한 손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 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호미곶 일출의 기운을 품고 본격적으로 포항 여행에 나선다. 포항 내륙의 여행1번지, 오어사로 향한다. 포항시 오천읍 운제산 자락에 있는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절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중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절이다.

오어사, 원효와 혜공의 전설로 유명
특히 오어사는 원효와 혜공의 전설로 유명하다. 원래 이 절 이름은 ‘항사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원효는 혜공과 내기를 했다. 산 물고기를 먹고 배변을 했을 때 물고기가 살아 있는 쪽이 이긴 걸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고기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살아 나왔는데 그 물고기를 두고 두 스님이 ‘내 물고기, 내 물고기’ 하며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 오(吾),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가 됐다고 한다. 어린 아이 장난 같은 두 고승의 일화가 호수처럼 넓은 마음을 일깨운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와 절이 어우러진 풍경이 고즈넉하다. ‘오어지’라는 호수가 절을 감싸고 있다. 호수는 오어사 진입로 왼쪽부터 시작해 절 마당 뒤를 지나 더 깊은 계곡으로 이어진다. 오어사는 절 뒤에서 풍경을 봐야 한다. 산 그림자 비친 호수는 산의 색을 닮았다. 스산한 초겨울 바람도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내려 앉아 따듯하게 느껴진다.
오어사를 나와 14번 도로를 따라 오천읍을 통과하면서 31번 도로를 만나면 포항시내 방향으로 간다. 포스코 대교를 건너 포항시내로 진입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환호해맞이공원을 지나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지도 표기상 20번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이 해안도로는 바다와 마을을 품고 북쪽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칠포해수욕장을 만난다. 바다에 젖은 모래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고운 모래에 발이 빠졌다. 바닷가에 서서 부채처럼 휘어진 저 끝 바닷가 마을을 바라보았다. 벌거벗은 산 아래 마을이 있고 마을 앞이 바다다. 전신주가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간혹 보이는 파란 지붕은 바닷가 마을의 고유한 풍경이다. 마을 안이 궁금해졌다.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차를 돌려 칠포항이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방파제로 막아 놓은 항구에 햇살이 고여 아늑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갯바위에 올라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바다 언덕 기슭을 돌아가는 모퉁이를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 낡은 그물을 차고 앉아 분주히 손을 놀리는 아줌마, 저 멀리 방파제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걸어오는 엄마와 아이, 나는 그 가운데 서서 고개를 돌려 풍경 속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오도리 지나 월포, 이름 없는 길의 끝자락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이다. 동해와 평행하게 달리는 7번 국도의 명성에 가려진 이 길은 지방도이면서 마을 앞길이기도 하고, 바다와 마을 사이를 구분짓는 방파제 길이기도 하다. 웬만한 지도에는 길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이다.
7번 국도가 전세버스를 대절해 놀러가는 관광의 길이라면,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여행자의 길이리라.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풍경이 그곳에 있다. 칠포를 지나 만난 바닷가 마을은 오도리였다. 마을과 바다를 갈라놓은 것은 길이었다. 파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 앞까지 걸었다. 천천히 마을까지 걸어갔다가 나왔다. 파도치는 길에서 나와 우리는 또 이름 없는 길 위에 섰다. 간이해수욕장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백사장에서 아이들과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다. 그 뒤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그들을 덮칠 기세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마을로 들어간 길은 간혹 끊어져 되돌아 나와야 했지만, 대부분의 길은 길로 이어졌다. 그 다음 만난 마을이 월포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마을이 그랬듯이 대단한 풍경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바닷가 마을을 만날 때마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길로 나서면 이제 이름 없는 길은 끝나고 7번 국도와 만난다. 바닷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에서 나와 7번 국도에 올랐다. 고속도로처럼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순간 속도가 낯설었다.

바닷바람과 겨울 햇빛이 만든 과메기
7번 국도 화진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강구항까지 차를 달렸다. 강구항에서 축산항까지 해안도로는 풍경 좋기로 이미 잘 알려진 곳이었지만 화진휴게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또 한번 들르기로 했던 것이다. 풍차가 도는 언덕과 해맞이 공원은 강축해안도로에 있는 유명한 여행지가 됐다. 그곳을 돌아보고 차를 돌려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다.
포항에는 겨울철 특산물 먹을거리인 과메기가 있다. 과메기를 먹지 않고서 포항 여행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던가.
포항 죽도시장에 과메기 거리가 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 거리는 과메기로 넘쳐난다. 상점 앞 길 한쪽에 새끼로 과메기를 엮어 말리는 풍경이 보인다. 과메기를 사려는 사람들도 그 거리에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과메기 식당’이 없다. 포항 시내도 그렇고 과메기의 본고장이라고 알려진 구룡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과메기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횟집에서도 팔고 대게 파는 집에서도 팔고, 고기 구워먹는 집에서도 파는 등 과메기철만 되면 포항 인근 웬만한 식당에서는 과메기를 다 판다.
구룡포 바닷가에는 과메기를 손질하고 말리는 공장이 있다. 과메기 배를 따고 내장을 정리하고 씻는 것까지 기계가 다 알아서 한다. 사람들은 과메기를 다듬는 기계 입구에서 칸마다 과메기를 정돈해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손질된 과메기를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바닷가에서 3일 동안 말린다. 온도가 올라가거나 바람이 없으면 과메기의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과메기는 한겨울에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려야 제 맛이 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과메기는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며, 기름기가 흐르는 가운데 살은 검붉은 색을 띤다. 요즘은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과메기를 만들고 먹는데 1년 중 가장 추운 12월 말부터 2월초 사이에 먹는 맛이 최고란다.
겨울 별미의 전국구 음식으로 자리잡은 과메기. 그 과메기 한 상 소박하게 차려놓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깊은 겨울밤에 ‘싸르륵’ 눈도 내렸으면 좋겠다.
여 | 행 | 길 | 라 | 잡 | 이
* 길 안내
● 자가용 : 대구 - 익산~포항 고속도로 - 포항시내 거쳐 호미곶 - 호미곶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려 구룡포 지나 31번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해서 포항 시내로 진입(오어사는 오천읍에서 14번 도로로 좌회전) - 포스코대교를 건너 환호해맞이공원 지나 칠포해변 - 이후 오도리, 월포, 화진, 강구항, 해맞이공원.
● 대중교통 : 김포공항~포항공항 항공편 이용. 서울 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항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많다. 포항에서 시내버스로 여행지 이곳저곳을 연결해 돌아다니기 불편하다.
* 먹거리
겨울 포항의 별미는 과메기다. ‘과메기식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횟집이나 식당 등에서 겨울이면 과메기를 판다. 아니면 죽도시장에서 과메기와 부대재료를 사서 먹을 수도 있다.
* 숙박
관광호텔 : 애플트리(054-241-1234). 코모도호텔(054-241-1400). 필로스호텔(054-250-2000). 스테이인호텔(054-274-8300). 호미곶 인근에 민박집 있음.
Tip. 칠포 해안도로
칠포~오도리~월포~화진~강구항~해맞이공원~풍력발전소로 이어지는 이 길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이자 소박한 바닷가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해안도로는 월포를 지나면서 7번 국도와 만난다.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가 강구항에서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다시 접어든다. 그 길에 있는 해맞이공원과 풍력발전소를 돌아보고 다시 포항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