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자본주의’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주의 초기, ‘자유방임주의’(자본주의 1.0)에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는 정부의 개입이 강조됐다(자본주의 2.0). 그러던 것이 1980년대 들어서는 자유로운 시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로 진화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신자본주의(자본주의 4.0)로 발전했다. 신자본주의에서는 사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정부와 더불어 기업이 주요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단순 기부에서 환경 경영, 정도 경영 등 전략적 사회공헌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법률만 준수하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저소득층을 소비층으로 공략하는 등 시장에서 적극적인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전략으로 기업의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0년 ISO(국제표준기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인증 기준을 담은 ISO26000을 제정함에 따라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국제적 대세이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코노미플러스는 새해를 맞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양하고, 이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CSR-나눔 경영 대탐사’는 연중기획을 신년호부터 연재한다. 이를 통해 각 기업과 CEO(최고경영자)가 펼치고 있는 나눔 경영을 찬찬히 살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나누는 기업이 아름답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글로벌 스탠더드 정착…

   

경영 패러다임 전환해야

 

‘나눔 전도사’ 최신원 SKC 회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는 대표 CEO…

   

나눔 통해 기업 경쟁력 ‘UP’

최신원 SKC 회장하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나눔’이다. 그 정도로 최 회장은 ‘나눔 경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2003년부터 꾸준히 개인 돈을 기부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이 보유한 SK텔레시스 주식 중 약 11%에 해당하는 120만주를 SK텔레시스 임직원들에게 나눠줘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유상증자 등을 통한 우리사주의 무상 또는 유상 지급은 흔히 있었지만 재벌 총수가 개인 소유 주식을 임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완제 기자
jwj@chosun.com

- 최신원 SKC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충남 태안반도 해변에서 유출된 기름을 닦아내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 최신원 SKC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충남 태안반도 해변에서 유출된 기름을 닦아내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지난 2007년 12월 중순 충남 태안반도 해변. 옹기종기 모여 선박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닦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신원 SKC 회장이다. 그해 선박에서 기름이 유출되면서 태안반도는 기름으로 뒤범벅이 됐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국민이 자원봉사를 하러 몰려왔고, 기업 CEO(최고경영자)들도 다녀갔다. 재벌 총수 중에서 자원봉사의 첫 단추를 꿴 인물이 바로 최신원 회장이다. 그는 기름 유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SKC와 SK텔레시스 직원 450여명을 이끌고 태안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연이 있으니까 기업이 있는 것”이라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기업가 정신의 기본을 ‘나눔의 실천’을 첫손에 꼽는다.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 활동이 위축될수록 사회의 어려움을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이 절실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회장은 입버릇처럼 “나를 생각하기 이전에 남을 생각해야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재계에서 사재를 털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찾기 드물다. 나눔의 정신이 없는 기업가 정신은 삭막하다”고 설파했다. 기업의 CEO로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에게 ‘나눔 경영 전도사’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금전적인 기부나 사회공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통상 CSR은 경제·법·윤리·자선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으로 인식되나 경제적 책임(이익 추구)을 제외한 법·윤리·자선적 책임을 CSR의 3대 분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적·윤리적 책임은 ‘환경 경영’과 ‘정도 경영’을 통해 구현되고, 자선적 책임은 기부 등으로 표출된다.

최 회장이 ‘나눔 경영’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2004년이다. 그해 최 회장은 사재를 털어 ‘선경 최종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을 통해 현재 27개 고교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들 장학생에게도 나눔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김장 나눔이나 장애시설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 동참시키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에는 태안지역 고등학생 50명에게도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이 나눔 경영 행보에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 것이 태안 기름유출 사태 때다. 이제 4년여가 흐른 지금 최 회장이 ‘나눔 경영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단초가 된 셈이다. 그의 나눔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2008년 11월 국내 유일의 법정 공동모금기관인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개인 기부자 명단에서도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법인 명의가 아닌 개인명의 기부금으로는 기업인 가운데 최고액인 3억3200만원을 기부, 재벌 회장 중에는 처음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됐다. 그는 기부 초기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으로 모금회 통장에 후원금을 보냈다. 최초 후원금은 500만원. 이후 액수가 늘어 1년 기부금이 1억원이 넘자 모금회 측에서 추적에 나서 그가 대기업 회장인 것을 알게 됐다. 최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이 서울 을지로에 있어 ‘을지로 최신원’으로 기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발족한 10억원 이상을 기부한 인사들만 가입이 가능한 ‘수퍼리치’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 클럽에는 현재까지 최 회장과 홍명보 축구 감독 2명만이 가입돼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11년까지 약 13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지난 2011년 8월25일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5대 회장으로 취임해 경기도 지역 내 나눔 문화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창조적인 모금사업을 추진하고, 기부자가 지향하는 나눔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온전히 전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취임식과 동시에 1억원을 기탁했다. 아울러 ‘수원 사랑나눔 휴먼복지기금 연합모금’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각서 체결로 수원시와 모금회는 연간 12억원을 모금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게 된다.

또 외동아들과 함께 해병대 출신인 최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매년 11월 군부대 등을 방문해 노고를 격려하고 있다. 2008년 제병지휘부와 서울지방경찰청, 2009년 육군 제3군단, 2010년 경찰청과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했다. 2011년에는 경기도 오산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와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해양경찰청 등 두 곳을 방문해 모두 3억원의 위문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그는 군과 경찰로부터 매년 감사패를 받는 등 해병대 CEO로서 남다른 나라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정도 경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 2009년 10월에는 경기도 수원 화성 행궁에서 창호지 교체 등 환경정화 봉사활동을 벌였다. 수원은 SK의 모태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의 공장이 있었던 곳이고, 현재도 SKC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환경 경영’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최 회장은 또 지난 2010년부터 환경 경영 실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식목 행사를 진행해왔다. 지난 2011년 4월에는 생명의숲국민운동과 함께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서 낙엽송 2400그루를 심었다. 식재한 2400그루는 향후 40년간 약 230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이 식목 행사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식목 활동 중에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의 나눔 경영은 기부에서 시작해 환경 경영·정도 경영으로 진화하면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나눔이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이미 글로벌기업의 사례에서 입증됐다. 미국의 택배회사인 UPS는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원봉사 및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수년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는 친환경제품인 ‘그린 상품’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설 정도로 환경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이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친환경기업이란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높였다.

-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09년 수원 화성 행궁에서 창호지 교체 등의 봉사활동을 벌였다.
-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09년 수원 화성 행궁에서 창호지 교체 등의 봉사활동을 벌였다.

CSR, 기업 명성과 평판에 영향

반면 사회적 문제 및 환경 문제를 야기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기업은 명성이나 브랜드 이미지에 큰 손상을 받는 것은 물론, 고객과 시장 등 사업 기반을 상실할 수도 있다.

1990년 중반 나이지리아의 석유개발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던 글로벌 석유기업 쉘이나 파키스탄의 12살 된 어린이를 노동자로 고용한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축구공을 판매한 나이키, 저임금 근로자를 활용하고 의류를 생산한 GAP 등은 시장과 고객으로부터의 호된 저항을 경험했다.

이준석 UN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팀장은 “CSR을 통한 나눔 경영은 기업 명성과 평판에 영향을 주어 훌륭한 인재 확보 및 유지, 브랜드 가치 제고, 시장에서의 차별화 등의 전략적 우위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UN글로벌콤팩트는 지난 2000년 7월 UN본부에서 창설됐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세계 최대의 자발적 협약이다.

최 회장의 기부에서 시작해 환경 경영, 정도 경영까지 진화시킨 ‘나눔 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 물론 그가 경영을 하고 있는 SKC·SK텔레시스는 주로 B2B 화학·통신장비 제품을 만들다보니, 소비자에게 당장 미치는 영향은 없다. 하지만 최 회장의 환경 경영이 SKC를 비롯한 SK그룹 계열사가 친환경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국민이나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최 회장이 이처럼 나눔 경영을 하게 된 것은 선친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SK그룹 창립자인 고(故) 최종건 회장은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SK텔레시스 관계자는 “선친의 가르침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SK그룹의 장자로서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솔선수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김장 나눔 행사에 참석한 최신원 회장(위). 해병대 출신인 최신원 회장은 매년 군과 경찰을 방문해 노고를 격려하고 있다.
- 김장 나눔 행사에 참석한 최신원 회장(위). 해병대 출신인 최신원 회장은 매년 군과 경찰을 방문해 노고를 격려하고 있다.

 

  Tip. 최신원 SKC 회장은 누구? 

SK그룹의 맏형격…

과감한 업무 추진력 ∙ 리더십 겸비

최신원(59) SKC 회장은 지난 1976년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영학과를 거쳐 1990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경영통이다. 1981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에 입사, 10여년을 SK그룹 경영기획실(그룹 구조조정본부 전신)에 근무하면서 SK브랜드 및 상품의 해외 인지도 제고, 수출의 활로 개척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그후 1994년부터 종합상사인 ㈜선경(현 SK네트웍스)에서 전무와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해외사업 및 직물사업을 총괄했다. 1998년 SK유통(현 SK네트웍스 정보통신부문) 부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평소 강조하는 “새로운 것을 위한 변화 추구”를 사업에 적극 도입해 당시 식품 및 컴퓨터 유통사업 위주였던 SK유통에 정보통신사업을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발굴·육성해 현재의 SK네트웍스 사업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00년 1월 SKC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존의 화학·필름 위주의 제한된 사업 모델에 안주하던 SKC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과감하게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SK텔레시스를 인수해 정보통신 장비 및 전자 산업을 SKC의 주력 비즈니스로 정착시켰다.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과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업무 스타일은 강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경영자가 책상에만 앉아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장을 경험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최 회장은 재벌가 출신답지 않게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복무를 했고, 외아들인 성환씨(31)에게도 해병대 입대를 권유해 지난 2006년 자원입대하게 했다. 결국 2대가 해병가족이 된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사람이 순수하고 다정다감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 회장은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이지만, 맏형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작고로 현재 SK그룹의 장자 및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