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여행 마니아들은 마음의 고향이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거친 바닷가의 항구도시 에싸웨라, 카사블랑카 남단, 작고 아담한 추억의 항구도시다. 그곳에 가보면 안다, 왜 이곳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지. 버스가 에싸웨라로 진입하는 순간, 거대한 대서양 바닷가에 아담하게 들러붙은 항구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묘한 느낌의 골목길과 비린내 나는 포구, 드넓은 바다를 품에 안은 성벽도시, 에싸웨라는 우리에게 온전히 새로운 과거다.
소문만 무성한 도시가 있고, 소문 이상의 가치를 드러내는 도시도 있다. 추억을 꿈꾸며 신기성을 향유하려는 여행이란 묘한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우리는 특별한 추억, 새로운 느낌을 기대한다. 그것은 여행에서 얻게 되는 선물이다. 모로코 도착 후, 카사블랑카를 떠나며 과연 에싸웨라에 가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마라케쉬에 도착, 하루 만에 그곳을 포기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웅성거리는 후미진 버스 터미널을 빠져 나와 바다로 향한다. 성곽을 지나 구 시가지의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기운이 엄습한다. 바로 내가 그토록 찾고 헤매던 내 영혼의 고향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고향을 떠나 먼 여행길을 떠돌아 다녀본 자는 안다. 어디가 진정 고향 같은 곳인지, 이곳을 발견하고 성곽 기둥에 숨어 있던 나는 그만 숨이 멎었다. 에싸웨라의 오래된 성곽과 부산한 시장통, 좁은 골목길 사람 냄새와 오래돼 낡은 것들의 진귀한 가치를 눈과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됐으니 말이다.


2. 항구의 역사와 에싸웨라의 오랜 추억의 스토리를 읽고 있는 여행자들.
3. 오손웰스가 그의 영화 ‘오델로’ 를 찍은 영화의 배경 스칼라 뒤 포트.
아틀란틱 오션의 희망 정거장, 에싸웨라
에싸웨라는 2001년 오래 버텨낸 질긴 역사의 흔적과 항구로서의 강한 생명력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로코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돼도 손색 없는 곳이지만, 특별히 에싸웨라의 메디나와 철옹성 같은 높은 성벽들, 퇴색돼 진한 향수를 자극하는 요새와 생명력 넘치는 항구는 그 동적이며 인간미 넘치는 오묘한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을 거쳐 간 그 유명한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인정하는 모로코 최고 휴양도시 에싸웨라는, 지미 핸드릭스의 영혼의 은신처였다. 그의 진한 감성이 묻어 있는 음악들은 이 허름한 바닷가의 잔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것이다. 모로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예품들도 이곳에서라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목길 작은 공예품들, 그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세계 팝 뮤직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매년 6월쯤이면 세계음악축제가 펼쳐진다. 대서양을 마주하며 모로코 특유의 향기와 낭만적인 모습에 반해 모두 행복에 취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서양의 높은 바다와 많은 어획고의 항구도시로 더욱 유명한 곳이지만, 집채만한 파도와 거대한 들판과도 같은 해변의 보드라움은 서퍼 마니아들 사이 서핑의 고향으로도 평판이 자자한 곳. 물론 북부의 작은 도시, 아실라와 함께 아름다운 해변 도시로 최근 모로코에서도 아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모로코 해안 지역에서도 특색 있는 곳이라 유럽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곳이다.
비릿한 바다, 에싸웨라 항구를 향해 걷는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바로 에싸웨라의 심장에 들어서는 순간을. 밥 두칼라(Bob Doukkala, 두칼라 문이라는 뜻)를 들어서면 잠시 아치형 문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백년 전 세월의 흔적 속으로 돌아온 듯한 묘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오기 때문이다. 한발 한발 메디나 안쪽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색다른 건축물과 묘한 거리풍경에 압도돼 간다. 길가의 오랜 상점들과 도로 위 행상들, 보헤미안 칼러들과 모로칸들의 묘한 눈동자, 에싸웨라의 세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2. 모로코 전통 신발, 바부쉬의 다양한 색채가 시선을 잡아끈다.
3. 골목길 이곳 저곳에 전통 기법의 도자기와 접시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지미 핸드릭스 등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
메디나를 관통하면 물레이 하산(Moulay Hassan) 궁전 앞 너른 광장이 나타난다. 파란 하늘 아래, 갈매기 끼룩끼룩 날아가고 저 멀리 에싸웨라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가 보이니 가슴도 확 트인다. 비린내가 온몸에 밀려 오고 해풍을 맞으며 그 바다에 선다. 방파제와 성벽 아래, 어부들의 부산한 손놀림과 경매 시장의 소란한 소리가 항구의 활기를 대변한다. 한가히 드나드는 배, 하늘을 유유히 선회하는 거대한 갈매기들, 파란색 몸에 휘두른 부둣가 어선들, 이 모두 에싸웨라의 얼굴이다. 이곳에 서면, 왜 이곳으로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에싸웨라(Essaouira)는 영어식 표기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부르거나 외울 때 조금 난감하다. 에싸우이라, 에싸웨라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곳은 흔히 ‘essa-weera’로 불린다. 에싸웨라는 모가도르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북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베르베르어에서 유래한 말로 안전한 항구라는 뜻이다. 거센 대서양의 파도와 바람을 막아낸 안전한 항구였기에 예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항구의 묘한 매력에 더불어 에싸웨라의 낭만은 깊고 높은 성벽 같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메디나 안쪽의 작고 높은 골목길은 아련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함께 삶의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메디나 안쪽 골목길은 도시 전체가 작은 상점들과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죽제품, 은세공제품, 향신료, 목공예품들과 킬림 양탄자들로 구매 욕구는 높아만 간다. 보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한 선물과 다름없는 에싸웨라의 골목길. 길을 잃어도 좋다. 흘러간 모로칸 전통 음악에 심취해 세월의 오랜 시간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 보자.
에싸웨라, 그 이름의 이면에는 예술인들의 열병이 있었다.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가 남은 일생을 이곳 바닷가에서 살았고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와 밥 말리 등이 한동안 머물다 갔다.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도 이곳에 집을 샀으며, 프랑스인들은 별장처럼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여행자와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사랑한 이유는 대서양의 아스라한 물빛과 오래된 먼 미래와도 같은 이곳의 이국적인 풍경 때문일 것이다.
대서양, 그리운 바다, 히피들의 마음의 고향, 아무 하릴없이 몇 날을 이 골목 저 골목 배회해도 좋은 이곳은 진정한 여행자의 천국이다. 따사로운 태양 아래, 눈부신 바다와 멋진 카페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포진하고 있으며 무엇을 먹어도,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 느낌과 공기가 사뭇 다른 이곳을 그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추억, 에싸웨라 그 빛바랜 골목길 사이를 거닐며 누구나 자유, 그 소중한 가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래)메디나 안쪽, 수많은 골목길에는 모로코 전통 공예품들과 양탄자로 풍성하다.

1. 에싸웨라의 감동과 추억은 메디나 안쪽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2. 모로코인들의 전통의상 젤라바, 모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젤라바를 입은 주민.
3. 낡고 좁은 골목길 어디에서나 모로코 인들의 진한 애수를 느끼게 된다.
Tip. 여행길라잡이
* 찾아가는 길
아프리카 북단, 대서양에 자리한 에싸웨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유럽의 파리나 중동의 카타르 등을 경유해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갈 수 있다. 에어 모로코(Air Moroc) 국내선 비행기로 에싸웨라 모가도르 공항에 닿을 수 있으며 카사블랑카, 마라케쉬에서 버스가 자주 출발한다.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나 독특한 풍광과 숨겨진 매력 때문에 예술가들과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잦아들고 있다. 대서양의 너른 가슴을 느껴볼 수 있으며, 독특한 모로코 풍의 호텔에서 여유와 낭만도 찾아보자. 어선들이 부산히 오가는 포구와 생선 경매장, 골목길 쇼핑, 비치에서의 자유로운 시간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 특산품, 아르간 오일
화장품의 주원료이자 고소한 참기름과 올리브기름을 혼합한 듯한 아르간 오일은 이곳의 특산품으로 주로 생선 요리와 함께 먹는데 제조 방법이 재미있다. 염소가 아르가니아 열매를 나무 위에 올라가 따먹은 배설물에서 아르가니아 씨앗을 추출해 기름을 만든다. 메디나 밖에서는 낙타를 타고 1시간 동안 해안가와 사막을 중심으로 산책을 할 수 있으며 산책 도중 지미 핸드릭스의 무너져가는 집을 비롯해 역사적인 유적들도 구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