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펀드 수익률 -15%대 최하위권
펀드 수탁고도 반토막 ‘위상 추락’

지난 1999년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가 90%대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미다스의 손’이라는 등의 칭호를 들었다. 그가 손대는 펀드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잠시 휴지기는 있었지만 신화는 계속됐다. 그는 2003년 적립식 펀드 상품을 새로 내놨다. ‘적립식 3억 만들기 펀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상품 역시 대히트를 쳤다. 특히 박 회장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을 상품 판매처로 하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으로 판매고를 더 높일 수 있었다. 더욱이 지난 2005년에는 ‘적립식펀드=노후’라는 개념을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이용해 엄청난 판매량을 보였다. 같은해 SK생명을 인수해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출범시키면서 은행을 제외한 금융그룹을 완성시켰다. 특히 생명사 인수로 기존 금융사와 엄청난 시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박 회장은 미래에셋을 수탁고가 120조원이나 되는 거대공룡 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의 신화는 인사이트펀드라는 복병을 만나고부터 크게 흔들렸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 2008년 큰 내상을 입었다. 박 회장이 적립식펀드로 큰 재미를 본 이후 2007년 10월 인사이트펀드라는 야심작을 내놓았다. 글로벌펀드로 불리는 인사이트펀드는 주가상승이 예상되는 해외 각국의 주식에 투자하는 해외펀드 상품이다. 박 회장을 믿었던 개인투자자들의 돈이 물밀 듯이 들어와 판매한지 한 달 만에 4조원 어치나 팔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현주 펀드 = 투자 성공’이란 등식이 적용됐다.
그러나 중국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비중을 높인 것이 화근이 됐다. 인사이트펀드 출시 당시 6000선을 넘나들던 중국의 주가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0선 아래로 떨어졌다. 문제는 박 회장이 중국의 상승세를 확신하고, 중국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여놓았던 것. 당연히 수익률은 곤두박질 쳤다.
그런데도 그 당시 미래에셋이 3%라는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자 개인투자자들의 성토가 극에 달했다. 박 회장을 비난하는 글이 인터넷 등에 쏟아지기도 했다. 사태가 쉽게 진정이 안 되자 박 회장은 오랜 기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박 회장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손상됐고, ‘박현주의 성공신화’가 퇴색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미래에셋 홍보실에서는 인사이트펀드를 박 회장이 직접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까지 내놓으며, 박 회장의 이미지 훼손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 미래에셋의 펀드 수탁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9년말 46조1440억원에서 2010년말 35조5965억원, 2011년말 24조1473억원으로 2년 만에 설정액은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말 기준 업계 2위인 삼성의 펀드 수탁고는 2009년말 14조3504억원에서 2011년말 16조3466억원으로 오히려 2조원 가량 늘었다. 지난 한해 국내 공모주식펀드로는 4조원이 넘는 자금이 순유입됐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는 4조7420억원이 순유출됐다.

펀드수탁고 2009년말 46조 → 2011년말 24조
이 뿐만이 아니다. 악재는 계속 나왔다. 지난해 미래에셋 펀드의 수익률마저 다른 펀드에 비해 저조했던 것.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9조3363억원 상당의 국내주식형펀드의 지난해 수익률은 -15.97%로 운용순자산 1조원 이상 운용사 중 가장 낮았다. 전체 48개 자산운용사 중에서는 43위다. 간판 펀드 중 하나인 ‘미래에셋디스커버리증권투자신탁’은 지난해 수익률이 -15.53% 등 미래에셋의 주식형펀드 대부분이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코스피지수 하락률 10.98%의 1.5배에 육박한다. 개인투자자들이 미래에셋펀드에 가입하지 않고, 코스피지수에 연동되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했을 경우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최악의 운용 실적으로 존립에 문제가 생길 만큼 겹악재가 터진 것. 박 회장으로서는 굴욕적인 순간인 셈이다.
급기야 박 회장은 지난 1월2일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미래에셋 고객들에게 손실을 입힌 데 대해 사과 형식의 글을 게재했다. 박 회장은 이 광고에서 “지난해에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어서 고객의 자산보호에 무게를 둔 전략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익을 드리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다”고 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미래에셋의 성과가 좋지 않았던 원인은 변동성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위기관리 차원에서 주식을 팔고 현금 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증시가 빨리 회복돼 미래에셋 펀드들은 다시 주식을 사들여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새해에는 잘해보겠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 광고에서 “새해에도 유로존 문제나 인플레이션, 가계부채와 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자산을 다각화하는 포트폴리오로 전략적으로 대처하고 지혜롭게 투자하겠다”며 “새로운 미래에셋으로 지금까지의 미래에셋을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2년을 앞두고 미래에셋 임직원들은 변화를 준비하는 단호한 각오 때문에 장시간 회의를 거듭했다”면서 “국내외에서 6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총 120조원을 움직이는 글로벌 그룹에 걸맞게 운용시스템을 비롯해 많은 것을 변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미래에셋으로 지금까지의 미래에셋을 넘어서겠다”면서 “투자는 더 냉철해지고 나눔은 더 따뜻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투자자들 “박현주 회장은 ‘양치기 소년’”
증권가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솔직하게 참회록(?)을 낸 것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중견 자산운용사의 한 대표는 “박현주 회장이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는 점에서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투자자는 분통을 터뜨리며, 박 회장의 사죄를 단순한 사죄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 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상당히 떨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말 바꾸기를 하며, 그 때 그때를 모면하던 박 회장이 자초한 부분도 크다. 그는 2009년 인사이트펀드로 큰 손실을 입힌 뒤에도 중국 시장이 회복돼 몇 년 뒤에는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중국 증시는 여전히 주가지수 2200선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고점의 3분의 1 수준이다. 때문에 “(박현주 회장의 사과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작전”이라는 투자자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투자자들은 대대적으로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낸 것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하고 있다. 인사이트펀드에 6000만원을 넣어 아직도 원금의 60%대에 머물고 있는 한 투자자는 “광고낼 돈이 있으면 운용 수수료나 낮춰주지 언론사 광고를 통해 자기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을 쓴다”면서 “그렇게 애써봐야 박 회장을 ‘양치기 소년’으로밖에 더 보겠냐”고 힐난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2008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 시장이 안 좋아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박현주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광고를 게재하게 됐다”면서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미래에셋의) 성과는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