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를 청춘처럼 살려면
진정 좋아하는 일을 당장 찾아라

2주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반도체 회사 인사팀 김모 부장을 만났다. 올 한해의 채용계획을 파악하고 최근 진행 중인 오더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날 필자가 듣고 싶었던 업무 이야기보다는 김 부장의 고민을 듣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김 부장과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의 고객사인 L대기업 계열사의 인사과장으로 추천을 하기 위해 만났던 후보자였다. 하지만 당시 진행했던 L대기업의 인사과장 포지션에는 합격되지 않았고 지금의 분당에 위치한 반도체 회사의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인원 수 60여명 수준에서 지금은 200명까지 성장한 기업이 되었다. 그곳에서 인사시스템 기획 및 정착, 그리고 신인사제도 도입 등 지금처럼 조직이 커지는 데 기여한 인재다.
“실장님 요즘 정말 답답해 죽겠습니다. 제가 이직할 수 있을 만한 포지션 좀 찾아주세요.”
“왜 그러세요?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으시나요?”
단순히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에 이직을 묻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질문의 이유가 뜻밖에 묵직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큰 걱정입니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지금 회사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네요.”
김 부장은 1968년생이다. 그 기업의 정년은 55세라고 하니까 앞으로 11년 남은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이 임원을 달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했다. 앞으로 길어야 2~3년 정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면 다행인지라 그 이후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밤에 잠을 청하는데 이렇게 하루 이틀 일을 하다 보면 금세 50살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뒤로는 마음이 불안하고 사기저하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겨우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그래서 요즘은 예전 퇴사한 동료 중 사업을 시작한 사람의 근황을 찾기 바쁘다는 것이다. 그들의 성공담, 실패담을 들으며 그들처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보기도 하지만, 실현 가능한 자금력과 아이디어 부재의 벽에 부딪쳐 결국 한숨만 쉬게 된다며 이것이 우울증 시초가 아니겠냐고 한다. 또 자신 스스로 놀라운 게 있는데 최근 네트워크 마케팅을 오래 전부터 시작한 부인이나 동료가 무척 부러울 뿐이라고 한다. 예전엔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최근엔 그 네트워크 안에서 미래의 수입을 준비한 사람들이 참 현명한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암웨이의 더블다이아몬드 등급인 아내를 둔 그 동료가 무척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정년을 앞두고, 또 노년의 직업을 위해 지금 당장 자신이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이직을 알아보고 싶은 것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월급이 높아질 수 있는 또는 사업거리가 될 수 있는 기회의 포지션을 찾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오더를 받기 위해서 만나러 갔지만,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그중 최근 만났던 분들 중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분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그 이야기가 가벼운 농처럼 들렸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분들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고층빌딩 청소원 꿈꾸는 온라인쇼핑몰 대표
작년 7월 국내 유명 전자제품 유통기업의 자회사인 온라인 쇼핑몰 김모 대표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1960년생으로 40대 초반에 그 회사 차장급으로 입사, 수많은 기존 직원들과 경쟁한 끝에 현재 위치에 올랐다. 평소 왜소한 체격이었는데 지난번 봤을 때보다 건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님, 요즘 어떤 운동하세요?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세요.”
“아, 그래요? 요즘 클라이밍을 시작했는데 효과가 좀 있나 보네요.”
김 대표의 얼굴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햇살을 뒤로 한 채 앉았기 때문인지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클라이밍을 통해 기초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집중력이 향상되고 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혔다며 자랑도 하신다. 그러면서 나중에 은퇴 후 암벽등반을 넘어 고층빌딩 청소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께서 청소를 하신다고요?”
“왜요? 이상한가요? 정년퇴임 후 건물 청소원이 될 수도 있는데, 청소 업무를 하더라도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고 특수 분야인 고층빌딩 청소원이 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요. 그것이 단순 청소원이 되더라도. 허허허.”
작년 10월이었다. 강남 유명호텔의 중식당에서 국내 중견 자동차부품회사의 심모 부회장을 만났다. 심 부회장은 1956년생으로 엘리트 출신이다. 최고의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학위 취득 후 D그룹에 입사해 건설, 유통 계열사 사장직을 역임한 후 현재의 자동차부품회사 부회장직을 맡은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이 실장, 요즘 나는 앞으로 몇 년 뒤 지금 직장을 그만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고.”
온화한 미소 속에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향기로운 재스민차 한 모금을 마시며 물었다.
“네, 그러시군요. 좋은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내가 평소 차를 좋아하거든. 카 세일즈 컨설턴트 어때요?” “카 세일즈 컨설턴트요? 그런 직업, 아니 직무가 있나요?”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 나처럼 외제차 좋아하고, 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면 차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거지. 어때요? 단순한 카 세일즈와 차별화된 방법으로 근사하게 하고 싶은데. 아, 그리고 내 인맥과 모임을 통해 홍보하면 수입이 꽤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위 사례처럼 필자가 요즘 만나는 50대 기업 임원들도 앞으로 5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가볍게는 자신들의 취미 속에서, 혹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과 경험을 통해서 은퇴 이후를 준비하고 싶은 것이다. “은퇴 후 쉬는 것도 하루 이틀, 길어도 1년이지. 어떻게 30년, 50년을 쉬겠어요?”라던 심 부회장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100세 시대. 요즘은 어딜 가도 흔히 듣는 이야기다. 머지 않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무척 두렵다. 100세가 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 때문이다. 아니 100세가 될 때까지를 고민한다면 어쩌면 그들은 행복할지 모른다. 100세가 아닌 50세, 40세 이전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미래의 100세보다는 지금 현실의 고민이 너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연금저축의 중요성을 알고 젊었을 때부터 준비해 노령연금이 용돈 수준이 아닌 직장인의 월급 수준처럼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는 이상 그 고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스포츠댄스 전문가의 삶 준비하는 젊은 엔지니어
얼마 전 천안에서 방산업체에 근무하며 초음파 비파괴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3년차 경력자인 서모 주임을 만났다. 짧은 시간에 초음파 비파괴검사 기사 외에 다른 기사 자격증을 3개나 더 취득할 정도로 매우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인재다.
서 주임은 그와 비슷한 경력자들이 갖고 있는 고민처럼 조금 더 높은 연봉과 조금 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다는 이유로 이직을 원했다. 그래서 그러한 니즈를 만족시킬 만한 기업에 추천하였다. 하지만 서 주임은 면접을 본 후 진행을 포기했다. 이유는 자신의 취미생활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장 및 야근이 잦은 기업은 자신의 취미생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취미생활은 스포츠댄스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댄스인 자이브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스포츠댄스 학원을 갖고 싶은 것이 꿈이라 했다. 서 주임은 이번 면접을 통해 자신의 직업과 취미, 그리고 노년의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직장생활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자신의 취미는 자기가 원할 때까지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즐기는 것이 자신의 인생과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주임의 결정에 대하여 사회적 성공의 욕망이 없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의 일과 취미생활을 분리하여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서 주임은 샐러리맨들의 막연한 로망인 억대 연봉, 임원 퇴직 등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서 주임이 자신의 삶에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누구보다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 내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관련 자격증을 누구보다 열심히 취득했고, 언젠가 다가올 직장생활 이후를 위해 자신만의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는 서 주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트렌드가 크게 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지난 10여년간 헤드헌팅을 해오면서 취미생활을 중심으로 직장 선택을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겸업하는 건 대부분의 회사가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직장생활은 곧 생계다. 재산이 많더라도 수입 없이 30년을 살기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을 갖고 있어야만 생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고령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드물다. 지금의 60대, 50대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40대, 30대는 어떤가? 그들이 사회 초년생 시절 회식자리에서 소주를 마시며 상사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레퍼토리는 대체로 은퇴 후에는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멀리 한적한 시골에서 쉬고 싶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치열하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며 가족들과 노년을 보내는 꿈. 그렇게 말해왔던 지금의 50대, 60대는 마음이 급하다. 시골로 돌아갈 자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젠 세상이 변했다. 소명을 다할 때까지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수입을 만드는 경제적인 힘을 갖는 노년의 모습을 꿈꾼다. 원로 방송인 송해씨를 보라. 그 분은 85세인 지금도 TV프로그램과 CF 출연을 통해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롤모델이라 할 만하다.
10년 후 세상의 변화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난 10년의 기술진보보다 몇 배의 빠른 속도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이모작은 1년에 동일한 농토에 두 종류의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이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우리 스스로 ‘이모잡(二毛-Job)’, ‘삼모잡’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아한 사회봉사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닐 수 있다. 먹고 사는 생계를 위해 반드시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로 변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