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업을 향한 국내 대기업들의 구애가 계속되고 있다. 현대그룹이 남산 반얀트리 스파 앤 리조트 매각 우선협상자로 지정된 데 이어 대한항공도 경복궁 부근에 6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등 특급호텔을 마련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과연 호텔업이 수익성 면에서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대기업들의 호텔업 진출 속내를 들여다봤다.

 

한류 바람타고 객실 부족 사태 빚자

대기업 “호텔 지을 땅 찾아라” 동분서주

- SK그룹 소유의 쉐라톤워커힐 W호텔’
- SK그룹 소유의 쉐라톤워커힐 W호텔’

대기업들의 호텔업 진출이 부쩍 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1월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럭셔리 리조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인수의 우선협상자로 최종 확정됐다. 반얀트리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고급 리조트체인으로, 도심 내 짓는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반얀트리 그룹 차원에서도 각별한 애정을 기울인 곳이다. 지난 2007년 부동산 개발업체 어반오아시스는 타워호텔이 들어서 있던 2만4720㎡(약 7500평) 규모 부지를 1200억원에 사들여 최고급 리조트로 리모델링했다. 지난 2010년 6월 정식 오픈했지만 회원권 분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물로 나온 것을 현대그룹이 인수한 것이다. 반얀트리는 W호텔, 파크하얏트호텔과 함께 국내 3번째 6성급 호텔로 개인회원권 가격만 1억30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어반오아시스가 시공사인 쌍용건설에 전체 공사대금(1378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700억원은 물론, 프로젝트파이낸싱 방식으로 조달받은 자금 800억원마저 제때 상환하지 못해 매각절차를 밟았다. 

대한항공 경복궁 인근 7성급 호텔 건립 추진

대한항공도 경복궁 인근에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던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지난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매입했다. 이곳에 대한항공은 지하 4층, 지상 4층 연면적 13만7440㎡ 규모의 7성급 호텔을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수년째 개발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부지 바로 옆에 덕성여중고, 풍문여고 등이 있어서다. 교육당국은 “호텔이 들어서면 학생들의 교육환경 및 안전, 환경 위생 등에 지장을 준다”며 건립을 반대해왔다. 경복궁 바로 옆에 위락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한 문화계 차원의 반대도 호텔 건립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 여당이 학교 주변이라도 유흥주점이나 카지노 등이 없다면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개발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은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호텔현대경포대를 헐고 2014년 5월까지 지하 3층, 지상 17층 160실 규모의 특1급 호텔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1971년 오픈한 호텔현대경포대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재직 시절, 매년 여름 신입사원 수련회를 열던 곳으로 범 현대가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호텔 재건축 프로젝트에 리처드 마이어, 제임스 코너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어는 로마 주빌리 교회,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센터 등을 설계한 세계 건축계 거장으로 지난 1984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코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조경학 교수로 근무하는 세계 최고 조경설계자다.

범 현대가로 분류되는 현대산업개발도 해운대에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6성급 호텔 ‘파크하얏트 부산’을 연다. 내년 3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파크하얏트 부산은 총면적 4만9217m²에 지하 6층〜지상 34층 268실 규모다. 지난해 착공에 들어가 현재 외관공사가 마무리됐으며 올해는 내장공사가 진행된다. 이 호텔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를 맡았다.  이들 외에도 관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도 수년 전부터 서울, 경기 인근에서 호텔 사업을 벌이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를 만났다는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서울이 우선 검토 대상지역이며 경기도 화성, 용인 등에 있는 현대차그룹 소유부지도 유력 후보지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제주도에서 해비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대기업이 호텔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수익성을 고려한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오는 해외관광객수가 늘면서 호텔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기록하고 있는 게 대기업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979만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1.3% 증가했다.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신음하던 와중에서 2009년에도 우리나라 방문객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은 70~80%가 관광목적”이라면서 “한류열풍과 중국 경제성장 등이 관광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G20(세계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같은 굵직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리는 것도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 대형호텔 마케팅 담당자는 “G20정상회의 때는 서울 전역의 특급호텔에 방이 없어 일부 수행원들은 인천은 물론 비행기를 타고 부산,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 투숙해야 할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3월26~27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현재 서울 시내 특급호텔들은 이미 100% 예약이 완료됐다. 47개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이번 행사는 봄철 여행 성수기와 맞물리면서 현재 객실 품귀를 부추기고 있다. 관련업계에서 평가하는 호텔 객실의 적정 가동률은 70%다. 그러나 현재 서울 특1급 호텔의 객실 가동률은 80%에 육박한다.   

- 현대그룹이 인수할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 현대그룹이 인수할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객실 가동률 80% 육박…객실 품귀  

더군다나 호텔업은 국내 대기업들에겐 경기 변동에 둔감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리먼 사태가 불거진 2008년 하반기 이후에는 환율 상승으로 오히려 해외관광객들에게 인기였다는 게 호텔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지난 2010년에는 중국인 비자발급 요건이 완화되면서 중국인 관광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나투어 이경덕 차장은 “경제력이 있는 중국인들 역시 반일감정이 여전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면서 “물가, 쇼핑 등을 고려할 때 중국 부유층이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마카오, 홍콩, 한국 정도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쟁상대인 일본은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방사능 공포가 확산된 데다 엔고 현상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10월 누적 관광객수가 266만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252만명)보다 5.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러다보니 서울 시내 주요 특1급 호텔들의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호텔신라의 지난해 호텔사업부문 매출액은 2307억원(추정치 기준)으로 전년(2210억원)보다 14.1% 매출이 증가했다. 강남에 위치한 한 대기업 계열 특1급 호텔의 지난해 매출액은 310억원이며 순이익은 70억원이었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매년 50억~100억원대의 안정적인 매출구조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대기업들이 호텔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특1급(5성급 이상) 호텔들은 4~5년 전부터 연 수익률이 10~15%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부지 마련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서울 시내 특1급 호텔이 들어설 만한 부지가 많지 않다. 현대그룹이 반얀트리를 인수한 것이나 대한항공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경복궁 바로 옆에 호텔을 지으려고 하는 것도 마땅한 부지가 없어서다. 현대그룹만 해도 현정은 회장이 반얀트리 인수를 직접 챙길 정도로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강산에서 호텔을 이미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데다 그룹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게 현대그룹의 계산. 현 회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조문을 위해 방북 길에 오르면서 입찰주관사에 입찰 연기를 요청할 정도로 반얀트리 인수에 공을 들여왔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시내에서 호텔을 지으려면 용적률이 900%는 돼야 하는 상업지구여야 하는데 대규모 토지 중 이런 요건을 갖춘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사 개발담당 임원 역시 “대기업 계열인 A건설사가 10년간 보유한 모델하우스 부지를 호텔로 지으려고 했는데 도중 포기한 것도 이 땅이 3종 일반지구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옆 옛 미국대사관 숙소부지
-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옆 옛 미국대사관 숙소부지

롯데·삼성, 비즈니스호텔 사업 진출 

호텔업이 호황을 기록하면서 특2급이나 비즈니스호텔로 시야를 돌리는 대기업들도 늘고 있다. 부지는 서울을 비롯해 수원, 인천 등 수도권 대도시 등지다. 주요 대기업이 들어서 있는 수도권 위성도시들이 주요 대상지역으로 검토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지난 2009년 마포구 공덕오거리 주상복합아파트 저층부에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을 지은 롯데그룹이다. 롯데시티호텔 마포는 하루 숙박비가 15만~20만원으로 서울 시내 주요 특1급 호텔보다 숙박비가 40~50% 가량 싸다. 이 때문에 중국, 일본 관광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시티호텔 마포가 인기를 끌자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 2호를 지난해 12월 롯데몰 김포공항점에 지었다. 이외에도 롯데그룹은 제주공항 근처와 서울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 등지에서 추가로 호텔을 지을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신라도 올해 장충동 신라호텔 면세점 부지에 비즈니스호텔을 신축한다. 아울러 5호선 서대문역과 인접한 청춘극장을 비즈니스호텔로 탈바꿈시키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강남에서는 위탁경영 형태로 참여한다. 2020년까지 호텔신라가 목표로 하는 비즈니스호텔 수만 20여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기업들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베니키아의 운영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호텔업계에서는 정부가 전국 중소 관광호텔을 하나의 체인으로 연결하는 베니키아의 운영권을 민간에 위탁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만약 베니키아 운영권이 소문대로 시장에 나올 경우 이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 현대차, SK, 롯데, GS 등이 모두 입찰권 확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확실하다. 강북에 위치한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골프장이 그룹 오너들에게 왕국과 같다면 호텔은 오너들이 사는 성(城)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면서 “해외 바이어와의 만남, 오너 일가 행사 등 비밀스러운 행사를 갖기 위해서도 주요 기업마다 호텔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뿐만 아니라 글로벌 호텔 체인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긍정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기업 이미지만으로 접근하기에는 영업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나이스신용평가 김호경 선임연구원은 “호텔사업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매출 비중이 6대 4 비율로 국내와 해외경기 변동 위험이 상존하는 데다 대규모 장치산업이어서 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면서 “지금은 특1급 호텔수가 절대적이지만 정부가 호텔 설립 허가를 대폭 완화시킨 상황에서 공급과잉도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