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계열사 코웨이 팔고 태양광 ‘올인’
위기때 빛난 역발상경영 이번도 성공?

웅진코웨이 매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지난 2월6일 발표된 ‘웅진그룹, 미래를 위한 사업구조 혁신안’에서 웅진그룹은 “그룹 주력사 중 하나인 웅진코웨이를 외부에 매각하고 이 자금을 활용해 태양광에너지 등 미래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하는 동시에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를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발표도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번 발표에 대해서는 그룹 내부에서도 극소수를 제외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주석 그룹 총괄 부회장이 발표가 있기 불과 하루, 이틀 전 계열사 사장들에게 휴대전화로 간단히 전했을 뿐 사장단 회의에서 공식적인 논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도 매각 사실을 다른 계열사 사장들과 같은 시기에 알았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웅진그룹은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선정했으며 늦어도 올 상반기 내 매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 내 매각 절차 완료
이번 웅진코웨이 매각으로 웅진그룹은 사업구도를 새롭게 짜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웅진코웨이는 배당과 브랜드 사용 수익 등으로 연간 350억원 정도를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에 벌어다주는 알짜 계열사다. 지난해 매출 1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성장률이 14%로 국내 환경가전 시장점유율 1위다. 신규 계약자수는 전년 대비 7%, 판매대수는 28% 늘어난 반면 해약률은 1%를 기록했다. 실적으로만 치면 지난 2006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웅진코웨이는 세계 최초로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한 코디-렌털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국에서 활동하는 코디만 1만6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관리하는 고객 수는 330만명, 취급하는 렌털제품 수는 545만개다. 웅진코웨이는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도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웅진으로선 현재 그룹을 떠받치 는 기둥을 M&A시장에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증권 이상구 애널리스트(유통)는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가 상승에 발목을 잡았던 것은 그룹 지배구조 때문이었는데 이번 결정으로 이 문제가 해소됐다는 것은 주가의 호재”라면서도 “갑자기 매물로 나오면서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웅진그룹이 대체 주력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태양광 산업이다. 혁신안에서 웅진그룹은 “태양광 에너지 사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글로벌 톱3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에 대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웅진그룹의 계획이 나오자 시장 반응은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수익원을 포기하고 미래수익(태양광산업)에 올인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웅진그룹 내에서 태양광 산업군으로 분류되는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은 지난해 전년 대비 3배 가량 성장한 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웅진에너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잉곳 양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웅진폴리실리콘은 현재 폴리실리콘 양산 규모만 5000톤에 달한다. 지난해 4월 경북 상주에 5000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준공했다. 이 공장에서는 고효율 태양전지 제작에 필수적인 99.9999999%(9-Nine) 이상 고순도 폴리실리콘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엄연히 웅진은 태양광산업의 후발주자다. 특히 현재 세계 태양광 시장은 치킨게임 양상을 기록 중이다. 매출은 커질지 몰라도 순이익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게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현주소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양산 규모만 해도 업계 1위인 OCI(2만7000톤)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자금 공급마저 원활하지 않을 경우 태양광 산업 육성이라는 당초 계획과 다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지주회사 담당 애널리스트도 “삼성, LG그룹도 포기한 (태양광)사업을 웅진이 과연 제대로 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단 관련 업계에서는 태양광 산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선언한 웅진그룹이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을 하나로 통합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다른 악재로 지적받는 극동건설은 확실한 턴어라운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웅진코웨이 매각의 진짜 이유로 2007년과 2010년 사들인 극동건설과 서울상호저축은행을 꼽는다. 웅진그룹도 개선안 발표문에서 “극동건설은 최근 수주 증가와 잇단 분양 성공으로 사업성과가 급격히 개선되고 있으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건설 경기 부진으로 2007년 웅진그룹이 인수한 이후 웅진그룹의 재무 건전성과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고 밝혔다.

극동건설 위기 그룹 전체로 옮겨가
론스타로부터 6600억원에 사들인 극동건설은 현재까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해 ‘승자의 저주’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극동건설은 웅진그룹 합병 이후 2007년 영업이익 378억2800만원, 2008년 98억6800만원, 2009년에는 마이너스 90억원을 기록한 뒤 2010년에는 흑자로 전환했다. 현재까지 웅진그룹이 인수 이후에 극동건설에 쏟아부은 자금만 9000억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극동건설은 지표상으로 확실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잔고는 6798억원, 부채는 1조595억원으로 부채비율이 155.8%에 이른다. 지금과 같은 건설경기 불황이 계속된다면 당분간 자금 투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웅진코웨이가 아무리 제값에 매각된다고 해도 극동건설의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를 비롯해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웅진홀딩스는 극동건설을 인수하면서 조달한 7400억원을 단계적으로 상환해야 한다. 현재로선 1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다. 극동건설의 1분기 잉여현금은 1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PF 대출 만기가 몰려있는 1분기를 잘 넘겨야만 기대대로 그룹 전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웅진코웨이가 계열사 중 ‘스타기업’이라면 웅진씽크빅은 ‘캐시카우’, 웅진에너지와 폴리실리콘은 ‘문제아’(Problem child), 극동건설, 저축은행 등은 ‘도그’(개)와 같은 존재”라면서 “이번 매각으로 웅진그룹주는 외형이 준 정말 매력 없는 종목이 됐다”고 평가 절하했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웅진코웨이의 주력사업인 환경, 생활가전 분야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지금은 웅진코웨이가 제대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LG 등 대기업이 정수기, 비데 사업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실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중 하나다. 한 주식투자 전문가는 “정수기와 같은 렌털 제품은 사용기간이 끝나면 사실상 폐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웅진코웨이의 자산은 거의 인적자원에 한정돼 있는 데다 사업성장성도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웅진이 타사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선보인 것도 기존 렌털 사업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행히 태양광 산업은 초반이지만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웅진그룹은 2013년까지 1만7000톤(2012년 3월 2000톤, 2013년 3월 1만톤 증설)으로 늘리고 지속적인 증설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을 10%로 높일 계획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웅진에너지를 포함해 10억달러의 장기공급계약이 체결돼 있다. 웅진에너지는 지난 2006년 미국 썬파워와 함께 세운 합작법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매각결정으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리더십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웅진그룹이 창립 30년 만에 국내 20위권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윤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발상 경영’으로 대표되는 그의 리더십은 때론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결과적으로 늘 성공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윤 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1998년 코리아나화장품의 지분을 공동창업자인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에게 전량 매각했다. 매각 당시 코리아나화장품은 영업이익률이 13.1%, 시장점유율은 아모레퍼시픽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알짜회사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시장 반응은 “윤 회장이 무모하게 회사를 처분했다”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때 매각한 자금을 웅진코웨이 성장에 집중하면서 웅진은 불황 돌파와 그룹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윤 회장은 제조업 중심의 기업 성장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그룹은 교육, 출판 분야에서 출발해 식품, 유통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견기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룹 외형을 10위권으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제조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윤 회장이 후발주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산업에 수천억원을 쏟아부은 것도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을 그룹의 미래 먹을 거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가전 렌털사업 한계 다다랐다는 시각도
지난해 3월 윤 회장이 <이코노미플러스>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점 역시 다름 아닌 친환경 사업과 세계 1등 기업 달성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윤 회장은 “미래는 환경경영의 시대일 거라고 확신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윤 회장이 밝힌 환경사업의 대상이 바로 에너지 분야였다.
“에너지 분야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 산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후발주자인데도 잉곳(태양광전지 핵심 소재) 부문 기술경쟁력이 세계 1위예요. 결국 어느 업종이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태양광 발전 사업에서 빠르게 성공한 것도 기술경쟁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2011년 4월호 ‘강석진의 CEO to CEO’ 중)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증권사 고위 임원은 이번 결정을 이렇게 평가했다.
“웅진그룹이나 윤 회장 입장에서 보면 별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 같다. 차입금이 늘어나면서 그룹 전체에 대한 신용위기 우려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 와중에 별 관심을 끌지 못한 계열사를 내다 팔면 오히려 시장의 신뢰만 잃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그룹의 주 수입원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것은 자금경색과 경영전략 변경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다만 코웨이의 외형이 상당한 만큼 어떤 기업이 매수자로 나올지가 중요하다. 웅진은 매각자금으로 자금흐름도 개선하고 신규 사업에도 적극 투자하는 게 지금으로선 더 낫다.”
윤 회장은 시간이 날 때면 고난을 극복한 ‘테무친(칭기즈칸의 어릴 적 이름)의 편지’를 읽는다. 역전의 승부사 윤 회장은 매각 발표가 난 다음 달 웅진코웨이 전 직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아직 최종 매각 결정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뚫린 것처럼 허전합니다. 마치 아이를 낳아서 성인으로 키운 후에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텅 비어있습니다. 지금은 잠시 이별을 하지만 여러분과 함께 했던 기억은 내 마음 속에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중략) 그동안 여러분이 애사심을 갖고 웅진코웨이를 발전시킨 것은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노력을 기억하며 내 마음 속에도 기쁨과 자랑으로 웅진코웨이를 간직하겠습니다. 2012년 2월 윤석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