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7일 하나금융지주(하나은행)와 외환은행 노조는 무려 5년간 통합하지 않고 투뱅크 체제로 간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하나금융이 이런 ‘통 큰’ 양보를 하게 된 배경에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주변의 연임 권유에도 이를 뿌리치고, 더 이상 하나금융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표한 김 회장은 오는 3월23일 임기가 만료된다. 지난 1997년부터 15년간 하나금융을 이끌어 온 김 회장이 외환은행 인수를 끝으로 퇴장하는 것이다.

자산 190조원대 하나금융 일군 ‘승부사’

    

통큰 양보로 외환은행 인수 마무리

-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월17일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5년간 외환은행의 독자 경영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월17일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5년간 외환은행의 독자 경영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가 완전히 타결됐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지난 2월1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5년간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교환한 것. 지난 1월27일 1년여를 끌어온 외환은행의 하나금융지주 자회사 편입 승인이 금융당국에 의해 내려졌지만 이에 대한 외환은행 노조의 강력한 반발과 야당의 승인 번복 요구가 이어지면서 뒤끝이 영 개운치 않은 상황이었다. 김 회장과 김 위원장의 합의는 이러한 불안감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2월19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 붙였던 시위 현수막, 대자보, 포스터 등을 깨끗이 치웠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외환은행은 앞으로 5년간 은행명을 유지하며, 인사·재무·조직 등 경영 전반에 걸쳐 하나금융과는 독립돼 경영된다. 집행임원 중 과반수, 특히 인사·노사담당 임원은 외환은행 출신으로 선임한다. 최소 5년간 투뱅크(두 개의 은행) 체제로 가는 것이다. 이로써 1년3개월을 끌어온 외환은행 인수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2월10일 하나금융지주 등은 론스타(LSF-KEB Holdings, SCA)가 보유한 지분 51.02%를 포함한 57.34%의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는 공시를 냈다. 법적으로 인수를 완료한 것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인수함으로써 자산 290조원(하나 183조원+외환 107조원, 지난해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인 공룡금융기관이 됐다. 우리(313조원)·신한(292조원)·KB금융(279조원) 등 다른 금융지주와 비교해 100조원이 넘게 처졌지만, 이들과 대등하게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프라이빗뱅킹, 가계 부문에 강점을 보였던 하나은행과 기업, 외환 부문에 특화된 외환은행의 융합은 상당한 시너지를 얻을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당장 업무가 겹치지 않은 데다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김승유 회장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환은행 인수에 첫발을 내디딘 것도 물론 김 회장이다. 지난 2010년 11월25일 영국 런던에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과 외환은행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전까지는 외환은행이 호주뉴질랜드은행(ANZ)에 매각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론스타와 ANZ의 최종 가격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김 회장이 적극적으로 론스타에 구애를 펼쳤다. 김 회장은 MOU를 체결하기 2주전쯤 싱가포르에 있던 그레이켄 회장을 직접 찾아가 인수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11월25일 MOU를 전격 체결한 것. 그 당시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의 탁월한 승부사 기질이 빛을 발했다”고 칭송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김 회장을 가장 괴롭힌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로서 특혜를 받았다는 야당 등의 공세다. 실제로 이 대통령과 김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이다. 김 회장은 모교인 고려대 동창회 활동을 누구보다 왕성하게 해왔다. 2006~2009년에는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때문에 2007년 12월19일 있었던 17대 대선에서 이 대통령의 당선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게다가 김 회장은 이 대통령이 지난 2009년 8월 재산을 기부하면서 설립한 청계재단의 이사로도 올라 있다. 청계재단은 이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김 회장의 동기이기도 한 송정호 전 법무장관이 이사장을, 이 대통령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가 이사를 맡고 있는 등 이 대통령의 측근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 대통령과 김 회장이 각별한 사이인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김 회장의 집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내 금융 역사상 3개 이상 은행을 M&A(기업인수·합병)한 사람은 김 회장이 유일하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했다. 1999년에는 보람은행, 2002년에는 서울은행, 2005년에는 대한투자증권(현 하나대투증권)을 잇따라 인수하며 자산 190조원이 넘는 현재의 하나금융지주를 일궜다. 하나은행은 설립 당시에는 자산 8조원대에 불과했다. 그래서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이 ‘M&A의 귀재’, ‘승부사’로 통한다. 때문에 오늘날의 하나금융이 있었던 것은 바로 김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하나금융 안팎에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외환은행 노조와의 협상에서도 그는 ‘통 큰’ 양보를 통해 M&A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는 노력을 펼쳤다.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도 “(이번 합의에는) 김승유 회장의 대승적 양보가 있었다”고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조흥은행을 인수해 3년간 투뱅크(신한은행-조흥은행) 체제로 유지했다. 김 회장이 외환은행 노조에게 얼마나 많은 양보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 후에도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하나금융 안팎의 줄기찬 요구에도, 오는 3월23일 하나금융지주 정기주주 총회 때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하기로 했다. 1997년 하나은행장에 임명됐으니까 15년을 최고경영자(CEO)로 지낸 김 회장이 퇴진하는 것이다. 김 회장은 “오랜 기간 근무한 데다, 나가야 할 때 미련없이 떠나겠다”고 측근들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금융권에서는 사외이사 등 하나금융 안팎에서 만류하는 데도 스스로 정상에서 내려온다며 ‘아름다운 퇴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커튼콜’을 받으며 떠나는 셈이다.

- 오는 3월23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연임하지 않고 퇴임하기로 했다.
- 오는 3월23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연임하지 않고 퇴임하기로 했다.

 ‘포스트 김승유’에 김정태 은행장 1순위

현재 김 회장을 이어 CEO로 매진할 ‘포스트 김승유’로는 내부 인사인 김정태 하나은행장 등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또 한 명의 유력후보였던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금융위원회(옛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정부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관치금융 논란에 자유롭지 못한 데다, 외환은행 경영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배제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김승유 회장과 사외이사인 김각영 전 검찰총장,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 이구택 포스코 상임고문, 허노중 전 한국증권전산 사장, 유병택 전 두산그룹 부회장, 김경섭 전 감사원 감사위원 등 7명으로 구성된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윤 행장을 하나금융 회장 후보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생인 김 행장은 1992년부터 하나은행에 몸담아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유 회장을 이어 강력한 리더십으로 하나금융을 이끌 적임자라는 것이다. 또 하나대투증권 사장을 지낸 후 지난 2008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했으며 하나금융지주 매트릭스 조직 내 개인금융부문장으로 증권·보험·카드 등 자회사 개인금융 업무도 총괄해 은행 외 자회사 업무에도 정통하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비록 내부인사가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오르겠지만, 고위 관료 출신인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정부(금융당국)와 정치권의 바람막이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윤 행장이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신임 하나금융 회장과 거의 동급의 역할이나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나금융 회추위는 물망에 올라 있는 회장 후보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후 3월초 이사회에서 회장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이후 3월22일 하나은행, 3월23일 하나금융지주, 3월30일 외환은행이 각각 주주총회를 열고 회장 등을 선임한다.

비록 김승유 회장이 퇴진하더라도 향후 몇 년간은 하나금융지주 상근고문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옥상옥(屋上屋)’, ‘상왕(上王)’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김 회장의 리더십을 볼 때 오히려 권력의 공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회장도 지난 2월17일 합의서를 발표하면서 “(퇴임 후에도) 백의종군의 자세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혀 하나금융 경영에 관여할 것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어쨌든 1965년 한일은행 입행으로 시작된 김 회장의 47년 금융인생은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달려 가고 있는 셈이다. 

 

  Tip.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학맥 통해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 쌓아

- ‘포스트 김승유’ 1순위로 떠오르고 있는 김정태 하나은행장.
- ‘포스트 김승유’ 1순위로 떠오르고 있는 김정태 하나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943년 충북 청주 출생이다. 김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후 1965년 한일은행에 들어가 금융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그러나 2년 만에 은행을 그만두고 196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학창시절 김 회장의 꿈은 금융인이 아니라 학자였다고 한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도 학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했다. 그러나 학자의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의 창립멤버가 됐다. 한국투자금융은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단기금융 전문회사, 즉 단자회사였다.

김 회장은 1991년 윤병철 전 하나은행장과 함께 한국투자금융을 하나은행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7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했다. 이후부터 김 회장의 활약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오늘날의 하나금융을 일궈냈다. 그는 경기고와 고려대, 남가주대 등 학맥을 활용해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마당발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