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닻을 올린 ‘뉴페이스’ 공연기획사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엄홍현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불혹이지만 아직 젊은 피다. 그는 신생 기획사를 이끌고 있지만 처음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한 지는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엄홍현 대표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요즘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뮤지컬·콘서트 전용관 ‘블루스퀘어’에서 한창 호평을 받으며 공연 중인 뮤지컬 <엘리자벳>과 올 11월 공연을 앞두고 있는 엘리자벳 황후의 아들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사건을 다룬 또 다른 야심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다. 작년에 작품성과 흥행에서 두루 인정받고 올 7월 앙코르 공연을 올릴 예정인 뮤지컬 <모차르트>와 스위스에서 초연 후 국내에서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도 엄 대표가 혼을 바친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이다.
그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은 영미권 뮤지컬’이라는 주류의 공식을 과감히 깨트린 주인공이다. 그가 국내에 소개하는 뮤지컬은 동유럽 뮤지컬로 유럽권에서조차 신선한 작품들이다. 뮤지컬보다 오페라가 주류인 유럽 시장에서 그가 뮤지컬을 접한 계기는 우연히 독일과 체코에서 공연을 보고 난 다음부터였다. 뮤지컬 <삼총사>나 <살인마 잭> 등 흥행 뮤지컬의 책임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유럽 뮤지컬의 웅장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오페라적인 선율에 반했다고 한다. 거기에 현대적이고 팝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춘 유럽 뮤지컬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단다.
<엘리자벳>이나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는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거기에 한국 정서에 맞는 스토리로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 원작을 그대로 올리기보다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창작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무대와 조명, 음향, 의상 등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내 최고의 창작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원래 정해진 제작비에서 25%나 초과했어요. 프로듀서로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였죠. 무대, 의상, 조명, 연출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긴장상태에서 서로를 조율하는 것은 제 역할이었죠. 저는 관객이 지금까지 못 본 영상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래, 눈이 황홀한 뮤지컬을 만들자’고 결론을 내렸죠. 아깝지 않을 만큼 과감히 투자했고 관객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만족합니다.”
합스부르크 황실 그린 <엘리자벳> 인기몰이
<엘리자벳>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뮤지컬이 아니다. 그가 미하엘 쿤체의 스토리 전개방식과 실베스터 르베이의 음악에 마음을 뺏긴 건 2005년.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국내에 유럽 뮤지컬 시장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비엔나 뮤지컬과 사랑에 빠졌다.
엄홍현 대표와 공연 콘텐츠 배급회사 떼아뜨르의 김지원 대표가 함께 <엘리자벳>을 국내 무대에 소개하기까지의 이야기는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먼저 오스트리아 뮤지컬제작사인 ‘빈 극장협회(VBW)’의 문을 열기 위해 2년여에 걸쳐 이메일을 보냈다. 2007년 일본에서 열린 뮤지컬 <모차르트> 재공연 오픈식에 참석한 원작자들과 드디어 우연을 가장한 첫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다. 비엔나 뮤지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둘은 그제서야 공식적인 미팅을 갖게 되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국내 제작사들이 탐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EMK의 방식은 좀 독특했다. 다들 성공작 <엘리자벳>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엄홍현 대표와 김지원 대표는 <엘리자벳>이 국내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뮤지컬 <모차르트>를 먼저 공연해야 한다는 남다른 전략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국내 관객에게 영미권 뮤지컬이 아닌 비엔나 뮤지컬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 <모차르트>로 먼저 비엔나 뮤지컬을 소개한 다음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엘리자벳> 음악을 선보이는 한편 ‘엘리자벳’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홍보를 한 후 론칭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이 먹힌 것이다. 엄 대표의 무서운 추진력이 한몫 보태어지자 꽁꽁 닫혀 있던 빈 극장협회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둘의 열정과 집념에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갈라 콘서트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이자 <엘리자벳>에서 ‘토드(죽음을 형상화한 극중인물)’란 배역을 연기하는 아이돌그룹 JYJ의 김준수가 콘서트에서 <엘리자벳>의 음악 넘버 6곡을 미리 선보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실베스터 르베이가 작곡한 음악은 팬 카페 회원 20만명을 가진 김준수의 팬들을 통해 먼저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음악의 매력은 팬들이 먼저 알아봤다.
그 다음은 ‘엘리자벳’이라는 역사인물에 대한 인지도 제고였다. 한국인들은 ‘엘리자벳’ 하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가 아닌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를 떠올리기 일쑤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벳으로 캐스팅된 뮤지컬배우 겸 가수 옥주현이 오스트리아 현지를 직접 찾아가 쉔부른 궁전 내에 거주하는 <엘리자벳>의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이 지상파 방송을 탔다. 또 엘리자벳 증손녀를 직접 만나 황실문화와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엘리자벳 황후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지 합스부르크라는 특정 황실의 이야기에 그쳤다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겠죠.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자유로워지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과 꿈을 노래하기에 관객들이 엘리자벳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마음을 울린 것 같아요.”

성공의 꿈 하나로 달려온 ‘오뚝이 인생’
유럽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엄홍현 대표의 인생은 마치 오뚝이 같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충북 제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 유복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수성가만이 희망이었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를 본 후 마음 깊숙이 ‘성공한 CEO’의 인생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성공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쌀 배달하는 일이 그의 첫 직업이었다. 하지만 쌀 배달만 해선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친구 세 명과 논현동에서 포장마차 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조금 벌자 소위 구역을 담당하는 깡패들의 견제가 들어왔다. 결국 어렵사리 일군 포장마차 자리를 모두 뺏기고 새로이 초당순두부 판매에 나섰다. 슈퍼마켓에 두부를 납품하며 영업하는 일이었다. 그는 특유의 사교성과 친절함으로 두부시장에서도 이름을 얻어나갔다. 그런데 영업실적이 두드러지자 기존 영업조직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목으로 얻어맞아 기절하는 사건까지 당했다. 그 일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수중에 1억원 정도의 목돈이 생겼다.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색깔 있는 정보지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대학문화 정보지인 <뉴스언더웨이>를 창간하고 기획, 영업, 광고유치, 취재까지 혼자 많은 일을 담당했죠. 대기업 광고주를 잡는 게 쉽지만은 않더군요. 신문에 광고가 없으니 1년6개월을 버티다 부도가 났죠.”
그는 부산에 사는 선배의 도움으로 <부산문화기획>이란 회사를 차렸다. 본격적인 문화사업은 부산에서 처음 이뤄졌다. 콘서트 유치, 바다축제 기획, 부산 메가박스, 현대백화점, 밀리오레 오프닝이벤트 등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기획 일은 마냥 재미있고 신나기만 했다. 그는 무주리조트 스타 스키캠프 총괄제작을 하며 당시 톱스타들과 인연을 맺었다. 연예인 콘서트 기획을 주로 했지만 돈을 벌려면 하늘의 운도 함께 따라야 한다는 걸 알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매년 오던 눈이 그 해는 유난히 이상기온으로 따뜻해지면서 공연이 취소되는 악재가 이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투자자를 찾았다. ‘해피캠퍼스’의 김정태 사장을 찾아갔다. ‘나 좀 믿고 투자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10억원이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투자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김정태 사장은 ‘엄홍현’이란 사람 하나만 믿고 턱 하니 10억원을 투자했다.
그는 공연제작의 꿈을 안고 뮤지컬 <드라큘라>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신성우 주연의 체코뮤지컬 <드라큘라>는 4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지만 18억원이라는 빚만 떠안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창작뮤지컬 <네버엔딩스토리>마저 적자를 내고 말았다.
결국 회사를 정리하고 낭인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에게 지인 세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냐? 다시 일어서자”면서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은 인생공부를 위해 지불한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지인들과 함께 이틀간 밤샘 토의를 거친 후 국내 뮤지컬 시장의 틈새시장을 개척하자는 결론을 냈다. ‘한번 망한 사업으로 재기하자’는 집념이 생기자 그때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섣불리 사무실을 차리지는 않았다. 서울 광화문 인근 커피숍에서 노트북 하나와 전화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유럽 뮤지컬 시장 개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무모한 열정만 갖고 도전했던 과거에 비하면 신중한 선택이었다. 이제 그 결실도 점차 맺고 있다. 비엔나 뮤지컬 <엘리자벳>의 흥행으로 한층 자신감도 커졌다. 앞으로 무대에 올리게 될 <황태자 루돌프>, <레베카> 역시 EMK뮤지컬컴퍼니를 대표하는 간판 레퍼토리로 만들어낼 작정이다.
“요즘 사람들이 저에게 ‘너, 뮤지컬로 돈 얼마나 벌었냐’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해요. 저는 이제 돈으로 뮤지컬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투자자에게도 뮤지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자하지 말라고 하죠. 이익이 생기면 총책임자로서 150명이 넘는 스태프를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다음 작품도 준비해야 하죠. 사랑과 열정 없이 단지 수익이 목적이라면 이 사업을 할 수가 없어요.”
한국 뮤지컬시장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
그는 최근 꿈이 바뀌었다. 관객에게 웃음과 희망과 행복을 주는 공연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문화를 만들자는 목표다. 그러기에 관객들의 글과 평을 따로 모아 앙코르 공연하는 데 꼭 참고하는 편이다.
“고집이요? 있죠. 가상의 캐스팅을 혼자 하곤 하죠. 그런 다음 공식 오디션을 보고 나면 제가 캐스팅한 인물들이 거의 그 역할을 맡는다는 거예요. 물론 술을 마시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네가 왜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세뇌를 하기도 하지만요.(웃음)”
배우 캐스팅에도 남다른 안목이 있는 그는 배우들과도 형, 동생으로 지낼 만큼 돈독한 친분을 자랑한다. “지금 창작뮤지컬 세 편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EMK스럽다’고 하더군요. 조만간 공개할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갑자기 EMK라는 회사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다. 별 생각 없이 혹시 ‘유럽 뮤지컬 코리아’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그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답한다. “엄(E)홍현이 한국(K)의 뮤지컬 시장에서 최정상의 산(M)에 오른다는 제 의지를 담았어요.” 어쩌면 ‘EMK스러운 것’은 ‘엄홍현스러운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열정과 도전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뮤지컬에 홀려 이걸 사랑하는지조차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하지만 이제 깨달았어요. 제가 뮤지컬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요.”

1973년 강원 영월 출생. 95년 대학문화정보지 <뉴스언더웨이> 사무총장을 거쳐 97년 <벤처2001> 대학연합 이사, 99년 <IBB 엔터테인먼트>이사, 2002년 <부산문화기획>이사, 2004년 <다인컬쳐> 공동대표를 역임한 후 2009년 <EMK뮤지컬컴퍼니>를 설립해 대표 겸 프로듀서로 <모차르트>, <엘리자벳>, <몬테크리스토> 등을 소개하면서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유럽 뮤지컬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