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체 인수·합병(M&A) 시장에 큰 장이 섰다. 업계 5위권인 동양생명이 매물로 나왔는가 하면, 글로벌강자인 ING생명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법인을 매각하기로 하고, 인수자를 찾고 있다. 여기에 삼성생명, 대한생명, KB금융지주가 뛰어들었고, 녹십자생명(현 현대라이프생명)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이 생보사를 추가 인수하기 위해 탐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보업체 M&A 움직임을 따라가 본다.
- 동양생명(왼쪽)과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인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 동양생명(왼쪽)과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인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20·21일 이틀간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한국거래소로부터 동양생명 인수 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받았다. 이에 대해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하이스코, 현대위아, HMC투자증권, 현대비엔지스틸 등은 일제히 “동양생명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의 녹십자생명(현 현대라이프생명) 인수설이 돌 당시 한국거래소는 현대차그룹의 모회사인 현대차에 조회공시를 요구해 “녹십자생명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후 다른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기아자동차·현대커머셜을 통해 녹십자생명을 전격 인수했다. 한국거래소는 그 당시 공시에 허점을 노출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에 무더기로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은 그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부인으로 동양생명 인수설은 단지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생보업계에서는 여전히 현대차그룹의 동양생명 인수전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는 녹십자생명 인수 당시에도 팀을 꾸려 인수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현대차그룹이 계속 부인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시의 주인공인 동양생명은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ING생명에 이어 업계 5위권을 달리고 있어 생보업계에서는 강자로 통한다. 지난해말 기준 자산규모는 14조원이고 2010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의 순이익은 1622억원이다. 동양생명은 상품 브랜드인 ‘수호천사’로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대주주는 57.6%의 지분을 갖고 있는 보고펀드로 업계에서는 동양생명의 인수가격이 1주당 2만5000원 안팎, 총 인수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우 보고펀드 공동대표는 “일반기업의 청산가치라 할 수 있는 계리가치가 주당 1만9000원이기에 여기에 20~30%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지난 3월16일 기준 동양생명 주가는 1만5000원이다.

현재 드러내놓고 동양생명을 노리는 곳은 대한생명과 푸르덴셜생명이다. 삼성생명도 동양생명 인수를 검토하긴 했으나 현재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동양생명의 수호천사 이미지가 상당히 좋고, 오리온제과(옛 동양제과) 초코파이를 통해 얻은 따뜻한 브랜드 이미지도 만만치 않다”면서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계속 가져가려면 합병하지 않고 두 개의 생보사를 병립시켜야 하는데, 시너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 삼성생명은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 삼성생명은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대한생명, 동양 인수시 점유율 19% 육박

이에 비해 대한생명은 동양생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삼성생명에 이어 업계 2위를 지키고 있는 대한생명은 2020년 신계약 부문 시장점유율 1위라는 중장기 전략목표를 세우고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13년까지를 삼성생명과의 격차 축소 및 본격 경쟁을 위한 도약 준비기간으로 정하고 영업력 강화와 성장기반 구축 전략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말 기준 대한생명의 자산규모는 67조원으로 삼성생명의 155조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빠르게 키울 필요가 있다. 동양생명이 대한생명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인 셈이다. 게다가 동양생명을 인수하면 시장점유율도 13.5%(지난해말 기준)에서 18~19%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대한생명의) 동양생명 인수 의지는 강하나 현재 보고펀드 측에서 생각하는 가격대가 너무 높다”면서 “인수전에 최종적으로 참여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생보업계 관계자도 “대한생명과 동양생명은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아 높은 가격대에 동양생명을 인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자금으로 영업을 확대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푸르덴셜생명도 대한생명 못지않게 인수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르덴셜생명은 그동안 한국시장에서 중견 강자로 통했으나, 메트라이프·라이나·AIA·알리안츠·PCA생명 등 다른 외국계 생보사에 밀리면서 시장점유율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당 인수가격을 무려 2만7000~2만8000원에 제시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서 돌고 있을 정도로 공격적으로 인수전에 임하고 있다. 이 인수가격은 지난 3월16일 주가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일단 동양생명 인수전에는 대한생명과 푸르덴셜생명 2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동양생명은 지난 3월23일 본입찰을 실시했고, 이후 가격 조정과 세부 인수조건 협상 등을 거쳐 이르면 4월쯤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오는 7월 매각 절차를 마무리하게 된다.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전에는 KB금융지주를 필두로 해 삼성생명, 대한생명이 뛰어들 태세다.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해외보험사 기준 AIA생명, 푸르덴셜생명, 알리안츠생명에 이어 수입보험료 4위 생보사다. 현재 한국·일본·말레이시아·홍콩·중국·태국·인도 등 7개국에서 영업 중이며, 탑5 안에 드는 지역은 한국과 말레이시아다. 특히 한국에서는 외국보험사로서는 1위, 전체 생보사 중 4위로 시장점유율은 약 5%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ING그룹은 유동성 보강을 위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을 매물로 내놨지만 일괄 매각할 것인지, 국가별로 나눠 매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의 매각 가격은 6조~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10조원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 법인만 독자적으로 매각할 경우 3조~4조원대는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ING생명은 아직 매각 절차 등을 확정하지 않았으나 올해 상반기 중에는 입찰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생보업계에서는 녹십자생명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을 동양생명 인수전에서 복병으로 보고 있다.
- 생보업계에서는 녹십자생명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을 동양생명 인수전에서 복병으로 보고 있다.

KB, 비은행부문 강화차원서 ING생명 ‘군침’

ING생명 한국 법인의 경우 동양생명에 비해 보장성보험 비중이나 전문설계사 위주의 판매채널 등이 상대적인 강점으로 평가되면서 비은행 부문 육성이 필요한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 열세인 KB금융지주(KB생명)는 인수하면 바로 업계 4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한국 법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생명보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생보사 인수를 추진해왔다. 다만 출자여력 등을 감안해 한국법인만 인수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월17일 “ING생명이 한국법인만 따로 판다면 입찰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대한생명과 삼성생명도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 의지를 갖고 있다. 대한생명은 동양생명 인수 실사 작업에 이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역시 실사를 통해 인수 가능성을 타진할 방침이다. 대한생명은 지난 3월2월 공시를 통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없다”면서 인수전 참여를 기정사실화했다.

삼성생명도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법인을 제외한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2월23일 한국거래소의 ING생명 인수설 조회공시 요구에 다음날인 2월24일 “해외사업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ING생명 아시아 ·태평양사업 인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검토 중이나, 현재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답변했다. 삼성생명은 최근 2020년 글로벌 생보업계 15위 성장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기존 중국, 태국사업을 강화하고 아시아 및 선진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산업의 성장한계를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복안이다.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은 해외시장 확대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법인에만 관심을 보이는 KB금융은 삼성생명과 공동 인수할 수도 있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어윤대 회장은 지난 2월22일 “삼성생명의 제안이 있다면 공동으로 ING생명 아·태사업부를 인수할 뜻이 있다”고 했다. 즉, 한국법인은 KB금융이, 나머지 법인은 삼성생명이 나눠 갖는 방식이다. KB금융은 공동이든 단독이든 한국법인에만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삼성생명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대한생명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한생명이 동양생명에 이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까지 인수한다면, 시장점유율을 23~24%로 끌어올려 점유율 26%인 삼성생명과 2강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대한생명의 움직임 때문에 삼성생명이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 인수전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만, ING생명 아시아·태평양법인을 인수하는데 6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해 대한생명은 인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대한생명이 ING생명 한국법인만을 떼어 인수하거나 아예 ING생명을 포기하고 동양생명에만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생명에 이어 ING생명 한국법인까지 인수할 가능성은 낮게 보는 것이다.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인수전에 뛰어든 생보사들은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면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매각방안이 나오지 않은 ING생명은 물론이고 동양생명에 대해 몸값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양측의 희망가격이 너무 괴리가 심해 계약 체결까지 갈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이재우 대표는 동양생명 매각과 관련, “가격이 맞으면 팔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각하지 않고 더 버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대표는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대한생명과 푸르덴셜생명 외에도 실사를 하지 않고 뛰어드는 곳이 있을 것”이라며 제3 후보의 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보고펀드측이 본입찰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대한생명·푸르덴셜생명 외에 다른 인수자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M&A 타결이 상당기간 늦춰질 수도 있다. 특히 지난 2월21일 동양생명 인수 부인공시를 낸 현대차그룹이나 신한금융지주·AIA생명 등 의외의 복병들이 막판에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동양생명·ING생명 인수전 경쟁이 과열돼 가격이 치솟을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대한생명은 동양생명과 ING생명 모두 인수 의사를 갖고 있다.
- 대한생명은 동양생명과 ING생명 모두 인수 의사를 갖고 있다.

 

   Tip. 매각되는 보험사와 계약보험 처리는?  

계약이전제도에 따라 인수회사에 그대로 승계

매각될 동양생명, ING생명에 가입한 보험계약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혹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동양생명의 계약건은 330만건이고, ING생명은 190만건에 달한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인수하는 보험사에 고스란히 승계된다. 따라서 가입자들은 계약을 해약해 환급금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

금융당국은 ‘보험계약이전제도’와 ‘예금자보호제도’를 통해 보험가입자를 보호하고 있다. 가령 보험사가 다른 보험사에 매각되거나, 또는 보험사간에 보험계약을 매각·인수하는 절차가 진행될 경우 보험계약이전제도가 적용된다.

보험계약이전제도란, 한 보험사의 보험계약을 다른 보험사가 그대로 인수하는 제도를 말한다. 보험료나 보험금, 보장내용 등이 고스란히 승계되기 때문에 계약이 이전되더라도 계약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 보험사가 단순히 매각되는 경우는 보험회사의 대주주만 변경되는 것이므로 역시 보험 계약에 영향이 없다.

보험사의 파산 우려가 커지면 금융위원회가 보험계약 이전 명령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2001년 한국생명이 옛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이후 보험계약은 대한생명으로 고스란히 이전됐다.

그러나 보험사 파산시에 보험 계약을 인수할 주체가 없어 금융위로부터 보험계약이전 인가를 못 받는다면 예금자보호법에 의한 예금자보호제도를 적용해 보험은 해지되고, 보험 해지환급금 기준 원리금 합산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해준다. 다만, 보험 역사상 지금까지 보험계약자가 예금자보호법을 적용받은 경우는 없다. 지난 2003년 1월 리젠트화재보험은 서울지방법원에서 최종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 보험사의 계약은 삼성화재·동부화재 등으로 분산돼 승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