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하나에 모든 것이 하나씩만 존재하는 섬, 공항 하나, 학교 하나, 전망대 하나, 아름다운 비치 하나,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다본 로타섬은 마치 무인도와 같았다. 코발트빛 바다가 연달아 이어지고, 야자수 늘어진 해안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낭만을 꿈꾼다. 모든 것이 한가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운 섬. 그 평화의 섬에서 삶의 진정한 휴식을 찾았다.

화이트 비치와 열대정글의 고향, 로타 아일랜드

하늘 위에서 공항으로 랜딩하는 순간, 과연 이 작은 섬에 어떤 새로움이 존재할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로타섬에 상륙했다. 공항을 빠져 나와 로타섬의 오직 하나뿐인 리조트인 로타 리조트로 향한다. 길은 호젓하기만 하고 모든 볼거리와 관광지는 대개 30여분 내에 다다를 수 있다. 공항, 테테토 비치, 베테랑 비치, 시내 중심가인 송송 빌리지, 일본군 포대진지, 버드 생추어리 등 로타 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는 모두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시리도록 푸른 밤하늘, 남태평양의 그 묘한 밤을 잊을 수가 없다. 황홀한 기억을 지우기도 전에 새벽은 다가온다. 남국 야자수 아래의 낭만을 품에 안고,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의 푸른 하늘은 밤의 그것과도 확연히 차이를 가져온다. 그것은 쪽빛바다처럼, 진한 잉크색과 같은 군청의 강렬함이다. 섬 북쪽 지대는 남쪽 지대에 비해 고도가 높아 모든 곳에서 바다가 시원스레 보인다. 태평양이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아주 낯설고 참으로 먼 곳에 와있음을 실감한다.

구름 두둥실 어우러진 파란 하늘의 축복 속에 드라이브에 나선다. 도시의 지루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 일탈과 한적한 평화를 원한다면 숨어 지내기에도 그만인 곳이다. 섬 서쪽으로 이어지는 작고 아담한 비치에는 방갈로 홀로 자리한 야자나무 아래, 고요한 파도 소리만 찰랑거린다. 산호조각이 으깨어져 펼쳐진 화이트 비치, 테테토 비치의 야자수 아래로 고요한 남국의 행복한 바다 소음들이 울려퍼진다.

베테랑 비치를 지나면서 작은 둔덕이 나타난다. 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그곳은 사이리가이 곶. 그 언덕을 지나면 저 멀리 웨딩 케이크 산 아래로 아담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로타 아일랜드 유일의 다운타운이다. 이름도 사랑스러운 송송 빌리지. 흥겹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다녀도 좋은 한적한 바닷가의 시골 마을이다. 학교 하나, 은행 하나, 피자 하우스 하나, 일식 집 하나, 모두 독자적인 색채를 지닌 자신만의 얼굴색으로 딱 하나씩 어우러져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송송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송 빌리지의 오밀조밀한 풍경이 사랑스럽다.
- 송송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송 빌리지의 오밀조밀한 풍경이 사랑스럽다.
1. 하늘 위,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로타 아일랜드 북단 해안. 2. 로타 아일랜드를 떠난 경비행기는 형제의 섬, 티니안 상공을 날고 있다. 3. 30인승 프리덤 에어, 세스나기의 기내 풍경. 4. 보랏빛으로 황홀하게 물들어 가는 로타 공항
1. 하늘 위,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로타 아일랜드 북단 해안.
2. 로타 아일랜드를 떠난 경비행기는 형제의 섬, 티니안 상공을 날고 있다.
3. 30인승 프리덤 에어, 세스나기의 기내 풍경.
4. 보랏빛으로 황홀하게 물들어 가는 로타 공항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마을을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송송 룩 아웃(Look Out)에 올라본다. 마을 뒤편 좁게 난 골목길과 낮은 산길을 돌아 한 10여분 비포장도로를 올라가면, 양쪽으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바다가 일품인 송송 빌리지 전망대에 도착한다. 순간 한 마리 갈매기가 되어, 그대로 바다 위를 날고 싶은 심정이 드는 곳. 마을을 굽어보는 십자가 아래로, 아담한 송송 빌리지의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마을 이곳저곳을 세세히 관찰할 수 있다. 소방소, 경찰서, 학교 운동장의 소란스러움까지 남태평양의 작은 섬마을 이야기가 파도소리처럼 나지막이 들려온다.

이 작은 섬에 정글도 존재한다면 과연 믿을까? 호기심이 발동하자 섬의 남쪽, 정글 지대를 향해 차를 몰았다. 2차대전 일본군 포대 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정글이 이어진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길을 덮치고, 열대 우림의 정글 속으론 새소리와 산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굽이진 산속을 돌고 돌아 좁고 습한 정글을 한참을 달린다. 돌 밭과 비포장 길을 교대로 달리자 진흙길이 나타났다. 두려움과 함께 예상했던 대로 차량은 깊은 진흙탕에 빠져 헤어나질 못한다.

통신두절, 인기척도 없는 정글에서 길을 잃었고 차는 진흙 속에 빠져 있다. 작은 공포감이 밀려오지만, 이내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뿐.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어야 마을이 나타날 듯한데, 차를 버리고 무작정 SOS가 가능한 송송 빌리지를 향해 걷는다.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고, 따가운 태양 아래 좁고 험한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을까, 저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달려온다. 원주민이 나타난 것이다. 차량을 세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차량이 있는 곳을 가보자며 신속히 달려준다.

현장에 도착했으나 자신의 차량도 수렁에 빠질까 원주민도 난감해 한다. 원주민을 겨우 설득, 로프를 연결해 차량을 견인해낸다. 30여분의 사투 끝에 드디어 차량은 살아 나왔다. 지도와 내비게이션 없이 무모하게 달린 탓에 정글에서 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옥곡 폭포와 아페푸냐 곶이 있는 오션뷰 전망대 인근 오션 로드 쪽의 좁고 가파른 바닷길을 조심해야 한다. 습한 진흙길에 한 번 빠지면 차량을 꺼내기조차 힘든 곳이다. 공포감을 불식시키고 전열을 가다듬어 길을 나선다. 비포장 길을 달려 마리록 곶과 하이나 곶을 지나 섬 북단 버드 생추어리로 향한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 로타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서식하는 온갖 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바다 가까이 좀더 지척에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어, 직접 내려가 보는 것도 좋다. 10여분 가량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좁은 정글이 펼쳐지고, 정글을 지나 바다가 나타나면 사람의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순간은 장관이다.

괌, 혹은 사이판에서 30인승 중형 세스나기로 날아가게 되는 로타 아일랜드, 하늘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조각배처럼 보이는 작은 섬이다. 어둠이 내리면서 로타 리조트 내 컨트리 클럽의 퍼시피카 레스토랑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인다.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면, 누구나 남국의 코코넛 트리의 아름다움에 취할 것이다. 남태평양을 향한 테라스 티키티키에서 펼쳐지는 선셋 바비큐와 시원한 맥주 맛은 오래도록 기억의 촉수에 남을 것이다.

깨알 같은 산호 조각이 끝없이 펼쳐진 화이트 비치와 오르락내리락 작은 구릉들, 열대 정글과 새들의 낙원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 로타. 이름처럼 여성스럽고 앙증맞은 이 섬은 그야말로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골프 마니아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신혼 여행자는 물론,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여행자라면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에서 바다와 이야기하고, 하늘의 별들과 친구가 돼 속세의 온갖 때를 말끔히 씻어내도 좋을 것이다.

1. 송송 빌리지 바로 앞바다, 소산하야만 전망대 앞으로 시원스러운 바다가 펼쳐진다. 2. 끝없이 이어지는 로타섬의 정글. 3. 정글 골짜기에는 산정상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로 요란하다. 4. 일본군 진지였던, 일본군 포대터. 5. 파란 하늘 아래, 딥 블루 승용차로 로타 아일랜드를 누빈다.
1. 송송 빌리지 바로 앞바다, 소산하야만 전망대 앞으로 시원스러운 바다가 펼쳐진다.
2. 끝없이 이어지는 로타섬의 정글.
3. 정글 골짜기에는 산정상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로 요란하다.
4. 일본군 진지였던, 일본군 포대터.
5. 파란 하늘 아래, 딥 블루 승용차로 로타 아일랜드를 누빈다.
- 테테토 비치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바다, 파란 하늘 아래 뭉게구름이 고요히 말을 건넨다.
- 테테토 비치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바다, 파란 하늘 아래 뭉게구름이 고요히 말을 건넨다.

Tip. 여행길라잡이

* 가는 법

한국에서 사이판이나 괌으로 날아가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다. 바로 국내선 터미널에서 로타행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다. 하루 오전, 오후 두 편 운항하는 프리덤 에어나 컨티넨탈 항공편을 이용하면 한 시간 만에 로타에 도착한다. 공항이나 로타 리조트에서 아일랜드 랜터카와 버짓, 에이비스 등의 렌터카를 쉽게 빌릴 수 있다.

* 로타 도로정보

섬 북서쪽에 위치한 로타 공항에서부터 서쪽 도로는 잘 포장된 해안도로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기도 하지만, 유명하고 아름다운 비치가 있어 드라이브하기에는 최고의 지역이다. 로타 리조트나 로타 호텔을 나서면 곧 바다가 이어진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포장이 잘 돼 있으므로,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코랄가든에서부터 이어지는 섬 동쪽은 열대 정글과 라테스톤 채석장의 돌길로 이어지므로 사륜 구동 차량을 이용하거나, 세단일 경우 각별히 조심해 운전할 필요가 있다.

함길수 자동차 탐험가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탐험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 탐험 전문팀 지오 챌린지(Geo Challenge)를 이끌고 있는 그는 문화, 모험에 포커스를 맞춘 영상작업을 통해 우리 삶의 문화 지평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SBS와 함께 쌍용자동차 무쏘를 타고 알래스카에서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에 이르는 7만8000㎞의 로키, 안데스산맥 대 탐험을 다녀왔으며, 지난 20여 년간 동남아, 유럽, 시베리아, 북미, 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등을 탐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