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무가구 전문기업이다. 1983년 창립 당시부터 사무공간을 위한 시스템 가구시장을 개척하며 줄곧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퍼시스가 사무가구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디자인 차별화가 있다. 제품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연구·개발(R&D)센터의 이명수 소장(상무)으로부터 퍼시스의 디자인경영에 대해 들었다.

한국 가구업체들은 원가 경쟁 우위의 중국, 그리고 앞선 디자인력의 유럽과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이다. 그럼에도 퍼시스는 시장 선도형 전문제품 등을 기반으로 매년 10%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국내 사무가구시장 점유율은 50%를 웃돈다.

이명수 상무는 “디자인 경쟁력으로 보면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 격차는 이른 시일 내에 메워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을 100이라고 하면 유럽은 135, 미국은 133입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셈이죠. 디자인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전문인력 양성 등을 꾸준히 한다면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희망의 일부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는 유수의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수상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퍼시스는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불리는 ‘레드닷 디자인상’, ‘IDEA상’ ‘iF 디자인상’을 모두 받았다. 3대 디자인상 수상은 국내 가구회사로는 유일하다.

해외시장에서의 선전도 퍼시스의 디자인 경쟁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퍼시스는 2009년 중동시장 공략을 위해 두바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미국·중국 등 50여개국에도 사무가구를 수출해왔다. 특히 올해부터는 중국과 유럽 등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보다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4000만달러 수준이던 수출액을 올해 5000만달러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다.

사무가구의 역사 이끌어

퍼시스가 걸어 온 길은 한국 사무가구의 역사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무가구는 일의 효율과는 거리가 먼 구색 맞추기였다. 사무실이니까 당연히 사무가구를 들여놓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철재였다. 사무가구는 단지 가구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에 퍼시스는 전문적인 사무가구를 들고 나왔다. 책상과 의자를 하나로 묶고, 책장과 서랍장 등 일련의 체계를 갖췄다. 단순한 가구를 넘어 생동감 있고 효율적인 사무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 사무가구’를 선보인 것이다.

퍼시스의 시스템 사무가구는 새로운 소재와 차별화된 디자인 등으로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시장 판도가 단숨에 바뀌었다. 당시 철재 사무가구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동양강철이 어느 순간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1990년대 초에는 주요한 사무용 기기로 등장한 컴퓨터나 프린터 등을 쉽고 편리하게 수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다시 한번 시장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컴퓨터와 모니터, 프린터 등의 배선을 가리고, 편리하게 설치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1997년에 선보인 ‘퍼즐’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사무가구의 표준으로 통한다. 뒤가 불룩한 CRT 모니터를 코너에 둘 수 있는 ‘ㄴ’자형 책상 디자인은 당시엔 새로운 시도였다. 지난 2007년 출시된 ‘엑스페이스(expace)’ 역시 밝은 색상과 유연한 레이아웃을 고려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사무가구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퍼시스의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FX-1 시리즈는 개인 수납을 고려해 실용성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없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FX-1 시리즈는 책상 한쪽 다리를 수납장으로 대체할 수 있고, 파티션 대신 책상 위 수납공간을 활용해 공간을 나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여러 가지 수납품목을 활용해 개개인의 업무 특성에 맞는 사무공간을 만들 수 있고 패널의 컬러 구성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 기업 고유의 특색도 살릴 수 있다.

이명수 상무는 “제품을 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한 결과”라며 “품질을 확보하면서도 가격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하느냐가 퍼시스의 디자인 포인트”라고 말했다.

- 퍼시스의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FX-1의 스케치(왼쪽). FX-1은 복잡한 배선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사내 모든 역량 디자인에 집중

이처럼 퍼시스는 한 발 앞선 제품,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을 출시해 사무가구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 자리매김했다. 또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신규시장 개척’을 통해 극복해 나가고 있다.

공항, 병원, 컨벤션 센터 등으로 목표 시장을 확대해 새로운 성장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퍼시스는 최근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에 따른 기업화 현상에 발맞춰 병원 가구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시장개척의 배경에는 R&D역량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있다. 퍼시스는 일찍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1989년 업계 최초로 설립된 ‘가구연구소’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디자인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퍼시스 디자인의 산실인 연구소에서는 최신 트렌드 분석을 통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시장조사를 통해 수집된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 접목돼 신제품으로 개발된다. 시장조사와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 걸리는 1년6개월을 포함하면 실제 제품 개발기간은 2년을 넘는다.

이 상무는 “디자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기획부터 최종 상품화 결정까지 사내의 모든 역량과 의견을 집중한다”며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구와 관련 정보를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몫이 아니라 회사의 문화로 정착돼 있다.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상품기획서를 통한 제품개발 여부의 판단, 디자인 콘셉트의 적합성 검증, 제품화에 대한 검증 등 크게 세 단계의 품평회를 거친다. 품평회에는 최고경영자(CEO), 최고디자인경영자(CDO), 최고기술경영자(CTO)뿐만 아니라 영업, 마케팅, 생산, 유통 등 비 디자인팀까지 참여한다. 공개품평을 실시해 사내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킴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사무가구는 구매자와 최종 사용자가 다르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를테면 총무부에서 구매결정을 하고, 영업부에서 사용하는 식이죠. 그래서 이 둘을 모두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구매자는 아무래도 가격에 민감하고, 사용자는 편의성 등을 더 따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무가구에서도 디자인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어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논리다. 퍼시스가 추구하는 디자인 원칙은 ‘실용성’과 ‘심미성’이다. 아름다우면서도 편리하고,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무가구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무환경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이것이 다시 사무가구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사무가구가 사무환경을 바꿔 일의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퍼시스는 사무환경 컨설팅도 한다. 업무 행태, 공간 사용 방식, 기업 환경 등을 분석해 점수를 매기고,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퍼시스가 가구를 팔았으나 한국의 사무환경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상무는 “사무가구는 사무환경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다”며 “일하는 방식, 회의하는 방식 등이 바뀌면 결국 사무가구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무가구에는 문화적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예전에는 직급에 따라 데스크의 크기도 달랐어요. 사원의 책상 크기는 120cm, 과장은 140cm, 부장은 180cm로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거의 두 가지 패턴만 나옵니다. 그만큼 사무환경이 평등해졌다는 의미이지요.”

그가 요즘 고민하는 것도 ‘가구 디자인’이 아니라 ‘미래 일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IT기업이 개최하는 미래기술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IT기술 발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까운 미래의 사무환경은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IT와 가구 분야가 어떻게 만나 변할지는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있어요.”

디자인 투자 없는 가구업계

가구를 ‘만들기’는 쉬워도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가구업계에도 ‘디자인 베끼기’가 심각하다. 후발업체들이 디자인 선도업체의 신제품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가구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높습니다. 시도조차 안 해요. ‘짝퉁’을 만들었다간 업계에서 바로 퇴출당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베끼기가 거의 관행화돼 있어요. 신제품을 내놓으면 바로 다음 달 복제품이 나올 정도죠. 무엇보다 죄의식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죠.”

이런 상황에서도 퍼시스는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를 다지기 위해 디자인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가구업체들이 디자인까지 아웃소싱하는 ‘제조자 개발생산방식(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을 통해 유통회사로 변신하고 있지만 퍼시스만은 자체 디자인과 생산을 고수하고 있다.

“퍼시스는 디자인 차별화를 통해 연매출 27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집니다. 디자인은 퍼시스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이명수 상무는…

1962년생으로 87년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87년 퍼시스에 입사해 영업·구매파트, 미국 LA지사장, 연구1팀장, 사무환경연구팀장을 거쳤다. 2003년 임원 승진 후 일룸사업총괄, 해외사업총괄을 역임하고, 2010년부터 R&D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