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경기도의 A사는 최근 상당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발단은 올 초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인 성모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비롯됐다. 4개의 자회사를 보유한 이 회사의 주식가치평가액은 240억원. 대표이사가 갑자기 사망하자 유가족들에게 상속세로 93억원이 부과됐다. 문제는 유가족들이 보유한 개인자산을 다 합쳐봐야 15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회사 관계자는 “고인께서는 창업 후 회사를 키우는 데만 열중해서 정작 본인 재산 관리는 소홀했던 데다 자식들도 상속에 대해 전혀 대비치 못한 게 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한 유가족은 회사로부터 수익을 배당받아 납부할 생각도 가져봤지만 이럴 경우 회사 현금 흐름이 악화되고 배당에 따른 세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결국 유가족은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앞으로 5년간 나눠서 내기로 결정했다. 이 사례는 가업승계 전략을 세우는 게 자신은 물론 나중에 후손들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중기CEO
“상속·증여세 낼 돈 없어 걱정”
설립된 지 반세기를 넘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가업승계는 이제 대·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중요한 화두가 돼가고 있다. 창업주에서 다음세대로 가업을 안정적으로 넘기는 것은 단순히 부를 대물림하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체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가업승계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세연구원과 공동으로, 지난해 11월 전국 중소기업 CEO 3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가업승계 과정에서 CEO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응답자의 36.4%가 ‘법적·제도상 제약’, 35.1%가 ‘후계자의 역량부족’을 꼽았다. 특히 현재 가업승계를 진행하거나 계획 중인 기업 CEO 10명 중 7명 이상(75.9%)이 ‘법적, 제도적 제약’이 가장 걱정된다고 답했다.
그중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 증여세는 가업승계를 앞둔 경영자에게 가장 큰 부담거리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 CEO들은 상속세 및 증여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이유로 ‘현금 등 납부에 필요한 기타자산 부족’(48.6%), ‘보유지분으로 세금 납부 시 경영권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20.0%) 등을 들었다. 이들은 현재대로 세금을 납부하고 가업을 잇다간 앞서 설명한 주방용품 업체 예처럼 자금 압박에 내몰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창호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전략센터장은 “상당수 기업인들이 후손에게 일찍부터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경영권을 넘겨받아 세 부담을 줄일 것인지까지는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금융권 PB센터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고객들을 위해 가업승계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이 발빠르게 나섰다. 삼성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고객들에게 가업승계와 관련한 1대 1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올해 본격 출범한 PWM 본부 내 가업승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부서를 신설해 가동 중이다. 중소기업 금융이 강점인 IBK기업은행도 PB서비스 윈클래스(Win Class)를 지원하는 PB고객부 자산컨설팅팀에서 가업승계와 관련해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상당수 은행, 증권, 보험사 PB센터마다 고객 요청이 올 경우 전담 내지는 제휴 세무사를 통해 가업승계 정보를 제공한다.
공공기관 중에서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자체 내 가업승계전략센터를 구성해 놓은 상태다. 현재 가업승계전략센터에서는 가업승계전략과정과 차세대 CEO 양성과정 등 두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가업승계전략과정은 1년에 두 차례씩 30명을 선발해 2박3일 합숙하며 가업승계와 관련해 압축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다른 프로그램인 차세대 CEO 양성과정 역시 1년에 두 차례씩 16주 과정으로 기업경영전략과 관련해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가업승계컨설팅은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이 밖에도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들이 보다 손쉽게 가업을 승계하도록 산하에 가업승계기업협의회를 구성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금융권 가업승계 컨설팅 지원 개시
가업승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누가 가업을 잇느냐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점과 절차, 증여받은 사람의 처지에 따라 과세 방법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단순증여가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초창기 많은 기업들이 이 방식을 통해 가업을 후대에 넘겨줬다. 쉽게 말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개인사업의 경우 사업용 고정자산, 법인 사업자의 경우 회사 주식)을 단순하게 증여하는 방식인데 이때 증여재산 규모에 따라 10~50%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가령 중소기업 사장인 A씨가 자녀에게 50억원을 증여한다면 부담해야 할 증여세는 18억2250만원이다.
초창기 상당수 기업들의 승계 방법이 이랬다면 여기서 발전해 등장한 것이 후손이 소유한 회사에 증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후손 개인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법인에게 증여하게 됨으로써 최고 50%인 증여세율이 10~20%인 법인세율로 바뀐다. 이때 넘어가는 회사는 이미 후손이 보유한 법인의 자회사로 간주된다. 앞서 중소기업 사장인 A씨의 경우 단순증여로 하면 18억2250만원의 증여세를 내야겠지만 법인이 넘겨받아 법인세로 전환되면 과세금액은 10억1000만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방식은 지난해부터 크게 줄고 있다. 과세당국이 후손의 법인 가치가 커진 것은 자산이 증여됐기 때문으로 보아, 추가 과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인을 통한 증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절세 폭이 줄어들었을 뿐 상당수의 경우 개인증여방식보다 여전히 내야 할 세금이 적다. 또 개인과 법인에게 세금 부담이 분산된다는 것도 절세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 효과적이다.
증여와 관련된 과세 기준이 강화되면서 최근 많은 2세 기업인들이 사용하는 게 바로 과세특례를 이용한 증여다. 현재 세법에 규정된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법인 소유자가 후손에게 지분을 증여할 경우 기준과세액 30억원에서 5억원을 공제한 뒤 여기에 증여세 특례세율 10%를 적용해 세금을 부과한다. 가령 30억원을 증여한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5억원을 뺀 25억원이 과세기준액이 된다. 이 가운데 증여세 부담세율로 10%만 적용되기 때문에 부과증여세는 2억5000만원이다. 만약 똑같은 30억원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증여를 한다면 부과되는 금액은 특례적용 시보다 6억7000만원 늘어난 9억2000만원이다.
이 방법으로 재산을 증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선대 나이가 △60세 이상 △10년 이상 회사를 경영 △전체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증여받는 후손은 나이가 △만 18세 이상 △국내 거주자여야 한다.
다만 일반 개인 사업자는 이 제도를 통해 재산을 증여할 수 없다. 또 이 방법을 통해 재산을 증여받거나 가업을 승계했다면 증여일 기준으로 5년 이내 해당 후손이 반드시 대표이사직에 올라야 한다. 만약 5년 이내 대표이사에 오르지 않거나 증여일 기준으로 10년 이내 증여받은 주식을 처분하게 되면 과세당국은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위반했다고 판단, 감면된 증여세와 추징금 등을 부과한다.

명의신탁 처리 놓고 중기CEO 고민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제도가 선대가 생전에 미리 가업승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선대의 사망으로 재산 상속이 시작되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의 일정부분을 감면받는 제도다. 이때 과세당국이 보는 기준은 두 가지다. 우선, 재산을 보유한 선친이 △상속 개시 전 10년 중 8년 이상 근무 △회사 지분을 50% 이상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상장사의 경우는 지분 보유율이 30%다. 반대로 재산을 상속받는 후손은 △상속개시일 기준 2년 전부터 해당 기업에 근무 △6개월 이내 임원에 취임해야 해당 기업을 상속받았다고 간주, 특례규정을 적용받는다. 아울러 상속 개시일 기준, 2년 이내 반드시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상속 후 평균 10년간 회사 고용사정이 꾸준히 유지돼야 한다는 점도 주의사항이다. 업종을 변경해서도 안 된다. 가업승계를 위한 증여세 특례와 가업 상속공제를 동시에 적용받을 수도 있다. 선친 생전에 증여받은 재산의 경우 추후 상속재산에 합산되는데 이때 합산금액의 70%는 공제되기 때문에 나머지 30%만 상속세로 부과된다. 이는 사업용 자산 비율이 100%인 경우에만 해당되며 사업용 자산 비율에 따라 가업상속공제율은 달라진다.
최근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명의신탁주식처리 문제다. 과거만 해도 법인을 설립할 때 발기인을 1명 이상 세워야 하다 보니 명의신탁은 일반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현행 세법은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명의자가 실제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 증여세를 부과한다.
명의신탁주식을 처분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다. 절세효과를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명의신탁임을 입증해 과세당국에 신고하는 것. 문제는 절차가 복잡한 데다 국세청으로부터 인정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증여, 매입(양수도), 감자 등 나머지 3가지 방법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A사는 사장인 박모씨와 모친인 정모씨가 지분을 각각 55%, 45%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은 두 명이 보유하고 있지만 회사경영의 전권을 박씨가 갖고 있어 사실상 100% 박씨 소유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박씨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명의신탁된 모친 주식의 명의를 변경해야 하는데 문제는 부과되는 세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이 회사 2001년 말 순자본은 자산 30억원에서 부채 14억원을 뺀 16억원이다. 지표상으로 나타난 실적으로 보면 회사 자본은 많지 않지만 비상장 중인 회사 주식을 평가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회사의 순자산가치는 주당 4만원, 주당 순손익가치는 8만원으로 비상장주식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면 주당 주가는 6만4000원에 이른다. 현재 발행된 주식 4만주를 곱하면 회사 가치가 25억원에 달한다. 지분 45%를 가진 모친의 지분만 11억5000만원이다. 만약 이를 박씨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증여받으면 내야 할 증여세는 3억원이다. 하지만 매각(양수도)을 통해 인수하면 부담해야할 세금은 1억2500만원, 액면가로 감자해 증여세 부담액은 2억5000만원이 된다.
IBK기업은행 PB고객부 안경섭 세무사의 말이다.
“상당수 중소기업 CEO들이 회사를 키우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정작 상속, 증여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 실제로 기업 가치를 평가해보면 본인 생각보다 주식가치가 높게 나오는데, 그에 비해 오너 개인이 보유한 재산은 많지 않다. 따라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차 상속과 증여를 가정해 정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보유한 기업가치가 향상될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조기에 가업을 승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20년째 금속 가공업을 하는 이명수씨(가명)는 세무상 평가된 주식가치 40억원을 증여할 생각이었다. 지난해 이씨가 이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부과된 세금은 9억2000만원이었다. 만약 그가 이 주식을 한해 전 증여했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부담세액은 13억7520만원이다. 1년 사이 무려 4억5520만원의 세 부담을 줄인 것이다. 이씨가 이같이 세금을 줄인 이유는 한 해 사이 회사 영업실적이 악화되면서 주식가치가 30억원대로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이 밖에도 임직원 퇴직연금 납입과 연구 및 인력개발준비금 적립 등으로 주가가 내려갈 경우에도 2억~3억원 가량 증여세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세무전문가들은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