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와 복합기 등 사무기기 전문업체인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은 생산혁신으로 유명하다. 재계의 총수들이 직접 공장을 견학했을 정도다. 최근 이 회사는 또 다른 생산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이다. 이 회사 생산직 직원의 30%가 장애인이다. 현재까지의 실험은 대성공이다. 일반인에 견줘 생산성이 전혀 뒤처지지 않을뿐더러 회사의 이미지도 개선하고 있다. 회사에선 이를 ‘제2의 혁신’이라고 부른다.

서로 돕고 함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모범사원으로 선발된 한 직원의 수상 소감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4월20일 경기도 안산시의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이하 캐논) 공장의 ‘제3회 캐논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은 지속적인 생산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독특한 생산방식인 셀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왼쪽)과 장애인 전용 셀방식 작업장. 셀방식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은 지속적인 생산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독특한 생산방식인 셀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왼쪽)과 장애인 전용 셀방식 작업장. 셀방식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김영순 생산·개발본부장은 이 직원의 소감에 대해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데에 익숙해서 ‘돕는다’는 개념이 희박한데 ‘돕겠다’고 하니 눈물이 났다”며 “장애인 고용을 시작하고 3년 만에 캐논에서 장애인이라는 장벽이 깨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 본부장은 철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장애인 고용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캐논 안산 공장에는 약 60여명의 장애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체 직원 기준으로 약 10%, 생산직만 따지면 30% 안팎이 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장애인 고용 비율에서 캐논에 맞설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 없다. 

‘셀방식’으로 높은 생산성 창출

캐논이 장애인 고용에 나선 것은 지난 2009년의 일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장애인고용확대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직원의 일정 비율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엔 벌금(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기업은 많지 않다. 캐논도 그랬다. 매년 고용부담금을 내고 있었다.

장애인 고용을 꺼리는 이유는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란 선입관이 많이 작용한다. 하지만 캐논의 경우를 보면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생산성이 전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직원들의 생산성은 일반인 직원에 필적한다. 월간 단위로 비교하면 오히려 더 높을 때도 많다. 김 본부장은 “채용 후 3개월 정도 지나니 생산성이 일반인 직원 수준에 이르렀다”며 “캐논의 장애인 직원들은 대부분 청각장애인인데 이들은 손재주가 좋고 집중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는 데에는 ‘셀(cell) 방식’이라고 불리는 캐논의 혁신적인 생산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셀은 소수의 직원으로 구성된 일종의 작업조다. 셀방식은 컨베이어벨트에 따라 여러 사람이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 달리 한 사람이 여러 부품을 조립한다. 컨베이어 방식이 한두 가지의 단순한 작업을 반복한다면 셀방식은 한 사람이 여러 작업을 수행한다.

셀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적인 생산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 방식은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 작업을 한다. 단순한 작업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낮다. 이에 비해 셀방식은 인간의 속도에 맞춘 방식이다. 자신의 속도에 따라 작업을 하면 된다. 협업도 가능하다. 옆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므로 단순반복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셀방식은 대단히 탄력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컨베이어 방식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대응력이 약하다. 제품의 특성에 따라 생산라인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셀방식은 직원 수만 조절하면 돼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생산라인을 바꿀 수 있다. 생산량 조절도 용이하다. 컨베이어가 없으니 공간 활용률도 높아진다.

캐논은 셀방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기종장제도’라는 독자적인 시도를 했다. 기종장제도는 작업 단위를 하나의 회사처럼 만든 것이다. 한 기종을 생산하는 직원들을 모아 한 명의 대표 기종장을 세우고 마치 하나의 독립된 회사처럼 부품 발주에서부터 자재, 기술, 검사, 출하까지 완제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처리하게 한다.

기종장제도는 종전에는 떨어져 있던 관리부서와 생산부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책임감이 높아졌다. 그 결과 재고와 불량률이 떨어지고 생산 효율이 크게 향상됐다. 셀방식만 채택했을 때와 비교해 생산성이 23% 높아졌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배가해 셀방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도 도입했다. 일종의 동기부여 프로그램인 마이스타제도가 그것이다. 캐논은 혼자서 하나의 기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고 품질확인도 할 수 있는 직원에게 ‘마이스타’ 인증서를 부여한다. 생산직에 마이스터가 있다면 관리부서에는 ‘마이다스’가 있다. 생산관리와 자재, 검사, 물류 등 관리 부문의 모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 ‘마이다스’ 인증서를 준다.

마이스타와 마이다스 제도를 도입한 후 캐논의 직원들 사이에는 ‘공부 바람’이 불었다. 마이스타와 마이다스 인증을 받기 위해서다. 직급이 높아도 마이스타와 마이다스 인증을 받지 못하면 대접을 받지 못할 정도로 직원들 사이에서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직원들의 업무 역량이 그만큼 높아진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김 본부장은 “캐논의 셀방식은 재계 총수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 획기적인 생산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생산량은 20배, 생산액은 9배 증가했는데 생산량이 이 정도 늘면 직원은 보통 5배 정도 증원되는 데 비해 캐논의 직원은 2배 증가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고 강조했다.

Mini Interview  김영순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생산·개발본부장

"장애인 고용은 직장생활 중 가장 잘한 일"

김영순 생산·개발본부장은 캐논이 장애인 고용의 모범기업이 되게 한 견인차다. 2009년 생산직에서 장애인 고용을 앞장서 계획하고 추진했다. 그는 캐논의 생산혁신을 설계하고 진화시켜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 고용을 “30년 직장생활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고용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한 준비가 안 돼 있었습니다. 공장이 오래돼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이동 등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어 고민됐습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의사소통이 걱정됐지만 생각을 바꾸니 그것도 별 문제가 아니더군요. 요즘 외국인 근로자 많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지만 큰 지장은 없죠. 외국인하고도 일하는데 청각장애인과 일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 채용 과정은 어떠했나요. 순조로웠는지요.

장애인 채용을 위한 제반 시스템은 생각보다 우수합니다. 장애인고용공단과 자원봉사자 등 인프라가 좋아서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예비 직원들을 뽑은 후 한 달간의 적응 훈련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고용하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면 도와주는 곳이 많으니 두려움이나 걱정은 버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입사 경쟁도 치열합니다. 먼저 입사한 직원들이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려 장애인 사회에서 입소문이 제대로 난 것 같습니다.

-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초기에는 조금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성이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고립된 생활을 해와서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순조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젠 일반인 직원과도 잘 어울립니다. 장애인 직원 셀에서 근무해보고 싶다는 직원이 있을 정도지요. 수화집을 만들어 보급하는 등 회사의 노력도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장애인 직원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때입니다. 입사 전엔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던 장애인 직원들이 요즘엔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 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직장생활을 통해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캐논에 와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하며 결혼하는 직원을 볼 때도 ‘내가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장애인 고용을 주저하는 기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캐논에 와서 잘 적응해 일반인 못지않은 성과를 내고 미래의 꿈을 찾은 장애인 직원들을 보면 ‘이런 감동을 우리만 느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캐논과 같은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100% 정직원 채용해 장기근속 유도

캐논은 생산성이 높은 직원들에게 마이스타와 마이다스 인증을 부여해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고 있다. 장애인 직원 중에서도 2명의 마이스타가 배출됐다.
캐논은 생산성이 높은 직원들에게 마이스타와 마이다스 인증을 부여해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고 있다. 장애인 직원 중에서도 2명의 마이스타가 배출됐다.

셀방식은 장애인 직원들이 회사 생활에 안착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직원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도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 직원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논의 셀방식은 장애인 직원들이 이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장애인 직원으로만 구성된 셀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조성해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6명을 고용해 12명으로 구성된 셀을 만들었습니다. 생산성이 아무래도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더군요. 3개월 정도 지나니 12명으로 충분해져 4명이 남게 됐습니다. 다시 8명을 고용해 또 다른 셀을 만들었죠. 그렇게 장애인 직원이 늘어나 현재 약 6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초기 적응을 돕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도 열었다. 해당 직원은 물론 그 가족까지 초청해 입사환영식을 가진다. 가족들에게 캐논을 소개하고 직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가족들의 반응은 뜨겁다. ‘여한이 없다’는 분위기다. 가족의 지지가 어려운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장애인 직원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유니폼이 대표적이다. 캐논의 유니폼은 2가지다. 왼쪽 어깨에 약지와 중지를 접은 손 모양의 문장이 있는 유니폼과 그렇지 않은 유니폼이 그것이다. 이 손모양은 수화로 ‘사랑합니다’를 의미하며 장애인 직원의 유니폼에 부착한다.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장애인 직원임을 구분하기 위해 견장을 달았습니다.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장애인 직원이 모두 청각장애인이어서 소통을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령 뒤에서 부르는 소리는 전혀 인지할 수가 없는데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무례한 직원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채용 조건도 좋았다. 처음부터 100%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대우와 근무조건 모두 일반인 직원과 동일하게 적용했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과 같은 임무를 주고 같은 효율을 요구하며 같은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현재까지 회사를 그만둔 장애인 직원은 거의 없다. 작전 성공인 셈이다.

회사생활에 적응했을 뿐 아니라 장애인 직원들은 일반인 직원들에게 ‘자극제’ 역할도 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아 ‘경쟁심’을 유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장애인 직원으로 구성된 셀이 매월 진행되는 셀 단위의 생산성 평가대회인 ‘셀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 직원 중에서도 ‘마이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일반인도 3~5년이 걸리는 인증을 3년이 채 안 돼 따낸 것이다.

회사 이미지가 개선되는 효과도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바람직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지는 것이다.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사실에 감동한 고객들이 회사의 전 제품을 캐논으로 교체하는 일도 있다. 장애인 고용이 의외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캐논은 장애인 고용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에 지금보다 6배 큰 신공장이 문을 열면 어차피 직원이 더 필요하다. 이 가운데 상당수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예정이다. 생산뿐 아니라 연구 개발 부문에서도 장애인을 채용해 장애인 고용 비율을 전체의 10~15%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김 본부장은 “장애인 직원 고용은 캐논이 발견한 블루오션이자 캐논의 재산”이라며 “전국에 약 25만명의 청각장애인이 있는데 앞으로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Tip ㅣ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은…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은 사무기기 전문업체로 롯데와 캐논의 합작회사다. 소형계산기부터 잉크젯 프린터, 레이저 복합기, 디지털 상업인쇄 등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관리 비용 절감을 위한 관리 서비스, 보안서비스, 맞춤형 솔루션 등 서비스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1985년 설립돼 올해 창립 27주년을 맞았다. 제품의 대부분은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복합기 누적수출 500만대, 3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내년 신공장 완공을 계기로 의료기기와 자동화 설비 등 신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