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초에 베이징을 다녀왔다. 성장의 후유증 때문인지 만나는 기업마다 인력난을 호소했다.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3~4년 경력자 월 급여가 중소기업인데도 한국 돈으로 3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광고 제작을 하는 우리 거래선은 중국에서 수주하면 한국으로 보내 제작한다고 했다. 전에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발주했는데 이젠 그 방식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거꾸로 됐다. 중국의 높아진 인건비와 위안화의 강세 탓이다.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4월에 스페인을 다녀왔다. 표면상으로는 평안했다. 축구장은 관중으로 넘치고 유명 관광지에는 관광객들이 모여 웃고 마시고 떠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앞날이 크게 걱정됐다.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했더니 큰 반발이 일었다고 한다. 65세부터 연금 타 먹으며 놀며 지내려고 했는데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 그걸 보니 역으로 우리나라의 희망도 보였다. 정년을 연장해서 일을 더 하겠다 하니 사회가 역동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타나는 지표는 희망과는 정반대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2.8%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세계경제가 평균 3.9% 성장한 데 반해 우리는 3.6%밖에 안 됐다. 가장 역동적이라는 한국 경제가 어떻게 세계 평균치만큼도 성장하지 못할까.
1인당 소득 2만달러에서 주저앉은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빠져 나오려면 성장 기반의 확충이 유일한 방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수출과 제조업에 치우친 우리의 성장동력을 다원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농업이 그 전형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농업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 논의 때마다 피해자로 부각되는 퇴영적 이미지에 갇혀 있다. 이런 고정관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연간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어민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수산물 판매로 1억원 이상 벌어들인 농가는 2010년 기준 2만6000가구로 2005년의 1만6000가구보다 58.5%나 늘었다고 한다. 농가 평균 소득은 2010년 5730만원으로 전국 가구 평균 소득의 1.3배에 이를 정도다. 모처럼 형성된 농업 선진화의 불씨를 살려 나가려면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향후 농업 진흥의 방향을 지원 효과가 불투명하고 부정 수급이 발생하는 국가보조 사업에서 장기저리융자 형태로 바꿀 방침이라고 한다. 선거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성장의 발목을 잡은 낙후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농업의 발전이 기대된다. 국내에 들어온 지 15년 만에 농산물 1위 수출 품목으로 발돋움한 파프리카의 사례가 딸기, 참외로 확산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선진국치고 농업이 선진화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진흥도 필요하다. 2010년에 전 산업의 취업자가 2383만명이었는데 서비스 수출에 따른 취업자는 162만명으로 전체의 6.8%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제조업 위주 ‘고용 없는 성장’의 돌파구로서 서비스 분야가 유망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면 콘텐츠를 3차원(3D)으로 바꾸는 기술을 보유한 스테레오 픽처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영화와 방송사의 3D 콘텐츠를 수주하면서 2009년 50명이던 직원이 2010년에는 3000명으로 급증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중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58.2%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9.5%보다 11.3%포인트나 낮다. 미국은 이 비율이 76.8%, 일본은 73.8%다. 이처럼 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약하다보니 서비스 수지 적자가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에는 이 규모가 112억달러나 되기도 했다.
따라서 한계에 봉착한 제조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보완할 성장동력이자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요소로 교육·관광·금융·운송·의료 등 서비스 분야의 선진화를 추진하고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 형성된 동반성장의 기조를 전체 중소기업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도 또 다른 성장동력의 확보에 긴요하다. 참여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4~5%였던 일반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2009년부터는 아예 3%대로 떨어졌다. 반면 대기업 협력업체들은 5%대를 유지하며 안정적 이익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10개 휴대폰 협력사는 작년에 8.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애플 아이폰을 조립하는 대만 폭스콘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1.14%에 그쳤다. 대표 본사의 영업이익률이 삼성전자의 3배를 넘는 것을 보면 동반성장과는 훨씬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글로벌 기업의 면모이고 또 그만큼 한국 대기업들의 협력업체들과의 공고한 동반성장 체제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제는 이런 동반성장의 모델을 확장시켜 중소기업의 자생적 경쟁력을 키우고 양극화 해소에도 중심적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성장 매진할 수 있도록 지혜 모아야
매년 100만명이 창업하고 80만명이 폐업하는 자영업도 성장의 그늘에 자리 잡고 있다. 소자본 창업과 폐업의 악순환은 개인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 농업, 서비스업, 중소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프랑스는 1990년대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고 자격제도를 만들어 사회적 서비스와 관련한 일자리를 매년 6%씩 늘렸다. 농업 등 지역기반의 특산물을 인테리어, 패션, 미용 등에 응용하는 방식으로 서비스 농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장르를 제안하는 전문기관들도 있다.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뿐이다. 이들 나라를 비교해 보면 자영업 대책을 위기관리의 차원에서 관리해야만 한다. 보건의료, 사회복지, 교육, 문화예술, 환경 등의 분야는 성장의 질적 개선을 위해 확충이 필 요한 소프트 산업들이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1인당 소득이 4년 뒤 3만달러를 넘어서고 5년 뒤엔 구매력 평가기준이긴 하지만 일본을 추월한다고 전망했다. 일본을 누른다니 참으로 대단한 성과다. 그래도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성장은 했지만 남의 일인 것 같이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출산, 양극화, 낮아지는 잠재성장률, 청년실업 등 나쁜 얘기만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성장의 온기를 더 번지게 하는 정책을 쓰면서 누구라도 성장에 다시 매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우리가 성장을 잊어버리면 복지마저 기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일을 더 하려고 하는 국민이 있는데 분배와 형평만 얘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앓는 중국조차도 복지를 위해 성장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스페인의 위기는 성장이 없어서지 복지가 없어서 온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