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만 한류가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의 농업기술도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러한 농업 한류의 중심에 농촌진흥청의 해외 농업기술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개발도상국의 식량위기 해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1, 2. 케냐 농부들이 일손을 크게 덜어 준 ‘자전거 탈곡기’와 못줄대기로 모내기하는 모습3. 알제리 씨감자 육성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현지 연구원과 농진청 관계자
1, 2. 케냐 농부들이 일손을 크게 덜어 준 ‘자전거 탈곡기’와 못줄대기로 모내기하는 모습
3. 알제리 씨감자 육성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현지 연구원과 농진청 관계자

알제리는 대한민국의 24배가 넘는 아프리카 제1의 국토 보유국이다. 하지만 경작가능한 농지는 전 국토의 3%에 불과하며, 전체 인구 3400만명 가운데 14%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농업부문의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광대한 면적에서 실제 생산되는 작물량은 매우 적다. 특히 전체 인구의 70%가 주식으로 의존하는 감자의 경우 농민들이 파종하는 씨감자는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알제리의 씨감자 가격은 생산비의 70%를 차지하며, 씨감자의 안정적인 수급이 식량안보에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씨감자 육종기술을 전수한 곳이 바로 농촌진흥청이었다. 농진청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180만달러 규모의 씨감자 재배를 위한 시설 및 실험기자재를 제공했다. 또 감자 전문가 11명을 현지에 파견했고, 알제리 연구원 6명을 초청해 병균이 없는 씨감자의 생산과 육종기술을 전수했다.

아프리카 케냐 농촌에서는 우리나라의 1970~1980년대 ‘못줄 대기’ 농법이 인기다. 농촌진흥청이 못줄을 이용해 벼를 가지런히 심는 것을 가르쳐 준 결과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20%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진청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일명 ‘자전거 탈곡기’도 그동안 기계 없이 농사를 지어왔던 케냐 농부들의 일손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으면 체인으로 연결된 드럼통이 돌아가면서 탈곡이 된다. 그동안 케냐에서는 벼를 넓적한 바위에 내려쳐 탈곡해 왔다. 이제는 한국농촌에서 사라져 버린 기술이 해외에서 다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공식문자로 받아들인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에게는 지난해 한글 벼농사 교본이 보급됐다.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한글로 표기된 교본에는 찌아찌아족 전통농법에 한국의 선진농법이 체계적으로 수록됐다. 찌아찌아족 전통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선진농법을 현지화해 전파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교본은 현지 농업고등학교의 교과서와 농업인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김남수 농진청 기술협력국장은 “해외 농업기술 지원사업이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인접국의 성공사례를 듣고 각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농업기술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농업전문가들이 농진청에서 한국 농업기술을 배우고 있다.
외국 농업전문가들이 농진청에서 한국 농업기술을 배우고 있다.

Mini Interview 김남수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농업기술 전수 통해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농진청의 농업기술 지원 방식은 일방적인 식량원조가 아니라 농업기술 전수를 통해 상대국에 농업 생산 기반을 구축해 주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죠.”

김남수 농진청 기술협력국장은 해외농업기술센터가 설치된 국가의 실정에 맞는 다양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현지에 반드시 필요한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해외농업지원사업의 현장 지휘자다.

“한국의 농업전문가가 현지에 상주하면서 상대국의 요청에 기반을 둔 현지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현지에 반드시 필요한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것이죠.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40년 전만 해도 쌀밥조차 마음껏 먹지 못했던 우리는 녹색혁명을 통해 배고픔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 현재 개도국이 안고 있는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농진청의 해외기술 지원사업이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의 개도국 정상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땐 농진청에도 꼭 들른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농진청을 방문한 외국 정부 대표단은 250여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 근무하는 한국 농업전문가들이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농업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해외인턴들 역시 대한민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요. 이 사업을 통해 농진청은 미래 농업 성장의 동력원을 발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첨단 농업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한국 농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도국 식량난 해소에 일조

농진청이 해외 농업기술 지원사업을 펼친 것은 지난 1972년부터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서 선진농업기술을 전수받은 외국인은 116개국 3994명에 달한다. 이들은 귀국 후에도 ‘해외 농진청 연수생 연합체’를 결성해 지속적으로 한국 농업 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른바 농진청에서 교육받은 연수생이 자국에서 결성한 동문회인 셈이다. 현재 베트남 등 7개국에서 499명이 연합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농진청은 이들이 전수받은 기술을 자국내 활용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7개국에서 10개 사업이 추진됐다.

2009년부터는 체계적인 농업기술 전수를 위해 케냐, 베트남, 캄보디아 등 15개국에 양자 간 기술협력 시스템인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를 구축했다. 센터에서는 맞춤형 기술전수, 자원개발, 인재양성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해충에 강한 녹두 품종 육성이, 베트남에서는 현지 맞춤형 채소 재배단지 조성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옥수수 육종 및 재배기술이 지원되고 있다.

센터를 통해 필요한 현지 품종을 국내로 들여올 수도 있다. 농진청은 지난 3년 동안 1712점에 달하는 해외 농업자원을 수집했다.

한국으로서는 글로벌 농업인력을 키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농진청이 현지에 파견한 농대학생과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된 해외농업인턴은 194명에 이른다. 이들 인턴은 KOPIA의 전문가들과 함께 현지의 농업 및 식문화 수집, 비교연구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첨단농업과 개도국의 빈곤타파 관련 연구를 외국의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이근표 국제기술협력과 농업연구사(박사)는 “해외농업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개도국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전수, 자원외교역량의 강화, 선진 농업기술 전수를 통한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해외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은 농업기술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노하우까지 전수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권역별 농업현안 해결을 위해 구성한 다자간 기술협력 협의체가 그것이다.

농진청은 아시아 지역 11개국과는 아시아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AFACI)를, 아프리카 16개국과는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협의체(KAFACI)를 결성했다. AFACI와 KAFACI는 우리나라의 선진농업기술 전수와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타파와 기아 극복, 농업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의례적인 워크숍에 치중하는 기존의 국제 협의체 활동방식을 지양하고 회원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별, 권역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농업기술지원사업은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위상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평가다. 공적개발원조(ODA)의 계획 수립에 농업 관련 협력 및 지원사업의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과는 첨단기술 공동개발

농진청은 농업선진국과도 적극적인 열린 연구로 첨단기술을 공동개발하고, 선진국의 농업연구 정보를 수집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미국, 네덜란드, 일본, 뉴질랜드 등 선진국의 연구기관과 기술협력을 체결해 공동연구를 수행하거나,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다양한 교류를 추진해 왔다. 미국과는 바이오가스의 최대 생산법, 토양강도 측정기를 개발했다. 일본과는 식물의 휴면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개발하는 등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국내에 접목해 신기술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또 국제미작연구소 등 국제기관 등 6개 기관과 18개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29만점의 유용자원을 도입해 우수품종을 개발하는 데 이용하고, 유전자원을 보존·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또 지구 온난화에 따른 다양한 병해충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고, 아열대 원예작물을 도입해 국내 활용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Mini Interview 푸에 체하 알제리 농업연구소장

“한국은 진정한 친구 … 더 많은 선진 농법 배우고 싶다”

“알제리에서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농업 부문의 발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씨감자 육성 등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 더 많은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받고 싶습니다.”

농촌진흥청 개청 50주년을 기념해서 농진청을 방문한 푸에 체하(65) 알제리 농업연구소장은 “비록 짧다면 짧은 기간의 협력관계지만 알제리 농업발전을 위한 농진청의 노력은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한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라며 “알제리 국민들의 주곡 가운데 하나인 감자 생산 기술을 농진청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농진청 관계자의 열정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농업관련 공동연구 및 농업생산성 증대를 목적으로 지난 2010년 12월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를 알제리 농업연구청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66년 설립된 알제리 농업연구소(INRAA)는 농업 생산성 증대를 통한 식량문제 해결 등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연구원 135명을 비롯한 직원 433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알제리는 농업 분야 생산량 증가를 통해 식량자급을 이룩하기 위해 농업에 대한 투자 확대와 타 국가와 농업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전 세계에서 누구도 마땅히 농업기술을 전해 준 국가가 없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발벗고 나선 곳이 한국의 농진청이었다. 농진청은 지난 2007년 12월부터 알제리 씨감자 생산체계 개선을 목적으로 생산기술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푸에 소장은 “알제리 띠아렛 지역에 건설된 씨감자 생산시설은 조직배양실, 저온저장고 등의 시설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예산으로 건설됐고, 농진청의 감자 전문가가 수시로 알제리로 파견돼 한국의 ‘추백’, 알제리의 2개 장려품종 등 모두 3개 품종의 수경재배 씨감자 생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알제리의 2개 장려품종을 만들 때 감자 육성을 위한 모본을 알제리와 한국, 양 국가에서 모두 구할 수 없었어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포기했을 테지만 한국의 전문가들은 그 유전자원을 페루에 있는 국제감자연구소까지 가서 확보하는 열성을 보여줬어요. 그 결과 성공적인 알제리만의 고유 품종을 육종할 수 있었습니다.”

푸에 소장은 “한국인의 이 같은 열정 때문에 알제리 인들에게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알제리와 농진청은 앞으로 농업부문 협력 관계를 공고하게 유지할 겁니다. 올해는 씨감자 망실재배 사업, 병해충·바이러스 검정 및 저장유통 등의 연구를 공동 수행할 예정입니다. 알제리 농업 생산성 향상과 함께 향후 중요하게 될 신선 채소 생산기술과 열대과수에 대해서도 공동 연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