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 유한양행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미국의 위생용품업체 킴벌리클라크를 상대로 한 가처분신청을 냈다. 두 회사는 유한킴벌리의 양대 주주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합작법인으로 출범했다.
유한양행의 가처분신청은 유한킴벌리 이사 선임권 비율의 변경을 골자로 하는 정관 변경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종래 유한킴벌리 이사 선임권 비율은 양대 주주인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가 3:4로 나눠가졌는데, 새로운 정관은 이를 2:5로 바꿨다. 그러나 법원은 유한양행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양사는 합작계약에서 주식 소유 비율에 따라 이사 선임권 비율을 나누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내려졌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유한양행은 왜 40여년간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공동주주를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까. 쌍방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이사 선임권 비율은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속사정은 좀더 복잡하고 민감하다.

이사 선임권 비율 변경 놓고 법정공방
지난 3월 유한양행 주주총회에서 최상후 공동대표의 퇴임이 결정됐다. 최상후 전 유한양행 대표는 겸직하던 유한킴벌리 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자연히 후임 이사를 선임해야 했다. 유한양행은 최병선 전 유한킴벌리 부사장을 이사로 추천했다. 유한양행이 추천한 이사는 그대로 선임되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킴벌리클라크는 최 전 부사장의 이사 선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유한킴벌리 부사장 재직 시절 킴벌리클라크의 방침에 종종 반대의사를 나타냈던 게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최 전 부사장의 이사 선임을 계속 요구하며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던 중 킴벌리클라크가 갑자기 이사 선임권 비율을 바꾸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7월3일 임시주총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유한양행이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직접적 단초였다.
유한양행 측은 킴벌리클라크 측의 정관 변경 안건 상정이 단순히 이사 선임권 비율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유한양행의 이사 추천권을 원천 봉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킴벌리클라크 측이 유한킴벌리 경영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유한킴벌리의 지분 비율은 유한양행 30%, 킴벌리클라크 70%다. 지분 비율만 놓고 보면 이사 선임권 비율 2:5는 합당하게 보인다. 원래 두 회사가 처음 합작법인을 설립할 때는 지분 비율이 각각 40%와 60%였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때 유한양행이 현금확보를 위해 10% 지분을 킴벌리클라크에 넘기면서 지금의 비율이 됐다. 그럼에도 지난 임시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하기 전까지 이사 선임권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 이 대목이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유한양행은 이사 선임권 비율 3:4가 합작법인 설립 당시부터 묵시적으로 합의된 합작정신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킴벌리클라크는 지분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갖는 게 합작계약 내용이라는 반박이다.
하지만 이사 선임권 비율에 대한 양사의 주장과는 좀 다른 사실이 확인됐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는 “과거에는 이사 선임권 비율이 3(유한):4(킴벌리)가 아니라 오히려 5:2였던 적도 있다. 유한킴벌리 경영뿐 아니라 킴벌리클라크의 아시아 사업에도 탁월한 실적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국현 전 대표는 13년간 유한킴벌리를 경영하면서 경영실적뿐 아니라 사회적 평판에서도 일등기업의 반석을 다졌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이사 선임권 비율은 양사 갈등의 표면적 이유일 뿐, 다른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양대 주주는 지난 몇 년간 유한킴벌리 경영현안을 놓고 여러 차례 의견대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배당금에 관한 이견이 컸다고 한다.
유한킴벌리의 주주 배당금은 문국현 전 대표가 회사를 떠난 후인 2008년부터 큰 폭으로 뛰었다. 특히 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배당성향)이 매년 90%를 넘어섰다.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 대부분을 주주에게 돌려줬다는 뜻이다. 물론 지분 비율에 맞춰 유한양행이 30%, 킴벌리클라크가 70%의 배당금을 받았다.
유한양행은 당초 배당금 증액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익을 배당으로 돌리기보다 회사에 재투자하자는 입장이었다. 돈을 버는 족족 써버리면 투자재원 부족으로 유한킴벌리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당금 증액과 관련한 의견대립도
하지만 배당금 증액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에선 배당금 증액과 병행해 투자액도 증가했기 때문에 ‘이익 빼가기’로 단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유한킴벌리의 최근 수년간 배당금·투자액 지출자료에 따르면 배당금과 투자액이 함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배당금 대비 투자액은 70% 안팎이었다. 다만 2009년에는 그 비율이 40%로 뚝 떨어졌던 점이 눈길을 끈다.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갈등 이면에는 아찰 아가왈 킴벌리클라크 아시아 총괄대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찰 총괄대표는 문국현 전 대표의 후임자로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대표에 임명됐다가 현재는 킴벌리클라크의 아시아 사업 전체를 관장하는 자리로 옮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9년 유한킴벌리 이사회의 승인도 없이 북아시아본부 분담금 명목으로 20억원을 인출했다가 유한양행 측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국현 전 대표는 “아찰은 합작경영 경험도 없고 한국 문화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가 유한킴벌리를 킴벌리클라크의 ‘지사’쯤으로 보고 깊숙이 관여하는 바람에 유한양행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안다. 유한양행이나 킴벌리클라크나 둘 다 훌륭한 기업이다. 서로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는 지난 40여년간 유한킴벌리를 함께 경영하면서 국내 최대 위생용품업체로 키워냈다. 또 유한킴벌리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환경보호운동을 주도하는 등 사회책임경영에도 모범을 보였다. 세간에서는 두 회사의 공동경영을 ‘아름다운 동행’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양사 관계자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코멘트가 보도되는 것은 꺼렸다. 더 이상 사태를 키우기보다 해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연 유한킴벌리는 모범적인 합작경영 사례로 계속 남을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