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업계의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매출액은 1조원이 넘는다. 지난해보다 평균 10%가 증가했다. 유통 맞수 롯데와 신세계의 화장품 산업 진출도 화제다. 이를 비롯한 제약회사, 정수기업체, 식품업체 등도 앞 다퉈 화장품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화장품 쇼핑 문화도 변했다. 값 비싼 브랜드로 둘러싸인 백화점보다는 저렴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드럭스토어, 브랜드숍, 온라인몰 등으로 발걸음이 옮겨지고 있다. TV홈쇼핑에서도 화장품만한 효자상품이 없다. ‘실시간 완판’을 기록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눈에 보이는 이것이 바로 ‘화장품 전성시대’의 현실이다.
저가 브랜드, 품질·판매 고(高)-고(go)!
화장품 산업의 흥행 성적은 화려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06년 6조30000억원, 2011년 8조9000억원, 2012년은 10조원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자들이 사들인 화장품 총액은 10조8200억원 규모다.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심에 이어 남심을 간파한 설득력 있는 가격은 물론 당장 갖고 싶게 만드는 아이템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며, 마케팅까지 만만치 않은 내공을 뽐내며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된 것도 한몫한다. 이것은 여자들의 화장대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한 브랜드의 세트 상품이 자리를 차지했다면, 지금은 기능별로 우월한 브랜드 상품이 고루 섞여 있다. 전적으로 브랜드 밸류에 의존했던 것에서 이제는 품질의 우수성을 좇고 있다.
특히 국내 화장품의 성장은 저가 브랜드의 활약이 한몫한다. 저가 브랜드는 지난해 2조원대로 성장하며 전체 화장품 시장의 20%를 넘는 규모로 컸다. 저가 브랜드숍 시장을 열었던 미샤와 그 뒤를 이은 더페이스샵이 2011년 모두 3000억원대 이상 매출액을 기록하며 대표 브랜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샤의 2011년 매출액은 3303억원으로 전년 대비 27%나 늘었다. 더페이스샵 매출액도 3255억원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국내 대표 화장품 업계인 아모레퍼시픽에서 출시한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의 중저가 브랜드도 강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두 브랜드의 지난해 성장률은 30%가 넘는다. ‘몸에 좋은 음식은 피부에도 좋다’는 개념을 각인시킨 스킨푸드의 활약도 거침없다. 스킨푸드는 작년 매출액이 1642억원에 달하며 덩치가 커졌다.
10조원 시장은 국내 소비자들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K팝과 한국 드라마 열풍으로 인해 최근 국내 화장품 시장엔 일본·중국·동남아시아 고객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른바 ‘뷰티 한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곧 해외수출로 연결된다.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한국 화장품 수출액 증가율은 2006~2010년 사이 연평균 28%가 넘는다. 특히 2010년에는 증가율이 무려 80%를 기록했다.
장사가 잘 되니 주변 관심도 폭발적이다. 타업종의 시장 진입으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유통 맞수 롯데와 신세계도 뛰어들었다. 담배와 인삼으로 유명한 KT&G, 정수기 업체인 웅진코웨이, 식품업체인 매일유업, 가전업체인 한경희생활건강, 한국오츠카제약, 휴온스 등의 제약사와 피부과전문의, 에스테틱,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다수의 중소기업 및 개인들이 잇달아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직접 화장품을 개발하거나 독점 수입, 또는 자체 유통을 확보해 화장품 판매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장품 분야는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데다 진입 장벽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신세계 진입, 장기적으로 아모레·LG 위협요소
올 상반기 사장에서 주목받은 뉴페이스는 신세계다. 기존의 유통망과 다양한 제품을 판매해 본 경험이 있는 유통사들의 화장품시장 진출은 경쟁 유통사는 물론 기존 화장품 기업들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신세계는 지난 3월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색조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코스메틱을 60억원에 인수했다. 비디비치코스메틱은 메이크업아티스트 이경민이 만든 브랜드로 신세계 인수 전부터 국내 색조화장품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백화점에 입점돼 있던 실력파 브랜드다.
롯데는 지난해 계열사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을 통해 화장품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00% 지분을 보유한 한국후지필름을 통해 일본 스킨케어 브랜드 아스타리프트를 롯데닷컴에 론칭한 데 이어 5월 롯데백화점 프리미엄 온라인 쇼핑몰인 엘롯데에 론칭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10월 롯데제약을 흡수합병하며 화장품 제조 및 판매를 신규 사업에 추가할 것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롯데와 신세계의 진입과 관련,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신세계가 뛰어든다 해도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내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전으로 본다면 막대한 자금력과 다양한 유통 채널이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수기업체 웅진코웨이는 2010년, 일명 ‘고현정 화장품’으로 통하는 ‘리엔케이’를 론칭했다. 웅진코웨이는 현재 자금 문제로 매각 절차를 밟고 있지만 ‘고현정 화장품’은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열풍을 만들며 꾸준한 매출 신장을 거두고 있다. KT&G는 2011년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며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계열사인 KGC라이프엔진을 통해 홍삼화장품 동인비와 랑을 론칭해 인기몰이 중이다. 올 3월에는 한국오츠카제약이 ‘스마트 토털 스킨케어’란 콘셉트의 우르오스(UL·OS)를 론칭하며 남성 화장품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고급 디지털 인쇄기 유통업으로 유명한 후너스는 올 1월 메디컬 전문화장품 브랜드 유니버샬코스메틱의 지분 인수를 통해 화장품사업 진출을 알렸다. 지난 7월5일엔 김연아 브랜드로 알려진 ‘제이에스티나’의 모태 기업 로만손이 화장품 사업 진출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바이오 관련 기업인 셀트리온 역시 화장품 사업 전개 검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셀트리온이 기능성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올해 안에 관련 업체를 인수할 것이란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자 코리아나, 한국화장품 등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들의 주가가 잇따라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화장품 관련 주가가 들썩이며 주식시장의 핫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재고 걱정 없고, 변화 빠른 OEM·ODM도 호황
화장품이 잘 팔릴수록 주문자상표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는 살맛 난다. 화장품의 종류가 워낙 많고 제조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OEM·ODM 업체를 찾는 화장품 업체들이 많아져서다. 이를 통해 물가, 인건비 등 기업의 원가 부담도 덜 수 있으며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OEM·ODM은 제조사가 제품을 생산해 직접 팔지 않고 판매사에 납품하는 사업구조다. 판매사가 제품을 설계해 위탁생산(OEM)하기도 하고 제조사가 직접 설계 생산해 판매사에 제안(ODM)을 하기도 한다.
국내 ODM 업체 중에서는 한국콜마가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2011년 매출액은 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에는 석오생명과학연구소를 개소하며 화장품 연구 개발에 힘을 실었다. 한국콜마와 함께 화장품 제조업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코스맥스는 지난해 2440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한국콜마를 바짝 뒤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에이블씨엔씨, 소망화장품 등 국내 130여개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로레알 등 다국적 기업 20여 곳과도 거래한다. 코스맥스 역시 연구소를 통합한 R&I센터를 개설해 연구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1년 화장품산업 분석 보고서로에 따르면 OEM 산업은 2002년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화장품처럼 변화가 빠른 산업일수록 OEM·ODM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조업이 성장세를 이룬다. 게다가 고객사에게 발주를 받고 물량을 만들어내면 되므로 재고 부담이 없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산업 흐름을 읽고 뒤늦게 이 업계에 뛰어든 기업들이 있다. 지난 5월 코리아나화장품은 중국에 OEM 사업을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사이에 코리아나가 새롭게 투입되며 대결 무대가 중국으로 확장됐다. 네슈라화장품은 지난 1월 OEM 별도 법인으로 셀렙을 론칭하는 등 화장품 업계의 잇따른 OEM·ODM 사업 진출 모습도 눈길을 끈다.

탈 백화점시대… 화장품 쇼핑은 홈쇼핑, 인터넷, 드럭스토어에서
화장품 쇼핑, 이제는 ‘탈 백화점 시대’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드럭스토어(drugstore), 홈쇼핑,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숍, 화장품전문점, 인터넷 등 다양한 채널이 생겨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쇼핑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에는 TV홈쇼핑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화장품사들이 앞 다퉈 홈쇼핑에 진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은 물론 브랜드숍 등장과 화장품전문점 침체로 어려움을 겪어 왔던 중견사들도 대거 홈쇼핑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아예 홈쇼핑 전용 제품을 개발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파란을 일으킨 ‘진동 파운데이션’의 붐도 홈쇼핑에서 이뤄졌다. 한경희생활건강은 화장품 사업부문(한경희 뷰티)에서 진동 파운데이션 성공에 힘입어 홈쇼핑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 확대 등 성공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진동 파운데이션 붐을 일으킨 ‘입큰’은 지난해 말 진동 파운데이션을 홈쇼핑에 론칭해 상당한 매출을 기록하며 최근 중국 홈쇼핑까지 진출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코스메슈티컬(코스메틱+메디컬) 전문브랜드 BRTC는 태국 GS홈쇼핑에서 골드 캐비어 진동 비비 크림이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후 태국 홈쇼핑 채널인 TV DIRECT와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아시아 지역 최대 화장품 유통업체 홍콩 SASA를 통한 수출 계약으로 홍콩 SASA 매장 전역에 BRTC 제품이 판매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홈쇼핑 화장품시장 규모는 400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7% 정도 상승했다. 최근에는 홈쇼핑 진출 기업이 늘어나 매출 역시 증가하고 있어 올해 홈쇼핑 시장 성장률은 전년 대비 10% 이상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에서 들여온 드럭스토어의 확장도 주목받는다. 외국에서는 약품과 건강용품, 생필품 등을 한 곳에서 파는 매장을 일컬어 드럭스토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약국 외에는 의약품을 팔 수 없기 때문에 생필품과 화장품 등 뷰티용품을 함께 파는 형태를 드럭스토어라고 칭한다.
국내에 드럭스토어가 자리 잡게 된 것은 1999년 CJ올리브영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190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CJ올리브영은 지난해 2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어 2004년 외국계 유통회사 왓슨그룹과 손잡은 GS가 GS왓슨스를 시작해 현재 63개 매장을 갖추면서 국내에 드럭스토어가 정착하게 됐다. 최근 신세계 이마트도 분스(BOONS)라는 드럭스토어를 오픈했다. 지난 4월 의정부점에 이어 6월 강남점을 오픈하며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이곳에는 20~30대 여성을 겨냥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 미샤, 토니모리 등의 국내 브랜드부터 랑콤, SK-II, 비오템, 에스티로더 등의 수입 브랜드까지 판매 중이다. 대형마트의 첫 드럭스토어 진출은 2010년 농심 계열사인 메가마트가 부산 동래점에 ‘판도라’를 오픈하며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아직 2호점 오픈 계획이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려가는 카페베네도 오는 8월 강남역에 디셈버투애니포(December24) 1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라 화제다. 이로써 유통사들의 화장품 시장 진출이 국내 화장품업계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