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한 사람이 꿈꾸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이며,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고, 도전을 부추기는 훌륭한 참모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기업을 이끄는 토대가 된 경영 철학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원자재무역상인 김준목 메타디움에스앤티 대표(50)의 책 예찬론이다. 특히 그는 고서광이다. 100년, 150년은 물론 400년을 훌쩍 넘긴 3000여권의 빛바랜 책들이 이제 그의 서재를 넘어 널찍한 창고에 빼곡히 채워지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북, 오스트리아 황제가 보았다는 16세기 성경 등 르네상스기에 간행된 인문·예술·건축·과학 분야 고서가 주를 이룬다. 책값으로 나간 돈만 해도 수십억원. “고서를 사기 위해 돈을 번다”는 그다.
김 대표가 2006년부터 운영해오는 메타디움에스앤티는 국내 유수 철강업체로 알려진 모아스틸과 실보스틸의 계열사다. 원자재 중에서도 고철을 구하기 위해 주무대인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에 고철 광산을 찾았다. ‘현실에 두 발은 딛고 영혼은 자유로운 두 가지 삶의 밸런스를 맞춰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일하는 현장에서는 프로페셔널하게 땀 흘리고, 고서를 만나는 순간에는 연애하듯 달콤하고 뜨겁게 사랑에 빠진다. 지금도 수집할 만한 고서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짐을 꾸린다. 최종 목표인 국내 첫 서양 고서점을 건립하기 위해서다.
그의 고서 왕국 건립의 꿈은 파리에 있는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피어났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1980년대 말부터 해외 출장이 잦았어요. 유럽 출장을 가면 짬을 내 꼭 벼룩시장이나 고서점을 즐겨 찾았죠. 한 날은 파리에 들렀다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갔어요.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세상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꿈꾸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열정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고, 그 마음이 국내 첫 서양 고서 도서관 오픈이라는 꿈으로 이어졌죠.”
지난해 5월 꿈 실현을 위한 신호탄이 울렸다. 김 대표는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네버랜드 어린이 책 박물관’을 개관했다. 올해 12월 성남시, 내년 초 김해시에도 박물관 오픈을 앞두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네버랜드 어린이 책 박물관은 책의 역사적 사료와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다양한 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훼손이 염려돼 많은 고서를 마련해 두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2000년 초반부터 고서를 영인해 다시 간행하는 일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그림 등으로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귀한 고서가 책장에 자리만 차지해서는 안 되죠. 저는 고서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훼손을 막고,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고서 내용을 디지털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켜가며 DB구축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곧 책에서 만난 그들의 인생과 철학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김 대표는 서양 고서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만들었다. 고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 라틴어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아예 직업을 바꿔 서양 고서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경매시장에서도 고급 물건으로 취급되는 ‘돈 되는’ 고서지만 김 대표는 되파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상인이 아닌 컬렉터가 그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요즘 우리 고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밤이면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고물 더미에서 ‘보물’ 찾기를 한다고 한다.
“l’ll bring smile in your life. 제 인생의 주제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책 박물관과 곧 지어질 고서점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약력 1962년생. 81년 세종대 화학과 졸업, 95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졸업. 87년 평화산업 무역부 입사. 92년 펀테크 대표이사. 2006년~현재 메타디움에스앤티 대표. 2011년~현재 네버랜드 어린이 책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