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경영에 뛰어든 임세령 대상에이치에스(옛 와이즈앤피) 대표가 의욕적으로 운영하던 아시안 퓨전레스토랑 ‘터치 오브 스파이스’의 명동 1호점이 지난 4월30일 문을 닫았다. 임 대표는 대상그룹의 오너인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로 임 명예회장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외식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2년도 안 돼 ‘1호점 철수’라는 굴욕을 겪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 대상에이치에스가 운영하는 서울 신사동 ‘터치 앤 스파이스’. 임세령 대상에이치에스 대표가 유명 연예인 지인들과 종종 즐겨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임세령 대표(아래).
- 대상에이치에스가 운영하는 서울 신사동 ‘터치 앤 스파이스’. 임세령 대상에이치에스 대표가 유명 연예인 지인들과 종종 즐겨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임세령 대표(아래).

지난 2009년 9월2일 대상홀딩스는 외식사업을 위해 음식업체인 와이즈앤피(현 대상에이치에스)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그해 11월19일 대상에이치에스의 첫 번째 외식 브랜드인 ‘터치 오브 스파이스’의 종로 1호점이 서울 관철동 11-3번지 건물 3층에 문을 열었다. 오픈 당시만 해도 대상은 “향후 5년 이내에 5개 외식브랜드로 50개 매장 확장, 연 매출 500억원 달성”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듬해인 2010년 5월10일 임세령씨는 대상에이치에스 공동대표로 선임됐고, 직후 지분 확보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경영활동을 외부에 알렸다. 2009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혼하고 대외활동을 자제하던 임 대표의 첫 행보라 관심이 집중됐다. 

많은 관심 속에 임세령호의 항해는 시작됐다. 2010년 6월14일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터치 오브 스파이스 데일리’를 오픈하고, 지난해 7월1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터치 앤 스파이스’를 개점하며 순조로운 행보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터치 오브 스파이스’ 종로 1호점이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종로 1호점이 개점한지 6개월 만에 불법 건축물로 적발되면서 폐업 위기에 몰린 것.

지난 4월 ‘터치 오브 스파이스’ 명동점 폐쇄

종로 1호점의 불법 건축물 논란은 터치 오브 스파이스가 좀더 넓은 영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옥상을 불법 개조한 데서 비롯됐다. 옥상에 기둥을 박고 메인 홀을 개조하는 등 관할구청에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영업을 해왔다. 이 사실이 관할구청에 알려지면서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건축법 제19조(용도변경 미신고), 식품위생법 36조(영업시설)와 37조(영업허가) 등을 위반한 것이 적발됐다. 결국 종로 1호점은 폐업을 하게 됐고, 당초 2호점이 될 것으로 알려졌던 명동점이 1호점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일각에서는 임 대표의 경영자질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얼떨결에 터치 오브 스파이스 1호점이 된 명동점은 2010년 5월27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명동점은 서울 명동1가 42-2번지 5층 건물의 3층에 있다. 위치는 명동 중심이라지만 명동예술극장 뒷골목에 있어 알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쉽게 눈에 띄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엔 패스트푸드점,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입점 돼 있는 데다 “하루 명동 인구가 전부 이 건물 화장실을 쓰러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유동인구가 많다고 한다. 해당 건물의 한 입주자는 “뒷골목이지만 유동인구가 아주 많다”면서 “사람들이 이 골목 상권은 이제 죽었다고들 했는데, 이 건물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할 정도”라고 했다.

터치 오브 스파이스 명동점에도 꾸준하게 손님이 오갔다. 그러던 지난 4월30일, 명동점은 느닷없는 폐업을 선언했다. 종로에서 옮겨와 다시 시작한지 2년 만의 일이다. 현재 명동점 텅 빈 매장 입구에는 ‘TOUCH OF SPICE 영업 종료!’라는 종이 한 장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같은 건물의 한 입주자는 “터치 오브 스파이스 매니저가 하루 매출이 900만원은 된다고 했다. 보기에도 손님이 꽤 많았다. 그런데 본사에서 접으라고 했다며 급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았는데도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면서 건물주에게 제값도 못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지난 4월30일 폐점한 ‘터치 오브 스파이스’ 명동점 입구에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한 장만이 남아 있다(좌). 입간판에 홀로 빈 3층이 눈에 띈다.
- 지난 4월30일 폐점한 ‘터치 오브 스파이스’ 명동점 입구에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한 장만이 남아 있다(좌). 입간판에 홀로 빈 3층이 눈에 띈다.

지난해 1월 ‘터치 오브 스파이스 데일리’도 폐점

명동점을 철수하기 전인 지난해 1월 롯데백화점 대구점의 ‘터치 오브 스파이스 데일리’도 문을 닫았다. 불과 개점한지 6개월 만이다. 이렇게 해서 대상의 외식브랜드는 현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터치 앤 스파이스’ 하나만 남아 있다. 이 세 곳을 제외하고는 3년간 다른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개설한 곳은 없다.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폐점 소식에 사실상 대상이 외식사업에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미 임 대표가 경영 실패를 받아들이면서 외식사업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임세령 대표가 의욕적으로 외식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 사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실적이 좋지 않자 사업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업 실패는 대상 측도 인정하고 있다. 대상그룹의 한 관계자는 “명동점이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운영이 썩 잘 되지 않았고, 임대료 대비 수지가 맞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황에 굳이 끌고나갈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 문을 닫게 됐다”고 했다. 

임 대표의 외식사업은 이재용 사장과 이혼한 이후 첫 경영활동인 데다 대상그룹의 공식 직책을 맡으며 처음으로 사업 전면에 나선 것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쥐게 됐다. 이와 관련, 대상 관계자는 “임세령 대표는 적극적으로 (대상에이치에스)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대상에이치에스 관계자도 “터치 오브 스파이스를 론칭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외식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2009년의 오픈 당시 밝혔던 포부와는 상반된 얘기를 했다.

이재용 사장과의 이혼 및 영화배우와의 열애설 등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임 대표의 첫 사업 실패는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대상에이치에스의 향후 사업도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