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와 GS건설이 물산업의 핵심분야인 수(水)처리 시장에 강력한 출사표를 던졌다. 전자업체와 건설업체가 무슨 연유로 수처리 사업을 추진하는 것일까. 물론 물산업의 성장성과 잠재력에 주목한 결과다. 이미 두산중공업 같은 기업은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장에서 세계적 강자로 위세를 뽐내고 있다.
- 두산중공업이 시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쇼아이바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두산중공업이 시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쇼아이바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강 등 주요 상수원에 발생한 녹조(綠潮) 현상은 깨끗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사람들이 마시거나 이용하는 물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원수(原水)를 용도에 맞게 처리하는 과정, 즉 수처리를 거친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구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산업화·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물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시에 수처리의 산업적 잠재력과 영향력도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에는 거대한 기회의 땅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총량은 약 14억km³에 달한다. 지구 전체 표면을 3000m 깊이로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중 97%는 바닷물이고 나머지 3% 정도가 담수다. 그마저도 담수의 70% 가량은 빙산이나 빙하이기 때문에 인류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강, 호수, 지하수 등의 담수량은 훨씬 더 줄어든다.

이런 터에 인구증가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촌의 물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40%가 식수난과 각종 용수난을 겪고 있는데 2025년에는 52개국 30억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적인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면 결국 물을 많이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현실적 대안으로는 바닷물을 민물로 만들거나 사용한 물의 재이용 비율을 늘리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가 바로 수처리 기술이다.

물산업의 가치사슬은 통상적으로 제조(수처리 및 송·배관 설비 제작)-건설(상·하수 처리 및 송·배관 시설 시공)-운영(상·하수 시설 운영 및 관리)의 3단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물산업 내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운영 분야다. 하지만 수익성과 성장성 측면에서는 수처리 분야가 가장 유망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산업의 분야별 평균 영업이익률을 따져보면 건설 5%, 운영 12%, 제조 10~15% 정도로 추산된다. 제조 분야 중에서는 수처리 부문의 성장성과 이익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영등포 막여과 정수장. 분리막 기술을 이용해 수처리를 한다.
- 서울 영등포 막여과 정수장. 분리막 기술을 이용해 수처리를 한다.

수처리 핵심기술 ‘분리막’ 시장 급성장

특히 수처리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분리막(Membrane: 액체나 기체 물질의 입자에 대해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소재로 만들어진 막) 시장은 연 평균 20%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물산업 전체의 연 평균 성장률이 4%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리막 시장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눈부시다고 할 수 있다. 물산업 전문조사기관인 글로벌워터인텔리전스(GWI·Global Water Intelligence)에 따르면 세계 수처리용 분리막 시장은 2007년 61억달러 규모에서 2016년 303억달러 규모로 대폭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황금어장으로 떠오른 수처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눈에 띄게 분주해지고 있다. 특히 몇몇 대기업들은 잇달아 수처리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GS건설은 지난 6월초 스페인 수처리업체 이니마(Inima OHL) 인수를 완료하면서 단숨에 글로벌 수처리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니마는 역삼투압(RO· Reverse Osmosis) 방식의 해수담수화 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업체로 꼽힌다. 전 세계에 걸쳐 200개가 넘는 수처리 플랜트 시공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알제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하루 20만t의 바닷물을 담수화할 수 있는 플랜트를 시공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  GS건설이 시공한 제주시 하수고도처리시설 전경 (왼쪽)
-  GS건설이 시공한 제주시 하수고도처리시설 전경 (왼쪽)

RO 방식 담수화 플랜트는 분리막을 이용해 바닷물을 담수로 전환하는 시설이다. 바닷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든 다음 이를 다시 응축시켜 담수를 생산하는 증발(Thermal) 방식 담수화 플랜트보다 시장 규모가 3배 이상이다. 더욱이 RO 방식 담수화 플랜트 시장은 연 평균 성장률이 17%에 달한다. 세계 시장 규모는 2011년 64억달러에서 2016년 140억달러로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니마는 수주 잔고 중 70% 이상이 중남미, 유럽, 북미 지역 등에 분포돼 있다. 반면 GS건설은 중동, 아시아 시장을 주무대로 활동해 왔다. 따라서 GS건설은 이니마 인수를 통해 상당한 시너지 창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수처리 사업이라는 신성장동력 확보는 물론 해외 수주 시장 확대라는 부수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이니마 인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시장 다변화라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GS건설과 이니마가 서로의 시장에 진출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GS건설은 이니마를 독립법인으로 운영하면서 2020년 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수처리업체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전자도 수처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과거 한 식구였던 LG그룹과 GS그룹의 간판 계열사가 나란히 글로벌 수처리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양사 간에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LG전자는 2010년 수처리 사업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사업 청사진도 원대하다. 2020년까지 ‘글로벌 종합 수처리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포부다. 향후 10년간 5000억원 이상 투자를 단행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사업 초기에 투자를 집중시켜 단숨에 경쟁력을 갖춰 나간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우선 산업용 수처리 시장에 먼저 진출해 역량을 축적한 다음 국내외 생활용 상·하수 처리 시장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수처리 솔루션의 핵심인 분리막을 비롯해 수처리 시스템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벌써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일례로 기존 수처리 공법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이른바 ‘G-MBR(Green-Membrane Bio Reactor)’이라는 신공법으로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환경신기술 인증을 받기도 했다.

글로벌 종합 수처리 전문기업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수처리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룬 점도 눈길을 끈다. LG전자는 지난해 8월 국내 공공 수처리 분야의 운영관리 전문업체인 하이엔텍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일본의 수처리 설비·시설 시공업체 히타치플랜트테크놀로지(Hitachi Plant Technologies)와 함께 수처리 사업 합작법인 LG-히타치워터솔루션을 출범시켰다. 이로써 LG전자는 수처리 핵심 기술-수처리 시설 시공-수처리 운영·관리로 이어지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는 수처리 핵심 기술인 분리막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수처리 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 수처리 시장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종합 수처리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GS건설이나 LG전자처럼 수처리 산업에 막 뛰어든 기업과 달리 이미 글로벌 수처리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기업도 있다. 세계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장에서 강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두산중공업이 주인공이다.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 플랜트 신화

두산중공업은 1978년 사우디아라비아 ‘파라잔 프로젝트’ 수주를 시작으로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1980~90년대 중동 지역에서 발주된 해수담수화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행하면서 선진국 기업들이 독식하던 시장을 파고들었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국내 공장에서 축구장 크기만한 담수화 증발기를 조립해 통째로 출하하는 독특한 ‘원모듈 공법’을 선보이며 공기단축과 품질향상을 달성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중동 지역 해수담수화 플랜트 수주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40%)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두산중공업은 차세대 대용량 담수화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06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미국 탬파에 ‘워터R&D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또 2008년에는 미국 최대의 수처리 엔지니어링업체 카롤로(Carollo)와 전략적 제휴 협약을 맺으면서 하수 및 폐수 처리 분야로 수처리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기존의 해수담수화 플랜트 사업 외에 또 다른 성장엔진을 장착한 셈이다.

현재 세계 수처리 시장에서 대세로 떠오른 기술은 분리막 공정이다.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물리화학적 공정이나 미생물을 활용하는 생물학적 공정보다 환경친화적이고 효율도 높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수담수화 분야에서도 증발 방식보다 에너지 소비량과 비용 부담이 적은 분리막 방식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GE, 지멘스 등 수처리 분야 선진 기업들은 고효율 분리막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수처리 기업들도 분리막 기술 확보에 일정한 성과를 얻고 있다. 웅진케미칼은 세계 3번째로 역삼투압 방식 분리막 개발에 성공했고, 코오롱도 고도 수처리용 분리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수처리 사업에 진출한 제일모직도 독자적인 분리막 기술 확보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특히 웅진케미칼과 코오롱은 분리막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환경부 물환경정책국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분리막을 비롯한 수처리 시스템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지만 글로벌 수처리 기업들과 달리 실적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해외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서는 토털 솔루션 역량 강화와 함께 사업 실적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Tip l 수처리용 분리막의 종류

▲MF(Micro Filtration)막: 최소 100나노미터 크기의 기공(막의 미세한 구멍들)으로 박테리아나 부유물질을 걸러냄. 상·하수 처리 등에 쓰임.

▲UF(Ultra Filtration)막: 수 나노미터 크기의 기공으로 단백질, 다당류, 고분자 물질 등을 걸러냄. 하수 처리(산업용 폐수) 등에 사용됨.

▲NF(Nano Filtration)막: 1나노미터 정도 크기의 기공으로 염료, 저분자량 유기 화합물을 걸러냄. 담수화 전(前)처리, 상수 처리(농약 제거) 등에 쓰임.

▲RO(Reverse Osmosis)막: 1나노미터 이하 크기의 기공으로 역삼투 현상을 이용해 염분, 중금속 등을 걸러냄. 담수화, 초순수(超純水: 오염 물질을 전부 제거해 불순물이 극도로 적은 물. 반도체 제조공정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됨) 제조, 정수기 등에 적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