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부터 화장품업계에 불기 시작한 ‘진동 바람’이 여전히 거세다. 화장품과 기기를 결합한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주요 유통채널인 홈쇼핑업계 최대 매출을 차지할 정도다. 엔프라니가 내놓은 ‘진동파운데이션’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에 론칭해 지금까지 30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엔프라니의 진동파운데이션이 성공한 가장 큰 원동력은 차별화된 제품력으로 평가된다. 진동파운데이션의 원리는 간단하다. 사람의 손을 대신해 기계가 파운데이션을 발라주는 것이다. 손으로 하는 것보다 얇으면서도 피부에 잘 밀착해 파운데이션 효과가 장시간 지속되는 장점이 있다.
초저가브랜드숍 홀리카 확장 본격화
엔프라니의 진동파운데이션의 특징은 작동방식에 있다. 사람이 하는 것처럼 기계가 분당 4500회 앞뒤로 움직이며 두드리듯 파운데이션을 바른다. 이름하여 ‘수타진동파운데이션’이다. 단순한 진동방식에 비해 매끄럽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삽시간에 입소문을 탄 이 제품은 현대홈쇼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김성수 엔프라니 마케팅실장은 “수타진동파운데이션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30% 가량 성장한 930억원의 매출이 기대된다”며 “유통채널의 확대와 브랜드 리뉴얼 등을 통해 2015년까지 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엔프라니는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먼저 유통채널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주력시장인 화장품전문점과 마트는 물론 브랜드숍과 홈쇼핑 시장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사실 엔프라니는 2000년대 초반 화장품업계의 ‘신성(新星)’이었다. ‘20대여 영원하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엔프라니는 파죽지세의 기운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엔프라니는 힘을 잃었다. 성장은커녕 뒷걸음질을 쳤다. 김 실장은 그 원인을 화장품 유통 환경의 변화에서 찾았다.
“당시 엔프라니의 주요 유통채널은 화장품전문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장품전문점이 급속하게 줄었습니다. 그 자리를 브랜드숍과 멀티숍이 차지했죠. 유통 채널이 축소되니 매출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품전문점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그나마 엔프라니가 현상유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유통채널에 진출한 덕분이었다. 홈쇼핑과 초저가브랜드숍인 ‘홀리카’가 그것이다. 향후 엔프라니는 이 두 채널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유통 채널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적용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김 실장은 “화장품 시장은 고가와 저가 시장으로 빠르게 양극화되고 있다”며 “중가시장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시장인 저가브랜드 시장과 홈쇼핑시장에 역량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시장은 초저가브랜드숍인 ‘홀리카’를 통해 공략할 계획이다. 타깃은 20대다. 2010년 론칭한 홀리카의 매장은 현재 50여개 수준이다. 2년이나 지났음을 감안할 때 많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회사 측은 강조한다. 그동안은 준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31개인 매장을 올해 말까지 7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내년 이후엔 보다 공격적으로 매장을 유치할 계획이다.
엔프라니가 홀리카 매장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보다 확실한 준비를 위해서였다. 사실 엔프라니는 브랜드숍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브랜드숍은 경험 없이 뛰어들다간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김 실장은 “서두르지 않고 경험을 쌓으면서 제품 라인업을 보강하고 문제점도 개선해왔다”며 “매장을 많이 늘리지는 않았지만 온라인 이벤트 등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진동파운데이션 후속작 줄이어 선봬
홈쇼핑은 캐시카우로 육성할 계획이다. 트렌디한 제품을 통해 비용 대비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화장품과 기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코스메틱’에 역점을 기울여 수타진동파운데이션의 성공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후속작은 이미 판매되고 있다. 에어수타파운데이션이 그것이다. 사람의 손끝 탄성을 재현해 한층 부드럽고 밀착감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의료용 실리콘을 활용해 사람의 손가락 끝과 탄성이 동일한 수타패드를 장착했다. 여기에 에어수타퍼프를 개발해 성능을 한 단계 향상시켰다. 파운데이션의 일부를 흡수하는 기존 퍼프의 단점을 개선해 파운데이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진동수도 기존 분당 4500회에서 6200회로 크게 증가했다.

회전파운데이션도 내놓았다. 이 제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브러시 기술을 재현한다. 브러시를 통한 파운데이션 화장은 보다 가볍고 매끈한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숙련이 필요해 많은 소비자들이 브러시 파운데이션을 원하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회전파운데이션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든 제품이다. 3만모로 이뤄진 브러시가 초당 3~4회, 분당 240회 회전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준의 기술을 재현한다는 설명이다.
엔프라니의 혁신은 브랜드 리뉴얼로도 이어졌다. 엔프라니의 주요 브랜드인 엔프라니는 사실 브랜드 가치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주요 유통채널인 화장품전문점 시장이 쇠락하면서 유통에 큰 혼란이 생겼다. 인터넷을 통한 할인판매가 극성을 이뤘고 ‘고급’이라는 기존의 이미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제품력 무기로 해외시장 쾌속성장
먼저 제품 라인을 재정비했다. 엔프라니 브랜드가 확장하면서 라인 별로 유사한 콘셉트의 제품들이 중첩돼 있었던 것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방만하게 흐트러져 있던 라인을 몇 가지의 라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 실장은 “매장 직원들도 제품이 너무 흐트러져 있으면 판매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브랜드 리뉴얼은 판매 직원들이 엔프라니 제품을 판매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력도 강화했다. 고급스러움의 이미지는 품질에서 나온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제품력은 특히 바뀐 유통 환경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요건이었다. 엔프라니의 주요 유통채널인 화장품전문점과 마트에서는 더 이상 빅히트 상품이 나오기 어렵다. 매장 수도 적고 면적도 좁아 영향력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간의 ‘붐 업’ 전략보다는 장기전이 효과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품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제품력 향상의 방향은 보다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유스셀엑티베이터를 비롯한 ‘유스셀(YouthCell)’ 라인이 대표적이다. 유스셀은 백합과 연꽃, 수련에서 결 재생과 피부 생명 연장 효과가 우수한 세포를 추출해 만든 성분이다. 피부 깊숙이 흡수돼 처지고 손상된 피부의 결 개선과 세포 활성화를 돕는 효과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스셀이 엔프라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성분이라는 사실이다. 엔프라니와 프랑스, 미국의 연구소가 합작으로 개발했다. 특히 미국 솔크(Salk) 연구소의 셀 커뮤니케이션(Cell Communication) 부문 권위자인 최송현 박사도 참여해 눈길을 모은다.
엔프라니는 자체에 R&D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업체 중 하나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국책과제를 수행할 정도로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기업 규모에 비해 ‘과도한’ 투자라는 지적도 받지만 독자적인 기술력이 없으면 힘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엔프라니의 판단이다.
제품력을 무기로 엔프라니는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다. 이미 태국, 브루나이, 미얀마, 홍콩 등 동남아시아 시장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올해 매출이 2배 이상 커졌다. 가장 기대되는 시장은 역시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에는 이미 숍인숍 형태로 진출해 있다. 김 실장은 “해외시장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가장 큰 중국시장은 충분히 준비해 신중하게 접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