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이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티브 잡스라는 한 명의 위대한 경영자가 퇴출위기에 몰렸던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린 사례는 인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표적 사례다. 특히 기업들은 대학과 공동으로 인재 양성에 나서며 대학과의 협력을 종전보다 훨씬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컴퍼스(컴퍼니+캠퍼스)2.0’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미국사람들에게도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은 참 재미있는 회사다. 확대시켜 나가는 사업영역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전통적인 기업 개념을 하나둘씩 깨는 것이 흥미롭다. 직원들이 회사를 ‘캠퍼스’라고 부른다든지 동료들을 ‘구글러’라고 칭하는 모습 속에는 기업 이념인 ‘혁신’을 실천하기 위한 구글러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끊임없는 동기 부여를 통해 직원 개개인 스스로가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은 전세계 초일류 기업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모습이다. 구글이 업무시간 중 20%를 업무와는 다른 과제에 매진토록 하는 것도 창조적인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다. 

우리 기업들에게도 이 같은 인재양성은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대학과 손을 잡고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다만 미국·유럽 기업들이 ‘컴퍼스’를 업무환경 등 하드웨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비해, 우리 기업들은 ‘컴퍼스’를 내부직원 교육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다가가는 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마다 독특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력개발원 등 인재양성기관을 보유한 회사들은 대부분 자사만의 독특한 인재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산업 트렌드가 빨라지면서 자체 프로그램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대학 등 외부기관과 연계된 교육 과정들이 속속 개설되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임원 등 고위직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과정이 ‘컴퍼스1.0’이라면 중간관리자 실무교육의 현재 방식을 ‘컴퍼스2.0’”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고려대 경영대에 위탁해 진행 중인 삼성화재 SIL프론티어 과정
- 고려대 경영대에 위탁해 진행 중인 삼성화재 SIL프론티어 과정

과·차장급 대상 실무교육 중점

최근 선보여지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서울 주요 사립대 경영대의 필요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현재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이 롯데, 한진그룹 등 7~8개 기업과 공동으로 사내 MBA 과정을 운영 중이며 연세대는 상남경영원에서 신세계SMBA 과정, 동원-연세MBA 과정, 금호아시아나 MBA 과정 등 12개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도 현재 삼성전자재무MBA 과정, 삼성화재 SIL 프론티어 과정, 금호-KUBS MBA 과정 등 다양하다. 카이스트도 푸르덴셜생명, LG디스플레이 등으로부터 위탁받아 사내 MBA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MBA 프로그램 중에는 10년 넘게 운영돼 온 것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교육대상이 세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영 연세대 상남경영원 위탁교육 담당은 “초창기만 해도 기업들이 임원들 위주로 강좌를 꾸몄다면 요즘 개설되는 강좌는 교육 대상이 과장, 차장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일부 기업은 대리급에게까지 문호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들은 조직관리, 리더십보다는 회계, 재무 등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과정들로 구성돼 있다.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 동원그룹, OCI, LG패션, SK건설, 대우증권 교육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대상이 과장, 차장, 부장급이다. 한전과 올해부터 시작하는 ‘KEPCO 글로벌 비즈니스 인텐시브 코스’는 대리급 직원도 참가한다.

참가를 희망하는 기업 수도 늘어나고 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던 것과 달리 요즘 개설되는 과정들은 의료, 금융 등 분야도 다양하다. 교과목도 기업이 원하는 분야에 맞춰 운영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이 카이스트에 위탁해 운영 중인 ‘아산-KAIST 메디컬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은 경영전략, 조직경영, 회계학, 리더십, 고객관계관리 등 일반 경영대 교과목 외에 의료 프로세스 혁신 등 병원 운영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총 10주간 진행되는 이 과정은 서울아산병원 의사, 간호사, 병원행정직이라면 누구나 수강이 가능하다. 최서영 카이스트 경영전문대 경영자과정지원실장은 “대부분 수업이 미리 정한 과제를 수강생과 교수진이 함께 연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무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0년 국내 최초로 서울아산병원 내 소아전문응급센터가 문을 연 것은 이 과정 과제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채택된 결과다. 최서영 실장은 “병원에서 교육수료생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료경영지식, 병원경영,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등이 많이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IBK기업은행이 진행하는 IBK프로리더 과정은 일선 지점장을 대상으로 재무, 회계 외에 고객 영업에 필요한 감성자극법, 고전문학, 커뮤니케이션이론, 심리학, 영화이론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이 밖에도 카이스트는 푸르덴셜생명 지점장들을 대상으로 금융보험전문가과정, LG디스플레이와는 팀장급을 대상으로 경영, 예술, 나노기술, 디스플레이 응용 등이 총망라된 GMP 과정을 운영 중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증권, 생명, 카드 등 금융관련 계열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삼성금융 재무전문가 과정 교육을 고려대 경영대에 위탁했다. 총 11주 동안 운영되는 이 과정은 재무관리, 회계 등의 금융실무와 싱가포르국립대(NUS) 연수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 있다.

- 카이스트와 푸르덴셜생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융보험전문가과정
- 카이스트와 푸르덴셜생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융보험전문가과정

Tip l  정부, 공기업 주도 컴퍼스 교육

삼성전자·삼성중공업·SPC 등 3곳 정식 사내대학 운영

- 2012년도 SPC식품과학대학 입학식
- 2012년도 SPC식품과학대학 입학식

사내 MBA나 각종 전문가 과정은 모든 수업이 비학위 과정이다. 만약 학위를 조건으로 과정을 설립하려면 교육시설, 교원, 선발기준 등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사전에 허가받아야 한다. 현장에서 필요한 과목만을 가르치고 싶은 기업들에게는 제약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우수한 기술인재에게 대학에 가지 않고도 대학수업에 준하는 사내대학 설립을 장려하고 나서 기업들의 사내대학 설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내대학은 평생교육법에 의거한 사내대학과 고등교육법에 근거를 두고 설립하는 기술대학, 기업이 자체적으로 설립한 사내기술대학 등 3가지다. 이 중 정식학위를 주는 곳은 사내대학과 기술대학뿐이다. 사내대학으로 지정받으려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매년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국내 지정된 사내대학은 지난 2005년 삼성전자공과대학을 시작으로 삼성중공업공과대학(2007년), SPC식품과학대학(2011년)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중 삼성전자공과대학은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289명이 졸업했다. 삼성전자공과대학은 현재 국내 유일의 4년제 사내대학 과정이다. 

삼성중공업이 경남 거제조선소에 세운 삼성중공업공과대학은 2년제 전문학사 과정이지만 부산대와 연계돼 4년제 학사학위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또 지난해 설립된 SPC식품과학대학은 제과, 제빵을 전문으로 한 교육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25명이 입학한 데 이어 올해도 24명이 과정에 참여했다.

기술대학은 한진그룹이 세운 정석대학이 유일하다. 1988년 세워진 한진산업대학에서 출발한 정석대학은 기술교육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정식 학위 과정은 아니지만 제너시스BBQ 치킨대학,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대학, LG그룹의 경리대학도 오래전부터 사내기술대학으로 운영돼온 교육기관이다.  

현재 정부는 고등교육 취업난을 해소하고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사내대학 설립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사내대학은 대학 운영과 관련한 모든 비용을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지만 고용보험기금으로 일정부분 환급받는 형식으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지난 2010년 기준 삼성전자가 고용노동부로부터 환급받은 금액은 206억원이다. 투입된 교육비 854억원의 24% 수준이다. 고용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 관계자는 “설립요건을 낮춰 다양한 형태의 사내대학을 설립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전체 교육비의 25% 정도를 정부가 보조해주는 고용보험 지원금을 더 확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내대학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인·허가권을 가진 교육과학기술부에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LH 등이 사내대학 설립을 신청한 상태다. 교과부는 조만간 이들 기업을 방문해 사내대학 추진 방안을 심도 있게 들어본다는 계획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비학위 과정인 사내 현중기술대학을 14년째 운영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직접 강사를 파견해 교육시켜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산업현장교수단 지원 사업은 기계 등 다양한 기술경영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중소기업에 파견해 기술을 무료로 전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중소기업청도 우수기술인을 중소기업, 마이스터고 등지에 파견하는 ‘우수기능전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1년6개월짜리 장기 과정도 등장

이들 과정은 대부분 6개월 미만이며 주로 주말을 이용해 수업이 진행된다. 다만 동원그룹이 연세대 상남경영원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동원인텐시브MBA는 교육과정만 1년6개월로 일반 MBA 과정 수준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최근에 와서는 수강생을 교육기간 동안 현업에서 제외시켜 평일에 집중교육토록 하는 강좌도 생겨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카이스트 GMP 과정은 경영전략, 마케팅&고객관계관리, 회계 및 재무관리, 운영관리 및 IT, 리더십&인적자원관리, 협상전략 등을 가르쳐 경영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경영, 예술, 그리고 변화 및 나노기술과 디스플레이 응용 등에 적용할 수 있게 맞춤식으로 진행된다.  

일부 대기업은 아예 사내 자체 MBA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수강과목 개설과 강사 선정도 해당 기업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효율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주그룹은 지난 4월부터 4개월간 대리급 직원 43명을 대상으로 미니MBA 과정을 실시했다. △전략경영 △마케팅 △인사조직 △회계 및 재무관리 등 4개 과정으로 진행된 이 과정은 외부 전문가를 통해 주요 경영사례를 분석, 경영전략을 실행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과정 등 현장 적용이 가능하도록 수강과목을 구성했다.

Tip l 삼성화재 사내 교육 프로그램

직급별 과정 체계적…단기 해외연수도 진행

- 삼성화재 SIL챌린저 과정
- 삼성화재 SIL챌린저 과정

삼성화재는 전 금융업계를 통틀어 사내 직원 교육프로그램이 가장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이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사내 교육 과정은 SIL 프론티어, 챌린저, 핵심인재양성 비즈리더 과정 등 3가지다.

 삼성화재가 사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지난 200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마케팅 관련 교육을 위탁하면서부터다. 그러던 것을 2007년부터 사내 MBA식으로 확대시켰다. 현재 이들 3가지 교육 과정은 직급별로 진행되고 있다. SIL프론티어 과정은 선임급(대리)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되는데 6개월간 풀타임으로 평일에 교육이 이뤄진다. 재무관리 관련 수업은 고려대 경영대에서 6주, 마케팅과정은 4주간 서울대 경영대에서 실시된다. 4주씩 심리학 과정(서울대 교육)과 자체 어학과정을 이수한 뒤 삼성계열사 해외 법인을 1주 동안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기획돼 있다.

 책임급(과장), 수석급(차장) 직원은 SIL챌린저 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 코스는 마케팅 수업 4주와 영국 시티대 CASS비즈니스스쿨 5주, 실전사례 연구 2주 과정 등 총 11주 코스로 진행된다. 이 두 과정은 지원, 추천 비중을 반반씩 적용해 인원을 선발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경쟁률도 올라간다. 올 상반기 SIL프론티어 과정 경쟁률은 12.4대 1을 기록했다.

 부서장급이 수강해야 할 코스는 비즈리더 과정으로 어학과정 4주를 거친 뒤 연세대 상남경영원에 위탁해 보험 및 경영전략과 관련된 과목을 6개월간 수강하는 코스다. 태원섭 삼성화재 인재개발센터 차장은 “수업 성적에 따라 직무성과급을 차등적용하며 모든 과정마다 사내 기획, 마케팅 파트의 기획안을 실전사례로 연구하기 때문에 사내 전략 수립, 직무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