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 11월15일, 네덜란드의 윌리엄 공과 메리 부인은 1만50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영국 서남부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다. 윌리엄과 메리는 영국 의회 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권리선언’과 ‘권리장전’ 승인을 통해 공동 왕위에 오른다. 많은 병사들의 대규모 희생이 따르는 내전을 피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승리해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 부른다. 명예혁명을 통해 영국의 의회 중심의 정치 체계가 자리를 잡는 것과 동시에 증류주 역사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스카치위스키와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진(Gin)’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 헨드릭스 진(왼쪽)과 국내 첫 진 브랜드인 해태주조의 런던 드라이진
- 헨드릭스 진(왼쪽)과 국내 첫 진 브랜드인 해태주조의 런던 드라이진

진의 탄생과 개발

‘진’이란 곡물을 이용해 발효·증류시킨 90도 이상의 주정에 주니퍼베리(노간주나무 열매)를 비롯한 다양한 허브와 향료를 넣고 재증류시켜 만든 무색의 증류주를 말한다. 숙성과정이 없어 맛이 가볍고 다른 주류와도 잘 어울려 보드카와 더불어 다양한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술로 사랑받고 있다.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진은 치료용 약으로부터 시작됐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의사인 실비우스(Sylvius)는 약효로 인정받던 주니퍼베리와 다른 약용식물을 이용해 이뇨작용과 해열을 돕는 약으로 진을 개발했다. 실비우스는 프랑스어로 주니퍼베리란 뜻의 ‘쥬네브레(Genievre)’라는 이름을 붙였고, 훗날 영국에서 진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돼 불리게 된다.

약용으로 개발된 쥬네브레는 제조가 간단해 빠르게 네덜란드 전역으로 퍼지며 인기를 얻게 됐다. 동시에 명예혁명 당시 영국으로 건너간 약 1만5000명의 네덜란드 병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국에도 소개됐다. 또한 진을 즐겨 마시던 윌리엄 3세가 국왕이 되자마자 수입 술에는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진에 대한 세금을 내리자 저렴해진 가격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게 됐다. 18세기 중반 런던 인구 70만명이 1년에 소비한 진의 양만 무려 5000만ℓ에 이른다. 1인당 소비량이 약 70ℓ에 달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평균 맥주 소비량 50ℓ와 비교해보면 알코올 함유량이 높은 진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진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부작용도 생겼다. 약용 효과보다 알코올에 취해 가정이 파괴되고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등 사회적 문제가 대두됐다. 영국의 유명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1751년 그림 ‘진 골목(Gin Lane)’과 ‘맥주 거리(Beer Street)’ 두 작품을 통해 그 당시 진의 폐해를 지적했다. 진 골목은 도시가 황폐하고 취객들이 널브러져 암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맥주 거리는 ‘좋은 음료’로 인식돼 밝고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사회로 묘사돼 있다.

진의 폐해가 너무 커지자 영국 정부는 ‘진 법령’을 만들어 법원의 관리 하에 허가 받은 곳에서만 제조와 판매를 할 수 있게 규제하면서 1760년대부터 조금씩 소비가 줄어들었다. 그 이후 1831년 연속식 증류법의 개발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품질이 안정돼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진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에서는 열대 모기로부터 전염되는 치명적인 말라리아는 오래도록 골칫거리였다. 변변한 치료법이 없어 열대지역에 파견된 병사들과 상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은 남미 원주민들이 열을 내리는데 ‘키나(Quina)’ 나무껍질을 먹는 것에 착안해 1820년 ‘퀴닌(Quinine)’이란 성분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1. ‘진 골목’ 2. ‘맥주 거리’ 3. 진을 발명한 실비우스 박사
1. ‘진 골목’ 2. ‘맥주 거리’ 3. 진을 발명한 실비우스 박사

1974년 한국의 첫 ‘진’ 소개

퀴닌은 말라리아 예방 및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맛이 워낙 쓰다 보니 복용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에 퀴닌을 진과 탄산수에 함께 타서 마시는 방법이 고안됐다. 진의 주니퍼베리 향과 탄산이 퀴닌의 쓴맛을 크게 줄여줬고, 동인도회사는 병사들에게 매일 진을 배급하며 말라리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진토닉(Gin and Tonic)’이란 칵테일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진토닉을 마시면 달콤함과 함께 약간의 쌉쌀함이 느껴지는데 그게 바로 퀴닌의 영향이다. 하지만 현재의 진토닉에는 퀴닌 성분이 극소량만 들어 있거나 아니면 향만 첨가한 수준이다.

1920년대 재즈시대를 지나 1933년 미국의 금주법이 폐지되자 칵테일 문화가 미국 전역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투명한 진과 보드카는 다른 리큐르(Liqueur)류와 잘 어울려 칵테일에 꼭 필요한 술이 됐다. 진을 사용한 대표적인 칵테일로는 시원하고 달콤한 진토닉과 알코올 도수가 높은 남성용 ‘마티니(Martini)’, 오렌지 주스를 섞은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칵테일 문화가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영국의 진은 세계적인 증류주의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진의 발전상을 빗대 ‘진은 네덜란드 사람이 만들었고, 영국인이 꽃을 피웠으며, 미국인이 영광을 주었다’라는 말도 있다.

국내에서 진은 1974년 해태주조에서 ‘런던 드라이진’이란 브랜드로 처음 소개됐다. 색다른 맛과 상대적으로 낮은 주세로 인해 저렴한 가격으로 초기에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통 진이 아닌 주정에 진 원액 일부를 섞어 만든 ‘기타재제주’ 제품으로 품질에서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 호텔의 바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진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봄베이 사파이어’, ‘비피터’와 같은 대중적인 제품부터 ‘헨드릭스’와 같은 슈퍼 프리미엄 제품까지 다양한 진들이 시장에 나와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도 진은 주류의 다양화 트렌드 및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늦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진토닉 한 잔으로 갈증을 해소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