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에 이용자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막을 달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비키(Viki)’가 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동영상 콘텐츠에 자막을 달고, 동영상을 보기 위해 비키를 찾는 이용자만 월 평균 1400만명에 달한다. 비키의 창업자는 한국인 부부인 호창성·문지원씨다. 이들 부부는 최근 또 다른 회사를 창업해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권도균의 벤처 스토리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영어 공부 위해 ‘미드’에 자막 넣다

     

‘위키피디아’ 형식의 자막사이트 창업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사무실. 소박했지만 한 눈에 자유분방함이 묻어나는 분위기였다. 사무실 한가운데 소파가 놓여 있었고, 책상은 그 둘레에 배치한 파격적인 형태였다. 직원들은 모두 한데 어우러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직원들이 사무실 한가운데의 소파를 통해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처럼 보였다. 사장실도 따로 없었다.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서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 ‘비키(Viki)’를 창업한 호창성·문지원 부부가 두 번째로 설립한 ‘빙글’의 R&D센터다. 아내인 문지원씨가 최고경영자(CEO)를, 호창성씨는 총괄이사(President & COO)를 맡고 있다.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창업자 부부에게서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가 진하게 배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회의실에서는 다른 회의가 진행 중이어서 대담은 인근 카페에서 이뤄졌다.

빙글은 특정 관심사를 기반으로 친구를 맺고, 이를 통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이른바 ‘관심사 기반 소셜미디어’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집합체다. 스포츠 선수, 영화, 음악, 일상 등을 기반으로 모여드는 ‘팬’의 모임인 셈이다. 지난 1월부터 개발을 시작, 6월 베타 버전을 출시했다. 현재 테스트를 진행 중임에도 회원은 벌써 전 세계적으로 60만명에 달한다. 오는 10월 정식 서비스가 오픈될 예정이며, 모바일 버전도 개발 중이다.

문 대표는 빙글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쯤 있습니다. 스포츠처럼 ‘하는 것’도 있고, 컨버터블 카 같은 ‘물건’일 수도 있고, 영화배우 같은 ‘사람’일 수도 있죠.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과 공감하면서 더 행복해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그에 대한 가치를 경험하고 즐기고 교감하는 놀이터가 바로 빙글입니다. 여기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하고, 즐기고, 나누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이하 권) :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R&D센터를 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문지원 대표(이하 문) : 요즘 한국에서도 창업 열풍이 엄청납니다. 한국에서 출발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기업문화에 한국 문화의 장점을 녹여넣기가 좋거든요.

권 : 직원 중에 외국인도 많이 보이더군요.

호창성 이사(이하 호) : 16명 직원 중 절반이 외국인입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도 있고,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경력직 인재들도 있어요. 한국인을 포함해 모두 7개 국적입니다. 빙글은 처음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염두에 뒀어요. 글로벌 DNA를 심기 위해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하죠.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30세가 넘지 않을 정도로 젊어요. 이번에 채용공고를 내자 대기업 출신 경력직이 굉장히 많이 지원했는데, 신입직원을 많이 뽑았어요. 이들에게 ‘마음껏 당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보라’고 했어요.

이 회사가 직원을 뽑는 방식은 특이하다. 사무실 뒤에는 회식을 할 때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같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면서 면접을 했다고 한다.

문 대표는 “벤처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보다는 우리와 같이 갈 수 있는 열정을 먼저 봤다”고 말했다.

빙글의 출발선은 사실 비키다. 비키는 전 세계 TV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콘텐츠를 공급하고, 이용자들이 직접 자막을 붙일 수 있는 사이트다. 자막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처럼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제작된다. 자막 제작자들에게 따로 보수를 지급하진 않는다.

약 1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이 현지에서 드라마 등이 방송되면 몇 시간 만에 자막을 만들어 배포한다. 이들은 사전적인 번역 대신 해당 국가의 문화적 배경과 드라마 등의 내용을 고려한 자막을 제공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말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 비디오는 현재 19개 언어로 번역됐거나 번역 중이라고 한다.

호 이사는 “비키에선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용자들이 방송 드라마나 영화의 자막을 자발적으로 붙이는데, 이러한 열정이나 소통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풀어낼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 빙글”이라고 말했다.

- 권도균 대표(왼쪽)와 호창성·문지원 부부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 권도균 대표(왼쪽)와 호창성·문지원 부부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 보여 준 비키

이들 부부가 비키를 창업한 것은 지난 2007년 여름. 2006년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호 이사는 스탠퍼드대 MBA, 문 대표는 하버드대 교육공학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비키는 문 대표의 마지막 학기 수업 중에 만들어진 기획서였다.

문 대표의 말이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언어 문제였어요. 영어공부를 위해 이것저것 해보다 ‘미드(미국 드라마)’ 번역을 했어요. 그런데 이게 영어를 공부하는 툴로서 손색이 없는 거예요. 거기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번역하는 재미도 있었고요.”

석사과정을 1년 만에 마친 문 대표는 남편이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같이 회사를 차렸다. 초기 창업멤버는 이들 부부와 엔지니어 2명 등 4명에 불과했다. 사이트의 기본적인 형태(프로토 타입)를 개발해 2008년 미국 벤처캐피탈로부터 25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이를 통해 베타서비스를 오픈했다. 자막을 직접 달 수 있고, 자막이 달린 동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튜브 등에 공개된 영상을 이용해 공동자막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동영상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래서 NBC유니버설에서 해외 콘텐츠 투자사업을 담당하던 라즈믹 호바히미안을 CEO로 영입했다. 그는 호 이사의 스탠퍼드대 1년 선배였다. 이들 부부는 비키의 이사회 멤버로서 회사경영에 참여하며, 지금은 빙글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권 : 비키는 한국 드라마로 크게 성공을 거뒀는데, 라이선스를 확보할 때 어땠나요.

호 : 처음에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 장면 같은 것을 번역해 보여줬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미국에 보여주자, 틈새시장을 공략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국의 방송사에서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어요. 누가 보겠냐는 거였죠. 그래서 다짜고짜 드라마 제작사들을 찾아 다녔어요.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 만난 사람이 드라마 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송병준 대표였어요. 송 대표는 “한국 드라마를 알리는 판을 함께 키워보자”며 흔쾌히 “OK”를 하더군요.

2009년 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비키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 30개국의 언어로 번역됐다. 뒤이어 올린 ‘장난스런 키스’도 46개국 자막으로 번역됐다. 지금과 같은 한류 바람이 불기 전에 한국 드라마가 미국, 중남미, 유럽 등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비키였던 셈이다. 호 이사는 비키의 가입자 중 미국에 있는 한국교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3% 이내라며 한국 드라마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권 : 비키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를 보면 해외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 콘텐츠를 짐작할 수 있겠군요.

문 : 비키 덕분에 한국 드라마에 익숙하거나,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많아졌어요(웃음). 한국에서 시청률이 높지 않다고 해서 외국에서도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장난스런 키스’의 경우 한국에선 시청률이 4% 내외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죠. 하지만 해외 반응은 엄청났어요. 해외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의 장르는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을 그린 드라마보다 10대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요. 드라마 제작계획이 발표되고, 어떤 배우가 캐스팅됐다고 할 때부터 드라마가 나오길 기다리는 광팬이 있을 정도죠. 이들은 드라마를 찍기 전부터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막 번역을 미리 지원해요. 흥행의 3분의 2가 드라마 제작 전에 결정되는 셈이죠.

권 : 이젠 드라마 등을 확보하는 게 쉬워졌나요.

호 : 여전히 어려워요. 아직도 한국의 콘텐츠 오너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가 그래요.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데 온라인에 오픈되는 것을 굉장히 꺼리죠. 영화유통이 대기업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것도 문제고요. NBC유니버셜의 경우 온라인 배포가 늘어날수록 DVD 매출도 증가했어요. 온라인의 인기가 오프라인으로 옮겨진 거죠.

현재 비키는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 방송프로그램들을 150여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으며, 동영상 총 조회수는 10억회, 월 평균 시청자수는 1400만명에 달한다. 주 수익원은 광고다. 그동안 미국 벤처캐피탈과 SK플래닛 등으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액도 2000만달러가 넘는다. 그만큼 높은 잠재력을 평가받는다는 얘기다. 지난 2011년에는 IT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크런치 어워드’에서 ‘베스트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키의 기업가치는 1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권 : 위기가 없진 않았을 텐데요.

호 :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이제 사업을 접어야 하나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죠. 100만이 넘는 회원이 있는데도 투자하겠다는 곳이 없었어요. 돈은 바닥이 나고, 투자 유치는 안 되고…. 직원을 5명에서 1명으로 줄였어요. 투자 유치를 위해 벤처캐피탈을 수없이 찾아다녔어요. 30곳 이상을 찾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가타부타 답이 없었어요. 다들 투자에 머뭇거린 거죠. 그러다 한 곳에서 투자를 결정하니까 너도나도 투자하겠다고 나서더군요. 목표였던 33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를 초과한 430만달러를 투자받았지요.

권 대표도 거들었다. “1997년 창업하자마자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1997, 98년 두 해 동안 집에는 거의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외환위기가 한창이었던 1998년 20억원을 투자받아 이니시스를 창업했고, 곧 이어 280억원을 투자받았죠. 그때 저에게 ‘투자의 귀재’라는 별명이 붙게 됐어요. 사실 벤처기업에겐 투자유치가 중요해요. 좋은 사업이라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주도할 시간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죠.”

권 : 빙글은 어땠나요.

호 : 빙글은 쉽게 받은 편입니다. 비키 덕분이죠(웃음).

지난 7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설립한 케이큐브벤처스는 빙글에 45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플랫폼은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권 : 원래 취업보다는 창업에 관심이 많았나요.

호 : 대학 졸업 직후인 2000년에 처음 창업을 했는데, 우연한 기회였어요. 졸업 작품을 보신 교수님이 사업화를 제안했어요. 3차원의 가상공간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었는데, 6개월 만에 접었어요. 이후 3D 아바타를 통해 뷰티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 또 다른 벤처기업을 창업했죠.

그 당시엔 잘 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템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고, 조직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죠.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 유치도 어려웠고요. 갈수록 불어나는 빚 때문에 사업을 그만두기는 더욱 힘들어졌어요. 결국 기술만 다른 회사에 양도하고 빚의 일부를 갚았죠.

호 이사는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남은 빚도 갚아야 했다. 결국 IT업계를 떠났다. 한화리조트 외식사업부에서 신규 점포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그 일도 상당히 잘했다고 했다.

권 : 미국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호 : 2003년 말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한 후 좀더 넓은 세상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물론 목표는 창업이었어요. 배우면서 창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미국을 택했죠. 위험을 분산하자는 생각에 저는 스탠퍼드, 아내는 하버드를 택했어요(웃음).

권 : 한국 대학가와 분위기가 완전 다르죠.

호 : 당시만 해도 스탠퍼드대학 주변은 창업 열기로 뜨거웠어요. 카페나 술집의 모든 테이블에서는 창업자와 엔젤 투자자, 창업자와 벤처캐피탈 간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이곳 저곳에서 이런 아이템은 어떠냐, 저런 아이템은 어떠냐고 하는 말이 들려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실패한 경험을 얘기하면서 다른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한다는 얘기도 수도 없이 들었죠.

문 : 하버드도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스탠퍼드 정도는 아니었어요.

권 : 그렇죠. 스탠퍼드대 주변에서는 인근의 주부들도 벤처 창업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니까요(일동 웃음). 그래도 그런 분위기가 창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호 :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창업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체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또 그런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피어 리그(Peer-League)이기도 하고요. 지식은 널려 있어요. 한국도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배울 수 있는 친구와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아요.

잘 나가고 있는 비키를 성장시키기보다 왜 다시 창업이라는 두 번째 도전에 나섰을까. 호 이사는 “벤처기업 하나를 창업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가면 또 다른 하나를 창업하고 싶어 좀이 쑤신다. 그래서 결국 다시 밖으로 나돈다”고 말했다.

권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이니텍을 시작으로 이니시스, KMPS 등 5개의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들의 몸속에는 ‘창업 DNA’가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선 이런 창업가를 ‘연속 기업가(Serial Entrepreneur)’라고 부른다. 한 번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일컫는다. 하나의 기업에 안주하기보다는 웬만큼 성장하면 이를 다른 기업에 매각하고 다시 창업하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다. 그만큼 벤처 생태계가 선순환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벤처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이 그 사업을 가로채기 일쑤인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문 대표의 설명이다. “개인투자자, 벤처캐피털 및 대기업들이 특정 분야에서 잘하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M&A에 나섭니다. 기본적인 공생의 틀 속에서 벤처기업이 차별화를 통해 경쟁하는 동시에 발 빠른 투자와 자금 회수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거죠.”

실패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호 이사의 말이다. “미국에선 실패가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넌 이제 끝났어’라는 낙인도 아닙니다. 한국에선 실패하면 거의 패가망신하는 수준이잖아요.”

그도 한국에서 창업했을 당시 창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보증을 서야 했고,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CEO가 보증을 서는 경우는 없다. 빚이 아니라 투자일 뿐이다.

한국기업의 경우 CEO가 곧 기업이지만 미국에선 이사회가 그 역할을 한다. 권리와 의무가 철저히 나눠져 있는 것이다.

권 : 의사결정을 하면서 두 분이 서로 다투진 않나요.

호 : 저희가 만난 건 1994년이었어요. 부산이 고향인데, 향우회에서 신입생인 아내를 만나 계속 교제하며 첫 사업도 함께 했습니다.

: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어요. 물론 다투는 경우는 있지만,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이견을 좁혀 빨리 결론을 내는 편입니다.

요즘 국내 IT업계에는 막 창업한 회사를 말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1990년대처럼 벤처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스타트업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는 것은 스타트업에 꿈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한번 세상을 휘젓겠다’는 젊은이들 자신의 꿈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IT업계에서 제2르네상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권 : 최근 한국의 대학생들도 창업에 대한 열기가 대단합니다.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문 : 국내시장만을 타깃으로 삼아도 충분히 좋은 사업모델이 나올 수 있지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면 시도해 볼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해외시장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큰 것 같고, 어렵다고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안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부딪혀 보면서 의미있는 해외경험을 쌓으면 한국과는 또 다른 다양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 : 중소기업에 비전이 있어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경쟁보다는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더 많은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기회를 잡게 될 겁니다. 한국에서도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돌파구는 벤처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빙글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싶고요.

호 이사는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에서 창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 창업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 창업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한 것을 만들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돈 버는 것만큼 잘 쓰는 것도 중요

대담은 이들 부부 창업자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 미래로 넘어갔다. 바로 ‘돈’에 대한 미래 구상이 그것이다.

향후 성공해 평생 넘치는 돈을 벌게 된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억지스런 가정이긴 하다. 하지만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돈이나 일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 권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일찌감치 성공을 경험한 선배로서 한 번 성공을 해봤고, 앞으로도 성공을 꿈꾼다면 ‘돈’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어느 날 아주 탐나는 M&A 제안이 왔는데, 730억원에 달하는 사업인수건 이었어요. 가족회의를 열었죠. 아내는 더 이상 돈을 더 벌기 위해 인생을 낭비해야 하나, 돈 버는 일에 스트레스를 더 받아야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 때 다짐했죠. 더 이상 돈 버는 일은 안 하겠다, 쓰는 일 하겠다, 그것도 다 쓰겠다고요. 그랬더니 머리가 더 아픈 겁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더 어려웠어요. 남을 돕는 일도 여러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도울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더군요. 돈 쓰는 것도 연구개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두 분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문 :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못했어요.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것 같아요(웃음). 또 다른 재미있는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권 대표님처럼 후배를 양성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요.

호 : 지금보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대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혁신적인 사회과학 아이디어나 비주류 문화를 키워 보겠습니다.

최근 정보기술(IT)업계를 중심으로 막 창업한 벤처기업을 이르는 ‘스타트업’ 바람이 뜨겁다. 1990년대 말 ‘벤처 열풍’과 비슷하다. 당시의 벤처 열풍은 거품으로 사그라졌다. 이번 스타트업 바람이 한국 경제에 훈풍이 되길 바라면서 <이코노미플러스>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와 함께 ‘벤처 스토리’ 코너를 진행한다. 권도균 대표는 우리나라 인터넷 전자지불 표준을 확립한 이니시스의 창업자다. 권 대표와의 대담을 통해 쏟아질 벤처기업인들의 진솔한 스토리는 예비 창업자나 스타트업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성공방정식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1963년 생. 경북대 전산학과 졸. 보안업체인 이니텍과 전자지불 업체인 이니시스 등 5개의 기업을 창업한 1세대 벤처기업가다. 2008년 코스닥에 상장시킨 이니텍과 이니시스 두 회사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으며, 2010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이재웅·이택경, 이머신즈 설립멤버인 송영길, 네오위즈 창업자인 장병규 등과 프라이머를 설립, 엔젤 투자 및 초기 창업기업 인큐베이터로 변신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초기 창업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자금투자보다는 적극적으로 경영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데 주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