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지난 9월 8·9일 양일간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다. 러시아 정부가 푸틴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여는 국제 행사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베링해와 북태평양을 연결하는 관문에 위치한 경제·군사적 요충지다. 특히 외신에서는 이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러시아가 북극 개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세계 경기침체로 선박을 통한 화물운송 비용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있지만 경기가 살아나고 유가가 반등하면 북극항로는 유럽과 동북아를 연결하는 황금노선이 될 거라는 게 관련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2 ‘툰드라 프로젝트’로 명명됐던 지난 9월초 이명박 대통령의 노르웨이, 그린란드 순방은 언제나 그렇듯 극비리에 진행됐다. 하지만 청와대나 외교부가 이번 방문을 준비하면서 다른 때보다 철통 같은 보안을 요구한 것은 북극경제권을 놓고 한·중·일 3국 간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파트너인 북유럽이나 러시아 쪽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북극권 개발을 자국 경제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국가적 역점 사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툰드라 프로젝트(코리안 루트)를 통해 우리가 북극권 개발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석유·가스 다량 묻혀 있는 지하자원 보고
‘골든 화이트 존(북극해 연안)’이 부상하고 있다. 사시사철 얼음으로 뒤덮여 있던 북극해 해빙일이 길어지면서 이 일대가 거대한 자원 보고(寶庫)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북극해 연안의 한 축을 담당하는 러시아는 지역 개발과 관련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는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과 서시베리아 지역 공동개발을 위해 합작기업을 설립한 것이다. 양사는 이미 지난 2011년 북극 카라해 광구 3곳 탐사와 관련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로스네프트는 영국 정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도 주식 맞교환 방식을 통해 북극해 연안 석유, 가스를 공동 개발키로 합의했다. 북극은 눈덮인 얼음바다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 인근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모두 주도권을 놓칠세라 거점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 내 가장 많은 유전, 가스전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07년 로모노소프 해령 인근을 잠수정을 이용해 탐사한 결과 이 일대 1000억t에 이르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바렌츠해와 카라해 일대에는 또 다른 국영석유회사 가즈프롬이 가스,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설치하고 있다. 미국도 올해 알래스카 내 석유가스 개발을 위해 관할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미 해군의 북극탐사 예산을 40% 가까이 증액했다.
물론 이 같은 이유는 북극에 매장된 엄청난 지하자원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미국 지질조사소(USGS)는 북극권 내에 석유가 900억배럴, 천연가스는 1670조입방피트, 그리고 440억배럴의 컨덴세이트(휘발성 액체탄화수소)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추정량만으로도 전 세계 석유매장량의 13%, 천연가스의 경우 3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이외에도 북극에는 현재 금, 은, 플래티늄, 동, 철, 아연, 주석, 니켈, 구리, 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지하자원이 땅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이 북극해 연안 국가들과 손을 잡고 지하자원 개발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자원 확보에 비상이 걸린 동북아 3국은 상황이 더더욱 그렇다. 중국만 해도 지난해 원자바오 총리가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독일, 스웨덴, 폴란드를 잇달아 방문하는 등 지하자원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방문한 4개국은 하나같이 북극위원회 참여국들이다. 현재 중국은 북극위에 상임 옵서버로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당사국과 꾸준한 접촉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러시아 내에서도 막대한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야말(Yamal)반도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 국영석유회사들과 장기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일본도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를 증설하는데 치요다화공, 마루베니, 이토추상사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극지방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제 막 시작단계다. 지난 2010년 해외자원개발 기본 계획 수립에 극지 자원개발을 포함시키면서 본격 가동에 나섰다. 또 지난해 한국가스공사가 캐나다 우미아크(Umiak) 광구 지분을 매입해 북극권 유전개발에 첫삽을 떴다. 현재 지질자원연구원은 덴마크 그린란드 지질조사소와 공동 조사에 나선 상태다. 김용재 지질자원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희토류, 석유, 가스 등 주로 광물자원에 대해 공동 조사하며 10월 중 덴마크 그린란드 지질조사소 관계자가 내한해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린란드에는 전 세계 30여개 기업이 자원개발과 관련해 탐사 중이다. 이 중 10여곳은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9일 덴마크령 그린란드 일룰리사트에서 한국광물자원공사는 그린란드 내에서 희토류 등 다수의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누나미네랄즈와 그린란드 광물자원 분야 협력과 관련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누나미네랄즈는 그린란드 정부가 30.63% 정도 지분을 보유한 광물기업이다. 양사가 체결한 협력 방안에는 공동탐사, 정보교환, 전문가 교류 등이 포함돼 있다.

거리 먼 수에즈보다 북극항로 경제성 높아
지역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지역을 관통하는 항로 개설도 점차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북극항로는 기후, 지리, 경제적 여건 탓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우리 선박회사들이 주로 이용하던 수에즈 운하 노선이 고유가, 해적에 의한 테러 위험 등의 이유로 운송비가 오르는 것과 달리 북극항로는 기후변화로 운항 조건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산~러시아 무르만스크를 오가는 선박이 기존 수에즈 운하가 아닌 북극해를 통과하면 거리로는 7000㎞, 일수로는 18.6일 정도 단축된다. 또 유럽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부산까지 4920㎞, 일수로는 9.3일 정도의 거리, 시간을 줄이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채굴된 석유, 천연가스를 수송하기 위해 북극항로 개설은 선결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선박회사 등 민간기업과 정부 간 공동보조가 잘 이뤄져야 한다. 중국만 해도 국영가스회사와 대형 선박회사 코스코(Cosco)가 공동으로 러시아 지하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도 국토교통성 내 북극항로 개통을 위한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관련 국가들과 긴밀한 협조를 벌여 나가고 있다.
천연자원을 실어 나르는 수요가 커지면서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나는 모습이다. 글로벌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1항차에 불과했던 북극항로는 지난해 34항차로 늘어난 데 이어 올 8월말 현재 40회나 배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정부는 국토해양부 내 북극해시범운항지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북극항로 개설을 위한 종합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 TF팀에는 국토해양부를 비롯해 현대상선, 한진해운, 범양상선, STX팬오션 등이 민간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러시아, 노르웨이 선박회사와 협력해 북극해 노선을 시범적으로 운항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북극항로 정기 노선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상당히 많다. 용선(用船)의 경우 현재 노르웨이, 러시아 선주 회사들과 협력하는데 이마저도 컨테이너 선박이 아닌 벌크선만이 가능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5만t급 이상 컨테이너 선박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북유럽과 동아시아 쪽 수송 품목이 다양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쪽에서 갈 때는 화물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데 반대로 저쪽(북유럽)에서 올 때는 거의 빈 배로 와야 한다”면서 “더군다나 수에즈 운하 항로를 비롯해 주요 항로 운임이 워낙 가격 편차가 커 아직은 경제성 여부를 따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1회 운송당 40만~60만달러 정도의 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정부는 항로 시범운항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 중이다. 현재 북극항로를 통해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박회사로는 덴마크 노르딕 바렌츠와 러시아 무르만스크로, 현재 이 두 곳만 북극해를 통과할 수 있는 벌크선을 보유하고 있다. 또 벌크선이 북극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동력인 벌크선을 끌고 나가는 쇄빙선(Ice Breaker)이 필요한데 이 역시 쇄빙선 회사 로스 아톰(Ros Atom), 플로이트(Floit)의 도움이 절실하다. 두 회사 모두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 국영기업이다. 김성호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과 사무관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래를 내보다고 항로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 북극항로 시범사업의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벌크선으로 화물을 실어 나르다 보니 품목도 아직까지 제한적이다. 국토해양부 TF팀에 소속된 해운회사들은 현재 유럽과 교역하는 국내 다수 대기업과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중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종훈 현대제철 차장은 “순수 철강재보다는 고철(스크랩) 등을 국내로 실어 나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ip. 남극 개발
현대건설 컨소시엄 장보고기지 개발

남극 대륙은 현재 인류 공동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을 규정한 남극 조약 때문에 인근 국가들이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오로지 학술 연구차원에서만 진입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남극에서 민간 기업이 특별한 기술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다만 남극이라는 기후적인 여건을 감안해 기지 건설 등 설비 투자 부분에 민간 기업들의 제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극 내 두 번째 연구기지인 장보고기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로스해 연안 테라노바만 인근에 세워지는 장보고기지는 현재 현대건설 주도로 컨소시엄(현대건설, 코오롱건설, 계룡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 구성돼 있다. 남극은 최저 기온이 영하 37.9도, 최고 기온이 10도로 얼음이 녹아 바닷길이 열리는 기간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불과 3개월 남짓이다. 이 기간 동안에만 공사가 가능한 데다 완공 후에도 기지가 극한의 추위와 바람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시공에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극지연구소와 시공사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인천 송도신도시에 전체 기지 중 80% 시설을 가조립한 뒤 현지에서 이를 부문별로 짜맞추는 모듈러 방식으로 오는 2014년 3월까지 공사를 끝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