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브랜드 전략을 체계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이전에도 광고나 홍보 영역에 스토리텔링이 이용되기는 했지만 빈도가 적을뿐더러 전략적 접근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브랜드가 스토리텔링을 핵심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돋보인 브랜드 사례를 살펴봤다.
요즘 시판되고 있는 새로운 디자인의 백세주.
요즘 시판되고 있는 새로운 디자인의 백세주.

국순당 ‘백세주’
불로장생 건강주 설화로 애주가 사로잡다

국내 대표 전통주 기업 국순당의 간판 브랜드 ‘백세주’가 올해 출시 20주년을 맞았다. 스무 살 백세주의 성장사(史)는 곧 브랜드 스토리의 창출 및 진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백세주를 만드는 국순당은 회사 이름 자체가 ‘우리의 누룩(麴)으로 좋은 술(醇)을 빚는 집(堂)’이라는 뜻으로 주류 명가의 고집과 자존심을 내건 스토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백세주는 소주와 맥주로 양분돼 있던 국내 대중주(酒) 시장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백세주가 처음부터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다. 국순당은 1992년 백세주 출시 초기 도심 외곽지역 업소를 찾아 다니며 ‘게릴라 마케팅’을 벌였다. 각 업소별 식단에 맞춘 차림표를 만들어 제공하는 ‘맞춤형 마케팅’도 전개했다. 메이저 주류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에 국순당은 백세주 브랜드의 철학과 성격을 담은 포스터를 기획하게 됐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려 있는 ‘구기(구기자나무) 백세주’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구기 백세주를 먹어 늙지 않는 젊은 청년(아버지)이 노인(아들)을 회초리로 때리는 그림과 함께 설화 내용을 담은 그 유명한 포스터가 탄생했다.

고봉환 국순당 홍보팀장은 “당시 주류 포스터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을 등장시키는 내용 일색이었는데, 국순당은 백세주 포스터에 ‘이야기’를 담는 최초의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과거의 백세주 디자인(위). <지봉유설>에 나오는 설화 내용에서 착안한 백세주 광고 포스터.
과거의 백세주 디자인(위). <지봉유설>에 나오는 설화 내용에서 착안한 백세주 광고 포스터.
건강주를 콘셉트로 삼은 백세주의 브랜드 스토리는 점차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백세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났다. 애주가들 사이에 백세주와 소주를 절반씩 섞어 마시는 이른바 ‘50세주’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음주문화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특정 브랜드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순당은 50세주가 큰 인기를 끌자 2008년 아예 ‘50세주’ 제품을 만들어 출시했고, 그게 다시 백세주의 브랜드 스토리를 살찌우는 계기로 작용했다.

다채로운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건강에 좋은 전통주’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킨 백세주는 현재 전통주 시장의 대표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전통주 하면 가장 먼저 백세주를 떠올릴 정도다. 지난 20년간 백세주의 판매량은 무려 6억3000만병에 달한다. 이를 한 줄로 이으면 지구 둘레를 약 3.6바퀴 가량 돌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백세주는 지난 2007년 국세청이 주관한 대한민국 주류품평회에서 ‘대한민국 명품주’에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그 덕분에 각종 국제행사에서 공식 건배주로 채택된 적도 여러 차례다. 또 해외 주류품평회에서도 메달을 수상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 브랜드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LG생활건강 ‘비욘드’
친환경 메시지 던져 소비자 가슴에 꽂히다

LG생활건강이 2005년 처음 선보인 화장품 브랜드 ‘비욘드’는 이른바 ‘에코(친환경) 뷰티 브랜드’를 표방한다. 특히 제품기획 단계부터 친환경 콘셉트를 브랜드 정체성에 담은 점이 눈길을 끈다.

비욘드의 친환경 철학은 ‘에코 밸류 10’이라는 가치체계로 정리돼 있다. 친환경, 공정거래, 화학방부제 무첨가, 인공색소 무첨가, 동물실험 반대, 피부 안정성 테스트, 화학성분 최소화, 폐기물 최소화, 재활용 포장재 사용, 화석연료 사용 축소 등 10가지가 그것이다.

LG생활건강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에코 밸류 10’을 지향하는 비욘드의 브랜드 스토리를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올해부터 10대 핵심가치 중 하나인 ‘화장품 동물실험 반대’ 메시지를 마케팅 활동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전달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LG생활건강은 지난 6월 요즘 한창 주가가 치솟은 인기배우 김수현과 애완동물을 함께 등장시켜 동물실험 반대를 주장하는 비욘드 TV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광고는 모델 김수현의 스타파워와 함께 “예뻐지기 위해 널 다치게 할 수 없어”라는 감성적 카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TV 광고는 매체비용이 비싼 탓에 대부분 화장품 브랜드들이 TV 광고를 할 때는 주로 기능과 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번 비욘드 TV 광고는 제품의 기능적 측면이 아닌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비욘드의 동물보호 철학을 담은 ‘비욘드 립스틱을 부탁해’ 제품.
비욘드의 동물보호 철학을 담은 ‘비욘드 립스틱을 부탁해’ 제품.
LG생활건강은 지난 7월 거리로 나가 동물실험 반대 서명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불필요한 화장품 동물실험 반대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시민들의 동물보호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취지에서였다.

나아가 LG생활건강은 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실현을 위해 ‘멸종위기 동물보호 펀드’도 출범시켰다. 이 펀드를 통해 화장품 동물실험의 가장 큰 피해를 입는 토끼를 형상화한 ‘Save Us(우리를 구해주세요)’ 아이콘을 선보이는가 하면 아이콘 부착 제품의 판매수익금 일부를 적립해 멸종위기 동물 보호 활동에도 사용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 비욘드는 동물실험 반대와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내세운 광고, 캠페인, 제품 출시 등 일관된 스토리텔링 마케팅 활동을 통해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온·오프라인 화장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비자들 사이에 ‘동물사랑 화장품’이라는 평판을 듣게 된 것도 한 예다.

성유진 LG생활건강 홍보팀 차장은 “화장품 업계에서는 브랜드의 매력과 장점을 소비자에게 세련되게 전달하는 브랜드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욘드는 젊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 동물 보호 이슈를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접목해 많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인기배우 김수현과 애완견을 모델로 등장시킨 스토리텔링 광고를 펼쳤다(왼쪽). LG생활건강 친환경 뷰티 브랜드 ‘비욘드’의 동물실험 반대 서명 캠페인.
LG생활건강은 인기배우 김수현과 애완견을 모델로 등장시킨 스토리텔링 광고를 펼쳤다(왼쪽). LG생활건강 친환경 뷰티 브랜드 ‘비욘드’의 동물실험 반대 서명 캠페인.
비욘드 브랜드는 2011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최근 2~3년 동안 연 평균 50%에 가까운 매출 증가율을 기록할 만큼 급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친환경 화장품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스토리텔링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을 담은 마케팅으로 세계에 서다

1974년 4월 지름 7cm의 작고 둥근 초콜릿 과자가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오늘날 그 과자는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60여개국에서 한국 대표 과자 브랜드의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 과자의 이름은 ‘초코파이’다.

제과업체 오리온의 최대 히트작이자 간판 브랜드인 초코파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국민과자’라고 부를 만하다. 초코파이가 사랑을 받는 첫 번째 비결은 무엇보다 맛과 품질이다. 초코파이는 특유의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내기 위해 특수한 제조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초코파이의 또 다른 성공비결로 한국인 고유의 정서인 ‘정(情)’을 내세운 이른바 ‘정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설정해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어필한 것이 큰 효과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오리온은 1989년부터 정을 핵심 콘셉트로 삼은 초코파이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사 가는 날’, ‘삼촌 군대 가는 날’, ‘할머니 댁 방문’, ‘집배원 아저씨’ 편 등의 연작 광고를 통해 초코파이는 현대인들이 잊기 쉬운 가족과 이웃간의 정을 일깨우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지상파 TV 광고로는 최초로 무려 2분짜리 ‘초코파이 정’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2분짜리 광고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는 내용을 감동적인 스토리와 영상에 담아 전달했다. 

초코파이는 특유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한국 고유의 정서인 ‘정’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국민과자 반열에 올랐다.
초코파이는 특유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한국 고유의 정서인 ‘정’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국민과자 반열에 올랐다.
정승일 오리온 홍보팀 과장은 “초코파이는 한국인의 독특하고 고유한 정서인 정을 브랜드에 투영시키는 정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광고 캠페인 등을 통해 정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삼은 게 주효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가장 큰 해외 시장인 중국에서도 정 마케팅과 유사한 브랜드 스토리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인(仁) 마케팅’이다. 인은 유교사상의 핵심가치이자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는 덕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리온은 바로 그 점에 착안해 인을 내세운 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중국 시장에서 ‘좋은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하오리유(好麗友)’라는 브랜드로 팔린다. 또한 제품 포장지에도 정(情) 대신 인(仁)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겼다. 중국인들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브랜드 현지화 전략’인 셈이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2011년 국내 시장에서 매출 1050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중국 시장에서는 매출 1200억원을 돌파해 한국보다 더 높은 실적을 달성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다. 향후 오리온 초코파이의 맛과 브랜드 스토리가 얼마나 더 많은 중국인들을 사로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러시아 청소년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온 초코파이의 현지 마케팅.
러시아 청소년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온 초코파이의 현지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