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동원시스템즈는 이사회를 열어 회사의 분할·합병을 결의했다. 기존 3대 사업 중 건설부문과 통신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하고, 남은 정밀부문과 동원그룹이 인수한 대한은박지를 한 회사로 합병하는 게 골자다. 이 결정에는 동원그룹의 새로운 미래 청사진이 투영돼 있다. 조점근 동원시스템즈 대표를 만나 자세한 속사정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2011년 동원시스템즈의 매출액은 4659억원이었다. 사업부문별 매출은 건설 2316억원, 정밀부문 1953억원, 통신부문 340억원 순이었다. 액면만 보면 건설부문이 동원시스템즈의 주축사업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지난 9월 동원시스템즈 이사회는 정밀부문을 남겨두고 건설·통신부문을 분할하기로 결의했다.

왜 그랬을까. 이런 궁금증은 정밀부문의 사업성과를 들춰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동원시스템즈 정밀부문은 종합포장재 및 교육기자재 사업을 영위해왔다. 특히 포장재 사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컸다. 놀라운 것은 정밀부문의 성장세다.

정밀부문은 1996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해 매출액은 21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예상 매출액은 2470억원에 달한다. 불과 16년 만에 무려 118배나 증가했다. 영업이익의 성장세는 더 놀랍다. 8400만원에서 207억원으로 246배나 수직 상승했다.

정밀부문의 초고속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주역이 바로 조점근 동원시스템즈 대표라는 평이다. 그는 중간간부 시절이던 1996년부터 포장재 사업을 맡아 변화와 혁신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했다. 특히 동원그룹이 외환위기 시절 인수한 진천공장 정상화를 위해 2년 동안 공장에서 살다시피 할 만큼 열성적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 시절 조 대표는 차장 직급으로 공장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했다.

전자회사보다 더 청정한 생산관리 추구

조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임원 승진 후에는 포장사업부장을 맡아 공격적인 영업으로 해외 고객사 발굴에 앞장섰다. 이때 글로벌 식품업체인 네슬레 등과도 거래를 트게 됐다. 그 덕분에 포장재 사업은 그룹 관계사 의존도를 크게 줄여나가는 동시에 눈부신 매출 증가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 포장재 업체들은 대부분 낙후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어요. 식품 포장재는 직접적으로 식품과 접촉하는 제품입니다. 당연히 위생과 청결이 가장 중요한 요소죠. 저는 포장재 사업에 참여하면서 한 가지 철칙을 세웠습니다. 식품을 담는 포장재를 식품보다 더 깨끗하고 안전하게 생산하겠다는 것이었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생산환경 혁신에 모든 역량을 투입했습니다.”

조 대표가 평소 임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전자회사 이상의 생산관리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은 티끌만한 먼지조차도 완벽하게 차단하는 청정시설이 필수다. 미세한 오염물질만으로도 반도체 품질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 대표는 청결과 위생을 식품 포장재의 최고 덕목으로 중시한다. 네슬레 같은 세계적인 식품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철두철미한 품질·환경·안전시스템 덕분이었다. 

현재 동원시스템즈 포장재 사업부문에서는 크게 연(軟)포장재, 제관(製罐), 플라스틱 용기, 페트병 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큰 품목은 연포장재와 제관이다. 연포장재는 플라스틱 필름, 종이 등 유연성을 가진 재료로 만든 포장재를 말한다. 동원시스템즈는 커피, 빙과류, 스낵, 샴푸 등에 사용되는 연포장재를 1000종 이상 생산하고 있다. 동원 계열사뿐 아니라 네슬레, 빙그레, 유니레버, 옥시 등 다른 대형 고객사에도 납품된다.

제관은 쉽게 말해 금속 캔이다. 동원시스템즈는 참치 캔, 골뱅이 캔, 순닭가슴살 캔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국내 참치 캔 시장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제품군이 겹치는 하림(닭가슴살), 유동(골뱅이) 등 경쟁사에도 캔을 공급 중인 점이 눈길을 끈다. 경쟁사들도 품질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동원시스템즈 포장재는 해외 시장 수출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수출액이 매년 30% 이상의 높은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수출 지역도 북미, 남미,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다변화돼 있다.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조 대표는 고속성장 가도를 달려온 동원시스템즈 정밀부문이 대한은박지를 합병하게 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빗대자면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형국이라고 할까.

대한은박지는 알루미늄 가공제품 생산업체다. 특히 알루미늄 호일(Aluminum Foil) 시장에서 국내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대한은박지의 알루미늄 호일은 최저 5㎛(미크론: 1㎜의 1/1000) 두께까지 압연이 가능한 기술력 덕분에 제과, 담배, 화장품, 비누, 제약 포장재뿐 아니라 에어컨, 자동차용 열교환기 제조 등에도 사용된다. 대한은박지는 세계 25개국에 각종 알루미늄 가공제품을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동원시스템즈는 대한은박지와의 합병을 통해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아우르는 종합포장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나아가 향후에는 첨단산업소재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차전지용 알루미늄 호일 같은 경우 대한은박지가 이미 기술개발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동원그룹의 이름으로 영업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아주 클 겁니다. 현재 포장기술연구소에서는 생활용품, 의약품, 산업소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개발에도 전념하고 있는 중이죠.”

동원시스템즈와 대한은박지의 합병은 사업영역 확대, 신규시장 진입, 생산능력 확대, 원가경쟁력 및 기술경쟁력 제고, 수출시장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점근 대표는 정도 경영과 현장 경영을 최우선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정도 경영과 현장 경영은 동원그룹의 기본 경영이념이기도 하다.

대한은박지 합병으로 큰 시너지 예상

그러다 보니 조 대표의 포부도 당연히 크다. 그는 당장 2018년까지 동원시스템즈의 매출을 1조원대로 성장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해놓은 터다. 불과 6년 만에 현재 매출의 4배 규모로 회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감에 넘쳤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성장세를 바탕으로 대한은박지와 합병 시너지만 제대로 낸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해외 시장 공략 가속화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원시스템즈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은 약 13%다. 언뜻 봐서는 의미 있는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연평균 30%에 달하는 수출 증가세를 주목해야 한다. 동원시스템즈가 첫 수출을 한 것은 2006년. 그 해 고작 수만달러어치 물량을 배에 실어 보냈을 뿐이지만 지난해 수출액은 약 2250만달러에 이르렀다. 또 올해 수출액은 약 4300만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시장이 곧 동원시스템즈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포장산업은 의외로 엄청나게 규모가 크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어 잘 인지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사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소비재는 포장재를 필요로 한다. 특히 포장재는 상품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여주는 핵심요소로 작용한다.

세계 포장시장 규모는 2009년 기준 640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성장률도 연평균 6% 안팎으로 제법 높은 편이다. 특히 제조업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인도 등 거대 신흥경제권의 소비증가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동원그룹은 동원산업(원양 수산업)과 동원F&B(식품사업)가 주축 계열사다. 당초 동원시스템즈의 포장재 사업은 두 핵심 계열사의 사업영위를 보조하는 역할로 시작됐다. 하지만 적극적인 사업확대와 외부고객 개척을 통해 계열사 의존도를 100%에서 50%대로 대폭 줄였다. 달리 말하면 강력하면서도 독립적인 성장엔진을 장착한 셈이다. 향후 동원시스템즈는 동원산업, 동원F&B와 함께 동원의 3대 성장축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시장은 좁아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해외 시장은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습니다. 앞으로 첨단산업소재 전문기업 도약을 위해 IT, 화학, 포장 분야에 두루 뛰어난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 역량 강화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저는 자사주를 제법 사들였습니다. 임직원들에게도 회사 주식 매입을 권유하곤 해요. 그만큼 동원시스템즈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겠죠.”

▒ 조점근 대표는…

1959년생. 1981년 동원시스템즈 입사, 1997년 진천공장 공장장(차장),  2003년 포장사업부장(상무보),  2006년 포장제관사업부장(상무), 2008년 함안공장 공장장 겸임, 2009년 포장제관사업부장(전무), 2011년 동원시스템즈 정밀부문 대표이사(부사장), 2012년 동원시스템즈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