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가 지난 상반기 출시한 신형 싼타페에는 최첨단 텔레매틱스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차량을 도난당했을 경우 차량의 위치와 경로가 실시간으로 경찰에 통보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시동을 걸거나 히터를 작동시킬 수 있고, 주차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차량 상태도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다. 이 텔레매틱스 시스템에 적용된 기술이 오비고의 차량용 웹 브라우저다.
황도연 오비고 대표는 “PC에 쓰이던 웹 브라우저가 휴대폰을 넘어 자동차, TV에 적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방, 의료분야 등으로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고는 왑(WAP : 무선 인터넷 전송규약) 기반의 휴대폰용 브라우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다. 최근에는 새로운 웹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는 HTML5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은 브라우저 자체를 플랫폼으로 만드는 게 대세입니다. 특히 HTML5는 어떤 기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이폰이든, 안드로이드이든 운영체계에 상관없이 구동됩니다. TV의 경우에는 삼성전자가 만들었던 소니에서 만들었던, 제조업체가 어디든 간에 적용될 수 있어요.”

한국지사 운영하다 본사 사업부 인수
황 대표가 사회에 첫발을 디딘 곳은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 기술기획팀이었다. 그는 사내에서 실시하는 기술논문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잘 나가던 엔지니어였다.
1999년 에릭슨코리아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 한국기업을 위해 일하자는 생각에서 그는 미련 없이 삼성전자에 사표를 던졌다.
이듬해에는 미국의 모바일 솔루션 업체인 오픈웨이브코리아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다. 36살이던 때였다. 그가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의외로 엉뚱했다. “성공보다는 실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젊었기 때문에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고 자평한다. 사업은 잘 했지만 조직관리에선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만 할 줄 알았지 사람 관리를 못했던 것이다.
오비고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스웨덴에 본사를 둔 텔레카에서 러브콜이 왔다. 텔레카는 휴대폰 브라우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로, 모바일 브라우저 분야에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직원이 CEO인 저 혼자였거든요. 이동통신산업이 막 성장하던 때였어요.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봤죠. 게다가 다들 말리니까 더 해보고 싶더군요.”
그는 소스코드를 공개하도록 본사를 설득, 여기에 한국적인 기술을 접목했다. 한국지사가 개발한 브라우저가 본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휴대전화 업체인 모토로라나 노키아가 본사보다 한국 지사와 일하기를 원할 정도였다. 2007년 텔레카가 R&D 부문을 한국으로 이관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직원은 3년 만에 100명으로 불어났다.
2008년 텔레카가 모바일 솔루션 사업부인 오비고를 분사하려고 하자 이를 아예 인수했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의 사업부문을 인수했다는 점에서 그는 휠라의 윤윤수 회장에 비견된다. 그가 ‘IT업계 윤윤수’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후 오비고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왑(WAP) 기반과 풀(Full) HTML 브라우저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3대 모바일 브라우저 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 오비고의 성장세도 주춤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같은 범용 운용체계로 인해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다. 그는 새로운 웹 표준으로 떠오른 HTML5에 주목했다. 또 PC에서 모바일로 갈아탄 브라우저가 자동차와 TV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9년부터 모바일, TV 자동차 등의 다양한 디바이스에 탑재가 가능한 브라우저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이제는 HTML5 기반의 브라우저 선두주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모바일 브라우저는 미국 이동통신사인 AT&T를 시작으로 일본 NTT도코모 등에 공급됐다.
오비고는 글로벌 차량용 브라우저 표준화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이 회사는 차량용 브라우저 표준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협의체인 ‘제니비(GENIVI)’에 브라우저 업체로는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제니비에는 BMW, GM, 현대차, 인텔, 삼성전자 등 세계 자동차 관련 업체 및 소프트웨어 업체, 반도체 업체 등 160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오비고는 최근 차량용 브라우저 표준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니비 최우수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든 기기에 브라우저 탑재
그는 우리 생활 주변의 모든 기기에 브라우저가 탑재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프린터 등에도 적용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어요. 비행기나 탱크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에도 탑재가 될 겁니다. 최근에는 의료기기 업체에서도 공동연구를 제안해 오고 있어요.”
오비고는 세계를 향해 뛰고 있다.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지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자동차 회사 등을 공략하고 있다. 황 대표는 “10년 이상 브라우저라는 한 우물을 파 왔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해 대한민국 IT의 위상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로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것이 꿈입니다. 한국이 더 이상 테스트베드가 아니라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 국가라는 것을 오비고가 보여줄 겁니다.”
▒ 황도연 대표는…
1965년생. 89년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 91년 성균관대 대학원 산업공학과 졸업. 96년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대학원 MBA 취득. 91년 삼성전자 입사(병역특례). 99년 에릭슨코리아 어카운트 매니저. 2000년 오픈웨이브코리아 한국 지사장. 2002년 텔레카코리아 한국 지사장. 2009년~현재 오비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