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화려한 불꽃이 한강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길게 꼬리를 물고 하늘로 솟구친 불꽃이 터질 때마다 시민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지난 10월6일, 120만명의 시민을 열광케 한 ‘2012 서울세계불꽃축제’ 현장이다. 올해로 10회째 열린 이 행사의 중심에 한화그룹이 있다.
2000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울 시민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불꽃놀이 축제를 개최하라고 지시한다. 한화그룹의 전통을 되살리고 사회공헌을 챙기는 데 불꽃놀이가 적격이라는 판단에서다. 한화그룹의 모기업은 1952년 설립돼 수입에 의존했던 화약사업을 국산화한 ‘한국화약’이었다.
김 회장은 평소에도 “기업이 사회를 밝히는 불꽃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2000년 처음 열린 이후 2001년 미국 9·11테러, 2006년 북한 핵사태 등 국내외 돌발변수로 모두 세 차례 열리지 못했지만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저력을 발휘했다.
불꽃축제의 근간이 되는 한국화약은 1952년 10월9일 김승연 회장의 선친 김종희 선대 회장에 의해 설립되며 한화의 역사에 물꼬를 텄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맨손으로 한국화약을 창립했다. 화약은 당시 리스크가 컸던 사업이었지만, 사업으로 국가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하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으로 뛰어들었다. 1955년 인천화약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기반을 구축했고, 1959년 다이너마이트 상업생산을 개시하며 국내 화약산업의 주체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화약산업, 한국경제성장 견인차 역할 ‘톡톡’
김종희 회장은 이후 석유화학, 기계산업 등 경제발전의 근간이 되는 기간사업 위주로 투자를 진행했다.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하며 한화그룹은 처음으로 화약 이외 사업에도 도전했다. 이후 1965년 한국화성공업(현 한화케미칼 및 한화L&C)을 설립해 석유화학 계열인 플라스틱산업에 강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경인에너지, 1972년에는 한국프라스틱공업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석유화학 시장 확장을 주도해 나갔다. 이쯤 한국화약은 무역, 소비재, 화약 등의 사업이 커지면서 이 분야를 집중·강화하고자 태평물산(현 한화무역)을 설립했다.
또한 1973년 동원공업 인수, 1973년 태평개발(현 한화호텔&리조트)을 설립해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을 개관해 운영에 들어갔다. 화약산업에 전념한 때가 한화그룹의 ‘창업기’라면, 석유화학산업과 기계산업 등 기간산업 중심으로 성장해 나간 이때는 ‘성장기’라 할 수 있다. 김종희 회장은 1981년 한화그룹을 총자산 7458억원, 매출액 1조1079억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종희 회장의 장남인 김승연 회장은 그 당시 계열사인 태평양건설 해외수주담당 이사의 직함을 들고 해외공사를 따내는 등 경영에 발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그러던 1981년 여름,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김승연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게 됐다. 당시 김 회장의 나이는 불과 29세,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쌓기 시작한 지 겨우 4년여 만이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 경영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젊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그룹의 총수 자리에 오르면서 단순히 그룹의 수성에 그치지 않고 ‘제2창업기’를 선언하고 한화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갔다. 특히 이 기간 동안 그는 ‘그룹의 트로이카’라고 평가받던 한국화약과 경인에너지, 그리고 한양화학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적인 석유화학그룹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컬을 인수하면서 화학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리조트),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인수를 통해 레저·유통산업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컬(현 한화케미칼)은 현재까지도 한화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회사는 한화의 새로운 사업분야인 레저·유통 부문의 주력사업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국내 경쟁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승연 시대 개막…탁월한 리더십으로 미래 개척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 회장의 경영능력은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됐다. 수많은 굴지의 대기업이 해체되던 중에도 김 회장은 ‘구조조정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한화그룹의 체질개선을 단행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진행됐던 그룹의 개혁이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21세기형 사업구조로 환골탈태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한화는 금융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비롯해 신동아화재(현 한화손해보험), 63시티(현 한화 63시티)를 일괄 인수했다. 이로써 제조, 금융, 서비스레저 3개 부문으로 다각화된 현재의 사업구조를 완성하게 됐다. 또한 동양백화점(현 한화타임월드) 등을 인수하면서 외환위기 당시 위축됐던 그룹의 사세를 다시 확장하는 ‘도약기’를 열었다.
특히 대한생명 인수는 한화그룹의 또 다른 ‘퀀텀 점프’의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몸집을 절반 가까이 줄였던 한화그룹은 내실 경영을 바탕으로 대한생명 인수전에서 승리했다. 김승연 회장은 무보수로 대표이사에 취임해 인수 1년여 만에 대한생명을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에 올려놨고, 인수 당시 2조3000억원에 달하던 누적결손금을 2008년 완전 해소했다.
게다가 2010년 3월에는 주식시장에 상장함으로써 공적자금 회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고,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 기반을 굳건히 했다. 그리고 올해 10년간 추진해 오던 ‘한화생명’으로 사명 변경을 일궈냈다.
김 회장이 글로벌 경영 선포를 한 2007년부터 한화그룹의 ‘글로벌 성장기’가 시작된다. 2005년 한화L&C 북미 자동차부품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한화생명 뉴욕 현지법인 설립, 한화건설 사우디아라비아법인 설립, 한화L&C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상하이 공장 준공, 한화증권의 국내 최초 카자흐스탄 진출과 한화L&C의 미국 아즈델(Azdel) 인수, 한화생명의 국내 최초 베트남 보험영업 인가 취득, 한화케미칼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회사 시프켐과의 합작법인 설립, 중국 닝보 PVC 공장 준공 등의 성과가 이어졌다.
글로벌 무대 도약, 김승연 회장 뚝심 통했다
김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긴 말이다.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태양광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화는 2010년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현 한화솔라원) 인수를 시작으로 태양광을 차세대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한화솔라원은 현재 800㎿ 규모의 잉곳과 웨이퍼를 생산한다. 또한 한화케미칼은 2011년 연간 1만t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건설하고 폴리실리콘 사업에 진출했다.
이로써 한화는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셀)-모듈-태양광 발전 등 태양광사업 전분야의 수직계열화를 마무리했다. 지난 8월 세계적인 태양전지·모듈업체인 독일 큐셀을 인수하며 세계 3위 태양광 기업으로 도약했다. 아울러 계열사인 한화건설은 지난 5월 해외건설 사상 최대인 8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현재 이라크 2차 신도시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김 회장은 태양광과 이라크 신도시 사업 수주 등 신성장 동력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며 한화그룹의 실질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그동안 기간사업과 내수 위주의 사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주요 경제인은 물론 정부 관료와 국가 정상에 이르기까지 두루 만나며 사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바이오시밀러인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실험이 마무리 단계이며, 2차전지용 양극재 개발에도 성공하는 등 또 다른 성장동력 발굴에도 진척을 보였다.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HD203 임상실험이 거의 마무리됐으며, 지난해 6월 미국의 머크와 7억2000만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기존 양극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LCO((LiCoO2·리튬코발트산화물)와는 달리 자연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철을 주원료로 하는 LFP 양극재 개발에 성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친환경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경영을 맡은 후 크게 성장했다. 김 회장은 석유화학, 유통, 레저, 기계, 금융업 등으로 무한질주를 계속해 오늘날 재계 9위(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의 한화그룹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 한화그룹은 현재 제조, 금융, 서비스·레저 등 53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로 현지 법인과 지사 102개를 구축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그룹 총자산은 101조6590억원, 매출액은 35조950억원이다. 순이익 9945억원, 투자 규모는 1조6000억원이다.
1950년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2012년 현재도 1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이 7개 기업에 한화가 포함될 수 있는 요인 중 첫 번째는 바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한발 빠르게 대응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낸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을 그룹 안팎에서는 첫손에 꼽는다.
한화그룹은 올해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하지 않았다. 김승연 회장이 지난 8월 배임죄로 법정 구속돼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의 부재로 기념식을 치를 수 없게 돼 한화 임직원들의 안타까움이 크다”면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새 도약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강력한 리더십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Tip | <월스트리트저널> 칼럼 “기업에 대한 공격 멈춰야” 주장
최근 한국의 세 대선후보를 향해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재벌 공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는 라파엘 에미트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 최근호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선 후보 3명 모두 일자리 창출, 소득과 부의 격차 감소를 위한 방법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이 같은 포퓰리즘은 바로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구속을 예로 들며 “정치권뿐 아니라 사법권도 반(反)재벌 조치에 가세했다”며 “정치권과 유권자들이 기업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또한 “정치권과 유권자들이 한국 경제의 독특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벌이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산업 발전을 주도했고 이 경제발전 모델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도 작동할 것이라는 게 논지다.
다음은 라파엘 에미트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에 기고한 칼럼의 전문이다.
‘한국의 소모적인 재벌과의 전쟁’
지금과 같이 한국의 기업이 정치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적은 없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과 언론, 그리고 대중은 재벌(대부분 가족이 운영하는, 한국 경제의 중심에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폄하하고 있다. 세 명의 대선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실업률을 낮추고 소득불평등을 완화시키겠다고 공약하고 있지만 이러한 인기몰이를 위한 포퓰리즘은 정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정치권의 화살은 재벌을 향하곤 한다. 어쨌든 한국에서 가장 큰 여덟 개의 대기업은 한국 경제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로 칭송받았던 재벌은 현재 너무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키웠다고 크게 책망받고 있다.
첫 번째 대선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그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새로운 국민 통합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재벌에 대한 도전이 주요한 내용 중 하나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더욱 더 엄격한 법의 집행으로 공평한 시장경제를 구축하고 재벌의 주식 발행을 제한해 계열사 간 상호소유를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재벌의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모든 상호소유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선호한다. 민주통합당 소속의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후보는 법인세를 높이고 재벌의 골목상권 사업을 제한해 영세상인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복지 개선과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러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검찰과 법원 또한 반재벌 정서를 여과없이 보이고 있다. 태양광 에너지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항변의 기회도 없이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배임으로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한국 경제의 독특함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전쟁의 잔해로부터 경제 선진국이 되기까지 나라를 일으킨 것은 재벌이었다. 이러한 모델은 아직까지 유효하며, 미래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구촌의 소비자들이 한국의 자동차(현대·기아차)를 타고 한국의 세탁기와 건조기(삼성·LG)를 사용하고 한국의 플랫스크린 텔레비전을 보며 한국의 스마트폰(삼성)을 사용하고, 집과 사무실을 태양광 패널(한화)로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재벌과 서양의 기업가들의 차이점이 많이 회자됐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같은 젊은 기업가들을 배출할 만한 창고가 없다. 한국에는 자신의 자산과 커리어를 걸고 새로운 혁신을 찾는 기업가의 전통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한국 문화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문화에서는 모험을 감수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패에 대한 사회적 대가가 굉장히 크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회경제적 번영을 도모하는 혁신은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재벌들이 모험을 감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필자가 한국 벤처캐피탈 회사 자문의원으로 일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이다. 재벌 리더들은 사업에 대한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이에 도전할 수 있는 규모의 자산과 강한 조직으로 뒷받침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재벌과 독립 기업가의 시작점은 같을 수가 없다. 또한 한국의 재벌은 골목상권과 소규모 상인들을 위협하기보다는 몇만명의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해 골목상권과 소규모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도록 한다. 이것은 왜 그동안의 모델이 지속될 수 있었으며 아직까지 유효한지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유럽발 금융위기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으로 인해 경제적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실업률은 지난 8월 기준 3.1%로 낮은 편이다. 한국의 수출 중심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성장률의 예상치를 2.7%로 잡았다.
한국에서 재벌들은 이미 사업확장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일본의 ‘케이레쓰(Keiretsu·금융사와 대기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상호 편의를 봐 주는 일본식 금산 시스템을 일컫는 말)’ 시스템과 대조되는 한국의 시스템에서 재 벌들은 금융 구조에 직접 관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부적절한 신용 보증을 받을 수가 없다.
한국 은행법 아래 재벌은 금융기관의 9% 이상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재벌과 관련 없는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은행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또한 재벌의 공동소유를 제한한다. 재벌이 불공평한 경쟁에서 이득을 얻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이러한 법규를 제대로 지키는 것뿐이다. 이것은 가족이 경영하는 재벌 기업에 대한 국민의 우려 또한 방지할 수 있다.
한국의 국민을 위해서, 그리고 이 나라의 경제적인 풍요를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정치적인 책망은 그만 접어두어야 한다. 지금 대선 주자들은 인기를 얻기 위해 한국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