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기본을 중시한다
- 부문별 핵심역량을 강화하라
삼성 라이온즈는 전통적으로 호쾌한 공격야구의 대명사였다. 장효조,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이상 은퇴), 이승엽 등 레전드(Legend)급 타자들이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야구계에는 ‘방망이는 믿을 수 없다’는 속설이 있다. 그 속설이 딱 맞아떨어지는 팀이 과거의 삼성이었다. 삼성의 화려한 타선은 정작 빅매치에서는 물먹은 스펀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시리즈만 올라가면 투수력이 강한 팀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야구의 기본은 공수주다. 치고 막고 달리는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만 승리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다. 달리 말해 공수주의 핵심역량이 강해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야구를 가장 잘했던 팀이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나는 옛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다.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 라이온즈는 결국 ‘해태왕조’를 건설했던 명장 김응용 감독을 2000년 말 ‘우승 청부사’로 영입했다. 김응용 감독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구며 마침내 삼성의 한(恨)을 풀어내는 주역이 됐다.
김응용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4년 말 삼성의 사령탑에 취임한 선동열 감독(현 기아 타이거즈 감독)은 더욱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팀의 무게중심을 타선에서 투수진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투수가 허약하면 결코 강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자연히 삼성의 팀컬러도 타력의 팀에서 투수력의 팀으로 점차 바뀌어갔다.
선동열 감독은 초보 지도자로 취임하자마자 2005~ 200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야구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냈다. 특히 국보급 투수 출신답게 삼성의 젊은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투수진은 리그 정상급으로 평가된다. 류현진, 윤석민 같은 특급 선발투수는 없지만 한 시즌 10승 이상 거둘 수 있는 A급 선발투수 자원은 다른 구단보다 넉넉하다. 더욱이 ‘끝판대장’ 오승환을 정점으로 하는 불펜진은 국내 최강으로 평가된다.
삼성은 2000년대 중반부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수진의 보직을 명확하게 구분해왔다. 투수 개개인의 구위와 역량 등을 감안해 선발진, 불펜A조(필승조), 불펜B조(추격조), 마무리투수 등으로 각자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 투수들은 본인의 임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최근 4~5년간 야수진 육성에서도 큰 성과를 얻었다. 다른 구단에서 대형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하는 대신 젊은 선수들에게 꾸준하게 기회를 주면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 덕분이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최형우, 박석민, 김상수, 배영섭, 정형식 등 현재 삼성의 주축 야수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올해 삼성은 팀 타율 1위(0.272), 팀 방어율 1위(3.39)에 올랐다. 투타 모두 최고다.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이 운이 아니라 평소 실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타내는 근거다. 또한 2010년 말 사령탑에 취임한 류중일 감독이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를 강조하면서 삼성은 빠른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2 미래를 준비한다
- 신성장동력 발굴에 투자하라
프로야구에서는 고졸이나 대졸 신인 중 대형 유망주가 곧바로 주전 한 자리를 꿰차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다. 대다수 선수들은 2군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 1군 주전선수로 발돋움한다. 따라서 2군 육성 시스템이 곧 그 팀의 미래를 담보하는 셈이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타선을 이끄는 중심타자 최형우, 박석민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다. 하지만 두 선수도 역시 2군 생활을 거쳐 주전으로 도약한 케이스다. 삼성의 외야를 책임지고 있는 젊고 빠른 외야수 배영섭과 정형식도 마찬가지다.
삼성 라이온즈는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에서 구단버스로 약 40분 거리에 종합야구훈련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최고는 물론 동양 최대 규모로 꼽히는 ‘경산볼파크’다. 경산볼파크는 선수단 합숙소를 비롯해 체력단련장, 실내연습장,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등을 갖추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단 훈련장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 2군 선수들은 경산볼파크에서 훈련, 경기, 휴식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있다. 야구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과 환경 속에서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유망주들이 길러지고 있는 셈이다.
경산볼파크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우승을 계기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건희 당시 구단주(현 구단주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다)의 결정으로 1986년 착공에 들어가 1987년 완공된 경산훈련장이 모태다. 경산훈련장은 1996년 대대적인 증설을 거쳐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현재의 경산볼파크로 거듭났다. 이때 2군 선수들의 훈련장이자 전용구장인 주경기장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게 됐다.
경산볼파크 주경기장은 약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과 전광판을 설치해 정규경기도 치를 수 있다. 또 실내연습장은 자체 채광이 가능한 데다 인조잔디까지 깔아 정규구장 내야와 거의 똑같은 환경을 구현했다. 이곳에서는 언제든 피칭, 배팅, 수비 훈련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 있다.
김남형 삼성 라이온즈 홍보팀 차장은 “경산볼파크는 2군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타 구단 1군 선수들조차 놀랄 정도다. 김응용 전 감독도 부임 후 처음 경산볼파크를 찾았을 때 시스템과 환경을 살펴보고는 입을 쩍 벌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3 탄탄한 팀워크
- 신뢰의 조직문화를 구축하라
야구는 개인종목과 달리 ‘팀스포츠’다. 선수단의 팀워크가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과거 삼성 라이온즈는 선수 개개인으로 보면 스타들이 즐비했지만 팀으로 보면 허술한 대목이 적잖이 노출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 삼성은 그 어떤 팀보다 끈끈한 팀워크와 강한 응집력을 자랑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프로야구의 중심은 선수단이다. 하지만 구단 살림살이를 맡은 프런트의 역할도 크다. 특히 좋은 성적을 내려면 선수단과 프런트의 합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국내 프로야구단 중에는 프런트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수단이 프런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선수단 운영에 관한 한 우선적으로 감독의 의사를 존중한다. 특히 2000년 말 카리스마 넘치는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프런트의 선수단에 대한 ‘간섭과 참견’은 줄어들고 ‘관심과 소통’은 늘어나는 방향으로 구단 문화가 정착됐다고 한다.
올 시즌 초반 삼성 라이온즈는 한때 7위로 주저앉으면서 큰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모든 전문가들이 ‘1강’으로 꼽았던 팀이 추락했으니 선수단 분위기도 착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김남형 차장은 “시즌 초반 위기를 겪을 때 감독, 코칭스태프와 프런트가 충분한 신뢰를 바탕으로 솔직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어느 팀이든 동계훈련을 통해 최적의 시나리오를 구상하지만 막상 정규시즌에 들어가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밑그림을 흔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성적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시즌 전에 그려놓은 전략에는 손대지 않고 전술적 차원의 변화를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이승엽 효과’가 삼성의 팀워크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많다.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내가 지나치게 부각되면 팀 분위기에 해가 된다”며 언론 인터뷰를 정중하게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는 경기장에 가장 먼저 나와 묵묵히 훈련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됐다. 베테랑 선배이자 대스타의 솔선수범은 후배 선수들을 결집시켜 전체적인 팀워크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4 소통의 리더십
- ‘상하동욕자승’의 지도력을 발휘하라
류중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삼성에서만 20여년간 선수, 코치 생활을 거쳐 사령탑에 올랐고, 초보 감독으로서 2011~2012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프로야구 지도자로는 2005~2006년 2연패를 일군 선동열 전 감독에 이어 사상 2번째 기록이다.
야구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작전을 많이 구사하는 스포츠로 꼽힌다. 그 때문에 감독의 경기를 읽는 안목과 전략·전술 역량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오랜 격언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류중일 감독은 어떤 리더십을 가졌기에 초보 사령탑으로서 2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을까. 구단 측에 따르면 류 감독은 한 마디로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가다.
야구감독은 종종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주한다. 그만큼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류 감독은 선수들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각 파트 코치들과 긴밀하게 상의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선수들과도 거리낌없이 어울린다. 몇몇 선수들과는 성적을 놓고 ‘내기’를 걸 정도다. 자연히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 간에 물 흐르듯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김남형 차장은 “류중일 감독은 삼성에서 코치로만 11년간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짚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프로야구 지도자 가운데 류 감독만큼 선수들과 직접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경우도 드물 것”이라고 밝혔다.
류중일 감독은 2011년 초보 감독으로 첫 우승을 일궈내면서 팬들로부터 ‘야통(野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야통은 ‘야구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야구로 통한다’ 혹은 ‘소통하는 야구를 한다’는 의미의 ‘야통(野通)’으로 해석하는 게 류중일 감독의 스타일에 더 적합할 것 같다는 게 구단 측의 의견이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단 운영은 감독이 책임지지만 구단 전체 경영은 사장이 관장한다. 그런 점에서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2010년 12월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 부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김인 사장뿐 아니라 송삼봉 단장, 류중일 감독까지 모두 처음 그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다. 사장, 단장, 감독은 프로야구단의 최고위층을 이루는 3인이다. 그런데 이 3명의 ‘초보’들은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역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번째 사례다.
삼성 안팎에서는 김인 사장의 ‘어머니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김 사장은 부임 후 처음 맞은 2011년 시즌에 한두 경기를 제외하고는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선수단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행보는 극히 자제했다. 가령 선수단이 경기에 패한 날에도 오히려 격려하고 다독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프런트는 선수단에 간섭하지 않고 측면에서 최대한 지원한다’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은 좋은 성적을 내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올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상하동욕자승(上下同慾者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김인 사장이 직접 제안한 문구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상하동욕자승은 장수와 병사가 뜻을 함께하면 반드시 전쟁에서 이긴다는 뜻이다.
현대식 경영학으로 해석한다면 최고경영자부터 말단사원까지 한 가지 비전으로 뭉치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기업은 반드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정도가 되겠다. 중요한 것은 상하동욕자승을 실현하는 열쇠를 지도자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